|
240804주일 [심령이 새롭게 되어가는그리스도인들]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엄청나게 큰 변화를 동반한다.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갖게 되는 변화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변화다.
단순히 사람이 어떤 면에서 향상되는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질적으로 바뀌고, 이 세상의 이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대단한 변화로 증거를 나타낸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는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는 인간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인간이 순종하여, 이루는 일은 믿음이라는 자체적 고백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변화는 그렇게 내게 이루어진다.
[나라는 존재, 나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여러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육, 혼, 영 세가지가 합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나는 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마음이 나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거의 모르고 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자신이 진짜 자신일까?
변화를 가져야 하는 나는 누구일까.
어쩌면 우리는 수십년 인생을 살면서도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모를 수 있다.
걱정하는 것은 자기가 누구인지 잘못 아는 것이다.
인간에 관해 다루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강사들이 있다.
거기에 보면 신기한 것이 하나 있다.
이 분들은 숨어있는 자아를 끌어내는 능력이 있다.
거기서부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영적으로 잘 설명했다기 보다, 중요한 면을 말하고 있다.
평소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은 참 나의 껍데기에 불과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내가 오늘 나를 이끌어 가고 있는데, 그러면 계속 껍데기가 나를 이끌어 가고 있을까.
오늘을 사는 나도 나일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이 누군지 불러내야 한다.
우리 교회에서는 나라는 존재는 영이라고 설명한다.
영혼만 자기고, 껍질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악행을 잘한다.
악행을 하고도, 내 영은 복받았다. 이 악행은 나와 상관없다고 한다.
책임을 자기가 지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갖는다.
이런 식으로 살면, 범행에 대해 책임져야 할 당사자임에도, 영은 몸에 거하면서 아무 기여도 하지 않는 삶을 살 수도 있다.
[하나님은 누구와 대화를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 상황 속에서 말씀하시고, 현재성 있는 삶의 안내자로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누구에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궁극적으로 마지막 날에 우리는 육신을 버리고, 영만 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내 악행은 누가 책임질까. 그것에 대해 귀신이 그랬다고 한다.
귀신이 떠나면,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한다.
악한 영이 떠나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나는 또 다른 악행을 무의식적으로 구상한다.
문제는 내가 원수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새롭게 된다?]
우리는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따라, 신앙여정을 가야 한다.
이것은 내 마음에 좋은 자세를 갖는 것과 달리, 나의 옛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예수 믿고,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너무 많이 듣는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구속사역을 하시는 것이다.
무엇을 덧입는 것, 기능향상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TV에서 울면서, 자기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은 자기가 가난의 고통을 절감하고, 무서워서,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 방법은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다.
진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학에 가고, 이제는 가난에 시달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자가 되었다.
나중에 울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공부를 지독하게 해야한다는 것 우리도 안다. 다 열심히 하고 싶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되니까 문제다.
그러나 그는 얼마나 심지가 깊고, 심도 있는 결단이 있었는지, 삶의 즐거움도 다 버리고, 그저 공부하여, 모든 삶을 희생했다.
한마디로 참고 공부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를 늘 끌고 다니는 나보다, 더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내 속에 있는 자아가 고통 속에 있을 수 있다.
이 자체도 영적인 설명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이것은 그냥 인생사로서 참고할 뿐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사람의 변화는 실제 현상이다.
실제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현상이라는 기독교의 대선언이다.
하나님은 오늘날 나라는 존재에게 말씀하고 계시다.
나라는 존재가 나와서, 처음부터 그분의 말씀을 받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존재가 새롭게 되길 원하신다.
우리 존재가 아름답고, 당당하고, 영광스럽게 등장하게 되길 바란다.
[본문]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으라고 하였다.
옛사람이 문제였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속이는 것, 거짓이 많다.
사실상 늘 속아왔다.
옛사람은 잘 속는 존재다.
정욕이 많아서, 잘 속을 수 밖에 없다.
누가 무엇을 제시하면, 그것을 갖고 싶어서, 마음을 다 빼앗기기 때문에, 잘 속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구습이다. 이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
옛사람을 벗은 후에는 더 이상 옛사람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의 절차다.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본문의 내용은 짧지만, 중요한 내용이다.
여기에 심령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문자적으로 마음의 영이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너희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심령의 변화가 생기는데, 이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이방인의 타락한 삶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을 갖게 되는데, 이 모습을 갖게 되는 주역은 마음의 영이다.
마음의 영만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영에서 시작하여, 마음의 영에서 결단한 것이 나 자신을 이끌어간다.
[새롭게 되다는 개념]
성경에서 가끔은 다른 헬라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여기서 새사람은 내게 없던 것, 새것이라는 의미다.
뒤의 새롭게 하심은 이전의 것이 갱신된다는 의미다.
고전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새 덩어리, 어디서 새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누룩은 조금만 있어도 전체가 오염된다. 누룩없는 새덩어리가 되기 위해서는 묵은 누룩 전체를 버려야 한다.
새덩어리가 되기 위해, 새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것이 되는 것이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날로 새롭도다.
우리 말로 굳이 하자면, 갱신이다.
again new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새롭게 되니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는 자가 된다.
원어의 의미는 기존에 있는 것을 다시 젊은 상태로 되돌린다는 의미다.
그러나, 새사람의 개념은 원래 없는, 다른 곳에서 와야하는 것이다.
다음주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새것이 주어지는 것을 말할 것이다.
창조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역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새롭게 되는 과정은 인간의 역할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일종의 회복이다.
내가 시작해서, 내가 새롭게 되는 것이다.
엡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을 벗으면, 심령으로 새롭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옛사람과 같이 하면, 새롭게 안되는 것이다.!!
새롭게 하신다는 것은 새롭게 하는 의미도 있지만, 회복의 의미도 있다.
너를 새롭게 하고, 너를 회복할 것이다. 이것이 새롭게 한다는 의미다.
옛사람을 벗으니, 새롭게 되어, 새사람을 입을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결단을 해야 한다.
새롭게 하는 결단이 있어야, 새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다.
순서적으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되어가는 것이 시작된다.
엡4:23-24은 한문장이다.
[마음의 영]
마음의 영이 새롭게 되어가므로, 새사람을 입는다.
그렇게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심령이 무엇인가.
영은 spirit, mind라고도 한다.
영은 내 마음의 중심이다.
구원은 영만 받는다고 하면 옳지 않다.
구원이 혼과 관계없다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마음과 직결되는 것이 구원이다.
구원의 효력은 마음의 영이 받고, 마음의 영에서 변화가 생겨서, 마음이 구원된다.
마음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성, 판단, 모든 정신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중심 오피스다.
그러나, 이 마음 자체는 한계가 있다.
마음이 내 전체라고 할 수는 없다.
마음은 기능만 요란하지, 깊이는 없고, 도덕적 역량도 없다.
그러나, 심령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는 것이 있다.
이성의 영역 이상의 심도있는 실체를 가르키고 있다.
심령은 정신적 영역을 넘어서는 깊은 영역의 영적, 도덕적 역량이 있는 자신을 말하고 있다.
또, 심령을 통한 변화는 현상적으로 나타난다.
심령이 새로워지면, 명백하게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억지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현상 자체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대하고 있는 변화는 영혼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마음에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발생은 마음의 영에서 일어난다.
마음의 영은 그렇게 하여, 마음에게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서투른 마음보다 마음의 영이 마음에게 실제적인 영향을 준다.
모든 방향을 주고, 생각의 재료를 주고, 진정한 가치를 알려주고, 하나님의 법이 쓰여있는 것 자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어 갖는 변화는 심리학적인 변화가 아니다.
이것은 단지 의견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영이 아무 감정도 없고, 느낌도 없이, 육신이 뭐라고 하든말든, 고상하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삶에서 고난을 받건, 말건, 교회를 해치건 말건, 악행을 하건 말건, 무관한 것이 아니다.
영은 초월적인 조재, 마음과도 상관하지 않고, 구원은 영만 있다고 하면, 악행은 그 다음부터 인생이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의 심령속에 심어진, 하나님을 찾아가는 잠재력을 완전히 뒤로 팽개치게 될 것이다.
악행은 마음의 영이 모든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변화는 마음의 영에서 시작하여, 마음 전체에 영향을 준다.
이 변화는 능력으로 있다.
일단 자기 의지로 시작해야 한다. 나는 변할 것이다. 이에 따라, 능력이 부여된다.
능력을 씌우니까, 다음부터 되는 것이 아니고, 강제로 하는 것도 아니고,정신에 무엇을 씌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움직일 때, 추진력이 자기도 모르는 곳, 곧 하늘에서 오는 것이다.
세상 사람은 절대 해낼 수 없는 변화를 하게 된다.
그래서, 내면의 모든 정신작용이 철저하게 바뀐다.
엄청난 위력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속사람의 경우와 비슷하다.
엡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새로워 지는 것은 속사람이다.
헬라 개념으로는 사람 속에 사람이 있다고 한다.
겉의 사람이 전부가 아니라, 그 사람 속의 자아를 인식하고 있다.
그것이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음, 마음의 영이라고 표현한 것을 볼 때, 하나의 유니트다.
마음은 별개라고 하지 않는다.
옛사람을 버리되, 마음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새로워짐이 계속 되어야 한다.
마음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되는 것이다.
[새롭게 되어갈 자를 위해 준비된 새 사람]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이제 새사람을 입을 수 있다.
[눈부신 영적 생활]
사람의 마음이 새롭게 되면, 없던 도덕적 역량이 생긴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우선적으로 하나님은 그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
이것이 시작이다.
도덕적 역량, 영적 역량을 주시는 것이다.
단지 자세의 변화가 아니라, 능력이 생긴다. 능을 행사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원래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눈부신 발전, 성장이다.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고귀한 마음이 생긴다.
영은 그냥 떠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사실은 마음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그냥 마음보다 더 신뢰할 만한 잠재성이 있는 존재다.
고전2:11-12,14,16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영은 생각하는 존재다.
영은 나중에는 하나님의 일을 인식하고, 분별하고, 깨달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갖기도 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신데, 아무 기능도 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은 우리에게 모든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킬 만큼,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다. 생각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영도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고, 따라가고 싶어한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심오한 도덕적 이해를 확실히 갖고 있는 존재다.
이런 새롭게 됨은 일생을 통해 계속된다.
그리하여,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을 수 있고,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
깊이 있는 판단력이 이제 가동된다.
이 과정은 한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됨은 계속되는 것이다.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이 삶의 마지막까지 계속 새롭게 하신다.
새롭게 되지 않고,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거나, 후패하면 안된다.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후퇴다.
우리를 새롭게 하는 매일의 자원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성령께 순종해야, 새롭게 된다. 그렇게 해야 예수의 마음도 내 것이 되고, 마음이 감사하여, 하나님께 찬양한다.
그래서, 복잡하고, 예민하게, 고차원의 영적인 일을 분별할 수 있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외적 행실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결과를 가져옴]
영적 행실과 도덕적 행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모든 면이 새롭게 되면, 지식까지도 바뀐다.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이 변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도덕적인 역량이 향상되는 것이다.
선을 택할 능력이 탁월해진다.
도덕적 가치에 대한 인식의 발전이 생긴다.
성경 전체가 말하는 바가 그것이다.
[심령을 계속 새로워지게 하자]
옛사람을 버리는 것은 이제 시작이다. 그날 다 새로워진 것이 아니다.
계속 새로워지기 바란다.
속사람을 그냥 가두어두지 말고, 새롭게 하자.
[새사람을 입게 될 것]
그 다음은 새사람을 입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가 될 것이다.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는 자가 이제 하나님을 따라, 새로히 지음을 받을 자가 될 것이다.
우리 심령의 변화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주님의 사역이 성공되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를 온전한 구속으로 이끌 것이다.
우리 속사람을 사랑하고, 우리 전체를 사랑하는 주님을 기쁘게 하자.
우리 심령에 변화가 있기 원합니다.
결단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순종할 것입니다.
옛사람을 이제 벗어버렸고, 새롭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갈 것입니다.
내 속사람을 어두운 곳에 방치하지 않고,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방대한 지경으로 갈 것입니다.
우리를 역사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