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가 졸전을 펼쳤다고 보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과 호흡을 맞출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홍 감독의 얼굴이 전광판에 비칠 때마다 야유가 쏟아지는 것을 지켜 보는 일도 힘들었다. 5일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년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축구연맹(AFC) 최종 예선 B조 첫 경기가 끝난 뒤 대한축구협회 대표팀 홍보 관계자가 서둘러 홍 감독을 돌려세워 카메라에 잡히지 않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괴로웠다.
우리에게 골 운이 따르지 않았고 팔레스타인 대표팀 선수들이 정말 모든 것을 다하는 진정성에서 앞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아랍권 주류 미디어 알자지라의 보도를 보자. 전문은 아니고 요점만 추린다.
팔레스타인은 한국과의 첫 경기를 0-0으로 비겨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입증했는데 놀랍긴 하다. 올해 초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컵 녹아웃 스테이지에 처음 진출해 절정을 이룬 팔레스타인 축구가 계속 성장하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팔레스타인이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에 올라온 것도 처음이다. 하지만 AFC 예선에 11차례 나선 것이 기록의 전부였던 팔레스타인이 아시아 최강 한국을 만나 희망이 없었는데 귀중한 승점 1을 원정에서 차지한 것이다. 한국은 2013년 이후 홈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경기를 한 번도 진 적이 없었고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14위로 '가나안의 사자들'(96위)에 견줘 한참 위였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전반 22분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긴 했지만 골문을 먼저 열어 홍명보호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홍명보 감독은 올해 들어 한국 대표팀을 네 번째 지휘하는 것이었으며 대표팀은 주장 손흥민을 이 경기에 뛰게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수비진은 견고하게 보이지 않았다. 전반 한국의 가장 좋았던 기회는 이강인이 잡았는데 팔레스타인 골키퍼 라미 하마데흐의 간절한 선방이 빛을 발했다.
하마데흐는 74분 이강인의 프리킥을 몸을 날려 손으로 쳐내는 활약을 펼쳤다. 그 뒤 오데이 다바그가 골키퍼와 맞서는 기회를 잡았는데 다리 힘이 풀려 놓쳤고, 손흥민 역시 추가시간 결정적인 일대일 기회를 잡았으나 골키퍼를 피해 날린 슈팅이 골포스트를 맞고 퉁겨나오는 불운에 울었다.
팔레스타인은 가자 전쟁 때문에 홈 경기도 원정 경기로 치르고 있는데 주로 중동 지역에서 열고 있다. 지역 리그는 중단돼 있어 많은 선수들이 클럽 경기를 뛰지 못하고 있다.
이날 한국과의 대결에 나선 선수 대부분은 칠레와 덴마크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었다. 골키퍼는 소속 팀이 없어 아마추어 선수로 뛴다. 가자 전쟁 10개월 만에 팔레스타인 축구 선수 92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축구 경기장 등 관련 인프라도 심각하게 파괴됐다. 말레이시아에 훈련 캠프를 차리고 어렵게 대표팀을 운용해 온 것이 팔레스타인 대표팀이다. 그런 선수들을 상대로 0-0 무승부를 거뒀으니 대표팀과 축구협회, 선수들을 나무랄 수도 있겠으나 팔레스타인 선수들의 진정성이 능가한 경기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