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六祖) 문하의 양대선풍(兩大禪風)
부처님 법의 가장 높고 깊은 진리를 논할 것 같으면,
모든 부처님께서 삼천 리 밖에서 몸을 감출 곳을 찾아야
옳음이요,
역대의 모든 조사(祖師)께서 사면(四面)의 철벽(鐵壁)에 갇혀 도망갈 길이 없음이로다.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몸을 뒤쳐 살아날 수가 있느냐?
噓噓(허허)
蒼天蒼天(창천창천)
허허
아이고, 아이고! 로다
'허허', '아이고, 아이고!' 하는 여기에 큰 뜻이 숨어 있다.
우리가 이러한 심오한 진리의 법을 바로 알아야 천상 천하(天上天下)에 진리의 자재인(自在人)이 되어 만인에게 법을 펼 수가 있는 법이다.
육조(六祖) 대사는 육신보살(肉身菩薩)로 도인 가운데서도 위대한 도인이신데, 이 육조대사의 문하(門下)에서 선법이 크게 흥성하여 천하를 덮었다.
육조 대사 아래 많은 도인 제자가 배출되었는데, 그 가운데 으뜸가는 진리의 기봉(機鋒)을 갖춘 분이 남악 회양(南嶽懷讓) 선사와 청원 행사(靑原行思) 선사이시다.
오늘날 중국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종풍(宗風)을 떨치고 있는 선법(禪法)은, 육조 대사의 이 두 상수(上首)제자의 법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청원 행사 스님이 육조 대사를 처음 참예(參詣)하여 예삼배를 올리고 여쭙기를,
"어떻게 해야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하니, 육조 대사께서 도리어 물으셨다.
"그대는 무엇을 닦아 익혀왔는고?"
"성인(聖人)의 법(法)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떠한 계급에 떨어졌던고?"
"성인의 법도 오히려 행하지 않았거늘, 어찌 계급이 있겠습니까?"
진리의 눈이 열리면 이렇게 쉽다. 묻고 답하는 데 두미(頭尾)가 이렇게 척척 맞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래서 육조 대사께서 매우 흡족히 여기시고 행사 스님을 제자로 봉(封)하셨던 것이다.
하루는 남악 회양 스님이 육조 대사를 친견(親見)하니, 육조께서
"그대는 어디서 오는고?"
하고 물으셨다.
"숭산(崇山)에서 옵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오는고?"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닦아 증득하는 법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닦아서 얻음은 없지 아니하나 더러운 데 물드는 일은 없습니다."
"더러운 데 물들지 아니함은 모든 부처님의 살림살이이다. 너도 그러하고 나도 또한 그러하니 잘 두호(斗護)하라."
육조 대사께서 이렇게 인증(印證)하셔서, 형과 아우를 가리기 어려울 만큼 훌륭한 안목(眼目)을 갖춘 이 두 제자를 상수 제자(上首弟子)로 봉(封)하셨다.
이후 청원 행사·남악 회양 두 분 선사의 계파(系派)를 좇아서 선종(禪宗)의 오종(五宗)이 벌어졌다. 행사 선사의 문하에서는 조동종(曹洞宗)·법안종(法眼宗)·운문종(雲門宗), 회양 선사 문하에서는 임제종(臨濟宗)과 위앙종(潙仰宗)이 벌어져 중국 천하를 풍미했던 것이다.
행사 선사 밑으로 석두(石頭)·도오(道悟)·용담(龍潭)·덕산(德山) 선사로 쭉 이어져 내려왔고, 회양 선사 밑으로 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임제(臨濟) 선사로 이어져 내려왔으니, 임제의 '할(喝)'과 덕산의 '방(棒)'은 육조 문하의 양대 아손(兒孫)의 가풍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선종(禪宗)은 임제 선사의 선풍(禪風)을 이은 임제종인데, 20여 년 전에 향곡 선사께서 산승에게 이렇게 물으신 적이 있었다.
"너는 덕산 선사의 '방(棒)'의 살림을 소중히 여기느냐, 임제 선사의 벽력 같은 '할(喝)'을 소중히 여기느냐?"
그래서 산승(山僧)은,
"두 분 다 이 주장자로 삼십 방(방)을 맞아야 옳습니다."
라고 답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이 양대 아손(兒孫)의 가풍을 알겠는가?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건대, 청원 행사 선사께서는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진리의 체성(體性)을 전하셨고, 남악 회양 선사께서는 향하(向下)의 대용(大用)의 법을 전하셨다.
이 진리 자체에는 체(體)와 용(用)이 본시 둘이 아니어서, 체가 용이 되기도 하고 용이 체가 되기도 하여 둘이 항상 일체이다.
그래서 구경법(究竟法)을 깨달아 향상(向上)의 진리를 알게 되면 향하(向下)의 진리도 알게 되고, 향하의 진리를 알면 향상의 진리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둘이 아니면서 이름이 둘이다.
행사 선사와 회양 선사, 두 분이 쌍벽을 이루어 육조 대사의 고준(高峻)한 법을 널리 펴시는데, 행사 선사에게 제자를 봉(封)해 분가(分家)시켜야 할 인연이 도래하였다.
하루는 행사 선사께서 제자 석두(石頭) 스님을 시켜 회양 선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르셨다.
"너가 회양 선사께 가서 이 편지를 전해 드리고 돌아오면, 무딘 도끼[鈯斧子]를 주어 분가(分家)시켜서 다른 산에 주(住)하게 하겠다."
석두 스님이 여러 달을 걸어서 회양 선사 처소에 이르러 인사를 올리고는, 전하라는 편지는 올리지 않고 대뜸 여쭈었다.
"모든 성인(聖人)을 사모하지 않고 자기의 영(靈)도 중요시 여기지 아니할 때 어떠합니까?"
이렇게 고준한 일문(一問)을 던지니, 회양 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어찌하여 향상(向上)의 진리만 묻고 향하사(向下事)는 묻지 않는고?"
그러자 석두 스님은,
"수억만 년을 생사(生死)의 바다에 잠길지언정 모든 부처님과 성인의 해탈법은 구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자기의 소견(所見)을 고집하였다.
이 말 끝에 회양 선사께서는 돌아앉아 버리시고 상대하지 않으셨다. 양변(兩邊)을 다 들어야 하는데 일변(一邊)으로만 나가니 대화의 상대가 안 된다고 돌아앉아 버리신 것이다.
대중은 알겠는가?
만약 당시에 회양 선사께서,
"이 담판한(擔板漢)"아, 판자를 지고 천리 만리 잘 돌아다녀 보게."
라고 한 마디 던지고 돌아앉으셨더라면, 석두 스님에겐 크나큰 활기(活氣)가 되었을 것이다.
석두 스님이 그 길로 행사 선사께 돌아가니, 선사께서 물으셨다.
"편지는 잘 전했느냐?"
"편지도 전하지 못하고 신(信)도 통하지 못하였습니다."
석두 스님이 회양 선사 처소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씀 드리고는,
"편지를 전하고 오면 무딘 도끼를 주어 분가시켜 주신다고 하셨으니 도끼를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행사 선사께서 아무 말 없이 발(足)을 들어 보이셨고, 거기서 석두 스님은 큰절을 하였다.
행사 선사께서는 여기에서 석두 스님에게 법을 전하여 남악산(南嶽山)에 주(住)하게 하셨다.
고인들께서는 제자에게 법을 전하실 때, 이렇게 세밀하게 다루어 보고 마음에 흡족해야 법을 부촉(付囑)하셨다.
이 법은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을 것 같으면, 만인의 눈을 멀게 하고 불조(佛祖)의 정안(正眼)을 그르치는 고로, 고인들께서 법을 전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세밀하고 세밀하셨던 것이다.
무딘 도끼를 달라고 하는데 왜 한 발(一足)을 들어 보였을까?
또, 발을 들어 보이는데 왜 일어나서 큰절을 했을까?
이 대목은 천고(千古)에 알기 어려운 법문이다. 여기에 무진(無盡) 법문이 다 들어 있다.
대중은 알겠는가?
[한참 묵묵히 계시다가 이르시기를,]
了知向上句(요지향상구)
豈不知向下事(기부지향하사)
향상의 진리를 요달해 안다면
어찌 향하사를 알지 못하리오.
향하사(向下事)여!
[주장자(拄杖子)를 한 번 치시고,]
바로 이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