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 오메이트 유무근 기자
로또 1등 당첨 44억 입금된 소회.......
땅을 팔려고 양밥을 했는데 복권이 당첨되었다. 어제 산 로또 용지 수십 번을 들여다보고
또 봐도 틀림없는 일등 번호다. 수년이 지나도 팔리지 않는 땅이다. 시주 온 스님이 “복숭아
일곱 개를 쌀 그릇에 올려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라” 하던 말이 떠올랐다.
미신이라 여기면서도 절박함이 더 가까웠다. 구겨질까, 해질까 조마조마하며 복권을 쥔
손끝은 무속인의 점괘처럼 떨렸다. 나도 드디어 인생 역전이 되는 것일까?
양말 속 깊이 숨긴 복권을 지닌 채 서울로 향했다. 농협은행 창구에서 확인한 순간, 내
통장에 44억 원이 찍혔다. 동그라미 개수를 세고 또 셌었어도 믿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럴 때 기절한다던데, 나는 살아 있었다. 대신 어안이 벙벙했다. 한때 400억원에
당첨된 경찰관이 떠올랐지만, 그에 십분의 일이라도 감지덕지다.
그래도 이번엔 내가 주인공이었다.
먼저 아이들을 불렀다. 일남이녀 셋, 전부터 사업자금이니 미래 설계니 말만 했던 꿈들을
실현해 주고 싶었다. 각자 5억 원씩 안겨주었다. 종교단체에도 봉헌했다. 친구들을 농장으로
불러 송아지 잡고, 천만 원씩 봉투를 쥐여주었다. 빚진 마음을 풀어내듯 실컷 쓰고도 통장은
반 이상 차 있었다. 아내가 좋아하던 빨간 승용차와 명품 가방, 의류, 키 높이 구두를
색상별로 권했다. 미소 짓는 입꼬리에서 목단꽃이 피어올랐다. 살면서 이만큼 화사하게
밝은 모습은 처음 보았다.
무엇보다 남은 돈은 통째로 아내에게 건넸다. 세상 사람들 말처럼 차도 집도 아내도 바꾼다
던데, 우리 나이쯤 되면 아내는 집사람이 아니라 임금님이신데, 임금님을 어떻게 바꾼단
말인가! 그날은 혼자서도 웃음이 나왔다. 누가 웃기지도 않은데 킥킥거리다 보니 갑자기
아내의 잔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보소! 라면이랑 달걀 사서 어디다 두었소? 뭐, 지갑 줍는 꿈이라도 꾸었능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당에 빨간 승용차도 명품 가방도 보이지 않고 아내가 입은 옷도
아침에 본 그대로였다. 이십억 원을 원 없이 펑펑 쓰고,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 한편은
아주 시원했다. 버킷리스트를 꿈속에서나마 원 없이 이룬 덕분이었다.
싱크대 서랍 위에 복숭아 일곱 개는 어느새 딸 가족이 다 먹어 치우고, 사발만 외로이
쌀을 지키고 있었다. 정작 매매를 바라던 땅은 여전히 묵묵히 그 자리에 있고. 양밥은
미신일까, 신앙일까, 아니면 간절한 기도였을까. 복은 결국 정성을 담는 이의 마음을
따라가는 게 아닐까. 싶다.
다시 복숭아를 얹으며 내 안에 나를 돌아본다. 욕망은 늘 앞서고 성찰은 뒤따른다.
그러니 이제는 결과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운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쳐 간 바람이 내 안에서 잠시 파랑새로 머물렀을 뿐이다.
출처: 오메이트 2025.09.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