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세요?
어느만큼 피로도 가셨고, 길벗모임 교양강좌도 조촐하게 마쳤으니,
이제부터는 슬슬 큐바에 다녀온 이야기를 올려보겠습니다.
앞으로 몇 회로 끝날는 지, 또 언제쯤 끝날 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냥 쉬엄 쉬엄, 시간 있을 때마다 조금씩 써서 올리겠어요.
아시다시피 저는 정치에는 관심도 지식도 없으니, 아마 저의 글에는
정치면으로 많이 허술함이 있을 것이라는 것, 미리 양해 바랍니다.
그대신, 그 면에 관해서는 앞으로 우리 청개구리 아재가 따로 써
올릴 예정인가 봅니다.
그럼……
12. 7. ‘03
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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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al Palm Tree 숲을 지나
1. 바라데로의 파도
“Villa Tortuga에 오시는 미스터, 미세스Lee께서는 다음 스톱에서 내리실
준비를 해 주십시오.”
비행장에서부터 인솔을 맡은 가이드가 버스 중간쯤 앉아있는 우리 부부를
건너다 보며 강한 스패니쉬 악센트의 영어로 방송을 했다.
50명 정원의 관광버스에 삼분의 2쯤 찬 관광객들 중에 유일한 동양인인
우리들이니, 명단의 이름들 중에 ‘Lee”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라는
걸 짐작해내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으리라.
다섯 시간 45분의 비행으로 적당히 피곤해 있던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짐이라야 작은 여행용 가방 두 개는 버스 밑에 있으니 우린 비디오
가방과 내 숄더백만 챙기면 그만이었다.
이윽고 우리의 버스가 Villa Tortuga 의 앞마당에 도착했을 때는 현지
시각으로 저녁 6시 45분, 주위엔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려 있었다.
버스 밖은 몸에 와 닿는 밤 공기의 후끈한 열기가 뼈 속까지 스르르 녹일
듯, 아주 기분이 좋았다. 고개를 젖히니 밴쿠버의 하늘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밝고 맑은 은하수가 서늘하게 바라데로의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
리셉션 데스크에는 여직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반갑게 맞아주었다.
곤색 스커트에 흰 블라우스 유니폼 차림의 그녀는 비록 강한 스패니쉬
액샌트가 있기는 해도 영어를 아주 잘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간단한 수속을 마치고, 안전 금고의 열쇠를 10불 주고 빌린
뒤, 앞서서 짐을 끌고 가고 있는 포터를 따라 여러 종류의 야자수들이 군데
군데 들어선 정원을 구불구불 지나서 우리가 거처할 A동 건물로 향했다.
옥외 수영장 근처 스낵바 옆을 지날 땐 대낮처럼 환한 불빛 아래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둘씩 셋씩 모여 앉아 담소하고 있는 모습이 마냥 한가로워 보였다.
우리 방은 A 동 207호 인데 막상 들어가 보니 건물 자체는 좀 오래된 것
같은데, 구조와 가구들은 유롭이나 북미의 여느 호텔과 전혀 다르지 않게
단정히 꾸며져 있었다.
두 개의 더블 침대와 TV 세트, 화장대와 책상과 의자 세트들, 문 옆엔 거울로
된 북박이 옷장, 가정용 크기의 화장실엔 샤워가 붙은 목욕탕과 넓은 서구식
카운터, 깨끗한 변기 세트, 심지어 머리 말리는 기계까지 갖춰져 있어서
가난한 공산 국가에 여행 왔다는 게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포터에게 팁을 2불 주니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져서 돌아갔다.
저녁 식사는 일곱 시 반부터 아홉 시 반 까지라니 아직 시간이 좀 있었다.
나는 우선 맞은 편 벽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창으로 다가가서 커튼과
창문을 드르륵 밀어 젖혔다.
쏴아- 철석- 촤르륵
어둠 속으로부터 파도 소리가 내 귀와 심장을 가득히 채워 왔다.
한 팔십 미터 앞에서 파도 자락들이 하얗게 포말로 부서지는 모습이 희끗
희끗 어렸다.
바로 이거야!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파도 소리.
9년 전, 멕시코 마자트란 해변의 Las Flores 호텔의 창가에서 일주일 간
듣다 온 후론, 이날 이때까지도 잊지 못하고 때때로 그리워하는 그 정다운
파도 소리가 바로 코 아래서 철썩이며 고향의 노래처럼 나를 반겼다.
나는 이제부터 일 주일 동안 저 파도소리를 들으며 아침엔 잠이 깨고,
밤이면 잠을 청하리라.
창 밖 베란다로 나와서 하얀 조각배들처럼 어둠 속에 떠 있는 의자에 풀석
앉으며 나는 어린애처럼 흥분했다.
리조트 경내에서 한 발짝만 거리로 나가면 거기 배고픔과 헐벗음이 도처에
너부러져 있음을 실감하기엔 너무나 완벽하도록 편안하고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여름 옷으로 갈아 입은 뒤 우리는 식당 건물로 갔다.
식당 건물은 우리 A동 바로 옆에 바다를 향해 위치해 있었다.
이 건물 역시 겉보기보다는 낡고 실내 장식도 허술했다. 그러나 테이블마다
깨끗한 식탁보가 맵씨 있게 깔려있고, 예쁜 조화들이 꽂힌 꽃병들이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자기들 깐엔 꽤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3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노천 테라스와, 그 뒤에 ‘ㄴ’ 자 모양의 식당에는
백여 명쯤 수용할 수 있는 식탁들이 놓여 있었다. 특히 테라스에서는 파도
소리가 바로 옆처럼 가까웠다. 낮에는 약 오십 미터 폭의 백사장과 그 뒤에
펼쳐진 먼 수평선의 경치가 기막힐 거라고 짐작 됐다.
마침 식당은 꽉 차 있었는데, 다행히 웨이트레스가 맨 구석에 빈자리
하나를 찾아서 안내해 주었다.
음식은 뷔페식이었다.
더운 음식들과 찬 음식들, 각종 채소와 과일, 아이스크림들과 케잌들,
그야말로 육해공군 산해진미에다 음료수로는 포도주, 맥주, 과일 쥬스들과
soft drinks, 커피, 차 등인데. 모두 여행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었다. (All
Inclusive) 나는 그 중에도 올리브와 각종 고추 피클들이 너무 좋아서
식사 때마다 이들을 원없이 먹었다.
식사 후엔 잠시 식당 주위와 가까운 모래사장을 산책했다.
밤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곳곳에 밝혀놓은 가로등 불빛에 비친 리조트
경내는 퍽 넓어 보였다.
백사장에 나란히 서있는, 야자수 잎으로 초가지붕처럼 엮어 만들어 세운
20여 개의 둥근 파라솔들이 별빛 아래서 검은 그림자들을 길게 드리운 채
밀려와 은빛으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흠뻑 젖고 있었다.
방에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베란다로 나가 의자에 앉았다.
창 아래 펼쳐진 검은 수평선 위 하늘엔 은하수가 높다란히 길을 가고,
그 안에 차돌처럼 꾹꾹 박힌 주먹만한 카시오페이아 성좌의 다섯 별들이
유난히 돋보였다.
은하수의 왼쪽 끝 부분에는 백조의 가슴과 머리 부분이 꼬리 잘린 꼬리
연처럼, 오른쪽 끝 부분의 약간 윗쪽에는 오리온 성좌의 당당한 모습이
거대한 방패 연처럼, 각각 제 자리들을 하얗게 빛내며 이방인의 가슴을
기웃거렸다.
< 바라데로의 파도>
하늘엔
뭇별마다
그리움이 등을 밝혀서
은하수 하얗게 길을 갑니다
파도는
어둠 속에서도 잠들지 않는
태초의 노래
그대 향해 출렁이던 심장이
오늘 밤엔
타국의 창 가에서 폭죽으로 터집니다
그대여
당신 노래 그리워
갈매기처럼 보채던 가슴입니다
억만 년을 철석여온
당신의 교향곡 앞에
무릅 걷고 건너온
손끝 시린 세월
영혼의 빈 의자 펼치오니
이 밤엔
별빛 묻은 날개로 훨훨 날아와
한아름 은빛 포말로
나를 채우소서
그대, 장엄한
바라데로의
파도여.
기회가 되면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보통 '체 게바라'라고 합니다-의 향취를 이곳에서 만나고 싶은 기대가 있습니다. 하하하 제가 꾀 좋아하거든요. 혹 여행 중에 게바라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혹은 기억들이 있으면 소개 해 주세요. 너무 개인적인 욕심이라 죄송합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곤쇠 넝감님!, 군 복무시절 같으면, 쥐 구멍을 찾았을텐데... 미국에서 큐바에 가지 않아도, Miami에 가면 온통 큐바를 방불케 합니다. 시가의 간판이나, 집들의 모양, 쓰는 말 소리까지... 목숨을 걸고 건너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큐바 사람들이 생존력이 강한것 같습니다.
돌베개님, 부끄럽습니다. 아울러 늘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땡목님, 계속해서 써나가다 보면 어느쯤에선가 체 게바라의 예기가 나오겠지요. 실은 지난 봄에 우리 통나무님께서 체 게바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퍼다 올려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하양님! 시가 너무 좋습니다. 마치, 저 같은 사람에게는 사치품같이 느껴집니다. 계속 창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돌베개님, 미국여권으론 쿠바 여행이 무척 힘들죠? 不可也라 !!
기회가 되면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보통 '체 게바라'라고 합니다-의 향취를 이곳에서 만나고 싶은 기대가 있습니다. 하하하 제가 꾀 좋아하거든요. 혹 여행 중에 게바라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혹은 기억들이 있으면 소개 해 주세요. 너무 개인적인 욕심이라 죄송합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곤쇠 넝감님!, 군 복무시절 같으면, 쥐 구멍을 찾았을텐데... 미국에서 큐바에 가지 않아도, Miami에 가면 온통 큐바를 방불케 합니다. 시가의 간판이나, 집들의 모양, 쓰는 말 소리까지... 목숨을 걸고 건너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큐바 사람들이 생존력이 강한것 같습니다.
돌베개님, 부끄럽습니다. 아울러 늘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땡목님, 계속해서 써나가다 보면 어느쯤에선가 체 게바라의 예기가 나오겠지요. 실은 지난 봄에 우리 통나무님께서 체 게바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퍼다 올려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