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고 나가라>
종부세가 폭탄이니 아니니 갖고 말들이 많다. 내가 보기엔 폭탄이 아니라는 사람들 말도 틀린 데가 많고, 폭탄이라는 사람들 말중에도 억지가 많다. 왜 그런지 얘기해보자.
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종부세는 폭탄이다. 폭탄의 피해 범위가 넓지 않아 그 범위 바깥 사람에겐 폭탄이 아니지만 피해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폭탄이다. 그런데 한쪽에선 피해 범위 바깥 사람이 많으니 이들에겐 폭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피해 범위 안에 들어간다고 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폭탄이라고 우기고 있다. 둘 다 틀렸다.
쉽게 말해서, 폭탄은 맞은 사람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떨어트린 것은 원자폭탄이다. 폭탄을 맞은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럼 폭탄인 거지, 사람이 많이 사는 도쿄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폭탄이 아닌가? 미리 떨어트린다고 경고했으니 폭탄이 아니라는 말도 틀렸다. 히로시마에 폭탄 투하 며칠 전 미리 알려주면 그게 원자폭탄이 아닌 게 되나? 맞아서 죽으면 그게 폭탄이다. 이게 그렇게 어렵나?
어디에 떨어졌는지 누가 피해를 보았는지 보자.
주위 사람들 중에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서 그들을 중심으로 올해 종부세가 얼마 나왔는지 물어보았다. 대다수는 7~80만원으로 백만원 이하다. 내가 갖고 있는 21년 된 자동차에 부과되는 자동차세는 12년이 넘어서 50% 할인을 받아 34만원이다. 이들에게 백만원도 안되는 종부세는 자기 자동차에 나오는 세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0만원에서 500만원 사이 금액이 나온 사람들도 몇 있다. 그래도 이 금액은 그들이 내야 하는 재산세에 비해 더 낮다. 이들 중 자기에게 부과된 세금을 갖고 폭탄이라고 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사실 그런 소리하면 주위에서 비웃음을 산다. 이들에겐 폭탄이 아니다.
작년에 비해서 액수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끽해야 10만원 정도 오른 수준이다. 올해에 5백만원 내는 사람은 1년 사이에 백 오십만원 정도 오른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압구정동 한강가 아파트 가격이 재건축 기대감에 많이 올라 공시지가 30억, 시가가 50억에 달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종부세 부과액이 낮을까?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60대 사람들이다. 강남에 4~50평 대 아파트를 갖고 있고 이 아파트들은 대부분 요즘 시가로 30억에 달하고 공시지가는 15억에서 20억 사이란다. 그리고 지금 사는 곳에서 오래 살았다. 그래서 60세부터 시작하는 고연령자 할인 20%를 받고 있고, 50%에 달하는 장기보유 할인까지 받아 총 70% 할인을 받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만약 할인을 안 받았다면 250만원 정도 나왔을 것이지만 이것 역시 대단히 큰 금액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들 중 약 반은 작년 초까지 2주택 보유자였다. 대부분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사람들이었다. 자기 집 외에 양가 부모 사망을 통해 집을 물려받은 사람도 있고, 같이 살면서 모시지 못하는 부모님이 거처할 곳을 마련한 사람, 결혼을 앞둔 자식을 위해 집을 미리 하나 사놓은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 작년 말까지 여분의 집을 팔거나 자식에게 증여해서 1주택자가 되었다. 부모님이 계속 같은 집에서 사시도록 하기 위해 그 집을 다시 전세로 살 수 있는 조건으로 판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파는 과정에서 양도소득세를 만만치 않게 내야 했다. 판 후에 집 값이 더 올라서 이익을 놓친 것은 아예 거론도 하지 말자.
이들은 별로 투기에 괸심이 있던 사람들도 아니었고, 정부 방침에 대단한 반감을 갖고 있지도 않고,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정부 정책이 바뀐다고 하니, 그리고 정부 정책이 효과를 볼 것으로 생각해서 거기에 맞추어 집을 팔았다. 경제 환경과 정부 정책 변화를 잘 알고 또 거기에 합리적으로 반응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 1주택자에게 종부세는 폭탄이 아니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1주택 보유자에 대한 종부세를 갖고 폭탄이라고 하면 안 된다. 도리어 그렇게 말 할 수록 신뢰도만 떨어진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집을 팔지 않은 사람들에겐 종부세가 폭탄이다. 실제로도 올해 종부세 대상자 중 다주택자 수는 35만명에서 48만명으로 작년 대비 약 13만명이 늘었다. 5조가 넘는 주택분 종부세 부담액 중 1주택자가 부담해야 하는 액수는 1천 2백억에서 2천억으로 늘은 것에 불과한데 다주택자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9천억에서 2조 7천억으로 늘었다. (첨부 기사 참조)
왜 다주택자 수가 도리어 이렇게 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정부 정책 실패로 주택 가격이 올라서 새롭게 대상자가 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설마설마 하다가, 우물쭈물 하다가, 수억원에 달하는 양도소득세가 무서워, 다주택자에서 못 벗어난 사람들이 많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다가 정책 변화로 사업자 자격을 잃은 사람들도 꽤 있다. 내 주위 사람들처럼 비교적 경제 흐름에 빠르게 대응하는 사람들일수록 미리 팔았지만 도리어 이런 데에 둔한 사람들이 다주택자로 남은 경우도 많다.
이들에게 종부세는 분명 폭탄이다. 흔히 거론하는 예를 들어 만약 공시지가 14억인 집을 한채 갖고 있으면 종부세가 171만원이 나오지만 그 대신 7억인 집을 두 채 가지고 있으면 종부세가 1,192만원, 즉 7배를 더 내야 한다. 즉 가지고 있는 주택의 숫자에 따라 같은 가치의 집을 갖고 있어도 주택 수에 따라 세금이 확연하게 다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대로 작년에 집을 판 내 지인들은 가만히 있었다면 5천만원에서 1억원 사이 세금을 맞았을 것이다. 지금 제도는 과거에 7억 주택 두개를 갖고 있던 사람에게 두 채를 모두 팔고 14억 짜리 한채를 사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가르친다. 실제로 그렇게 사람들이 움직였고 그래서 강남 주택 값은 더 올랐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15년 전 도입 시 종부세는 원래 부유세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부유세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종합 부동산세"인데 종합 액수가 같은 사람들 사이에 세금 액수가 7배나 차이가 나는데도 이걸 "종합"했다고 할 수 있나? 이건 그냥 다주택자 박멸세다. 박멸 대상이 된 사람에게 지금의 종부세는 분명코 폭탄이다.
부동산 투자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유지하려는 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누가 이걸 고등학교 교과서에 넣어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후세 사람들이라도 어릴 때 외워 놓게. 주택은 투자나 투기 대상이어선 안 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그것도 다주택자만 투기이고 1주택자는 투기가 아니라는, 도대체 무엇에 근거한 주장인지도 알 수 없는 허황된 주장에 근거하여, 그 어느 나라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억누르려는 정책은 시장경제의 순리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정책이다. 성공하기도 어렵고 설사 일시적인 성과를 보인다고 해도 성과에 비해 그 부작용은 일일이 거론하기도 예측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심각할 수 있다.
조세정책은 되도록 단순해서 이해하기 쉽거나, 회피하기 어렵거나, 대상자가 넓은 것이 좋다고 한다. 경제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상식적인 얘기다. 그런 점에서 지금 종부세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회피 하기도 쉽고, 한끗 차이로 대상자가 되느냐에 따라 세금이 폭등한다.
나는 지난 15년간 걸핏하면 종부세 폭탄론을 내세우던 보수 언론에 한번도 동의한 적이 없다.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 모두 겉으론 뭐 대단한 것을 하는 척 했지만 실제론 구멍이 많아 민주당 정부의 종부세 역시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부 시절 종부세처럼 이빨 빠진 호랑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지난 1년 사이에 종부세 총부과금액이 4.3조에서 8.6조로 두배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에 비하면 아예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 할 정도로 늘었다.
문재인 정부를 무작정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대상자가 적느니, 대다수는 50만원이니, 그만큼 집 값이 올랐으면 내야 하느니, 정부가 미리 경고했느니 하는 관료들 입발린 소리를 생각 없이 따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부만 때리고, 때린다고 미리 말했으니, 때려도 좋다는 말인가? 다른 나라에선 모두 정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제활동을 한 사람들인데 왜 때리는가?
종부세법을 읽어 보면 이 법의 목적은 부동산 보유에 대한 조세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 가격 안정을 도모한다고 되어있다. 지금 종부세는 형평성도 없고, 이걸 갖고 부동산 가격 안정을 도모할 수도 없다. 그게 될 것 같았으면 종부세 부과액이 급격히 증가한 지난 2~3년 동안 주택 가격의 상승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요즘 이제와서 세계적인 금리 인하를 핑계 삼는 인사들이 보이는데 그럼 왜 정권 초기부터 부동산 가격 하나는 확실하게 잡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고, 내린 금리가 얼마나 된다고 이제 와서 금리 탓을 하는지 묻고 싶다. 뭐 이런 얘긴 시간낭비이니 그만하자.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면 그래서 어떻게 바꾸자는 말이냐고 물을 때다. 단순화하고, 대상자를 늘리고, 예외나 할인 대상자를 줄이고, 가중 세율을 낮추는 쪽으로 개선해야 한다. 재산세면 재산세 답게, 부유세면 부유세 답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하긴 이런 얘기를 계속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얘기해서 들을 것 같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 정부나 민주당은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무작정 종부세 폐지를 주장하는 보수 야당과 뇌송송 대통령 후보는 아예 얘기할 가치도 없어 보인다. 참 난감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미운 놈 혼내주려고 자기 코를 잘라서야 되겠는가? 당신은 잘못해서 죄송하다는 말만 하면서 시간을 허송하다가 이대로 물러날 생각인가?
정말 죄송하면 고치고 나가라. 아니, 고치는 시늉이라도 하다가 나가라. 하다 못해 무엇을 잘못했는지 국민에게 설명이라도 좀 하고 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