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는 구주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예수님께서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예수님과 더불어 먹을 것이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에서는 구주 예수님이 아니시고서는 제대로 그 문을 열 수 없다는 것이고, 영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문을 열 수 없다는 뜻이 내포된 것으로..
실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가 깨어지고 단절되며, 막히고 닫히며,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진 모든 인생들에 있어서 그 위치와 역할 상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만이 막혀 있고 닫혀 있는 문을 실질적으로 열 수 있게 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와 진노와 음부와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으로만 죄악으로 인해 처음부터 닫히게 된 문을 여는 것이 가능함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그로 인해 예수님께서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예수님과 더불어 먹게 된다는 것은 요한을 통해 차지도 뜨겁지도 않았던 라아디게아 교회를 대상으로 한 계시에 있어 중요한 부분으로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으로 비추어 볼 때 본질적으로는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사람이 되는 것과 직결되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곧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그 위치와 역할 상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현실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구원에 참예케 되고 거듭나게 되는 것 자체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큰 영광이 되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 가장 큰 기쁨이 되며, 마치 구주 예수님께서 그와 더불어 즐거이 먹는 것이 되고, 무엇보다 그러한 일들을 위한 모든 우선과 전제와 근본인 것이 분명한 것이겠지만..
그러나 더 나아가 악한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은 채로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 하는 날까지 사는 동안 그것이 끝이거나 전부일 수는 없는 것으로 그와 같이 구원에 참예케 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미지근하고 막히며 닫히고 병들며 죽은듯한 신앙이 아닌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어떤 면에서는 생명을 다하듯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되는 것이 가면 갈수록 더 하나님 아버지께 큰 영광인 것일 뿐 아니라 구주 예수님께서 더욱 풍성히 더불어 먹는 것이 되는 것이며, 무엇보다 그 당사자야 말로 말씀으로 인한 온갖 하늘의 것, 풍성한 것, 세상이 주지 못할 생생하고 강렬한 것들로 넘치게 되는 것이고,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생생하심과 충만하심들인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과 풍성하심들인 것이고, 다른 표현으로는 말씀 중의 말씀이고 절정이며 복합체인 복음의 능력들인 것이며, 또한 절대 진리이자 하나님의 법인 말씀이 중심이고 말씀으로 통치하는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이며 확장케 됨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는 것 자체부터가 원론적으로는 인간적인 힘과 의, 세상적 능력과 방법들로는 안 되는 것이고, 그 또한 당연히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인 것으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인간적인 연약함과 한계들, 세상적인 정욕과 문제들 등으로 마치 종종 닫힌 듯 느껴지거나 보일 수 있거나 체감케 되는 문을..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열며 부수고 싸우며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더욱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인 것이고, 더욱 더 치열하고 견고해 지며 뜨거워지고 풍성해 질 수 있게 되는 방법과 통로, 기준과 관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3:20)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2월 4일(월)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