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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戰이 끝난 뒤 후배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 골 오프사이드 아니예요?"
생방송으로 제작될 <사커플러스>를 준비하느라 방송국에서 스탭들과 함께 '단체관람'을 하던 나는, 너무나 절박한 시점에 터진 동점골에 환호하느라 상황 판단을 미처 하지 못했던 터였다. 정경호의 패스가 기막히게 좋았다는 생각만 했을 뿐 그 위치를 따질 겨를이 없었던거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후배에게 "우리가 먹은 골 말하는 거냐?"라는 답문을 보냈을 정도니.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 결과를 받아 든 팬과 언론은 각 선수들의 공과를 논하고 감독의 실책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또 하나의 경기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이슈가 화제의 중심에 놓여있다. 주인공은 바로 '오프사이드'다. 요는, 박주영의 동점골 상황이 오프사이드가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박주영에게 멋지게 연결된 정경호의 패스부터 잘못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경기는 끝이 났고 박주영 골에 대한 우즈베키스탄 측의 공식적인 이의제기도 없는 마당에 골의 유효성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 1-1의 결과와 박주영의 동점골은 이미 공식기록으로 굳어져버렸으니까. 게다가 오심이라한들 득을 본 것은 한국팀이니 이러한 논쟁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냥 이렇게 넘어가기엔 아쉬운 점이 많다. 무엇보다, 논란의 여지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오프사이드 규정'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프사이드 규정'은, 간단하지만, 막연하게 알고 넘어가기엔 상당히 복잡미묘한 규정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날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는 과정에서 오프사이드 관련 규정에 대해 정리를 해보려 한다. 안그래도 여러 분들께서 쪽지나 방명록 등을 통해 의견을 물어오신지라 요 페이퍼를 통해 그 답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밝혀두면, 박주영의 동점골 상황은 정경호의 오프사이드 반칙이 맞다. 결국 이란 심판진의 오심 덕을 본 셈이라고 봐야 되겠다. 물론, 그 전에 더 많은 불이익을 당했으니 고마워할 필요까지는 없을테지만.
1. 오프사이드, 업사이드
생뚱맞은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한글표기부터 바로잡아야 겠다. 오프사이드(offside)를 '업사이드'라고 적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오프사이드' 내지는 '옵사이드' 정도로 바꿔쓰는 편이 옳다. 곧이어 설명하겠지만 오프사이드는 온사이드(onside)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그러니 '업사이드'라는 표현은 정확한 이해를 돕는 데 방해가 될 것이다.
2. 오프사이드(off-side) ↔ 온사이드(on-side)
오프사이드는, 한국 말로 풀어쓰자면 "경기에 사용하지 않는 쪽" 정도 되겠다. 즉, 오프사이드 라인을 형성하는 두번째 최종수비수의 위치를 넘어선 지면은 경기자 입장에서 볼때 꺼져있는(off) 공간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이를 제외한 모든 공간은 켜있는, 사용하는(on) 공간이 된다. 이 개념을 확실히 머릿속에 넣어두면 이해가 좀 더 쉽지 않을까 싶다. '사용하지 않는 공간(offside)'에 있는 선수가 플레이에 관여하게 되면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니까.
3. 오프사이드라고 전부 반칙은 아니다.
FIFA규정 11장의 오프사이드 관련 항목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It is not an offence in itself to be in an offside position.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는 것 자체는 반칙이 아니다.)
즉, 우리가 흔히 '오프사이드'라고만 부르는 '오프사이드 반칙'은 '오프사이드 위치'와 '오프사이드 반칙'으로 나누어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
3-1. 오프사이드 위치
* 정의 : 공격수가 공과 두번째 최종수비수보다 상대팀 골라인에 가깝게 있는 경우.
단, 공격수가 자기 진영에 있거나 / 두번째 최종수비수와 동일 선상에 있거나 / 최종 두명의 수비수와 모두 동일 선상에 있을 때에는 오프사이드 위치를 벗어난 것으로 판정한다.
3-2. 오프사이드 반칙
* 개념 :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는 선수는 '팀 동료에 의해 볼이 진행되는 순간' 다음과 같은 행위를 통해 플레이에 능동적으로(active) 가담했을 때에만 '심판 재량에 의해' 오프사이드 반칙을 범한 것으로 간주된다.
- 플레이에 관여한 경우 / 상대팀 선수를 방해한 경우 / 그 위치에 있는 것으로 인해 이득을 취한 경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심판 재량에 의해'라는 대목이다. 다소 애매할 수 있는 상황판정에서 심판의 최종결단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명시인데 결국 이 문구는 관련 논란이 벌어질때마다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막말로, '휘슬을 불지 않으면' 반칙이 아니란 얘기다. 물론, 그렇다고 심판의 주관에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FIFA 규정집에는 다양한 상황이 그림으로 만들어져 오프사이드 반칙 여부를 판시해두고 있다.
- 참고로, 오프사이드 반칙에 대한 FIFA 규정의 설명은 이게 전부다.
4. 박주영 동점골의 경우
정경호가 김두현의 슈팅 상황에서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여기서 관건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던 정경호가 오프사이드 반칙을 범했느냐'에 모아진다. 결론은 '그렇다'이다. 해석의 초점은 김두현의 슈팅이 이뤄지는 순간 offside가 된 최종수비수 뒷공간에 그대로 머물러 있던 정경호가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는 볼을 이어받아 박주영의 골을 도왔다는 데에 맞춰진다. 김두현의 슈팅 이후에도 정경호의 위치는 여전히 offside였고 그 위치에서 경기에 '능동적으로 가담'해 '플레이에 관여한' 정경호는 '그 위치에 있는 것으로 인해 이득을 취한' 경우에 해당한다. 여지없는 오프사이드 반칙이다. 공교롭게도 FIFA의 규정집에는 이와 유사한 상황이 그림으로 수록되어 있다.
김두현의 슛이 골대를 맞고 GK의 손에 맞았다 하더라도 이어진 상황은 오프사이드 반칙으로 선언되어야 한다. 일단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던 선수는 온사이드로 나왔다가 다시 플레이에 개입해야 오프사이드 반칙 가능성을 제거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도 FIFA 규정집은 그림으로 예시하고 있다.
즉, 이 경우는 심판이 '재량'에 의해 판정할 수 있는 여지가 개입되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FIFA에서 그림으로 예시까지 만들어둔 상황이니 심판 재량으로 '오프사이드 반칙이 아니다'라고 판정할 수 없기 때문에 오프사이드가 맞으며, 고로 심판의 오심이라 결론지을 수 있다.
덧붙이자면, 노골 처리된 박주영의 골 상황은 심판의 '재량'에 의한 판정이 가능한 상황이다. 물론 수준급의 심판이라면 당연히 골로 인정했을테지만 이날 이란 심판의 판정을 오심이라 단정짓기는 어렵다. 안정환의 위치가 '플레이에 개입'했다고 주관적인 판단을 내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정환이 그 위치에 있음으로 해서 수비수들의 시선이 분산되고 이를 통해 한국이 이득을 취했다'라고 우긴다면 억울해도 가만히 있을 수 밖에. 그게 바로 오프사이드 룰의 모호한 특징이다. 좋게 말하면 묘미고, 나쁘게 말하면 편파판정의 빌미가 되겠지만.
5. 오프사이드 룰의 존재 이유
골대에 맞는다고 해서 오프사이드 상황이 해제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골대에 맞고 정경호에게 연결된 상황이 오프사이드 반칙이 아니라고 한다면, 오프사이드 룰은 존재 가치를 잃게 된다. 골대 맞는 순간 오프사이드가 해제된다면 공격수 서너명이 문전 앞에 버티고 있다가 골대 맞고 튀어나오는 볼 밀어넣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골대'는 '심판'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존재다. 즉, 골대를 맞는 것은 아무것도 맞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슛이 이뤄진 순간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던 선수는 골대를 맞건 맞지 않건 온사이드 위치로 나갔다 들어오지 않는 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오프사이드 룰의 존재이유이며 축구가 보다 재미있고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다.
+) 하지만 경기는 끝났고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중요한건 이 기회에 오프사이드 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지 골의 유효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골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팬이 아니다. 주심의 휘슬이 인정하면 그걸로 끝이다. 설령 오심이라한들 주심이 골로 인정했다면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오프사이드 반칙을 범했다고 해서 해당 선수를 질책하거나 비난할 필요도 없다. 선수는 어느 위치에서든 플레이에 몰입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에 대해 더 길게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겠다. 어쨌든, 쿠웨이트전에서는 막판까지 가슴 졸이는 일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첫댓글 일단 서형욱 본인도 자신의 글에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군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오프사이드 규정'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항간에 숱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박주영의 골. 이제 와서 그 골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하는 의견 팽배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축구팬의 입장으로 '오프-사이드'룰에 대해서 좀 더 알아가는 기회로 삼는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글입니다. 휴... 네이버에서 이거 토론 벌이니까 쪽발이니 뭐니 그러던데 여기 와보니 좋은 생각을 가지신 분이 계시네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