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뜬금없이 왠 옛날야구 타령이냐구? 한참 페넌트레이스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마당에…… 내가 생각해도 쓸데없는 짓 같네. 그나마 그렇게 ‘옛날’얘기도 아니야. 그러니까 화려했던 빙그레 시절: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이 아니라, 제목에서도 암시하듯 나의 몰락: 93년 가을 무렵부터 ‘스토리’가 시작된다는 얘기지. 사실 이 시리즈의 초점은 94년 5월부터 95년 8월까지인데, 93년 가을은 일종의 ‘프롤로그’라고 보면되겠어.
94, 95년의 한화? 이 시기에 주목할만한 점이라면 일단 94년, 팀명이 빙그레에서 한화로 바뀌었다는 것, 준플레이오프에서 그놈의 해태를 꺾었다는 것, 굳이 하나 더 덧붙인다면 정민철이 방어율과 탈삼진 타이틀을 따냈다는 것 정도. 95년은 뭐…… 없는 것 같구. 솔직히 말하면 94년 5월부터 95년 8월까지의 시기는 나 개인적으로 ‘특별한 시기’일 뿐이지(왜 특별한지는 나중에 가르쳐줄께) 무슨 큰 얘깃거리가 있는 시기는 아니야. 사실 폭발적인 조회수 같은건 기대하기 힘들다고봐야지.
그런대 왜 시리즈랍시구 거창하게 나섰냐구? 글쎄…… 파고다 공원에서 노친네들하구 농담따먹기 하는 것도 이제 질려서 그런감? 대충, 이렇게 생각해줘. 어린 분들은 한화팬으로서 ‘역사공부’하시는 셈 치고, 그 시절의 한화를 잘 아시는 분들은 ‘추억의 되새김질’하신다고 치고…… 이도저도 싫으면 뭐, ‘화려했던 전성기’대신 남들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을만한 시기를 일부러 찾아서 쇼하는, 노친네의 괴취미라고 무시해도 돼. 음, 어쨌든 시작할께.
[제1부] 나의 몰락(1)
먼저 나 김영덕의 지나온 세월을 회고해봐야겠어. 혹시 짜증나시더라도 내 개인적인 얘기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니 참고 읽어보라구.
프로야구 원년인 82년, 난 (당시 대전 연고의) OB 베어스를 우승으로 이끌었어. 근데 이것보담 철순이의 경이적인 ’22연승 신화’가 더 유명한데…… 나의 ‘투수킬러’ 인생의 시발점이라고 사람들이 그러두만.
철순: 감독님, 허리가……
영덕: 던져!
뭐 우리가 이랬다는데 지네들이 봤남? 어쨌든 5월 부산 롯데전이었든가, 투수코치였던 성근이와 철순이가 요런 대화를 한 것 같긴 해.
성근: 철순아! 롯데타자들은 직구, 슬라이더에는 약한 놈들이다. 커브를 섞어 변화구로 요리하면 된다.
철순: 코치님, 허리가 좀 이상하네요.
성근: 오늘은 일단 끝내고 온천에 가서 푹 쉬거라.
하하, 웃기지? 더 웃기는 거도 있어.
성근: 철순아, 기록은 타이밍이 중요한 것이며 프로의 세계는 자기와의 싸움인 것이다.
철순: 코치님 제 모든 것을 위임하오니 알아서 밀어주십시오.
음, 그렇다치고…… 삼성에 가서는 시진이를 병신 만들었다고 욕하는데 어쨌든 ‘최단기간 100승’ 기록에 지대한 공헌을 했잖아. 근데 사실 이것보다는 84년 9월 22일과 23일, 대 롯데전에서 일부러 져주기 게임한게 더 히트였다구.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당시 좀 잘나가던 OB를 피하기위해 쇼좀 한건데…… 양념으로 만수 ‘트리플 크라운’ 만들어주려고 타율관리 쇼도 같이 했었지. 한국시리즈 우승만 했으면 다 괜찮았는데 동원이, 두열이 이런 애들 때문에 망했고…… 어쨌든 열받아서 85년엔 꼴뚜기, 황금박쥐, 짱구, 헐크 요런 애들 막 다그쳐서 전후기 통합 우승의 대위업을 이루었어.
빙그레에서도 나의 신화는 게속되는데…… 88년부터 92년까지 5년간 4번 한국시리즈 진출한거 여러분들도 다 알지? 아,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90년에도 진짜 잘했었는데 말야, 시즌 막판에 가서 코쳐스박스 조작설, 김영덕 종신계약설, 이런게 터지는 바람에 물먹은거라구. 자식들이 말야, 내가 종신 감독하면 좋은데 왜 까불었는지 지금도 아쉬운 부분이야. 89년 승안이 타점왕 만들기, 91년 정훈이 타율관리, 92년 진우 다승왕 만들기 등등 ‘스타제조기’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나갔지.
사람들은 내가 페너트레이스의 달인이긴 한데 한국시리즈만 나가면 병신된다구 그러던데…… 운이 안따라줘서 그렇지, 난 별로 잘못한게 없다구 생각해. 88년이야 뭐 창단 3년째이니 준우승한 것만도 대단한거구, 89년엔 1차전에서 동렬이 박살냈는데 2차전에서 종훈이가 알을 까는 바람에 망한거잖아. 91년은 채근이가 지랄같이 잘칠줄 누가 알았남? 또 그 유명한 진우의 퍼펙트 사건도 있었고. 92년엔 폭투쇼, 실책쇼에 정신이 없어서 그만…… 3위 롯데한테 깨진 것도 쪽팔린데 진우는 다승, 구원 동시 석권해놓고도 신인 나부랭이 종석이한테 골든글러브를 뺐기는 망신도 당하고……
여기저기서 돌멩이 날라오는 바람에 창문깨지는 소리가 들리는구먼. 근데말이야, 한화팬들은 날 미워하면 안돼. 그거 기억나? 정확히 언젠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나하구 선수들하구 TV CF 찍은거. 선수들이 내 집에 몰려와서는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강돈이가 (심판의 세이프 판정을 흉내낸듯한) 멋진 제스츄어를 짝 취하면서, “감독님 집에도 쫙 깔았네” 뭐 이런 식으로 떠들고나면, 내가 멋진 목소리로 “골드륨이야”하고 나불거리는거, 그거 말야. 아, 근데 사실 내 말투가 좀 어눌하다보니 ‘고드름이야’ 뭐 이딴 식으로 발음이 된게 좀 아쉽긴한데…… 프로야구 역사상 TV CF에 감독, 선수가 우르르 출연한 건 이게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걸? 아니, 예전에 또 있었나? 어쨌든 야구선수 CF를 통틀어서 작품성은 우리께 최고였어. 동균이의 곰, 베아…… 뭐 이것도 조금 히트치긴 했지만 우리의 아성을 넘볼순 없지, 그럼. 종훈이도 나중에 혼자 요플러스도 찍고, 더위사냥도 찍고 그랬지만 큰 인기는 얻지 못했고. 근데 말이야, ‘4번타자 왕종훈’이란 만화는 있는데 왜 ‘투수킬러 임영덕’ 뭐 이런 만화는 없는거지? 그리고 얼마전 응룡이 성대모사가 히트치던데 내 것도 좀 만들어주라. 누가 알어? ‘참숯나라’ CF 찍게될지. 이런건 팬들이 알아서 해줘야 돼. 역사는 팬들이 만드는 거 아니겠어?
사실 나에 대해서 할 얘기는 엄청 많은데 이정도로 마무리할께.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겠군. ‘나의 몰락’ 2편을 기대해줘. 93년 빙그레에 대한 디테일한 글을 쓰도록 한번 노력해보지.
(다음 편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