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에는 백 년 이상 된 적송赤松이 수만 그루가 있는 곳이다. 이 섬에서 우리 집은 밭은 없고 논 네마지기 (800평)를 가지고 열 한 식구가 흥부네처럼 누더기를 입고 흥부네 집처럼 가난하게 살아 왔다. 아버지는 항상 소나무 숲에 들어가 복령(소나무 뿌리에 등글 게 맺히는 기생 덩어리-한약재)을 캐서 시장 한약방에 팔아서 근근이 가세를 이끌어 오셨다 안면도의 적송은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일제 때 왜 놈이 수만 그루를 베어 배로 실어 갔고, 송진을 빼가느라고 상처를 낸 흔적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서 역사의 산 근거를 한눈에 볼 수 있 는 곳이다. 빽빽하게 우거진 적송의 숲은 하늘이 보이질 않는다. 바닷가 언덕 모래 위에서도 아름드리 적송들이 청청하게 자라는 것은 곧 우리들의 기상이 아니겠는가!
내가 퇴직하고 아버지의 흔적이 숨을 쉬고, 쑥을 뜯던 어머니의 무명 치마가 그리워서 고향으로 돌아와 노후대책으로 펜션을 짓고 생활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찾아서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처음엔 안면도가 징그럽도록 싫었다. 너무 고생해서 쳐다보기도 싫었던 곳이다. 그런데 부산이 고향인 아내가 안면도 바다를 보고 반해서 이곳에 별장을 짓고 말년을 보내자고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래서 무려 3년이나 주말마다 땅을 물색하러 안면도를 왕래하면서 구한 곳이 소나무가 많고 휴양림이 근거리에 있는 이곳이다. 퇴직 후 이곳서 21 년간 펜션을 운영하면서 나이는 더 늘어가지만. 건강은 오히려 직장에 있을 때보다 좋아졌다. 그만큼 이 마을은 소나무에서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피톤치드'의 함량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12개의 해수욕장 중에서 널리 알려진 해수욕장이 바로 앞에 있고, 그리고 안면도에 오는 관광객은 우리 마을 '자연휴양림'과 '수목원'을 모두 다녀간다. 휴양팀에 입장하면 수목원까지 함께 볼수 있고, 이곳에는 천연기념물인 나무들이 많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집은 휴양림 정문에서 불과 200m의 거리에 있다. 바람이 부는 이유를 알지 못해도 바람은 나무 사이를 지나고, 나무는 '내'가 비상飛翔하고 싶을 땐 나무 끝에서부터 흔들려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나는 수첩을 들고 메모를 한다. 이 정겨운 소나무 숲에서 무엇인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바닷가 모래 위에서도 싱싱하게 자라는 아름드리 적송들, 수평선을 향해 그림 같은 청청한 소나무! '나'는 저 믿음직한 소나무에 기대어 우리 고장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래 위의 흔적만이 관광객의 추억과 전설이 될 수 없으니. 우리들의 천국은 바로 이 소나무 숲이 아닐까, 생각하고 나는 관광객을 위해서 바닷가 소나무에 그네를 맸다. 그랬더니 꼬마들이 그네타기를 즐겼다. 마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리게 된 것이다. 나 역시 그네를 타고나면 하늘을 날아다니다 온 듯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고 삶의 의욕도 배가되었다. 그래서 그네를 2개를 더 만들었다. 즐거운 소리가 울리는 그네 덕분에 마을에서도 좋아했다. 휴양림을 다녀 온 사람들이나 수목원으로 갈 사람들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이 생겼다.
이런 현실을 보고 자연이 주는 혜택을 잘만 이용하면 여러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재삼 깨달은 기회가 되었다. 건강과 즐거움, 그리고 새로운 행복이 이 작은 변화에서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내가 삶을 사랑하고 꿈을 갖게 된 것이 적송 숲 덕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보람을 찾는다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관심만 가지면 사소한 일에서 자신도 보람을 찾을 수 있고, 남에게도 기쁨을 줄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으리라고 본다. 조금만 머리를 쓰고 약간의 수공만 들이면 여러 사람에게 즐거움과 행복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것이다. 내가 안면도로 돌아온 보람도 아마 이것이 아니겠는가, 거듭 느끼면서 펜선을 운영하는 날 까지는 꾸준히 숲지기가 되어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