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10](월) [동녘이야기] / [성소부부고 톺아보기] 39# /
✦권5 문부2 서(序) / 손곡집(蓀谷集) 서(序)2
https://youtu.be/ZikQ3Sl8R8k
오늘도 지난 주처럼 손곡집(蓀谷集) 서(序)를 읽을 차례입니다. 그래서 손곡집(蓀谷集) 서(序)2라고 제목을 달았읍니다. 바로 그 다음을 잇겠읍니다.
같은 시대에 속곡옹(蓀谷翁)이라는 사람이 있어 처음에 호음(湖陰, 정사룡의 호)에게 두보(杜甫)와 소동파(蘇東坡)를 배웠는데 그가 읊은 시가 이미 홍진(鴻縝, 기러기 날 듯 질서정연함)하고 순숙(純熟, 완전히 익음)하였다. 그의 시는 본래 공봉(供奉) 이백(李白)에 근원을 두고 우승(右丞) 왕유(王維)와 수주(隨州) 유장경(劉長卿)에 드나들어 기운은 따뜻하고 지취(志趣, 뜻과 취미)는 빼어났으며 빛은 곱고 말은 맑았다. 곱기는 남위(南威)1)와 서자(西子)2)가 고운 옷을 입고 밝게 단장한 것 같고, 부드럽기는 봄볕이 온갖 풀에 내려 비치는 것 같았다. 서리처럼 찬 물줄기가 큰 골짜기를 씻어 내리는 것같이 맑았으며 높은 하늘에서 학을 타고 피리 부는 신선이 오색구름 밖을 떠도는 것 같이 밝게 울렸다. 당기면 노을빛 비단이 바람에 일렁이듯. 펼치면 옥빛 자리에 옥구슬이 그르듯. 쨍그랑하고 소리나게 몰아치면 비파가 슬피 울고, 구슬이 울리듯 눌러서 잡으면 천리마가 멈춰 서고, 용이 웅크리듯. 일없는 때에 천천히 걸으면 평탄한 물결이 넘실넘실 천리 바다로 흘러가 듯. 태산의 구름이 바위에 부딛쳐 흰 옷도 되고 푸른 개도 되었다.3) 개원(開元, 당나라 현종의 연호로 이백과 두보가 활동한 성당시대를 가리킴)·대력(大曆, 당나라 대종의 연호로 두보가 두드러지게 활동하단 때) 사이에 두더라도 왕유(王維)4)와 잠삼(岑參)5)의 반열에서 조금도 기울지 않고, 우리나라의 여러 이름난 시인들과 비교하더라도 그들 또한 눈이 휘둥그레져 90리6)는 물러설 것이다.
옹은 신분이 미천해 많은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았으므로 지은 시 천여 편이 모두 흩어지고, 남은 게 없었다. 불녕(不佞)7)인 내가 소년 시절부터 작은 형(하곡 허봉)님의 명으로 옹에게 시를 배워 마침내 향할 길을 알게 되었다. 그가 죽게 되자 남겨 놓은 글이 없어져 전하지 않을 것을 안타깝게 여겨 평소에 개인적으로 기록한 것을 모으니 시가 200여 수가 되어 판각하려고 하였다. 그러다 상사(上舍) 홍유형(洪有炯)의 집에서 130수를 더 얻어 이재영(李再榮)군에게 합하여 종류별로 편집하게 했더니 6권이 되었다.
옹의 시는 우리나라 여러 이름난 시인들을 뛰어넘으니 어찌 나의 하찮은 글이 있어야만 오래 전하겠는가? 비록 그렇긴 하지만 남겨진 시를 주워모아 천년 뒤에 전하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마음이니. 부처님 머리를 더럽힌다8)는 꾸지람인들 어찌 피하겠는가. 위아래 수백년에 걸쳐 여러 노 대가를 평정(評定)하여 옹에게까지 이른 것은 분수에 넘쳐 이 시대 사람들을 놀라게 하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오래되면 논의는 정해질 것이다. 어찌 한 사람의 지언(知言, 진짜 알고 있는 말)이 없으랴. 마침내 이 글을 써서 머리말로 삼는다.
옹의 성은 이(李)요, 이름은 달(達)이며 자는 익지(益之)이다. 쌍매당(雙梅堂, 이첨9)의 호) 이첨(李詹)의 서예손(序裔孫)10)이니 손곡(蓀谷)은 그의 자호(自號, 스스로 붙인 호)이다.
만력 무오년(1618) 3월에 양천 허단보(端甫, 허균의 자)씨는 서(序)한다.
이제, 다 읽었읍니다. 손곡 이달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할 수 있어 고맙게 여겨집니다. 또한 불우한 삶을 삶았던 손곡 이달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마음 깊이 사랑한 제자인 교산의 그 깊은 마음도 알게 되어 고마움이 더욱 크네요. 다음에는 교산 억기시(蛟山 臆記詩) 서(序)를 읽을 차례입니다.
이런 오늘도 그저 이런저런 고마움뿐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1)남위(南威)는 진나라 문공의 애인으로 문공은 이 남위를 얻고 사흘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을 정도였으며 그 뒤에 멀리하며 ‘후세에 반드시 여색 때문에 나라를 망하게 할 자가 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2)서자(西子) 춘추시대 월나라 미녀 서시(西施)인데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에게 패한 뒤에 그 서시를 오나라 왕 부차에게 바치며 미인계(美人計)를 써 부차가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오나라를 쳐 복수를 하였다고 한다.
3)두보의 가탄시(可歎詩, 감격하여 깜짝 놀라 쓴 시로 이해하면 좋을 듯)에 나오는 구절을 가져 온 것으로 이렇게 쓰여져 있다. ‘하늘의 뜬구름이 흰 옷 같더니 잠시 사이에 푸른 개(狗)같이 변했네’
4)왕유는 당나라 때의 예술인으로 시, 음악, 그림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으며 남종화의 시조로 특히 산수화를 잘하여 자신의 시에 ‘설경산수화’를 덧붙인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백(701~762)과 두보(712~770)와 함께 서정시 형식을 완성한 시인으로도 손꼽힌다.
5)성당 시대의 시인으로 어법과 운율을 새롭게 시도하여 '율시'에 새로운 장을 마련하였으며 능숙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은유와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젊을 때 관리로 경험했던 이국적인 중앙 아시아를 시의 무대로 삼아 '변경 시인'으로도 불린다.
6)군대가 사흘 동안 행군한 거리(3사)로 1사(舍)는 30리이다.
7)재주가 없다는 뜻으로, 주로 문장에서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8)구양공(歐陽公, 구양수歐陽修를 가르키며 북송의 문인으로 산문의 대가로 알려졌음. 자는 영숙(永叔)과 스스로 붙인 취옹(醉翁), 혹은 육일거사(六一居士)이며 시호인 '문충(文忠)'을 따서 후에 '구양 문충공(歐陽 文忠公)'이라고 불렀는데 줄여 부른 이름이다.)이 오대사(五代史)를 지으면서 앞에 덧붙인 글을 왕형공(王荊公)이 보고 ‘부처님 머리에 어찌 똥칠할 수 있느냐’고 혹평한 것을 가지고 온 것으로 여겨짐
9)쌍매당은 이첨의 호로 원래 고향 집에 소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벼슬에 전념하다 몇 년 만에 돌아와보니 소나무는 없고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있어 호를 '쌍매당'이라 했다고 하며 이색의 문인이다.
10)교산 허균의 선생님이기에 서자(庶子, 천민이 아닌 첩에서 난 자식으로 일반적인 표현을 씀)로 태어난 후손으로 높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얼자(孼子, 본처가 아닌 신분이 낮은 첩에서 난 자식)로 알려짐.
첫댓글 오늘은 월요일이라 교산 허균의 '톺아보기'를 하는 날입니다.
해당 서는 '손곡집(蓀谷集) 서(序)2'입니다.
지난 주에 앞쪽을 읽었고, 오늘에 그 뒷부분을 마저 읽었읍니다.
이 글을 통하여 손곡 이달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게 되었으며
교산 허균이 얼마나 스승을 깊이 사랑했는가도 이해할 수가 있었읍니다.
그래서 고마움이 넘칠 뿐입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살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