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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플레이어 VS 과대 포장된 플레이어로 요약되는 논쟁의 뇌관
어떤 사안에 관한 ‘뜨거운 논쟁’이 존재하는 한, 그 논쟁에의 평가는 어떻게든 그 논쟁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까닭이다.
본론으로 돌입하여, 그러면 차범근 감독의 커리어에 대해 짙은 의구심을 던지는 이들의 주요 근거들은 무엇인가? 필자는 나름의 양식을 가지고서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이전부터 필자는 UEFA컵의 가치를 형식적으로 격하시킨 결정적인 사건을 99/00 시즌 도입된 ‘챔피언스리그 탈락 팀들의 UEFA컵 합류 제도’로 간주해왔다. 이것이야말로 최종 예선과 조별 단계를 통해 챔피언스리그에서 ‘낙오’된 클럽들을 구제하는 ‘패자부활전’ 성격을 띠면서 UEFA컵의 ‘독자성’을 크게 훼손한 것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이 ‘스포츠적 권위 하락’에 더하여, 바로 같은 시점부터 각 리그의 ‘컵 우승자’들끼리 벌이는 컵위너스컵이 폐지되고 UEFA컵이 그 기능을 포괄하게 된 것도 UEFA컵의 위상에는 전혀 도움이 못되었다.
그 통합의 모티프 역시 UEFA컵의 강화라기보다 챔피언스리그를 ‘최대한 비대한 양질의 대회’로 구성코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챔피언스리그에 국한해서는 분명 성공적이었던 반면, UEFA컵은 중계율, 중계권료, 스폰서비, 입장수입 등의 ‘경제 논리’ 상으로도 챔피언스리그에 여러 발짝 떨어진 대회로 전락한 것이 현실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UEFA컵의 위상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취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조치는 (올 시즌 도입된 ‘부분 리그제’ 같은 것이 아니라) 챔피언스리그 낙오 클럽들의 UEFA컵 입장을 불허하는 것일 게다. UEFA컵이 챔피언스리그 참가팀들보다 낮은 순위 클럽들이 참여하는 대회임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독자성’만은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사실은 당대 UEFA컵이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현재의 상황에 비해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음을 지지하는 근거 이외의 다름아니다. 한마디 덧붙이면, 하물며 현재 권위가 하락된 UEFA컵이라 하더라도 그 커다란 트로피가 우승 클럽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는 사실, 또 우승까지 도달하기 위해 숱한 강적들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이른바 ‘북유럽의 시대’로 명명되는 60년대 중후반~80년대 중반의 긴 세월 동안 유러피언컵에선 잉글랜드, 서독,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클럽들이 초강세를 드러낸다. 그런데 바로 이 기간 UEFA컵의 양상 또한 동일하다는 것이다. 67/68 시즌 리즈의 우승(당시 페어스컵)으로 시작된 북유럽 시대는 83/84 토튼햄의 우승까지 지속되었다.
‘북유럽 시대’ 다음으로 찾아온 것은 잘 알려진 바 ‘세리에A의 시대’다. 이탈리아 클럽들은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의 세월 동안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 세력이었고, 이 또한 챔피언스리그와 UEFA컵 할 것 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러한 사실은 ‘당대 강세를 드러내는 리그’일수록 만만치 않은 클럽들의 수효가 상대적으로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음을 시사하며, 바로 이 대목에서 필자는 다음 쟁점으로 이동할 것이다.
한국에서 TV를 통해 가장 먼저 소개된 해외 축구가 분데스리가다. 물론 우리 근로자들의 서독 진출,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진출 등으로 인해 당시 여러모로 더욱 가깝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 하지만 그러한 사실들이 분데스리가의 당대 위상을 ‘뻥튀기’한 것은 별로 없다고 보는 게 옳을 듯싶다.
근거가 있다. 실제로 분데스리가는 (다섯 시즌의 평가지수 합산 방식의) UEFA 리그 랭킹에서 70년대 중반~80년대 중반 거의 언제나 1위를 유지했다. 그것은 분데스리가가 두터운 클럽층을 기반으로 각종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좋은 성적들을 고르게, 꾸준히 내왔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랭킹 결과에 내심 동의를 주저할 리그는 같은 기간 ‘평균적 2위’에 해당하는 잉글랜드. 잉글랜드리그는 77년부터 84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유러피언컵 6연속 우승을 포함한 7차례의 유럽챔피언 등극 등 각종 우승 횟수로는 분데스리가를 능가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리그 내 모든 클럽들이 벌어오는 포인트의 총합에서 분데스리가는 잉글랜드를 앞선다.
이 현상을 잘 나타내는 극단적 예가 바로 차범근, 횔첸바인, 페차이, 로란트 등이 활약했던 프랑크푸르트가 UEFA컵을 제패한 79/80시즌이다.
그 시즌 UEFA컵 4강에는 프랑크푸르트 이외에 바이에른 뮌헨, 보루시아 MG, 슈투트가르트가 올라있었다.
물론 모든 시즌이 이러했던 것은 아니더라도 트로피 획득 여부와 상관없이 분데스리가 클럽의 유럽 무대 평균 실적은 짧지 않은 세월에 걸쳐 지극히 우수했던 것이다.
즉, 차범근 감독의 프랑크푸르트 시절 분데스리가는 당당 랭킹 1위를 달렸던 리그이며, 대체로 레버쿠젠 시기에는 그 정도의 ‘광휘’를 잃기 시작했으나 이탈리아의 뒤에서 프랑스, 스페인 등과 경합하는 리그였다 할만하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차범근 감독이 ‘당대 매우 강력한 리그’에서 오랜 기간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기란 어렵다.
현재로 돌아와 근년의 UEFA 리그 랭킹에서 지속적 1위를 달려온 리그는 스페인 라리가다. ‘빅 3’의 치열한 경합 속에서 왜 하필 스페인이 1위인가? 그것은 ‘로스 갈락티코스’ 레알 마드리드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레알을 비롯,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데포르티보는 물론이고 유럽 클럽 대항전에 출전했던 모든 스페인 클럽들이 몇 년에 걸쳐 가장 많은 승점을 따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현재 분데스리가는 ‘빅 3’와 차이가 벌어져 있다. 즉, 랭킹은 리그 강호 그룹의 경기력은 물론 리그 내 중상위권 클럽들의 경기력 분포 또한 어느 정도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발견한 바, 차범근 감독에 대한 네티즌 논란의 중심에는 ‘그는 누구급이다’라는 주장,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의 반박, 재반박, 비난의 연속이 존재했다. 물론 ‘만인에 대한 자신의 투쟁’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우리 인간 사회는 타인들끼리의 비교와 싸움을 붙이면서 그것을 즐겨왔고 어쩌면 알리와 이노키의 코믹 승부,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의 우정의 무대, 도노번 베일리와 마이클 존슨의 이벤트, 심히 지루한 영화의 한 컷에 같이 모습을 드러낸 파치노와 드니로의 경우도 모두 그러한 모티프로부터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뉴튼과 아인슈타인이 모두 생존해 있다면 그들은 아마도 ‘과학경시대회’에서 한판 붙어봐야 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단체경기인 축구에서조차 이 상황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우선 (주제와 무관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는 모르나) 필자는 ‘필자의 최고 선수 100명’을 선정할 때 다비드 지놀라(David Ginola)를 적어도 어딘가에 포함시킬 것임을 밝혀둔다. 다양한 선택의 기준들 중에서 그를 포함시킬 수 있을 만한 기준들을 차용할 것이기에.
두 번째는, ‘선수 차범근’에게 있어 적어도 수긍되어야 하는 어떤 사실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는 해외여행은 물론 외국 유학도 흔치 않았던 시절 정상급 리그로 건너가 리그 내 정상권이 아닌 두 클럽에서 그들에게 매우 값진 UEFA컵을 들어올렸다.
10년 동안 여섯 시즌에 걸쳐 두자리수 득점을 기록했는데 그의 득점 분포는 상대 클럽을 가리지 않고 이루어졌다. 알려진 대로 그의 총득점(98골)은 한동안 분데스리가의 외국인 기록이었다. 컵위너스컵(1골)과 UEFA컵(9골)에서 활약했으며 결승전에서의 값진 한 골을 포함, 골들 중 일부는 팀의 운명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격렬한 분데스리가에서 받은 경고는 단 한 장이었다. |
첫댓글 한준희씨~~ 난 당신이 좋아요^^
경고가 단 1개라니..
한준희..해설도 정말 재밌고 조리있게 잘하고..머리스탈도 귀여우시고~~ 넘 좋다
머리스탈도 귀여우시고~~ 이말이 더 귀여운데 ㅋㅋㅋ
이야 ...진짜 말씀 잘하신다
최고 -_-乃
글 논리있네요.. 겸손하게 글 쓰셔서 좋네..
해설계의 김제동?
한준희씨 해설이 제일 좋습니다
아무래도 저때는 경고카드를 좀 적게 주던 시절인걸 감안해야... 경고가 본격적으로 많이 나오게 된 시점이 98프랑스월드컵이었죠.
그래도 대단하네요 차범근..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