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스피라가 했빛을 보기 시작했다.
참으로 오랜 기다림의 결실이다.
프로토 자동차의 창업자 김한철 사장과 최지선 사장 부부의 꿈에서 시작된
첫 스포츠카 PS-2의 등장부터 본다면 10년이 걸린 셈이다.
‘막야(莫倻)’같은 중국의 전설적인 보검(寶劍)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60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최초의 국산 수제 스포츠카 스피라의 탄생은 보검의 탄생이 비유될 법하다.
스피라 같은 차를 흔히 슈퍼카 라고 부르는데, 영어에서는 이그조틱카(exotic car)라고 한다.
물론 ‘본토발음’은 ‘익사릭 카’ 정도겠지만. 이런 종류의 차량들은 생산량이 극히 적다.
그것은 가격이 비싼 이유도 있지만,
자동차를 교통수단으로써가 아니라,
하나의 여가로 생각하거나 애호가 수준으로 사용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것이니, ‘시장’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가인 우리나라에 이런 수퍼카가 등장하고, 또 그것을 자체 능력으로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메이커가 생겼다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면서도 한편으로 조금은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늦은 탓을 메이커에게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새로운 차가 만들어져 거리에서 굴러다니려면 설계하고 디자인해서 만드는 일 이외에도 상당히 많은 ‘허가절차’가 필요하다. 아무튼 그 ‘절차’들을 모두 견뎌내고 드디어 우리 앞에 나타난 스피라는 한편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성숙과 다양화를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대량생산 된 차량’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또 그런 차들의 ‘모습’과 ‘품질’에 익숙해져 있다. 대량생산방식은 그 차에 맞게 미리 제조된 전용부품들을 각각의 작업자가 1분 40초 이내에 조립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고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와 같은 대량생산의 조건은 의외로 많은 한계를 준다. 게다가 많은 양이 생산되므로 ‘대중적’ 취향에 맞게 비교적 무난하게 디자인되어야 한다는 조건도 요구된다.
이러한 조건들과 반대인 수퍼카들은 개성과 고성능, 고품질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수 천 가지의 부품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자동차의 특성 때문에, 스피라와 같은 ‘소량’ 생산차량은 모든 부품을 ‘전용’으로 개발할 수는 없다. 상당수의 부품들이 다른 양산 메이커의 차량들에서 응용되거나 공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국내에서 생산되었던 스포츠카 엘란 역시 오리지널 로터스 엘란 모델에서는 테일 램프를 프랑스 르노의 ‘알피느’ 승용차의 것을 썼었다. 물론 기아에서 생산될 때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개발되었었지만.
스피라의 전면부 이미지에서는 공격적인 이미지이다. 게다가 헤드램프가 샤프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자동차 디자인에서는 헤드램프의 품질과 정교함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헤드램프의 수준 높은 디테일과 퀄리티는 더없이 중요하다. 스피라의 차체 비례는 전형적인 미드쉽 슈퍼 카의 그것을 가지고 있다. 차체 측면에서의 비례는 초저편평(超底扁平, ultra low & wide) 의 비례이다. 그리고 높은 벨트라인과 슬림 한 그린하우스의 비례는 역동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게다가 짧은 앞, 뒤 오버행은 경쾌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1990년대 초에 등장했던 혼다의 NSX는 슈퍼 카로서는 매우 긴 뒤 앞, 뒤 오버행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시각적인 이미지가 다소 무거워 보였다. 사실 긴 오버행을 가진 NSX는 다른 혼다의 승용차들의 짧은 오버행의 차체 비례와 비교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혼다의 차들은 특히 짧은 오버행에 대해서 일종의 집착 같은 것이 있는데, NSX는 그런 혼다의 특징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아마도 NSX는 과거 영국 MG의 영향력 속에서 개발된 차량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초기 혼다의 중형 이상급 승용차들은 MG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NSX의 긴 오버행은 기술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것 이전에, 메이커의 기술개발 단계에서 이러한 비례에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고 있었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성능이 좋은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전체적인 차체의 균형에 신경을 써서 만들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의 스피라는 적어도 차체의 비례에서는 무거운 느낌은 없다.
우리는 자동차를 대할 때는 이중적인 기준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이성적 기준’과 아울러 ‘감성적 기준’이 그것이다. 이성적 기준에서 우리는 연비를 따지고 출력과 소음, 그리고 사용된 재료의 품질 수준을 따진다. 그 다음에는 그 차의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소프트웨어’를 따진다. 여기에서 말하는 소프트웨어가 바로 ‘스토리’ 인 것이다.
얼마 전 사브 브랜드를 인수한 스파이커 역시 소량의 수퍼카를 만드는 메이커이다. 스파이커의 수퍼카 에일러론(Aileron)을 보면 내/외장 디자인이 20세기 초반의 프로펠러 항공기의 디자인을 모티브로 하고 있어서, 그 차의 실내/외의 모든 부품들이 고품질이면서도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준다. 필자는 고풍스러운 것이 좋다는 말이 아니라, 수퍼카는 복고든 최첨단이든 간에 그 차를 통일된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주는 디자인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다 만들어진 차를 이렇게 몇 마디의 말로 평가하는 것보다 좋은 디자인을 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그런데 이제 스피라의 ‘스토리’가 시작된 것이다. 스토리, 즉 이야기는 당대에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것이 시간이 면, 그것은 마침내 전설(傳說, legend)이 된다. 그리고 전설을 가지는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꿈과 상상력을 가지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자동차 디자인은 단지 물리적인 퀄리티 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 것이 분명하다.
스피라는 이제 이야기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시야에서,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자동차 애호가들에게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서 스피라가 다음 모델을 내놓을 때면, 사람들이 스피라를 사고 싶어서 잠 못 이루게 할 정도의 전설과 설레임으로 무장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