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산마루
오월 첫째 토요일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집에서 도시락을 챙기지 않고 반송시장 노점에서 김밥을 두 줄 마련했다. 105번을 타고 동정동에서 내려 북면으로 가는 녹색버스로 갈아탔다. 굴현고개 너머 외감마을 앞에서 내렸다. 동구 밖을 지나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 곁으로 향했다. 단감과수원을 지나 오리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었더니 차량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좋았다.
숲 들머리는 아카시아 꽃이 구름처럼 무더기로 피어났다. 아카시아나무는 관행으로 부르는 이름이고 아까시나무가 맞다. 예전 헐벗은 민둥산 속성 조림수로 산림녹화를 위해 심었던 나무였다. 해발고도가 높지 않은 야트막한 산자락에 많다. 요즘은 천덕꾸러기 나무가 되었지만 양봉업자들에겐 소중한 밀원이 된다. 아카시아에서 꽃이 피면 꿀벌들은 몸살 할 정도로 바빠지는 계절이다.
내가 오르려는 곳은 양미재로 틈이 나면 가끔 찾는 근교 산자락이다. 사흘 간 연휴 가운데 첫날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을 찾아 늦은 봄 산나물이 더 쇠기 전 좀 마련해 나올 생각이다. 우리 집에선 지난주 채집해 놓은 산나물이 남아 있어 필요 없다. 하산 길 지인에게 보내어 가는 봄날의 운치를 같이 나누고 싶어서다. 이즈음 뜯어 올 수 있는 산나물은 덜 쇤 취나물과 벌깨덩굴 정도다.
부엽토가 쌓인 평탄한 길을 걸으니 숲속에 몸을 숨긴 산새 지저귐이 들려왔다. 한동안 극성을 부리던 미세먼지와 송홧가루는 덜 날려 좋았다. 싱그럽던 신록은 푸름이 더해 녹음으로 짙어갔다. 양미재 못 미친 너럭바위에 앉아 김밥을 안주로 가져간 곡차를 한 병 비웠다. 내가 즐기는 곡차는 국순당 생탁이다. 배낭의 부피를 점차 줄여야 내가 마음에 둔 산나물을 뜯어 채울 수 있다.
쉼터에서 일어나 양미재 언저리 숲으로 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취나물이 더러 보였다. 아마도 누군가 먼저 뜯어가고 뒤늦게 자란 취나물이지 싶다. 취나물은 고라니나 노루도 무척 좋아해 언제나 녀석들이 시식을 먼저 하는 산나물이다. 양미재 일대는 취나물 외에도 바디나물이 더러 자란다. 바디나물은 산당귀 사촌쯤 되는 쌉쌀한 맛이 나는 산나물로 이맘때가 약간 쇠는 즈음이었다.
양미재 근처에서 취나물과 바디나물을 뜯어 야트막한 산봉우리로 올랐다. 그곳 역시 너럭바위가 있는 곳으로 내가 작대산 갈 때 쉬었다 가는 지점이었다. 쉼터 근처에는 자주색 땅싸리비가 금낭화처럼 꽃잎 주렁주렁 순차서열로 달면서 피었다. 저만치 산기슭에 구고사가 보였다. 건너편은 천주산에서 예곡으로 가는 산등선이 뻗어갔다. 남긴 곡차를 마저 비우고 산나물 검불을 가렸다.
워낙 이른 시각 길을 나선지라 아직 아침나절이었다. 몇몇 지기들에게 숲속 전경과 야생화 사진을 몇 장 날려 보냈다. 그랬더니 내가 있는 현 위치를 궁금해 하면서 가려 놓은 산나물을 신기해했다. 쉼터에서 산등선은 넘어 양목이고개로 내려섰다. 작대산 트레킹 길로 가는 길목이었다. 트레킹 길로 들어 취나물과 바디나물을 더 뜯어 모았다. 부지깽이나물도 보여 몇 줌 뜯어 보냈다.
배낭이 불룩해지고 손에 든 봉지에도 산나물이 채워졌다. 하산은 양목이고개에서 중방마을로 내려섰다. 묵혀진 등산로는 최근 어느 산악회가 지나면서 깃을 달아두었다. 그래도 산행객이 잘 다니질 않아 등산로가 금세 희미해지고 사라져버렸다. 숲을 헤쳐 나간 산기슭은 감계 신도시가 가까운 택지 개발지였다. 군부대 사격 훈련장은 향토사단과 함께 떠나고 택지를 조성하는 중이었다.
중방마을을 지난 화천리에서 들길을 걸어 낮은 산마루를 넘어 지인 농장으로 갔다. 농막에서는 지인과 방문객은 텃밭에서 뽑은 상추쌈으로 점심을 들고 상을 물리는 즈음이었다. 나는 그들 틈새 같이 앉아 곡차를 들고는 고구마 모종을 같이 심었다. 먼저 심은 고추와 오이와 가지는 잘 자랐다. 배낭 가득한 산나물은 지인에게 넘기고 텃밭에서 가꾼 보드라운 열무를 몇 줌 뽑아 나왔다. 18.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