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알고리즘
고훈실
바다가 생의 척추가 되는 순간부터
저 둥근 해원海原을 빠져 나갈 수 없다
아버지의 파도는 0과1의 미로
이물에서 고물로 이어지는 포물선이
출항을 허許하면 난바다 어디쯤에서
아버지의 투망은 기호열이 복잡했다
물오른 바닷장어 우럭 쏨펭이
한 그물씩 올리면
어긋난 타이밍처럼 빈 햇살만 가득했다
바다는 갈수록 가난해져
열일곱 처음 배에 올랐던 기억과
수심水深을 읽는 아버지 등 마저 홀쭉하다
촘촘한 그물로 아버지를 에워싼
생의 비린내가 무한 생성되고
못 박힌 손바닥에 성근 손금이 남은 건
기억이 실행을 파도처럼 깎았다는 증거
막막하게 펼쳐진 수평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고 천이고 만이라서
당신이 명명한 바다는 무한 복제된다
파도가 과부하로 출렁이고
컵라면 뚜껑에 노을이 미끄러지면
흰 포말의 데이터가 바다를 귀납하고
출력하는 저녁이다
어창에 펄떡이는 몇 마리의 기호들
우주를 향해 팽창하다
별처럼 되돌아 와
오늘의 허선虛船은 십진법 끝에 걸린 비밀번호다
쓸모없는 메트릭스가 몇 토막 잘려나가
내일은 알짜 프로그램으로 만선을 꿈꾸는
출항은 영원히 미지수다
아버지의 해문海門만이 닫힐 줄을 모른다
제10회 등대문학상 수상작(2022)
카페 게시글
추천시, 산문
바다의 알고리즘/고훈실
함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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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2
23.10.19 14:3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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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준 높은 시 한 편 감상해 봅니다
바다와 아버지와 고기들 그리고 노을...표현력이 대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