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6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오늘은 성탄절 주일 이후 첫 날인 월요일입니다.
이 한 주도 주님의 품안에서 살기 원하오니 그 삶이 관념적이거나 지식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나의 영을 깨워주소서.
나는 연약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사오니 오직 주님의 품안에서 안겨 살기 원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거기서 나오는 생수를 마시며 더 이상 목마르지 않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한국에는 눈이 많이 와서 피해를 입은 이들이 많이 있다 하오니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주의 은혜를 알게 하옵소서.
내가 힘이 있고 강하다 한 들 자연의 재해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연약한 자들임을 인식하고 만물의 주인 되시는 우리 주님을 인식하고 알아 주님만 의지하는 참된 지혜자들이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전 9:1-10
제목 : 땅에 속한 부요함을 찾던 자, 하늘에 속한 참 부요함을 얻고 누리다.
1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2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드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3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4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5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6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는 네 몫이니라.
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음이니라.
* 나의 묵상
코헬렛 곧 전도자는 인생의 의미를 궁구하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한다.
무엇보다 그가 확실히 깨달은 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을 사람이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해 아래에 사는 인간의 인생은 하나님의 행동하심 안에 감추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같은 하나님의 행동하심은 어떤 지혜로도 파악할 수 없는 비밀이다.
(8:17)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전도자가 살펴보니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모든 행위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그들이 장래에 사랑을 받을지 미움을 받을지 결코 알 수 없다.
결국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운명은 한 가지다.
의인이나 악인이나 선인이나 강도나 깨끗한 자나 더러운 자나 예배드리는 자나 드리지 않는 자가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선인에게 임하는 일이나 악인에게 임하는 일이나 맹세하는 자나 두려워 맹세하지 못하는 자나 일반이다.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한 가지 운명에 떨어진다는 것은 악한 일이다.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살아있는 자가 누구보다 희망이 있따.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더 낫다는 말과 같이 말이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죽은 자들은 대체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에 대한 기억은 다 잊혀지게 마련이다.
그들의 사랑도 그들의 미움도 그들의 열정도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영원히 해 아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자기 몫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자보다 낫다면 산 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가서 즐겁게 먹고 기쁜 마음으로 자기 포도주를 마실 것이다.
오래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의 행동을 좋게 보셨다.
언제들이 자기 옷을 하얗게 하고 머리에서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허망한 날 동안 사랑하는 아내와 인생을 즐길 것이다.
이것이 그의 삶의 몫이요 그의 수고의 보상이다.
자기 손이 찾아내고 온 힘을 다해 행하던 모든 일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자의 세계는 행동도 계산도 인식도 통찰도 없으며 이내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인간의 죽음을 비극적인 종말로 파악한다.
인생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아침 안개와 같고 순식간에 지나자는 밤의 한 경점과도 같다.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특성과 형태로 살아간다.
의인도 있고 죄인도 있고 종교인도 있고 비종교인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으며 부자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죽음이라는 공동의 운명을 피할 수 없으며 그 앞에서 모든 사람은 일반이다.
죽음이라는 최종적인 운명이 모든 인간을 하나로 만들어버린다.
이생의 부귀와 성공, 자랑과 명성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그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죽음이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든다면 산 자가 소망이 있지 않겠는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듯이 말이다.
여기서 개는 비천하고 경멸스런 짐승을, 죽은 사자는 짐승의 왕을 묘사한다.
인생의 히로애락을 가져오는 사랑, 미움, 열정도 죽음으로 소멸한다.
더불어 인생을 의미 있게 살고자 했던 어떠한 행동이나 계산, 인식이나 통창 또한 함께 사라진다.
전도자는 죽음으로 소멸되는 인생의 의미 앞에서 자기 몫의 생애를 즐기라고 말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사랑하는 여자와 즐겁게 살라는 것이다.
그의 권면은 사실 시대마다 현자들이 권하는 것으로, 이런 일상을 삶의 진짜 즐거움으로 믿고 싶어한다.
한편 코헬렛 곧 전도자는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영역에 있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되 그를 경외하라고 권명한다.
해 아래에 있는 인생은 제한된 영역에 속하며 그에게 수고의 장소요 그에게 몫이 정해진 헛된 날로 입증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의 행동하심을 알 수 없으며 다만 주어진 생의 몫을 즐길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인생은 결국 죽음 앞에서 헛된 것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지혜, 그의 행동하심을 알지 못하는 인간.
그에게 최선의 삶이 있다면 그 역시 이생의 몫을 즐거워하며 살 것이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이 부재한 모든 인생의 길이며 결국 헛된 것으로 귀결되는 인생의 길이다.
그에게 죽음을 모든 인생의 의미를 삼켜버리는 피할 수 없는 고통스런 결말이다.
적어도 전도자는 인생의 문제를 구속사적으로 논하지는 않는다.
세상의 현자와 같은 논리로 말할 뿐이다.
하지만 그같은 허무함을 극복하는 것은 오직 인생과 그의 몫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 하나님께서 해 아래에서 한시적인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구원을 베푸셨다.
해 아래에서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고 말 인생에게 생명을 주시고 영원을 살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해 아리에거 난 인생의 결말을 진지하고 분명히 깨우치신다.
해 아래에서 난 인생들, 그들은 죄 가운데 살다가 죽을 것이다.
(요 8:23-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해 아래, 곧 아래에서 난 인생은 만물 안 곧 이 세상에 속한 자이다.
그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그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땅에서, 아래에서, 해 아래에서 난 자의 운명은 누구나 동일하다.
그런데 하늘에서, 위에서, 만물 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신다.
영생은 하늘에서 태어나는 생명이며 위에서 나는 생명 곧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다.
이 생명을 가진 자, 죽음을 넘어 영원한 현재로 산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하나님의 지혜로 주어지며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지혜이다.
영생을 얻은 자는 영원을 현재로 사는 자이다.
그는 생명 없이 사는 사람들의 몫인 이생의 즐거움을 초월하는 인생을 살아간다.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위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깃을 간다.
그것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와 복음을 위해 사는 자이다.
나는 지난 60년 간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였고 나아가 20년 넘게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였다.
하지만 영생의 도에는 무지한 자였다.
그저 이 세상 곧 만물 안에 속하는 해 아래 있는 것들에 의니를 부여하며 그것이 최고인 양 그것들을 얻기 위하여 불철주야 애쓰던 자였다.
이런 나에게 만물 위의 세계요 하나님 나라는 그저 요원할 뿐이었다.
손에 잡히지도 않았고 귀에 들리지도 않았으며 눈에 보일 리 만무하였다.
그러면서도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 더 높은 것을 얻고 차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썼던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재 말이다.
이런 나는 어느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았다.
그 심판은 나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행동하심이었다.
이 심판을 통하여 나는 사방이 칠흑같이 깜깜한 무덤에 들어갔다.
나는 복음을 알지 못하였기에 그것이 무덤인 줄도 알지 못하고 그저 내가 당한 우환을 해결해달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그런 하나님을 원망도 하고 화도 내보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나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모든 환경을 만들고 계신 것이었다.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 탈진이 되었을 때 나를 부르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복음을 듣게 하셨다.
이 복음이 나를 살렸다.
그 때 나의 눈은 만물 안에서 만물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만물 위에 계시는 하나님, 곧 창세전 언약을 알았으며 그 나라가 결국 이 세상이 종말을 맞은 뒤에 다시 올 하나님 나라임을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오늘도 이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과연 누구인지?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나, 이런 나를 주님의 십자가로 살리시고 오늘 나 또한 그 십자가에 나를 못 박으며 나를 부인하고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나임을 인식하며 한 걸음 나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만물 안에 모든 것이 있는 줄 알고 거기에 치심하며 모든 것을 걸고 살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가 여기 있습니다.
아무리 찾고 또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진리의 복음을 결국 주의 말씀 속에서 찾았습니다.
말씀은 그저 따분한 고전 책으로만 여겼던 이 무뢰한이 어떻게 주의 은혜와 긍휼하심으로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요?
그것이 그저 신묘막측할 뿐입니다.
주님의 모든 일을 과연 비밀입니다.
하지만 그 비밀은 아무도 알 수 없이 꽁꽁 숨겨진 비밀이 아니라 누구나 성령을 인함으로 알 수 있는 공개된 비밀임을 믿습니다.
오늘 이 하루도 비밀 되신 우리 주님과 긴밀히 교제와 사귐을 갖사오니 이 종에게 하늘의 은혜를 베푸소서.
오늘은 한국에서 동기목사 가족이 다니러 옵니다.
거기에 동행하오니 걸음을 지켜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