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최근 촬영한 사진 작품 '휴식 중'. ⓒ장지용
솔직히 장애예술계를 보면 저는 가끔은 참담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명함을 그렇게 내밀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장애예술 정책이 저를 명함을 내밀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는 ‘발달장애인 사진가’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한국에서 장애예술인을 배출하는 통로가 특이하다는 점입니다. 전형적인 예술인 양성통로인 예술계 대학을 통한 방식을 거친 사례는 장애예술계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특히 발달장애 예술계에서는 그런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발달장애인 미술가라는 것 중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발달장애인이 미술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뉴스거리가 되는 실정입니다. 거꾸로 발달장애 예술계 일부는 미술대학을 그만큼 안 거친다는 의미이겠죠.
장애예술계도 비장애인 예술가처럼 예술계 대학이라는 전문적인 교육기관을 통해 육성되고 훈련되는 체계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러한 부분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애예술인을 훈련할 산실로서의 예술계 대학 진출을 장려하고, 장애예술계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인재들이 예술계 대학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배출되는 것이 일단 첫 번째로 중요한 과제일 것 같습니다.
발달장애 예술가의 경우, 정규 예술대학의 교육과정은 결국 교양과목 등의 존재로 통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서구권에서의 예술계 대학의 역할을 하는 ‘예술학교’ 제도를 응용하여 발달장애인의 예술 소양과 교양 역량, 생활역량 등을 종합 훈련하는 대학 학사 학위를 부여하는 ‘특별 예술학교’ 창설을 제안합니다. 저도 발달장애인으로 예술계 대학 출신(주: 필자는 상명대학교 영상학부 사진영상미디어전공을 졸업했습니다.)이기는 하지만, 발달장애 예술계 대학생이 있다면, 예술 소양은 소속 대학에서 교육받고 교양 역량은 자유 선택으로, 생활역량은 ‘특별 예술학교’의 방학 또는 주말 프로그램이나 일부 위탁 과정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발달장애인 예술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애예술인을 제도적으로 교육할 교육프로그램이나 특별 과정, 사설 양성기관 수강 지원 등의 방법으로 체계적인 장애예술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예술이 반드시 번뜩이는 천재성 이런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심지어 비장애인이긴 하지만 한국의 전설적인 성악가이자 얼마 전 별세한(지난 4월 14일 별세) 테너 신영조는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선수로 뛰다 부상으로 입원하다 들은 성악을 들으면서 야구선수에서 성악가로 방향을 틀어 한양대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시작으로 성악에 입문했다고 얼마 전 KBS 클래식FM의 아침 방송에서 우연히 들었습니다. 반드시 뛰어난 천재성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저도 사실 예술대학으로 진로를 틀기 전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다들 주위에서 사학과 진학이 유력하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장애인 예술이라고 요구받는 ‘장르’ 제한이 너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발달장애인 예술은 미술, 음악 이 2개 장르 이외에는 실질적인 제한이 심각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도 미술에서는 회화(繪畫)에서는 인정받지만, 사진, 디자인, 조각, 만화 등의 분야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표현 기법에서 콜라주(필자 주: 이미지 등을 오려 붙이기 등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미술 기법) 등의 기법을 썼다는 발달장애인 미술가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나마 진화한 것이 유화 수준이라고 하니 참담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저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면서, 발달장애인 사진가로서 존재감을 발휘해본 적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사진 전시회를 열자고 하면 전시할 사진뿐만 아니라 기획할 전시 방식까지 구상까지 다 해놓은 상태인데, 발달장애인 사진가라는 존재는 한국 장애예술계에서 어떻게 보면 부정당하는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악도 대중들의 음악 수요는 대중음악 위주에 치우쳐져 있는데, 발달장애 예술계는 클래식 음악에 더 가까운 공급을 보여주고 있어서 참 이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발달장애인 아이돌이 나올 수도 없는 이런 세상에서 발달장애인이 대중음악 프로젝트를 내놓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부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영국의 가수였던 수잔 보일이 발달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호주 출신의 발달장애인 배우인 클로이 헤이든(Chloe Hayden). ⓒ클로이 헤이든 공식 페이스북
그리고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을 계기로 발달장애인 연기자의 필요성은 점점 제기되고 있는데 아직 대중 스타가 된 발달장애인 연기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할리우드에서는 나중에야 당사자성을 공개했다는 특이점이 있긴 하지만 대릴 해나, 웬트워스 밀러 등 발달장애인 배우가 맹활약하고 있고 최근 estas에서는 호주 출신 발달장애인 배우 클로이 헤이든(Chloe Hayden)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에도 소개된 ‘하트브레이크 하이’를 통해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가끔 주위로부터 “발달장애인이 방송에 나간다면 아마 장지용이라면 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평가를 듣기도 하는 등 앞으로 잠재력은 있는데 이것을 가다듬을 방법은 없긴 없습니다. 뭔가 방송 출연 등의 계기가 한번은 터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있을 뿐입니다.
세 번째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장애예술가 생계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가뜩이나 예술계는 생계지원 등의 요소가 대단히 필요한 분야이긴 하지만 장애예술계는 이중 부담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예술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저는 생계 곤란으로 예술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서 결국 일반 기업 취업을 선택하여 다행히 장르 특성상 휴일, 휴가 등을 활용해서 집중 촬영을 하는 등으로 사진과 생계의 균형을 맞춰야 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사진 분야는 카메라, 렌즈 등 각종 부속 장비, 처리용 컴퓨터 등 디지털화 이후에도 한 번 투자되는 비용이 많아서 재정지원이 조금 필요하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장애예술가가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서 생계지원이 좀 더 강화되고, 특히 예술 관련 활동을 위한 장비나 소모품 구입 등은 현금영수증 등 관련 지출 증빙만 잘 된다는 조건으로 정부 등에서 지원해 줄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언젠가 제 돈을 들이든, 아니면 외부의 후원을 받든 간에 대학 졸업 이후 사회인이 되어 작게나마 진행하던 사진 작업을 소개하는 등 ‘일하면서 사진 찍는 발달장애인 사진가’라는 모습으로 사진 관련 전시회 등을 통해 한국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는 ‘발달장애인 사진가’의 존재를 드러내고, 결국 나름대로 ‘나도 장애인이고 특이하게 사진을 합니다.’라는 의미의 장애예술계에 ‘명함’을 내밀고 싶습니다.
언젠가 발달장애인 예술의 새 지평을 열 만한 발달장애인 사진가라는 독특한 모습으로 ‘장애예술계’에 명함을 내밀고 싶습니다. 어쨌든, 저는 발달장애인이면서 동시에 작가이면서 아울러 사진가이기도 하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저는 발달장애인이라는 기본 특성을 바탕으로 생성된 직장인이라는 ‘본캐’에 발달장애계 활동가라는 ‘부캐 1’ 말고도 작가라는 ‘부캐 2’, 사진작가라는 ‘부캐 3’을 동시에 운영하고 싶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