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256〉
■ 세한도 歲寒圖 (고재종, 1957~)
날로 기우듬해가는 마을회관 옆,
청솔 한 그루 꼿꼿이 서 있다.
한때는 앰프방송 하나로
집집의 새앙쥐까지 깨우던 회관 옆,
그 둥치의 터지고 갈라진 아픔으로
푸른 눈 더욱 못 감는다.
그 회관 들창 거덜내는 댑바람 때마다
청솔은 또 한바탕 노엽게 운다.
거기 술만 취하면 앰프를 켜고
박달재를 울고 넘는 이장과 함께.
생산도 새마을도 다 끊긴 궁벽, 그러나
저기 난장 난 비닐하우스를 일으키다
그 청솔 바라다보는 몇몇들 보아라.
그때마다, 삭바람마저 빗질하여
서러움조차 잘 걸러내어
푸른 숨결을 풀어내는 청솔 보아라
나는 희망의 노예는 아니거니와
까막까치 얼어 죽는 이 아침에도
저 동녘에선 꼭두서니빛 타오른다.
- 2001년 시집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시와 시학사)
*농촌 마을은 요즘, 사람도 많지 않을뿐더러 60세 이하의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면 단위 이하 농촌에는 대다수가 7,80대 이상의 노인들로 구성되어 있어, 1년 내내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고 마을 자체가 쓸쓸하고 쇠락한 느낌을 풍기는 실정이라 20년 이내 사라지는 마을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처럼 추운 겨울날 푸른색 대신 잿빛의 옷으로 갈아입은 시골 동네는, 더욱더 황량하고 쓸쓸한 모습으로 비치는 듯하군요.
이 詩는 이렇게 피폐한 농촌의 현실이지만 앞으로의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힘찬 어조로 노래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제목을 그 유명한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라고 붙인 것에 대해 어떤 연관이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군요. 아마도 이 詩에서의 ‘청솔 한 그루’를 추사의 <세한도> 속 노송과 빗대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건, 그림 속의 늙은 소나무처럼 청솔은, 오랜 기간 마을회관 옆에 서서 온갖 시련을 견디며 마을 사람들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해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농촌에 토대를 두고 농촌 詩를 즐겨 쓰는 고재종 시인은 이처럼, 농촌 마을에 꿋꿋이 서 있는 오래된 청솔을 보며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청솔이 <세한도>처럼 가난하고 힘든 현실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견디어 내듯 농촌도 이전처럼 활기를 되찾게 되기를 말이죠.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