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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 한민족 청소년 문학 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박은숙
땔볕 / 송수권
콩꽃이 일어야 풍년이라는데, 콩꽃은 일지 않고 밭일하던 시어머니 콩잎대신 건낸 가시덤풀......, 송수권 시인의 땡볕에서 김치 아리랑은 시작됩니다. 어렵던 시절 콩꽃 활짝 핀 논두렁에서 새살대던 숱한 이야기는 잊혀져 가지만 콩잎으로 주린 배를 채우던 시절은 세월이 지나도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어느 시인 말하기를 미망迷妄을 빠져나온 여인의 옷자락 같은 콩잎으로 아리랑 고개를 넘어갑니다. 총각무 동치미 김종제 총각무 같은 젊은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생각해 보니 그 누구라도 밭에서 막 뽑아낸 덜 익은 저 총각무처럼 生이 방자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혈기가 넘쳐흘러서 한 입 깨물어 먹을라치면 입안이 맵고 코끝을 가시로 찌르는 듯한 동치미 같은 그런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한 겨울에도 땀 뻘뻘 흘리고 녹초가 되었을 때라도 한 그릇 총각무 동치미에 죽었던 힘이 불끈 솟아난 적이 있지 않았던가 살다보면 저 총각무처럼 생을 일찌감치 뽑아내서 매운 맛을 보여주고 싶었던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총각무의 매근한 몸에도 못이 박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움이 못내 사무칠 때 하마 박힐 못자리 내 안에 숨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서산 황토와 갯바람 실어 올려 총각무의 알싸한 그 맛 찰진 고구마 한 알에 얹어 정겨운 이웃과 마주하고 싶습니다. 열무김치가 슬프다 짓무르는 열무잎도 내 속만은 못한......, 우리도 한 번은 묶여있는 열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한 번은 풀어져 다시 엉기는 열무였으면 좋겠습니다.
동치미
심우도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날에는 뼛속깊이 시원해지고 환해지는 겨울 동치미를 마시자
한입 베어 물면 가슴속 저 바닥의 찌꺼기까지 활활 불태우는 겨울 동치미 고추를 먹자
눈송이 눈송이 잦아드는 동치미 속 어려비치는 얼굴
사각사각 살얼음 속 무 살 베어 무는 발소리, 들려오는 날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날에는 겨울 동치미가 되자 동치미 되어, 그리운 얼굴들 되돌려주는 동치미 거울이 되자. 동치미를 보면 어린 시절의 긴 겨울 밤이 생각납니다. 네 형제 한 이불 속에서 발을 넣고 도란도란, 토닥토닥 이야기하며 얼음 '사각사각'한 동치미에 군고구마 먹던 시절......, 돌이키면 벌써 눈시울이 젖어듭니다. 어머니 내 오시던 그 동치미에 동짓밤 깊은 줄 모르던 시절 그 어머니도 막내 동생도 동치미 맛을 기억할는지 그 어느 하늘가에서 ......, '김치' 하면 웃음 가득한 미소가 쏟아져 나올 것 같지만 사실은 알싸한 마음이 먼저 치밀고 올라 옵니다. 맛에 담긴 추억이 김치 안에는 담겨있습니다. 밤 늦도록 공부하던 날이면 총각무 김치에 김올린 시루떡을 내오시던 외할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떠오릅니다. 단단한 속살에 담긴 그윽한 정이 겨자 맛처럼 콧등을 저미는......, 깍두기 ......, 윤오녕의 깍두기설을 올립니다. 깍두기 說
수필가 윤 오 영 C君은 가끔 글을 써 가지고 와서 보이기도 하고, 나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나도 그를 만나면 글 이야기도 하고 잡담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다.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깍두기를 좋아한다고, 한 그릇을 다 먹고 더 달래서 먹는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깍두기를 화제로 이야기를 했다. 깍두기는 이조 정종(正宗)때 영명위(永明慰) 홍 현주(洪顯周)의 부인이 창안해 낸 음식이라고 한다. 궁중에 경사가 있어서 종친(宗親)의 회식이 있었는데, 각궁(各宮)에서 솜씨를 다투어 一品料理를 한 그릇씩 만들어 올리기로 했다. 이 때 永明慰 부인이 만들어 올린 것이 누구도 처음 구경하는 이 소박한 음식이다. 먹어 보니 얼근하고 싱싱한 맛이 일품이다. 그래서 위에서 「그 희한한 음식, 이름이 무엇이냐」고 하문하시자「이름이 없습니다. 평소에 우연히 무를 깍둑 깍둑 썰어서 버무려 봤더니, 맛이 그럴 듯하기에 이번에 정성껏 만들어 맛보시도록 올리는 것입니다」「그러면 깍둑이구나」하고 크게 찬양을 받고, 그 후 오첩 반상의 한 자리를 차지해서 상에 오르게 된 것이 그 由來라고 한다. 그 부인이야말로 아마 다른 부인들은 산진해미 희귀하고 값진 재료를 구하기에 애쓰고 주방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무·파·마늘은 거들떠보지도 아니했을 것이다. 갖은 양념 갖은 고명을 쓰기에 애쓰고, 소금·고추가루는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료는 가까운 데 있고 허름한데 있었다. 옛날 음식 본을 뜨고 혹은 중국사관(中國使 )이나 왜관(倭 ) 음식을 곁들여 규격을 맞추고 법도 있는 음식을 만들기에 애썼으나 하나도 새로운 것은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官中에 울릴 음식을 그런 막되기 썰은 규범에 없는 음식을 만들려 들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무를 썰면 곱게 채를 치거나 나박김치본으로 납작 납작 예쁘게 썰거나 장아찌본으로 걀쭉걀쭉하게 썰지, 그렇게 꺽둑 꺽둑 썰 수는 없다. 기름·깨소금·후추가루식으로 고추 가루도 적당히 치는 것이지 그렇게 시뻘겋게 막 버무리는 것을 보면 질색을 했을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깍두기는 무법이요 창의적인 대담한 파격이다. 그러나 한국 음식에 익숙한 솜씨가 아니면 이 대담한 새 음식은 탄생될 수 없다. 실상은 모든 솜씨가 융합돼 있는 것이다. 이른바 무법중의 유법이다. 무를 꺽둑 꺽둑 막 써는 것은 곰국 건지 썰던 솜씨요, 발효시켜서 익혀 먹도록 한 것은 김치 담그던 솜씨가 아니겠는가, 다 재래에 있어 온 요법이다. 요는 이것이 따로 따로 나지 않고 완전동화 되어 충분히 익어야 하고 싱싱하고 얼근한 맛이 구미를 돋구도록 염담을 잘 맞추어야 한다. 음식의 염담이란 맛의 생명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인의 구미에 상하 귀천 없이 기호에 맞은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격식 이 문제 아니요 유래가 문제 아니다.이름이야 무엇이라 해도 좋다. 신선로(神仙爐)니 탕평채(蕩平菜)니 두견화다(杜鵑花茶)니 가증스럽게 귀한 이름이 필요 없다. 깍두기면 그만이다. 깍두기가 반상(정식) 오첩에 올라 魚·肉과 어깨를 나란히 하되 오히려 中央에 놓이게 된 것이요, 위로는 官中士大未家로부터 일반 빈사(貧士) 서민(庶民)에 이르기까지 애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C君은 영리한 사람이다. 「先生님, 지금 깍두기를 빌어 隨筆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지요. 수필의 소재는 우리 생호라 주변에 있고 다시 평범한 데 있는 것이요 신기하고 어려운 데 구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습니다.」「그러나, 무가 싱싱하고 단 무라야 깍두기 맛이 나지 썩은 무나 시든 무야 되겠나」「그것은 글의 품위에 관계되겠지요, 청신하고 진실한 것으로 깊이를 찾을 수 있는 것이라야 되겠지요」「이름이야, 小品이라고 하든 에세이 라고 하든 잡문이라고 하든 상관할 바 아니지요, 나는 내 글을 쓰는 것이니까요. 어느 이름에 구애될 필요는 없지요. 어느 형식이나 유파에 따를 필요도 없지요. 오직 파격이 필요하지요. 램의 수필이. 어디까지나 환상的이요, 정서的인가 하면 노신(魯迅)의 수필은 정열적이지요. 혁명적이었고, 주자청(朱自淸)의 수필이 서정적이요 미문적이었다 하면 프루스트의 수필은 사색적이요 내심적이었거니와 그들의 수필을 기준으로 할 아무 필요 도 없으니까요. 서구적인 저널리즘이 칼럼니스트들을 수필 문학가라 하고 한편에서는 서투른 작문을 수필 명작이라고 떠드는 것을 추종할 필요도 없지요. 그러나 남들이 내 글도 수필이라고 불러 준다면 그런대로 받아들여 족하고요. 다만 읽어서 싱싱하고 얼근한 깍두기 맛만 낸다면 소설·시와 같은 문학들과 함께 오첩 반상에, 오히려 중앙을 차지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 말씀하시던 중 무를 숭덩 숭덩 썬 것이 무법인 듯하되 곰국 건지 썰던 법이요 云云하시던 말씀인데 수필에서 그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자네가 내 말을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니까 좀 무서우이마는 수필에 정서가 흐르는 것은 서정시에서 빌어온 법이요 수필에서 서술이 긴박하고 빈틈 없이 나가는 것은 단편 소설에서 빌어온 법일세. 설리는 평론의 수법에서, 묘사는 배경 소설의 수법에서, 문장의 탁의는 시의 메타포에서 확충된 것이요, 문맥의 정연함은 논설문의 수법에서, 독자에게 친절감을 잃지 않는 것은 서명한 서간문의 수법에서, 사색적이요 반성적인 것은 저명한 일기문의 수법에서, 문장의 활기있는 긴장(緊張)은 희곡(戱曲)의 수법에서, 문단과 문단이 갈릴 때마다 청신(淸新)한 전환(轉換)은 시나리오의 씬을 바꾸는 솜씨에서 자유자재로 섭취 활용해 가며 자기의 독특한 문체와 참신한 문태(文態)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드러나거나 의식적인 기교에 지나치거나 익지 아니한 날내가 나면 그 글은 원숙한 글이 아닐 것일세」 「음식의 맛의 생명은 염담 맞추기에 있다고 하셨는데 문장에서 염담이란 무엇에 해당됩니까?」 「문장의 농담(濃淡)이지. 문장의 농담(濃淡)이 없으면 정물화(靜物畵)에 음영(陰影) 없는 것과 같고, 음악에 박자 없는 것과 같지. 문장은 이 농담에 의해서 含蓄도 있고 餘韻도 있고 奇幻도 있고 내재적인 리듬도 있어 비로소 시취(詩趣)를 갖게 되는 것일세. 고인이 농담(濃淡)없는 문장을 가리켜 몰골도(沒骨圖)라고 풍자한 이가 있어. 우리 모양으로 문장이 미숙하고, 또 배워 보려는 사람들은 이 깍두기에서 얻는 바가 있을 것일세.」 日後의 참고 삼아 이 날의 문답을 적어 둔다. 윤오녕 선생님의 수필에 담긴 이야기, 다시 한 번 가슴에 가로 세겨 봅니다. 민들레 뽑힐 수록 밟힐 수록 강인해지는 민들레
차마 꺾고 돌아 보면 하얀 고름 사이로 새 살 돋는다.
나도 꺾여야 사는 가, 민들레처럼......, 자야!! 네가 담근 파김치가 새큰하다.
설익은 파김치처럼 아릿하고 매콤하던 풋내 지천명에 이르니 잘 익은 파김치처럼 나긋하고 숨이 죽어 내 맛을 익혀간다. 곰삭은 파김치처럼 노을 빛 고운 날 달마중가자.
조선 영조 4년(1728년) 김천택 / 청구영언
겨울날 따스한 햇볕을 임계신데 비추고자 봄 미나리 살진 맛을 임에게 드리고자 임이야 무엇이 없으랴마는 못 다 드리어 안타까워하노라. 조선 초기에는 배추가 널리 보급되기 이전으로 배추 대신 무를 비롯한 각종 야채로 김치를 담갔습니다. 세종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제사 때 미나리 김치를 두 번째로 진열해야 한다, 한양과 개성에서는 집집마다 작은 연못에 미나리를 심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미나리가 가장 맛있는 줄 알고 임금님께 바쳤다는 이야기는 흔한 채소였음에도 이를 소중히 여긴 농부가 진상을 한 이 고사로 인해 미나리는 충성을 표상하게 되었습니다. 미나리를 뜯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 선조들은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인재로 커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미나리를 심었다고 하네요. 우리집 마당 한 켠에도 미나리를 심어 볼까요? 아들 녀석 부담주는 일은 않겠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들의 삶을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자신도 본받겠다기 보다 마음에 짐이 되는 모양입니다. 素饌(소찬)
얼가리 김치는 통배추보다 역사가 깊습니다. 지금이야 별미처럼 겉절이로 담아 먹지만 통배추가 일반화 되기 전에는 그 자리를 채우던 김치입니다. 대타가 홈런을 치는 경우 비일비재합니다. 결국은 적임자 외에 대타란 없다는 말입니다. 인삼 맛이 나는 우엉 김치, 앙증맞도록 예쁜 우엉 꽃이 생각납니다. 민둥머리 꼭대기에 보랏빛 꽃의 작은 당당함을 좋아합니다. 김치 50종을 준비하는 이정희 조리 기능장의 집은 햐!!! 김치 전쟁터였습니다. 빨래줄이 없는 밴쿠버에 '꾸둑꾸둑' 새파랗게 배춧잎을 식탁과 식탁 사이에 줄을 매어 널어 놓았습니다. 뭐에 쓰는 건지 묻지도 못했습니다. 알아도 감이 안오기 때문입니다. 새파랗게 말린 우거지와 무말랭이를 가지고 김치를 만들 줄 생각치 못했습니다. 제 머리로는 무 말랭이 따로, 우거지 따로만 알지 섞어 놓을 줄 모릅니다. 섞여서 조화를 이루는 것 아름다운 삶입니다.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 삶의 참 맛입니다. 무말랭이 김치 2는 고춧잎을 말려서 함께 버무립니다. 고춧잎은 비타민 C의 함량이 고추보다 70배나 넘는다네요. 마당 한 켠 고추 몇 포기만 심으면 고추꽃도 보고, 풋고추도 따서 된장찍어 상추쌈에 ^^ 햐, 침이 고입니다. 내 수고없이 고인 침 삼킬 수 있을까요? ^^ 돌나물 물김치......, 요건 우리 마당에서 땄습니다. 마당 한 켠 조금 차지하더니 이제 점령을 하고 말았습니다. 노란 꽃 웃음 필 때면 까짓 작은 꽃밭쯤 점령해도 눈감아 주겠습니다. 노란 별 꽃 활짝 피면 밤하늘의 별도 시샘을 합니다. 콩나물에 묻다 이용채
무엇에 놀란 삶이기에 저토록 노랗게 질린 얼굴일까
얼마나 생각이 많은 삶이기에 저토록 무거운 머리를 이고 있을까
온몸이 뿌리가 되어버리고도 어떤 무게를 견딜 수 없어 저토록 힘든 모습일까
얼마나 지독한 사랑을 앓았기에 저토록 허연 뱃속까지 드러나 있는 것일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토록 일생을 고개를 떨구고 들지 못하는 것일까. 햐 !! 콩나물 김치에 곁들인 시가 너무 무겁습니다. 콩나물에 대한 예의
복효근 콩나물을 다듬는답시고 아무래도 나는 뿌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무슨 알량한 휴머니즘이냐고 누가 핀잔한대도 콩나물도 근본은 있어야지 않느냐 그 위를 향한 발돋움의 흔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하지는 못하겠다 아무래도 나는 콩나물 대가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죄 없는 콩알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물 먹인 죄도 죄려니와 너와 나 감당 못할 결핍과 슬픔과 욕망으로 부풀은 대가리 쥐뜯으며 캄캄하게 울어본 날들이 있잖느냐 무슨 넝마 같은 낭만이냐 하겠지만 넝마에게도 예의는 차리겠다 그래, 나는 콩나물에게 해탈을 돕는 마음으로 겨우 콩나물의 모자나 벗겨주는 것이다. 밤새 객기로 마신 술 한 잔 풀어 줄 콩나물같은 마음 한 번 가져 봐도 좋겠습니다. 뜨거울 땐 국이 되지만 식히면 김치가 되는......, 햇빛 한 응큼 받지 않고도 가슴 속의 불을 잠재우는 콩나물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지름길 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어릴 때 꿈은 호박꽃이 되고 싶었답니다. 못생긴 여자를 가르켜 호박이라 했지요. 하지만 어릴 때 나의 눈과 마주친 호박꽃은 나의 가슴이 되었습니다. 못생겨도 좋고 에뻐도 좋지만 나는 가슴이 예쁜 사람을 좋아합니다. 나는 가슴이 ? 예뻐지고 있습니다. ^^ 수삼을 곁들인 물김치의 상큼함으로 유리알같은 아침 식탁을 차리고 싶습니다. 햇살 머금은 대추 한 알, 아직 마르지 않은 수삼 한 뿌리에다 동동 띄운 잣향이 향기로운 식탁에 사랑 한 점 얹어서......, 시 밥 / 눈물로 지은 밥: 시 (詩) / 젯밥
박은숙
어머니 나를 앞세우고 진달래 꽃서럽게 핀 공원묘지로 올라갔었지요.
진달래꽃이 예쁘구나! 내 자식 이쁜 줄만 알았더니 하늘빛은 어찌 저리 고우냐.
조기반찬 내게 발라주고 신 김치국물에 꾹꾹 말아 드시며 개운키로 이보담 없다고 하셨지요.
생에 마지막 본 어머니의 봄날은 이십 년 지천으로 꽃을 피우는데 나의 눈물꽃은 아직 마르질 않습니다.
신 김치 종재기에 하늘 빛, 수저 한 벌에 진달래꽃 빛 담아 눈 밑에 핀 시 밥 한 그릇 올립니다. 나박 김치를 보면 유난히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달마다 제사가 있었지요. 남는 것은 시어 빠진 나박 김치 그 국물에 찬 밥을 말아 드시던 어머니 생각에 나박김치를 담가 본지 오랩니다. 내년 어머니의 기일에는 시지 않은 나박 김치 한 보시기 담아 올려야 겠습니다. 설날 떡국과 함께 오르던 장김치 이순신 밥상에 오르던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순신이 장국밥과 멸치젓, 장김치, 어육각색각랍(소의 양과 간 같은 내장과 생선으로 만든 전)을 즐겨 먹었다고 추정합니다. 장김치는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춘 풀빛 맑은 물김치입니다. 잠 못 자는 깻잎
초등 6 백아르미 / 1999년
강 건너 비닐 하우스에 켜진 불 멀리서 보면 참 예쁘다. 하지만 저 불은 들깻잎을 못 자게 깨우는 것. 나는 이제 잘라 하는데 저거들은 얼마나 힘들겠노. 인간도 저렇게 당해 봐야 식물의 아픔을 알 거다. 초등학생이 쓴 깻잎에 관한 시입니다. 지금쯤 자라서 시인이 되어 있을까요? 깻잎만큼 쓰임이 많은 채소도 드뭅니다. 그 알싸하고 고소한 맛으로 싸매어 김치를 만드네요. 누군가의 상처도 동여맬 수 있는 깻잎김치, 까칠한 것이 더 부드러울 때가 있습니다......, 무에 생선 빗살 넣어 만든 비늘김치는 궁중의 김치입니다. 한 잎 베어 물면 아삭한 무의 상큼함이 그대로 가슴까지 전해집니다.^^ 대접하는 손길이깊이 새겨진 비늘 김치를 먹으면 나도 남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 이전에 비늘이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칼끝에 베인 상처 있거든 그 상처에 아리도록 붉은 고추빛 사랑 담아 맛보이고 싶습니다. 돌산 갓김치의 아릿하고 '톡' 쏘는 그 맛, 익을 수록 감칠맛이 도는 게 묵은 장맛같은 할머니의 예정이 되살아나는 김치입니다. 밴쿠버에도 한국인 농장이 있어서 한국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고향의 맛입니다. 떨어질 수록 가까와지는 것 한국인의 정입니다. 그 정이 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알싸한 갓김치의 맛에 두 눈 찡끗 감아 두고온 정 길어 올립니다. 유채꽃을 보면서
김승기
여린 몸 나무도 아닌 것이 늘 푸른 넓은 잎으로 겨울을 견뎌내느라 얼마나 몸과 마음이 아팠을까 진노랑빛 진한 향기로 벌 나비 부르는 몸짓 눈물 난다 아픔이 지나간 뒤 오는 기쁨은 오히려 눈물이 난다는데, 눈부신 햇살 맑은 바람으로도 가릴 수 없는 환한 웃음 뒤에 배어 있는 슬픈 상처 자국 행복한 외로움으로 겨울의 강을 건너온 개선의 훈장인가 눈물나는 웃음 무엇이 그런 웃음을 웃게 하는가 내가 삶의 강을 건너고 나면 어떤 웃음을 웃을까 빙그레 웃고 있는 너를 보면서 그윽한 향기는 없더라도 그저 환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하는 살아가는 법을 생각한다 끝없이 펼춰진 유채꽃 노란 벌판을 바라 본 적이 있습니다. 꽃무덤처럼 슬프디 슬픈 그 벌판, 죽음이 그리 아름답다면 누워도 좋겠습니다. 아름다움이 격하면 죽음을 떠올립니다. 유채꽃 새살거리는 노란 들판 숨죽인 유채 김치를 보며 물말은 밥 한 그릇에 눈물 한 방울 섞입니다. 예뻐지고 싶은 분은 동아김치를 드세요. 덤으로 예쁜 마음도 얹어 드립니다.^^ 사찰에서 주로 담가 먹는 근대 김치, 어찌보면 우리 고유의 음식은 사찰 음식과 밀접한 관계가 많습니다. 자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담백한 사찰음식의 향취는 오랫동안 여운이 남아 마음의 청정을 유지시켜 줍니다. 산사의 상차림에도 법도가 있습니다. ‘청정’‘유연’‘여법' 청정함은 인공 조미료나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은 청정한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연함은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짜고 맵지 않아야 합니다. 여법은 양념을 하더라도 단맛, 짠맛, 신맛, 장류 순으로 절대 과하지 않게 적당하게 넣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상추는 생채도 좋지만 김치를 담아도 좋겠습니다.^^ 이유없이 찾아오는 손님, 갱년기 우울증 싸~악^^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보면, ‘상추는 가슴에 뭉쳐진 화를 풀어주며 막힌 경락을 뚫어 준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상추에 대해서는 얽힌 이야기가 많습니다. 삼국시대부터 먹어온 상추는 천금채(千金彩)라고 불렸는데, 전통 비아그라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상추는 텃밭 가장자리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조금씩 갈아 먹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 눈에 띌 만큼 많이 갈면 그 집 마님의 음욕을 그로써 가늠했기로 숨겨서 길렀고 숨어서 자라야 할 숙명 때문에 은군초(?君草)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답니다. 고추밭 이랑 틈에 가꾼 상추는 서방님 밥상에만 올렸습니다. 고추와 유감시켜 비아그라 효과가 강해질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랍니다.^^
고구마 김종제
일천구백 육십 년 슬그머니 어머니가 내놓은 찐 고구마 먹는 날은 저녁밥이 없었다 팍 시어버린 초승달 같은 김치 한 종지가 전부였다 울퉁불퉁 고구마 싫어하는 나는 먹기도 전에 먼저 목이 메어왔다 짐짓 모르는 척 물 한 그릇 건네준 어머니, 슬픔에 체하지 말아라 하셨다 제일 작은 걸로 골라먹은 나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내 몫의 나머지를 흙 속에 파묻었다 고구마 먹은 나무와 꽃들은 어쩜 그리 잘도 자라는지 내 머리 위에 훌쩍 올라섰고 창백한 가을처럼 나는 자꾸 쓰러졌다 그때 어머니가 건네준 고구마가 내게 약봉지 같은 것인 줄 몰랐다 일부러 밥 건너뛰고 한 개만 먹어도 속이 든든한 고구마 주신 이유를 이제 알았다 삶은 고구마 껍질째 한 입 베어 물고 젓가락으로 김치 집어든 어머니 너도 어여 먹어봐라 하며 오늘도 씨알 굵은 놈 하나 던져주시니 고구마 같은 눈물이 뚝 떨어졌다 우리의 정서는 고구마에도 흐느낌이 흥건합니다. 고구마에 대한 향수는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만큼 친근한 먹거리입니다. 요즈음은 고구마 다이어트가 한창이지만 어릴 적 동네 어귀에서 파는 군고구마 맛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구마로 담근 김치 그 향수를 더해줍니다.^^ 고구마를 캐는 사람과 만나다 이준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삶이라는 것도 저렇게 고구마처럼 땅에 묻혀 있는 것이다.
땅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손으로 그는 고구마를 캔다. 자신의 삶을 캔다. 토막날까 조심하면서.
어느새 서쪽 하늘에는 그가 캔 황톳빛 빨간 고구마, 저녁놀 뜨고, 아이가 하나 그 고구마 베어먹으며 길에 서 있고,
그는 흙이 다 된 맨발을 서쪽 하늘에 저벅저벅 남기고 간다.
겨자 깍두기는 생소한 깍두기인데 새콤 달콤하면서도 톡쏘는 향이 특이합니다. 사랑에 쏘이면 그 맛이 아닐까? 곰곰 생각해 봅니다. 사랑에 쏘이고 싶은 분 오늘 한 번 시도해 봐도 좋겠습니다.^^ 굴의 풍부한 영양과 무의 개운함이 버무려져 아삭아삭하고 시원한 맛이 압 안 가득 행복이 느껴집니다. 맛있는 굴깍두기 담고 싶은 분 모두 모이세요. 이정희 조리 기능장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 저는 깍두기입니다. 이 편도 되고 저 편도 되고 이 편도 저 편도 아닌 ^&^ 어릴 적 고무줄 놀이할 때 늘 깍두기였습니다. 왕조의 수라상으로부터 농어촌의 밥상에 이르기까지, 빈부와 지역을 막론하고 널리 즐기는 깍두기. 흔히 한국인의 기질에 비유되는 끼[氣] 있는 맛, 단단함과 싹싹한 맛, 그러면서도 은근한 탄력을 지닌 맛이 이 깍두기 속에 있습니다. 새콤달콤하면서도 진한 매운 맛이 복합된 깍두기 본래의 특수 맛 때문에, '깍두기 빠진 식탁'은 '마음 없는 상차림'이라 할 정도로 깍두기는 한국인의 가슴 속에 깊이 자리한 김치류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장국으로 콩나물국을 먹는 것처럼 서양에서는 술 마신 후 쓰린 속을 풀 때 양배추 피클을 먹습니다. 서양에서는 양배추를 가난한 사람들의 의사란 칭송을 듣기도 하지요. 양배추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에도좋지민 유방암 발병 억제, 골다공증 예방, 피부노화방지 효과등 양배추 주스는 위궤양 치료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야채입니다. 가난한 식탁에서 넘치는 행복 건강입니다.^^ "봄 부추는 인삼.녹용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민간에선 '오색.오덕'을 두루 갖춘 채소로 칩니다. . 흰 줄기.노란 싹.파란 잎.붉은 뿌리.검은 씨 등 오방색을 가졌다고 해서 오색(五色) 채소라고 해요. 또 날로 먹고 데쳐 먹고 절여 먹고 오래 두고 먹고 매운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오덕(五德) 채소입니다. 이 채소의 정력 증진 효과는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는데요, "부추 씻은 첫 물은 아들 안 주고 신랑만 준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불교.도교에선 음심(淫心)을 발동시켜 수행을 방해하는 오신채의 하나로 꼽습니다. 오늘 내친 김에 마당에 심어 놓은 부추 몇 자락 베어내어 부추 김치를 담아 볼까요? ^^ 봄 부추가 아니니 아들 먼저 줘도 되겠습니까? '톡' 쏘는 짜릿한 맛 하면 순무김치입니다.^^ 한국에서는 강화 순무가 유명하지요. 밴쿠버에도 순무가 있습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봄에는 새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을 먹으며 가을에는 줄기를 먹으며 겨울에는 뿌리를 먹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오장을 이롭게 하고 몸이 가벼워지며 기를 높여주는 순무김치 버무릴 날을 또 꼽아 기다려야 겠습니다. 김치 아리랑, 이제 오이소박이까지 넘어 왔습니다. ^^ 로마 황제의 건강 음식으로 알려진 오이는 무더위로 지친 여름철 몸에 수분을 공급해주고 체내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내 나른한 몸을 개운하고 맑게 해 주는 것은 물론 비타민 C의 함유량이 높아 피부미용에까지 효과적이죠. 늙어도 오이는 그 맛을 더합니다. 노각의 맛 기억하시죠? 늙어도 그 맛을 잃지 않는 맛있는 노인이 되고 싶습니다. 사계절 식탁에서 떨어지지 않는 오이에 대해 재미있는 글을 쓴 음식문화 평론가 윤덕노씨의 글을 일부 발취, 옮겨 적습니다. 동서양 모두 생식과 다산의 상징 생식과 다산의 상징으로 삼았다. 표현 방법만 다를 뿐 동양과 서양의 인식이 거의 일치한다.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먹었던 오이, 수박, 부추, 양파, 마늘을 그리워하는 장면이 민수기 제11장 5절에 보인다. 모두 정력에 좋다고 알려진 작물인데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에게 먹였다. 촉진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나온다. 과학적 검증 여부를 떠나서 옛날 서양에서는 오이가 생식에 좋다고 믿었던 것이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오이는 생식과 다산을 상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처녀가 오이를 먹고 아이를 낳았다는 기록이 자주 보인다. 풍수지리설의 대가인 고려 초의 도선국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신라에 최 씨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마당에 큰 오이가 열렸다. 그 집 딸이 몰래 오이를 따먹더니 임신을 해 아들을 낳았다. 부모가 아비 없는 아이라며 숲에 버렸는데 딸이 몰래 숲에 가보니 비둘기가 날개로 아이를 덮어서 키우고 있었다. 이를 보고 아이를 다시 데려왔고 그가 자라서 승려가 됐는데 바로 도선국사다. 세종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을 세운 최응(崔凝)으로 고려사에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최응을 임신했을 때 집에서 키우던 오이 줄기에 갑자기 참외가 열렸다. 이상하게 여긴 이웃이 궁예에게 이를 고발하니 불길하다며 아이를 낳으면 버리라고 했다. 하지만 최응의 부모가 아이를 몰래 키웠는데 나중에 장성해서 대학자가 되어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웠다.
남아있다. “과년한 딸이 있다”는 말을 한다. 한자로 보면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과년(過年)은 나이가 들어 혼기를 놓쳤다는 뜻이다. 반면 과년(瓜年)이라고 하면 결혼 적령기의 여자라는 의미다. 적령기라는 뜻이 되었을까. ‘과’라는 한자의 가운데를 잘라서 둘로 나누면 팔(八)과 팔(八)이 된다. 이 둘을 더하면 열여섯이 되는데 여자 나이 열여섯 살인 과년은 옛날에는 결혼할 나이였기 때문에 결혼 적령기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시집보낼 나이의 딸을 둔 부모가 과년한 딸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는 실없는 사람이 만들어낸 말장난 같지만 송나라 때 시인 육유(陸游)를 비롯해 고문헌에 많이 나오는 단어다. 하는데 여자가 생리를 시작하는 때라는 뜻이다. 초경이 빨라진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열여섯 무렵에 생리를 했으니 곧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으로, 바꿔 말하자면 어른이 됐다는 뜻이다. 있다. 이처럼 오이는 이래저래 정력, 생식, 다산과 연결된다. 고추밭 안도현
어머니의 고추밭에 나가면 연한 손에 매운 물든다 저리 가 있거라 나는 비탈진 황토밭 근방에서 맴맴 고추잠자리였다 어머니 어깨 위에 내리는 글썽거리는 햇살이었다 아들 넷만 나란히 보기 좋게 키워내셨으니 짓무른 벌레 먹은 구멍 뚫린 고추보고 누가 도현네 올 고추 농사 잘 안 되었네요 해도 가을에 가봐야 알지요 하시는 우리 어머니를 위하여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고추 김치의 아삭아삭하고 상큼한 맛에 반해 버렸습니다. 요즈음 많이 나오는 오이고추에 속살을 넣은 이 김치의 매력은 풋풋하고 상큼한 5월의 푸르름을 입안 가득 머금게 합니다. 고추 김치 한 보시기에 울 아버지 좋아 하시는 소주 한 병 챙겨 들고 서울 나들이 가고 싶어집니다.
배추밭에서 이해인
죽을 때까지 들키고 싶지 않은 속 이야기도 배추밭에선 다 쏟아놓게 되네
싱싱함 냉정함 거룩함
표정도 다양한 겨울 배추들
나에게 손 내밀며 삶은 희망이라고 묻지도 않는데 자꾸만 이야기하네 함께 누워 하늘을 보자 하네
죽어서 행복한 월동 준비도 서두르자 하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김치가 배추 김치 입니다. 가을철에 수확된 배추와 무를 주재료로 하여, 여러 가지 향신 채소류, 조미제, 젓갈 또는 어육류를 배합해 추운 계절을 거치는 동안 온전히 숙성 발효시킵니다. 김장김치의 저장은 한국의 식문화를 세계에 자랑할 빛나는 지혜며 훌륭한 과학입니다.
매화김치는 북쪽지방에서 먹던 김치입니다. 임금님 수라상에 어울리는 김치처럼 느껴집니다. 가을 무와 당근을 이용해서 새콤달콤 시원한 맛을 내는 매화김치로 식탁에 꽃보다 향기로운 정성을 올려봐도 좋겠습니다.
우리 나라 가정에서 담가 먹는 김치류는 무려 300여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김치가 단일 제품으로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자랑거리입니다. 오래 전부터 서양에서 발달되어 온 우유제품이 150여종이라고 하니 우유제품에 결코 뒤지지 않지요. 아직까지 포기김치를 선호하여 가장 보편적이고 실용적인 배추 버무리 김치는 사실 김치찌게용으로 주로 담습니다. 배추에 대한 경배 반기룔
풀어헤친 너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지난 삶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하는 것 같구나
컴컴한 땅에 뿌리박고 온갖 풍상 겪고 난 든든한 몸통으로 꽉 찬 살가운 자태로 살포시 누워있는 모습이 대견스럽구나
먹거리를 위하여 버텨 온 너의 희생이 잃었던 구미를 당기게 하고 없는 살림 짭짜름하게 계획 세우며 살게 하니 참으로 마음이 아름답구나
소금으로 살짝 절이면 왕성했던 기운이 부들부들해지고 갖은 양념으로 속속들이 가득 채우면 포기 김치가 되어 밥상을 풍요롭게 하고 미각을 돋우니 겨우내 즐겁구나
포기배추마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당당히 버틴 푸른 일생이 다소곳하구나 조선후기 고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후 (1590년 전후) 고추를 김치에 처음 사용한 예가 나오는 문헌은 증보산림 경제입니다. 하지만 고추 외에 여전히 다른 양념류가 (생강,마늘,파,천초,부추,청각 등) 많이 쓰였으며, 사용양도 많지 않았습니다. 물김치류에 붉은색을 내기 위해 맨드라미 꽃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백김치에 곁들인 겨자의 톳쏘는 맛 처녀 김치 입니다.^^ 햐!! 벌써 김치 이야기를 마무리 해야 할 시간입니다. 300여종이나 되는 김치의 다양성은 지역 및 계절별로 생산되는 채소원료에 따라 양념의 종류, 배합비율 및 숙성방법이 매우 다양합니다. 또 각 가정마다 전래의 독특한 방법으로 담그기 때문에 솜씨에 따라 각양각색이며 식생활 양상의 변화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김치를 통해서 조상들의 식품 제조기술이 빼어났음을 알 수 있고, 더욱이 각종 야채를 다양하게 혼합하여 색깔이 아름답고, 맛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김치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켜 왔음을 엿 볼 수 있습니다. ................................................. 2012년 한인의 날 축제를 통해 50여 종의 우리의 자랑스러운 김치 전시를 위해 수고하신 이정희 조리 기능장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현지 신문에서는 한 줄 거론하지도 않을 만큼 천시받는 김치가 세계 속의 한국을 알리는 한국의 맛과 멋임을 말하고 싶어 달막거리다 김치 아리랑을 썼습니다. 김치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옆에서 돕느랴 힘들고 곤했지만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음식의 장인인 이정희 조리 기능장을 통해 한국의 자랑스러운 음식 문화가 밴쿠버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으로 뻗어 나갈 날을 고대합니다.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