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와 엉덩이
/이근배
훗날 내가 사람들과 막걸리잔이라도 기울일 한가한 시간이 주어 진다면 옛날 내가 장성군산림조합에 근무하던 시절 이런 헤프닝이 있었나 하면 옆에서 웃어줄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조용히 일기장에 담아놓는다.
77년도 산림청에서 기증한 거라던데 이젠 이것도 노후화되어 털털거리지만 이놈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듯 90cc 짜리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오늘은 황룡면 수산리에 은행잎 수집지도를 하러 갔다. 발발이처럼 끈질기게 자주 쫓아다니면서 은행잎 수집을 어떻게 하느니 요즈음 업자들한테 은행잎을 맡기면 익년도 은행 결실이 불량하다는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돌아오려는데 동네 부녀회장께서 따라 나오면서 "아이고! 비도 오고 그란디 고생하요~ 이거 가지고 가서 직원들이랑 나눠 먹으시오 잉~ "하면서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으려고 다시 고개를 움켜쥐고 돌아갔다.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돌아가는 그분의 뒤에 대고 반사적으로 고맙노라고 했다.
무엇인지 열어보려 했으나 비가 세차게 뿌리는 통에 오토바이 뒤에 대강 메어놓고 되돌아오는데 불빛에 보니 저만 치 앞에 까만 제복을 입은 중학생이 고개를 폭 떨구고 비를 맞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이 측은해 보여 학생 옆에 오토바이를 멈추고 "어디까지 가니?"하고 물었더니 "읍내로 들어갑니다." 해서 "나도 읍내로 가는데 그럼 내가 태워줄까?" 했더니 좋아라 하면서 오토바이에 올라 않았다.
그 학생을 집 가까운데에 내려주고 사무실에 와 비에 젖은 옷을 툭툭 털고 있는데 학교 선배인 K형한테서 전화가 왔다. ''뭐, 좋은 것없냐?" 하는 말에 순간 아주머니가 건네준 봉지가 생각나서 맞있는 것이 있다고 자랑처럼 얘기를 했다.
바로 코앞이 사무실인 그 형이 금방 달려왔다.
나는 여유있는 모습으로 오토바이 세워놓은 곳에 가서 봉지를 풀려다 말고 깜짝 놀랐다. 그건 다른 것이 아닌 잘 익은 홍시였던 것이다. 순간, ''홍시감 - 학생의 엉덩이!" 하는 생각이 먼저 나면서 심정은 답답했다. "어째쓸까" 촉촉한 빈 껍질의 봉지를 들고서 그 학생을 생각했다. 그 학생! 지금은 만날 수 없다. 내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날 원망하고 있을까. 틀림없이 한 벌 밖에 없는, 내일도 모레도 입어야 할 교복이었을텐데ᆢ 달려온 선배한테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박장대소하고 웃는다.
하지만 난 마음 한구석이 휑하고, 한쪽은 막힌 듯 울적한 심정이었다. 감을 건네주던 아주머니가 날더러 "총각이 고생한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총각이 벌써부터 겉늙어서 망령이 드는 모양이다.
1981년 12월호 <산림>지 기고/ 장성군산림조합 근무시의 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