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벨라뎃다 성녀 축일입니다.
2014년 이후 세월호에 밀려나 사라져버린 축일처럼 여겨집니다.
1844년부터 1879년까지 35세의 삶을 사셨던 벨라뎃다 성녀.
루르드에서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번의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고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했던 분입니다.
세상은 기도와 보속이, 회개가 필요하며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오늘 세월호 7주기입니다.
세월호가 전복되고 304명의 목숨을 거두는 장면을 전세계로 생중계하던
부끄럽고 가슴아픈 날입니다. 아직도 여전히 왜 세월호가 전복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왜 구조되지 못했는지 밝혀지지않은 진실을 찾고 있지만, 요원하기만 합니다.
그날, 4월 16일의 기억은 또렷합니다.
저마다 그날의 기억이 있습니다.
평형수를 이야기합니다.
평형수는 배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물로 채워져 있어야 하는데
화물적재를 많이 하기위해 이 평형수를 비우고, 대신 그 무게 만큼 화물을 실었으니
배가 방향을 틀 때 무게 중심이 쏠려 전복되었다고 말합니다.
탐욕에 눈이 먼, 돈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은 불나방이 됩니다.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평형수,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 육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부끄러움은 없는지?
다들 숨쉬기 힘든 사월이라고 합니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황무지 싯구 '잔인한 사월'을 기억하던 우리들이
이제는 304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살기에,
그런 이웃을 지켜보며 살아야 하기에 잔인한 사월은 모든이들의 싯구가 되었습니다.
어느 시인은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처럼
탐욕과 이기심으로 눈먼 우리의 눈을 뜨게 하려고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기억은 우리의 몫입니다.
* * *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 신경림
아무도 우리는 너희 맑고 밝은 영혼들이
춥고 어두운 물속에 갇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밤마다 별들이 우릴 찾아와 속삭이지 않느냐
몰랐더냐고 진실로 몰랐더냐고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이토록 허술했다는 걸
우리가 만들어온 세상이 이렇게 바르지 못했다는 걸
우리가 꿈꾸어온 세상이 이토록 거짓으로 차 있었다는 걸
밤마다 바람이 창문을 찾아와 말하지 않더냐
슬퍼만 하지 말라고
눈물과 통곡도 힘이 되게 하라고
올해도 사월은 다시 오고 아름다운 너희 눈물로 꽃이 핀다
너희 재잘거림을 흉내내어 새들도 지저귄다
아무도 우리는 너희가 우리 곁을 떠나 아주 먼 나라로 갔다고 생각지 않는다
바로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뜨거운 열망으로 비는 것을 어찌 모르랴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보다 알차게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을 보다 바르게
우리가 꿈꾸어갈 세상을 보다 참되게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아름다운 영혼들아
별처럼 우리를 이끌어 줄 참된 친구들아
추위와 통곡을 이겨내고 다시 꽃이 피게 한
이 땅의 큰 사랑아
* * *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요한6,5)
예수님께서 필립보에게 묻습니다.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공관복음은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6,37)
예수님은 적어도 당신 제자들은 똑같이 욕망을 쫓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아픔에 함께 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하십니다.
세상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분노에 대해, 눈물에 대해
당신이 보이셨듯 그렇게 다가서길 바라십니다.
코로나도, 미얀마도, 지구의 눈물도 모두..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프지만, 그래도 함께 바라봐야하고
기도하며 나가도록 우리가 당신 앞에 모여있으며,
다시 삶의 자리로 파견됨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성모님을 뵈었던 벨라뎃다 성녀께 전구를 청합니다.
성모님께도 전구를 청합니다.
세월호로 잠든 영혼들과 아직 떠나보내지 못하고 진실을 밝히려 애쓰는 가족들과
그날 이후 부터 여때껏 마음을 담으며 봉사해주신 분들을 기억해 주시길...
세상의 아픔을 함께 기억합니다.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