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3. 큐티
여호수아 2:8 ~ 14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관찰 :
1) 라합이 주는 정보와 신앙고백
- 8절.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 라합은 두 명의 정탐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추격자들을 완전히 따돌린 그녀는 지붕에 올라가 자신이 숨긴 정탐꾼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게 됩니다.
- 9절.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인 라합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 여리고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줄로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라합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여리고와 가나안 땅의 모든 주민들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리고가 강력한 성벽으로 무장했지만, 그것이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여기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놀라운 정보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정탐꾼이 여호수아에게 돌아가서 보고해야 하는 핵심 정보였습니다.
- 10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 여리고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두려움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스라엘로 나오게 하실 때부터의 여정을 여리고 주민과 가나안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여리고 사람들도 두려워하는 요단 동편의 아모리 족속의 두 왕 곧 시혼과 옥을 죽이고 그 모든 이들을 멸절한 사건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여리고의 견고한 성벽도 그들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이들이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 11절.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 여리고 주민이나 가나안 인에게 있어서 모세나 여호수아를 변별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들의 두려움의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라합의 고백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하늘과 땅에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나안 사람들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2) 라합의 요청
- 12절.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 라합은 자신이 자신의 민족을 배반하는 것이 단순히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님을 고백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절감했고 믿었기 때문에 그러한 결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서 그분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다가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라합에게 고백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색이나 언어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길 수 없었고, 그러한 상황에서 라합은 기지를 발휘하여 우선 이들의 생명을 숨겨 보호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추적자들을 따돌린 뒤에 정탐꾼들에게 와서 자신의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라합의 요청은 자신이 정탐꾼들에게 선대했듯이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의 집의 일가친척들을 구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여리고를 무너뜨리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이러한 제안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라합은 이후에 여리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의 집의 일가친척들을 구하기 위해 수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죽고 사는 문제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맹세할 것과 증표를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라합은 기지가 뛰어난 여인이었고, 매우 당찬 여성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 13절.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 라합은 당당합니다. 자신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정탐꾼들의 목숨을 살려내었기에 정탐꾼들에게 마땅한 것을 요구한다고 여긴 것입니다. 수줍어하거나 협박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줄을 믿었기에, 여리고의 모든 신들은 참 신이 아니라는 것을 믿었기에 라합은 이러한 확신있고 강단있는 요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도 이만한 믿음은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 찬 라합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 14절.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 두 명의 정탐꾼은 협박에 못 이겨 이런 약속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라합의 진실함을 본 정탐꾼은 자신들이 들어온 것에 대한 비밀을 누설하지 말 것을 전제로 자신들의 목숨을 건 맹세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리고를 주실 때 인자와 진실로 라합을 대우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라합이 비록 기생의 신분이지만 그 신분을 넘어서는 존재로 극진하게 대우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오히려 라합은 여리고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붙이실 것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 반면에 두 명의 정탐꾼은 라합의 확신에는 못 미치는 믿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라합은 놀라운 정보를 정탐꾼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점령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모세에서 여호수아의 리더십으로 옮겨진 지도력에 불안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나안의 가장 강력한 도성인 여리고를 점령하겠다는 여호수아의 판단은 이스라엘에서 온전히 수용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명의 정탐꾼들이 스파이로 파견되어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도리어 강력한 성벽을 가진 요새 여리고성의 거민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보다 더 열심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철기문명을 가진 히타이트의 후예 가나안 일곱 지파를 멸하게 하시는 일이 진정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정보였습니다.
2) 라합은 분명히 기생이었습니다. 유대 랍비들이 이 사건을 미화하기 위하여 라합을 여관주인으로 해석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 11:31, 약 2:25에서 라합은 분명히 ‘기생’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공동번역에서는 ‘창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기생을 의미하는 ‘조나’라는 히브리어가 ‘간음하다’, ‘매춘하다’라는 단어인 ‘자나’에서 파생한 단어이기에 분명히 라합은 성을 매매하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성이 하고 있는 말을 자세히 보게 되면, 이 여인으로 인하여 자신의 아비와 남녀 형제와 여러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이 성을 매매하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상황은 당시의 창녀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종교적인 이유로 매음을 하던 상황과는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라합 자신이 매우 당차고, 지혜롭고, 두려움을 넘어서는 여인이라는 것을 두 명의 정탐꾼을 숨기고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신과 자신의 아비와 남녀 형제와 일가를 구하고자 간청했습니다. 라합의 이러한 간청의 이유는 하나님이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비록 가나안의 여러 이방신들을 섬기는 음란한 믿음이 가나안 땅에 창궐했지만 애굽에서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행적에 대한 소문은 참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구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 받는 일이 가나안 땅을 통하여 드러나게 되고 있는 것입니다.
3) 창녀인 라합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면, 가나안 땅의 누구라도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고자 할 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대적하게 되면 하나님을 대적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이 때의 가나안 정복전쟁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또한 역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히 준행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용 :
1) 이 세상이 마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잡아먹을 듯이 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한국 교회의 미래가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게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세상이 더욱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부족하지만, 주님은 세상을 두려워떨게 하실 분이시고, 장차 세상을 철장권세로 다스리실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공중 권세잡은 사탄이 세상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불변의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음으로 세상을 향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바른 관점과 태도,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증거할 수 있는 지혜가 내 안에 채워지게 되기를 간구드립니다.
2) 라합의 믿음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세상적인 지혜와 판단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여리고 성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리고 성의 견고한 성벽을 의지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벽을 돌 때, 그들을 쳐다보면서도 여리고의 성벽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이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믿어졌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녀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참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시고, 그럼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소망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 그녀 스스로 다가간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수준의 믿음, 큰 믿음, 믿음의 은사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이 온전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연약한 믿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큰 믿음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