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어둠은 늘 그렇게... 특이한 목소리와 말 뽄새로 인기 있었던 한영애씨의 노랫말같은 일들이 현실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누군가를 찾는 목소리! "아! 그냥 가,힘 들게 하지 말고..."도 물론 있다. 다른 기다림이 가다리는 목소리,사람,기구는 간절한 희망이다.
킴세욕무는 튀르키에(터키) 말이다. 내가 알고있는 터키인들은 역사가 배어있는 튀르키에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에르도안씨 때문이다. 아마도 이즈미트지진으로 4만여 명이 죽고 다쳤을 때 구호활동을 한 터키기자재단에서 새로이 만든 재단이 킴세욕무란다. 재단 사무실을 두 번 방문했으니 기록에 남아있을 것이다. 홍보 동영상에도 내 모습이 두 번 나온다.
2005년 6월 초 아시아기자작가재단 초청으로 세계종교평화회의같은 느낌의 아시아의 대화 (Dialog of Asia)가 모스크바 크렘린궁 컨퍼런스홀에서 열렸을 때 한국 대표로 참가해서 이야기 나누고 이스탄불에 갔을 때가 한 번. 이스탄불문화원의 연결을 김진목사께서 연결했다.
그 뒤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으로 중동 종교지도자 대화와 이슬람 그리스도교 성지순례 갔을 때가 두 번. 참 재미있게도 '한국종교평화회의'라고 이름 바꾸고 '종교대화위원회'라고 바꿔야 좋다고 주장한 정회원이 아닌 준회원 신분의 위원장이었다. 바꾸지는 못했다. 거기 누구 없소?
정회원은 불교가 아닌 대한불교조계종만이라서... 목사가 아닌 위원장이었다. 생긴 이래 30년동안 목사만 맡았던 것을 이정배목사께서 적극 추천해 이웃종교 위원들의 동의와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동의를 얻고 활동했다.
이름이 중요하기에 제안했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일이다. 뜻을 이해하고,받아들이고,함께하는 일은. 어디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디서나 그렇다. 감기는 외로이 사는 이의 벗인 것처럼 이제도 이해하고,받아들이고,함께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나의 길을 걸었고,걷고,걸을 뿐인데 함께하여 아름답게 조화이루어 아름다움이 이어지게 하고픈 길 곧 그 목표에 명중,적중하는 길 이른 바 붓다의 중도(中道)를 걷고 있는데 다르게 본다. 조수석에 앉아있으면 그리 보이기도 한다. 운전수는 멀미를 하지 않는다. 자동차 뿐 아니라 배,비행기...도 운전하는 이는 멀미하지 않는다. 잠든 이도 멀미하지 않는다. 그 까닭을 아는가? 거기 누구 없소?
덧 이야기 한 ,두 토막. 나의 아버지는 광부였었다. 어린 시절 철제 도시락에 직접 지은 밥맛이 좋았는데...그것이 피맛이었다고 하셨다. 바로 뒤에서 굴이 무너지는 것을 겪고 다시는 그 굴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내 삶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고아원의 어떤 녀석에게 어떤 짓도 겪으며... 나이는 연세가 되어 나보다 훨 많지만 늦게 깎아서 잘 살다가 삶의 굴 속에서 고생하시는 어느 님은 사북탄좌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도와주었다는 죄목으로 몇날몇일을 죽살이를 거듭하면서 맞았다는 스님이 떠오른다. 부디 회복하시기를! 다행히 봉화탄광에 갇힌 이들이 모두 구조되었단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거기 누구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