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이 이 지경이 된 책임의 90%는 축협에 있다.
3차예선 탈락 위기에서 조광래 감독을 경질한 건 프랑스월드컵 대회 도중 차범근 감독을 경질한 사건만큼이나 역사적인 과오로 남을 거다. 권력자들이 정신 차리기엔 약 15년이란 세월로는 부족한가보다 비슷한 시기에 청보법 사태-아청법 사태가 이어진 것이 떠오르기도 하고. 자신들에게 쏟아질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희생양을 내세웠다는 데서도 같은 맥락으로 통한다. 3차예선 탈락 위기라 한들 갑자기 감독을 교체해서 한 경기만에 경기력이 좋아지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다행히 최강희 감독은 이근호,이동국이라는 국내파 공격 조합을 내세워 쿠웨이트, 카타르, 레바논을 상대로 한 예전전에서 2:0, 4:1, 3:0으로 내리 대승을 거두며 '닥공'의 위엄을 뽐내는 등 축협의 결정이 성공을 거두나 싶었지만.. 이미 안에서는 폭탄의 심지가 타고 있었던 것. 최강희 감독은 전임 조광래 감독에 의해 중용되었던 남태희, 지동원 등 유럽파 공격자원을 벤치에 앉히고 이동국, 이근호, 염기훈, 김두현 등 국내파들을 중용하고 유럽파 콤비가 장악하고 있던 중원에도 굳이 김상식을 구원투수로 부르는 등, 초반 필요한 결과는 냈지만 유럽파 선수들 사이에 불만이 커지는 것을 막지 못했고, 그것은 최종예선이 진행될수록 무너지는 팀워크로 나타났다.
1차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던 상대들을 다시 만나 신승하거나 고전하고 패배하기까지 하는 등 팀이 무너지고 있다는 건 누가 봐도 분명했고, 유럽파와 국내파 간에 파벌이라는 벽이 생기고 있다는 루머는 설득력을 얻었다. 그 와중, 이미 한 차례 공개적인 트윗으로 감독을 간접 비난해 논란을 빚었던 기성용의 비밀페북 내용이 김현회 기자의(논란의 여지가 있는)폭로로 인해 드러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팀이 고전하고 있는데도 '유럽파를 무시하더니 꼴 좋다' 라고 이죽거리는 기성용의 태도는 팀의 일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선수 기용에 있어서 후보선수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며 팀 장악에 실패한 최강희 감독의 잘못일까? 아니면 감독을 존중하지 않고 팀 불화를 야기한 기성용의 잘못일까? 둘 다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겠지만 첫줄에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책임은 축협에 있다. 조광래 감독 경질이 팀을 위한 것이 아니라 희생양 삼기였다는 것은, 전북에서 최강희 감독을 강탈해올 수 밖에 없었을 정도로 후속 대책이 없었다는 데서 명확해진다. 최강희 감독은 분명히 '나는 국가대표에 맞지 않는 타입' 이라 주장했고, 최종예선을 돌파하고 나서 물러나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축협은 그대로 최강희 감독 선임을 강행했다. 그런데 시한부 감독이라는 조건 자체가 폭탄이었다.
예선까지만 하고 물러나겠다는 건 다시 말해 월드컵 본선 선발권이 없다는 것. 선수들 입장에선 아무리 감독 전술에 충실히 따라봤자 월드컵에 간다는 보장이 없다는 건데... 이런 상황에선 똑같이 열심히 뛴다고 해도 동기부여가 다를 수 밖에 없고, 그건 경기력 저하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기성용이나 윤석영이 대놓고 감독을 디스한 사건도 처음부터 최강희 감독에게 주어진 권위가 얄팍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는 기성용의 말 그대로, 축협이 최강희 감독에게 부여한 권위(아울러 최강희 감독이 자처한)는 묵직하지 않았고, 리더의 권위가 없는 조직은 분열할 수 밖에 없고, 분열의 징후는 파벌논란으로 나타났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최강희호는 사실상 본선 진출을 확정한 상태에서 이란과의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가졌다. 이미 조3위와 골득실차이가 커서 큰 부담이 없는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최강희 감독은 과감하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이며 비난 속에 임기를 마치게 되었고, 축협이 후속타로 내놓은 카드는 런던올림픽 동메달에 빛나는 신성 홍명보.
홍명보 감독은 경험이 적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국제대회 성적이 화려하고, 최강희 감독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몇몇 유럽파들과 전술적인 유대가 강하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홍명보 감독은 '올림픽팀은 버리고 왔다' 고 선언하고 순수한 실력과 컨디션 위주로 선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근호와 함께 최강희호 최다득점자였던 이동국의 배제를 시작으로 기성용 사과쇼를 벌이거나 박주영을 따로 만나 이적을 조건으로 발탁을 약속하는 등 초반부터 '제 식구 챙기기' 논란에 시달렸다. 버리고 왔다던 올림픽팀의 제자들이 소속팀에서의 활약이나 컨디션에 관계없이 중용되는 모습이 보이면서 이번에는 팀내 파벌이 아니라 축구팬들 사이에 파벌이 갈리고, 대표팀을 지지하고 힘을 보태야 할 여론이 양편으로 나뉘어 소모전을 벌이는 상황. 하지만 초반에만 강한 모습을 보이고 갈수록 팀을 망가뜨렸던 최강희 감독에 비해 홍명보 감독은 갈수록 나은 경기력을 보이고 뜨거운 감자였던 박주영이 골까지 터뜨리는 등 감독의 소신을 증명하는 것 같았는데..
최종엔트리에서 윤석영, 박주호, 이명주의 운명이 갈리면서 논란이 극에 이르렀고, 월드컵을 앞두고 가진 평가전에서 졸전으로 일관하면서 다시금 비판 여론이 들끓게 된 상황. 그런데 이게 홍명보 감독만의 잘못일까? 홍명보 감독이 기만적인 언론플레이로 일관한 건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엔트리 구성에는 잘못이 없다고 여겨진다.(애초에 엔트리 구성에 잘잘못을 따지기도 우스운게 그건 감독의 고유 권한 중에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권한이다)
역시 이것도 대부분 축협의 책임을 물어야겠다. 조광래 감독 경질에 이어 최강희 감독의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그대로 수용함으로 인해 후임 감독에게는 1년밖에 시간이 남지 않은 상황. 그리고 팀 분위기는 개판으로 무너지고 팬들의 지지도 떨어진 상태.. 아무리 대표팀 감독을 가리켜 독이 든 성배라고 하지만 이런 해도 너무한 맹독을 들이키게 된 홍명보 감독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얼마나 있었을까? 올림픽 메달로 명장 칭호를 받게 된 홍명보 감독이지만 프로감독 경험도 없고 대표팀 자원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상황. 홍명보 감독이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처음부터 올림픽팀일 수 밖에 없었다. 일단 감독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선수를 우선적으로 기용하는 건 홍명보 감독이 아닌 누구라도 당연한 선택이고(최강희 감독이 원포인트 릴리프로 김상식을 불렀듯이) 월드컵을 1년 남겨놓고 팀을 새로 구성해서 팀워크를 극대화시키려면 선수들끼리의 유대감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경험이 적은 홍명보 감독으로선 다양한 상황에 대한 임기응변보다는 자신 있는 전술을 정공법으로 구사하는 게 나은 선택이었을 테고...
농담으로야 '엔트으리' 라고 하지만 아직 앞길이 창창한 홍명보 감독에게 있어서 월드컵 성적보다 제자들에 대한 의리가 중요할까? 홍명보 감독은 나름 최선의 결과를 위해 엔트리를 구성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렇게 판단하는 게 맞다. 실전감각이 떨어진 박주영에 대한 세레나데를 3절 4절까지 불러제낀 것도 박주영이 예뻐서라기보다 정말로 박주영이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일 거다 (현재 박주영과 비슷한 역할을 해줄 타입의 공격수가 없다는 게 자명한 사실이다.)
홍명보 감독이 취임사로 외친 '원팀, 원스피릿, 원골'이 실현되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이 상황까지 몰고 간 축협이 애초에 문제지. 선수들과 감독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월드컵 본선에서 불운까지 겹치지 않도록 기도할 수 밖에.
첫댓글 조감독선임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였지....
선임부터가 문제였나요? 그 이후 대립관계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하는데..
초반에는 괜찮았죠..경기력도 성적도. 근데 갈수록 포지션파괴에 해외파만 선호 등 문제가 생기면서 성적도 안좋아져서 경질됐죠
일정 부분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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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you 동의해요. 홍명보 감독은 스스로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걸리는 게 없었기에 그 동안 고사해온 A팀 감독직을 수락했다고 했지만, 역시 너무 이른 거 아니었는지
엔트리에 대해선 비공감이네요 감독이 자기가 원하는 전술에 맞는 선수 뽑는거야 그럴수 있지만 시즌내내 폼이 않좋고 경기력도 별로고 경기에도 자주 못나오는 선수를 뽑은건 더 문제있다고 생각함 자신의 전술에 한계를 정해놓고 벗어나지 못한 엔트리였지 최선의 엔트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홍명보 감독의 기량이라면 자기 기량 안에선 최선이었다고 생각해요. 객관적인 관점의 최선보다는 홍명보 감독 입장에서의 최선을 생각해봤어요. 수비수가 2명 붙었을 때 드리블로 제낄 수 있으면 제끼는 게 최선이지만 아니면 백패스가 최선이잖아요
좋은글이네요...굿
도망치는듯한 핑계성 인터뷰들도 비판여론형성에 일조하지 않았나 싶네요. 매 인터뷰가 긁어부스럼
최강희 선임부터 이미 홍명보 예약해논 상태죠. 명보도 충분히 알고있던 일임. 기성용도 MB모자 쓸 정도인데 그걸 몰랐을까? 즉 홍명보는 2년 이상의 시간이 있었다고 봐야댐.
MB모자 쓴 게 홍명보 차기 감독설을 뒷받침하는 건 아니죠 이미 올대 사제관계로 생긴 친분은 언제 드러내도 이상하지 않잖아요.
최종예선까지 하겠다 선언한 2011녕 12월부터 끝나는 2013년 6월까지 1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고작 찾은게 홍명보. 하지만 사전에 합의를 해둔게 아니라서 정작 홍명보도 거절. 4일후에 결국 결정. 이런 주먹구구식 행정은 어디서도 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