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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GM에 재미난 글이 올라와 번역해 봅니다. 오늘의 떡밥은 미국에서도 흥행 중인 악몽옹과 킹콩옹입니다. 낚여봅시다.
Hakeem Vs. Ewing: Who Was The Better Center?
Authored by Charlie Danoff
번역 : 광폭 키보드 워리어 비제이(I love NBA)
<애들이 이번 떡밥은 우리로 골랐다. 마이클이랑 코비는 지겨웠나봐?>
이번 가을 명예의 전당 입성이 거의 확실시 되는 이 두 명의 7foot센터는 지구의 끝과 끝에서 6개월의 차이를 두고 태어났다. (비제이 : 패트릭은 자메이카 킹스턴 출신이며 11살에 미국으로 이민 왔죠. 올라주원은 나이지리아 출신입니다.) 이 두 명 모두 ‘센터’라는 포지션에서 자신들의 시대를 확실히 지배한, 리그 역사에 기억 될 만큼 ‘최고’의 선수들이다.
“누가 더 뛰어난 선수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을 찾기 위해 이미 은퇴한 운동선수들의 업적과 성적을 단순화 해 비교하는 것은 정말 멍청하고 소모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해가 거듭될수록 All-time Greats들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져 갈 것이며 그들이 얻은 All-time greats라는 호칭은 ‘과대평가’라는 후대의 재평가로 그 빛을 발할 수도 있겠다. “누가 더 뛰어난가?”라는 주제는 사실 어떤 정확한 가치가 담겨있는 비교라기보다는 스포츠기자(칼럼리스트)들과 팬들을 위한 하나의 놀이이자 추억 정도로만 보는 것이 옳겠다. 농구코트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 같은 사람들이 흑백논리를 가지고 “확실히 이 친구가 그 친구보다 더 낫지”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운 점들이 무척 많다.
좌우지간 나는 스포츠기자고 당신들은 팬이다. 그러니 이러한 비교를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자, 시작해보자!
1984년, ‘조지타운 호야스’와 ‘휴스턴 쿠거스’는 NCAA 챔피언십에서 조우한다. 미국전역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패트릭과 하킴은 해당 대학의 져지를 입고 숙명의 대결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날 시작된 하킴과 패트릭, 이 둘에 대한 비교는 24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NCAA챔피언의 자리는 패트릭의 것이었다. 하킴은 NCAA챔피언의 영예를 성취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둘의 궁극적 재대결이 성사되기까지는 1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대학무대를 평정한 두 선수 모두 NBA드래프트에서 #1으로 뽑혔다. 패트릭에게 패배했다는 이유로 NBA로터리에서 비판을 감내해야만했던 하킴이었지만 NBA무대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보다 생산적인 선수 비교를 위해서는 세 가지 비교 원칙들을 정해야겠다. 우선 각종 수상경력, 분당 스탯들, 그리고 챔피언 경력, 이렇게 세 가지다.
수상이라는 것이 지나칠 정도로 언론에 의해 편향된 방향으로 수여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종류의 논쟁에 있어 훌륭한 근거가 되기에 모자라지도 않다. 분당 커리어 스탯은 선수들이 그들의 리그생활 동안에 보여줬던 순간순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지표다. 마지막으로 선수비교에 있어서 최고의 잣대라 할 수 있는 챔피언십.
마지막으로 이 선수들에 대한 어떤 평가가 내려지든 진정한 평가는 그들 선수 개개인을 통해서만 나타난다는 점을 잊지 말자.
<#23, 이 쉐리만 없었어도....>
Ⅰ. 수상경력
한 선수는 동부에서 또 다른 선수는 서부에서, 두 선수 모두 각자의 소속 지구를 완전히 지배하면서 거의 매 시즌 볼 것도 없이 올스타팀에서 센터자리를 예약했었다. 결국 유잉은 총 11번 선정에 9번 올스타 자리에 올랐고 올라주원은 12번 선정되었다. 이것만 가지고는 누가 더 낫다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로 용호상박.
유잉은 1985년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올라주원은 ‘마이클’이란 이름을 쓰는 어떤 선수 때문에 그의 라이벌이 누린 영예를 얻지 못하였다. 생애에 있어 단 한 번뿐인 기회인데 말이다.
87-88시즌부터 1992-93시즌까지 이 두 친구는 All NBA team 센터자리에서 1st, 2nd 팀을 독식해버렸다. 유잉은 6년 동안 5차례 2nd팀에 선정되었고 91년 한 차례 1st팀에 올랐다. 한편 올라주원은 91-92시즌을 제외하고는 모두 1st팀에 뽑혔다. 91-92시즌에는 패트릭, 하킴 모두 1st팀에 오르지 못했는데 그 해의 1st팀 영예는 바로 ‘제독’ 데이비드 로빈슨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패트릭이 세 차례 2nd All NBA 수비팀에 선정되는 동안 하킴은 깨끗하게 리그 최고반열의 수비수로 각인되면서 총 5번의 1st All NBA수비팀에 들었다. 하킴은 2nd 팀에도 5번 올랐고 올해의 수비수 수상도 두 번 차지했다. 하킴은 1994년 리그정규시즌 MVP에 선정되었지만 패트릭은 결국 시즌MVP와는 인연이 없었다. 만약에 이 두 친구가 마이클 조던과 동시대를 살지 않았다면 장담하건데 더 많은 시즌MVP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상경력에 있어서는 하킴의 승리다.
<압둘이형, 같은 #33번인데 매너게임요. 유잉아 형 허리 안 좋다. Sal Sal>
Ⅱ. 분당 개인스탯
Regular season/Playoffs/Difference%
Ewing
FG%: 50.4/46.9/-6.94%
FT% 74.0/71.8/-2.97%
FTA Per Min: 0.180/0.160/-11.14%
TRB Per Min: 0.286/0.276/-3.63%
AST Per Min: 0.055/0.053/-3.23%
STL Per Min: 0.028/0.023/-16.29%
BLK Per Min: 0.071/0.058/-18.39%
TOV Per Min: 0.087/0.066/-23.97%
Fouls Per Min: 0.099/0.100/+0.86%
PTS Per Min: 0.611/0.540/-11.64%
Olajuwon
FG%: 51.20/52.80/+3.13%
FT% 71.20/71.90/+0.98%
FTA Per Min: 0.172/0.180/+4.36%
TRB Per Min: 0.311/0.282/-9.30%
AST Per Min: 0.069/0.080/+15.21%
STL Per Min: 0.049/0.043/-12.83%
BLK Per Min: 0.087/0.082/-5.20%
TOV Per Min: 0.083/0.074/-11.06%
Fouls Per Min: 0.099/0.098/-1.37%
PTS Per Min: 0.609/0.653/+7.19%
스탯을 정리하면서 나는 이들의 성적을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을 따로 구분했다. 왜냐하면 진정한 선수의 위대함은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괜찮은 선수’라고 불리는 선수들이야 최선을 다한 후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고도 뿌듯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겠지만 All time great라는 호칭을 받는 선수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불가능의 영역’이라 부르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들의 필요한 모든 것을 내던지기 때문이다.
저 정규시즌 항목에 나열된 숫자들을 보면 두 선수 모두 해당 시즌들을 완벽하게 지배했음을 알 수 있다. 분당 득점 0.6점이란 선수가 한 경기 36분을 뛴다고 가정했을 때 21.6점을 올릴 수 있는 성적이다. 그리고 매일 밤을 거듭할수록 그러니까 10년 하고도 절반이 지나기 까지 두 선수의 스탯은 꾸준히 상승했다.
하킴과 패트릭, 두 선수가 거둔 스탯은 실로 굉장히 유사하다. 패트릭이 정규시즌 득점에서 근소하게 하킴을 앞서지만 하킴은 역시 패트릭보다 리바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두 선수 모두 자유투성공률도 70%대로 양호하다. 정규시즌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바로 어시스트 항목이다. 유잉은 꽤 괜찮은 패서였던 반면 ‘The Dream’은 리그 역사상 길이 남을 최고의 ‘Passing big men’ 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킴과 패트릭이 극명하게 구분되는 또 다른 점은 바로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의 성적이다. 정규시즌과 비교해 거의 대부분의 항목에서 하향세를 보인 패트릭이 포스트시즌에서 향상된 항목은 파울 개수뿐이지만 하킴은 득점, 어시스트, 그리고 필드골 항목에서 성적이 올랐다. 이 말이 반드시 패트릭이 포스트 시즌에서 한심한 플레이를 보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팀이 큰 무대에 올랐을 때 하킴은 자신의 경기력을 초인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33의 그의 라이벌은 조금 아쉬운 모습을 보인 반면에 말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하킴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는 거 같다.
<서부라서 내가 유잉보다 편했을 거라고? 제도기에다가 우편배달부... 나도 나름 빡셌어...>
Ⅲ. 챔피언십
10년 전 NCAA결승에 맞붙은 두 영웅은 93-94 NBA챔피언십에서 드디어 재회한다. 이 둘의 정확하게 ‘10년만의 재대결’이란 타이틀을 위해 시기적절한 공백을 만들어준 ‘His Airness’ 마이클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유잉과 올라주원이 NBA리그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만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NCAA 시절 격돌했을 때는, 하킴과 유잉 모두 팀의 득점 리더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제 이 둘은 <득점을 포함해> 팀을 대표하는 돤전 도미넌트한 선수가 되어 버렸다. 즉 하킴 없는 휴스턴, 유잉 없는 뉴욕은 준수할지는 몰라도 강력한 팀과는 거리가 멀게 되어버린 셈이다 양 팀의 득점을 이끈 패트릭과 하킴의 조력자들은, 충분히 좋은 선수들이었지만 우리가 지금 논하고 있는 두 명의 선수처럼 명예의 전당 수준의 선수들은 결코 아닌 케니 스미스와 존 스탁스였다. 또 당시의 유잉과 하킴 주위에는 시즌 평득 20을 넘게 찍어주는 동료가 단 한명도 없었다.(오역수정 및 첨부 : 리오그란데님)
뉴욕 닉스와 휴스턴 로켓츠의 코치였던, 08년도 명예의 전당 최종 후보 중 한명인 팻 라일리와 역시 All-Times greats 루디 톰자노비치. 이 둘의 대결 역시 상당히 관심을 끌었던 드림매치였다. Realistically, going against another All-World center had to be more rewarding for each than watching their teammates fail time and again to slow MJ. <이 문장은 대략 무슨 의미인지 추측은 할 수 있겠는데 뚜렷하게 글자로 해석하기가 좀 어렵네요. 죄송합니다. 좌우지간 조던이 또 한 번 언급되는군요.>
정말 강렬하고도 또한 치열한 시리즈였다. 6번의 경기가 끝나고 마지막 단 한 경기만을 남겨둔 채 다시 한 번 양 팀은 마지막 한 번의 승리를 위해 격돌했고, 이번 경기의 승리자는 하킴이었다. 패트릭은 정상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 대결의 승리로 인해 하킴의 NBA커리어는 성공적으로 그려졌고, 패트릭이 대학무대에서 그의 라이벌과의 대결에서 거뒀던 승리는 그의 대학시절의 기억과 함께 잊혀졌다. 하킴이 모든 것을 가져갔다.
다음해에 로켓츠가 다신 한 번 NBA챔피언십을 차지했다는 걸 고려해볼 때, 하킴은 이 항목에서 승리자가 되기 위한 슬램덩크를 이미 작렬 시켰다고 봐야겠다.
자, 팬들이여, 이제 결론이 났다. 하킴이 3-0으로 스윕을 해버렸군. 술집에서 맥주를 시켜두고 두고두고 뜨거운 논쟁거리로 남아버릴 영원한 안주거리를 단 1,000개의 단어로 결정을 지어버렸네. 패트릭과 하킴 모두 확실한 명예의 전당 후보자냐고? 그럼! ‘최종후보’라는 말은 그저 형식적인 것이고 그들은 이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거나 다름없지.
내 굳은 확신과 논리 체계가 이미 연산을 끝내 그래프로 보여주고 있지만 패트릭 보다 하킴이 더 나은 선수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점도 한 번 고려해보자. 몇몇 사람들은 하킴이 그의 커리어 중에 유잉보다 더 좋은 선수들과 함께 하지 않았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리고 유잉은 한 번도 클라이드 드렉슬러, 찰스 바클리, 스카티 피펜과 같은 선수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유잉은 동부팀에 소속된 죄로 매번 마지막 고비에서 #23번 선수에게 발목을 잡혔지. 어쩌면 올라주원은 확실히 그의 커리어에서 한 번이나 두 번 정도는 더 파이널에 올라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유잉이 서부에서 활약했다면 누가 유잉이 세 번 혹은 네 번 정도 더 NBA파이널에 오르지 못했다고 단정 지어 말 할 수 있겠는가?
<샤크 : "형, 가볍네... "하킴,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후달릴 듯, 저기서 오닐이 무릎 앉아 자세를 취하면 그대로 백 브레이커가 시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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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킴의 그 독보적인 디펜스가 그립습니다. 그 엄청난 블락과 스틸.. 전 하킴 하면 드림쉐이크 가 아니라 역대 최강급의 샷블로커 겸 디펜더로서 떠오르던군요.
4대센터에 드는 유잉이기 때문에 그들과 비교당하면서 상당히 많은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4대센터중에는 유잉이 상당부분 밀린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저놈의 무릎보호대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네요. 부상 덕에 전성기가 짧아졌고 자신의 스타일을 바꿔야 했던 그런 선수 지만 적어도 당시 4대센터에는 항상 들어가 준 걸 생각하면 또 대단한것 같기도 하네요. 실력이 하킴이나 로빈슨보다 위라는 주장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유잉은 정말 좋아하는 선수 입니다. ㅎ
샤킬 "이것만 던져버리면 내가최고다...."
피식...ㅋ
유잉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도 조지타운 대학을 세 번이나 결승으로 이끌었던 정통 센터였는데 말이지요. 4대 센터 중에 유일하게 MVP가 없고, 우승도 못해봤고.... 그래도 다른 3명의 센터가 못해본 NCAA 우승을 했고, 또 대학생의 신분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아야죠. 프로 데뷔 후에 이렇다 할 상복은 따라주지를 않았지만, 많은 농구인들의 가슴 속에는 영원한 챔피언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아 근무시간에 이 글 골똘히(?) 읽다가 부장님한테 대박 혼나고 다시 저녁때 이글을 읽네요. 90년대 학창시절 좋은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흉내내는 시간을 꼭 가졌는데 과연 그 내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추억에 잠겨봅니다.
뉘앙쓰가 잔잔한 감동이네요.
하킴이나 로빈슨도 물론 전설이나 다름없지만, 전 유잉의 고릴라센터포스가 너무좋네요 !!!
유잉의 양팔 벌리고..포효하는 모습이...그립다는...생각이 문뜩...
매너게임요, 나도나름 빡셌어.. <-- ㅋㅋ 위트넘치시네요.
유잉... NBA 파이널의 그 수많은 좌절들.... 그 MJ덕분에....그 MJ 덕분에....
유잉의 정신력은 참 생각이 많이 납니다..의지가 대단한 선수였어요..주원이형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만의 우직하면서도 막기 힘든 무브들이 있었지요..대단한 팀플레이어였기도 하구요..개인적으로 감독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