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음주 습관은 인간과 공통 조상인 원숭이가 발효된 과일을 골라 먹던 데서 시작됐다고 로버트 더들리 UC버클리대 교수가 주장했다. 이른바 '취한 원숭이 가설(Drunken Monkey Hypothesis)'이다. 그는 생존하려면 높은 칼로리의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데, 알코올이 함유된 발효 과일은 칼로리가 높았다. 그래서 발효 과일을 잘 찾는 원숭이가 생존에 유리했고, 결국 발효 과일을 먹은 원숭이가 살아 남았다.
구약 창세기를 보면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다. 하루는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천막 안에 벌거벗은 채 잠이 들었다. 이를 본 둘째아들 함이 다른 두 형제인 셈과 야벳에게 재미있는 소식인 양 떠벌렸다. 술이 깬 노아는 함에게 수치를 당한 것을 알고 그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렸다. 이 이야기는 완전한 자요, 의인이라고 인정받던 노아조차도 술에 취하면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과음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쓴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보면 트로이를 떠나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우스가 외눈박이 거인부족 키클로페스가 살고 있는 섬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들 중 가장 힘이 센 거인 폴리페모스가 그의 부하들을 동굴에 가두고 차례대로 잡아먹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부하들을 전부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가져왔던 포도주를 잔에 가득 따라 폴리페모스에게 마셔 보라고 내밀었다.
술잔을 즐겁게 비운 폴리페모스는 더 달라고 요구했고 오디세우스는 계속 잔에 술을 채웠다. 마침내 폴리페모스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자. 불에 달군 막대기로 펠리포모스의 애꾸눈을 찌르고 동굴에서 탈출한다. 폴리페모스는 물을 타지 않고 와인을 마시는 야만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와인을 마시고 술에 취한 것 자체도 야만적인 행동이었다. 와인은 당시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갈증을 달래기 위한 음료였다.
로드 필립스가 지은 ‘와인의 역사’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와인을 문명의 척도로 삼았다. 교양인은 그리스식으로 와인을 마셨는데 와인을 물에 희석해서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시는 방법이었다. 반면에 와인에 물을 섞지 않고 마시거나 정신을 잃을 만큼 마시는 사람은 야만인 취급을 받았다. 바로 폴리페모스가 와인을 마신 방법이었다. 이런 전통은 로마에도 이어져 교양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음주습관이 포함되었다.
술은 진화가 빚은 인간의 벗이다. 그렇다고 술을 마시고 정신을 놓는 것까지 용서되지는 않는다. 영국 설포드대의 로버트 존 영 교수는 술을 즐기는 동물들은 스스로 선(線)을 지킨다고 말했다. 야자수 수액으로 만든 술을 즐기던 침팬지 중에서도 선을 넘은 침팬지는 단 한 마리였다고 한다. 남들이 다 잘 때 이 침팬지만 이 나무 저 나무를 헤매고 다녔다. 결국 술에 취해 이성을 잃으면 짐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