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마지막 33년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정아은 지음
“어렸을 때부터 <토지>나 <임꺽정> 같은 대하소설을 쓰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현대 소설을 쓰면서도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2017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1권은 군인 전두환·노태우를 쓰고 2권은 두 변호사 노무현·문재인을 연습 삼아 써봐야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2017년부터 자료를 조사하고 몇 년을 보냈는데, 2021년 11월23일 전두환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너무 슬퍼하고 아쉬워하는 거예요. 그 슬픔은 죽음 앞에 서면 사람이 느끼는 숙연함, 아쉬움이 아니라 공동체가 내리는 형벌을 이분이 살아서 받지 못하게 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그 풍경이 제겐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분이 퇴임 후 1~2년 있다 돌아간 것도 아니고 우리에겐 33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어요. 그렇게 아쉬워할 거면 33년 동안 우리 사회는 뭘 했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하게 됐죠.”
논픽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정아은 작가의 이런 질문에서 시작됐다. 정 작가는 전두환에 관한 기존 저술들이 전두환의 잘못을 세세히 기록하거나 전두환의 리더십을 칭송하는 등 어느 한쪽 면만을 부각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을 통해 전두환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좀더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왜 우리 사회가 그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는지 파고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정 작가에게는 ‘도시 세태의 관찰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등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과 심리를 사회 세태와 결합해 절묘하게 그려낸 그는 이번 책에서도 전두환씨의 말과 행동, 그에 대한 각종 문헌을 분석해 그의 생애사를 관통하는 심리적·성격적 특질을 잘 잡아낸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역사 덕후’답게 전두환이라는 ‘거악’을 잉태하고 탄생시킨 정치경제 및 사회문화적 배경을 역사적 맥락에서 촘촘하게 들여다본다.
책에 따르면, 전두환씨는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에 충실한 ‘무데뽀’ 정신의 소유자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다른 사람보다 3~4년 늦게 공교육에 진입한 전씨는 타고난 적극성과 붙임성, 육군사관학교에서 받은 교육 등을 통해 젊은 시절 성공 가도를 달렸다. 박정희가 암살되기 7개월 전, 전씨는 49살의 나이로 보안사령관에 파격적으로 임명됐다. 출세욕과 권력욕이 강하고 ‘나’ 중심적 사고가 강했던 전씨는 자신의 정치적 아버지이자 멘토였던 박정희가 암살된 뒤,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며 권력을 잡았다.
정통성이 결여된 권력을 잡은 그는 열등감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는 열등감 극복을 위해 경제에 목숨을 걸었다. “먹고사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면 가까스로 얻은 권력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리라고” 생각한 것. 그는 김재익 등 인재를 등용해 관 주도 경제에서 민간 주도로 경제 정책 방향을 바꾸었다. 1980년대 중후반 시기는 저유가, 저환율, 저금리의 시대였다. 3저 호황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힘입어 한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인간의 자유의지, 그중에서도 가장 고차원적인 정치적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시기”이기도 했다.
1987년 들불처럼 일었던 6월 민주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담은 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전씨는 퇴임 후 몰락의 길을 걷는데, 2년간 백담사에서 머물렀고 2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웠다. 정 작가는 전씨를 자기 성찰 능력이 극도로 결여된 인물로 진단하고 그를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가벼움’을 언급한다.
그는 5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극을 벌여놓고도 광주에 가서 “내가 광주 시민을 특별히 아낀다”고 발언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전씨는 김영삼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에 따라 무기징역을 선고받지만, 이후 영호남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특별사면 된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약 500평 규모의 집에서 한쪽 벽면 전체를 취임식 때 했던 연설문으로 뒤덮은 채 호의호식하다 숨졌다.
책은 전두환이라는 ‘악’을 탄생시키고 엄청난 죄를 저지른 그를 단죄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한 분석도 내놓는다. 정 작가는 “전두환이라는 악이 나타났을 때 아무도 제 구역을 지키며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꼬집는다. 정 작가는 ‘선’이 없는, ‘선’이 지켜지지 않는 한국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반란 소식을 들은 국방부 장관 노재현이 미국 벙커로 도망가는 대신 자리를 지키고, 대통령 최규하가 육군참모총장 체포 재가 서류에 대한 승인을 끝까지 거부하고, 수경사령관 장태완과 특전사령관 정병주가 병력을 동원해 쿠데타군을 진압했다면 쿠데타는 진압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정치인들이 “전두환 처벌을 정치적 손익에 따라 이용”한 점도 문제점으로 꼽는다. “정치인이 악을 처단할 것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국회의원이 처단되지 못한 거대 악을 단죄하기 위해 입법을 하고, 검사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른 이를 집요하게 추적해 법정에 넘겼다면, 전두환은 제대로 된 단죄를 받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정 선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우리 사회’를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전두환을 읽어내는 일은 한국을 읽어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숨졌지만 그가 “한국사의 정확한 자리에 자리 잡도록” 더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전씨의 손자 전우원씨의 등장, 전두환 과거 행적에 대한 관련 인사들의 양심 고백 등을 예로 들며 “밑에서 뭔가가 끓고 있고, 변할 수 있는 시기”라며 역사의 진전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가장 이른 시점에 시선을 뜨겁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단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왜 전두환을 33년 동안이나 단죄하지 못했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각성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