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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원천식의 남도 기행
나는 얼마전에도 중국의 내몽고와 피서산장에 다녀왔기도 해서, 요번 여름 휴가와 여행은 건너 뛸까도 생각하다가, 갑자기 桃花살(해변에서 예쁜 아가씨들의 그림을 감상하고 싶은 도화살. 역마살도 꼈지만)이 발동해 무작정 지난 주 금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자 마자, 점심을 먹고는 그냥 예정에도 없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갑자기 여행가려는 마음이 생기게 된 데에는, 우리 동창인 조영태 교수의 동생인 영진이의 기여가 아주(^^) 컸는데, 그 까닭은 내 동북아통상 카페( http://cafe.daum.net/wtowon )에 있는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영진이가 재미있는 노래를 많이 올려 주었기 때문이다.
최근 올려준 글 중엔, ‘신나는 여름 노래’가 있었는데, 그 노래들을 며칠 전 듣던 중에 ‘해변으로 가요’와 ‘진주조개 잡이’ 노래를 듣는 순간, 해변으로의 유혹을 더 이상은 참질 못하고 마침내 여름 바다여행을 다녀 오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엔 2박 3일쯤 여행을 다녀 오려 했었는데, 막상 여행을 떠나 보니, 예정에도 없이 마구 돌아다니게 되어 결국 5박6일 여행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행선지는 삼례- 전주- 광주- 완도- 목포- 흑산도로 이어졌다.
내가 좋아 하는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 시 속의 술익은 ‘南道 3백리’를 가는 나그네처럼.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는 사실 글재주가 없어, 남도기행담을 쓸 생각도 별로 없었는데, 모씨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아무리 바쁘더라도 열일을 젖혀 놓고라도 써야겠다는 굳은 마음과 각오 아래 붓을 들게 되었다.
내 처음 여행 일정은 일단 전주 인근에 있는 우석대학교 조영태 교수를 찾아간 뒤, 그 친구를 꼬셔서 변산과 전주 등지를 돌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스케줄에 따라 먼저 전라북도 삼례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라 탔다.
휴대품은 수영복 한 장과 약간의 돈이 전부인 채로.
그런데 요즘 날씨가 변덕이 심해서인지 해수욕장 가려는 사람은이 그다지 많이 눈에 띄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버스가 충남 정안휴게소 부근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폭우가 장대같이 쏟아져, 버스가 휴게소를 제대로 들리지도 않고 곧바로 다시 출발해 버려 영태와의 예정시간보다 30분 정도 빠른
시간에 영태가 있는 우석대학교 연구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출발하기 바로 전에, 미리 영태에게 전화를 걸어서인지 영태는 내가 오길 학수고대(^^)하다가, 내가 오자 마자 곧바로 영태 집으로 찾아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영태 부모님은 최근 삼례로 이사오셨는데, 이 곳 삼례에서의 생활도 이젠 익숙해 지신 것 같았다. 잘 아시다시피 영태 어머님은 우리 동창들에게도 최근들어 더욱 유명해진 방집사님이시다.
옛날 내가 고교 졸업후 군대가기 전에 백수로 지내던 때에(1974-1975년 무렵) 청량리에 살던 영태 집에 심심해서 찾아 가면 그다지 여유도 없던 당시에도 반가이 나를 맞아 주시고 밥이나 라면이라도 꼭꼭 챙겨주시던 그 고마우신 마음씨와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느덧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만큼이나 세월이 지난 관계로 영태 어머님도 많이 늙으셨지만 그래도 아직은 정정하신 것도 같아 보기에 좋았다. 오랜 만에 인사를 드린 뒤 영태 부모님과 우리 두 사람, 영진이 아들내미 2명, 모두 6명이 저녁 식사를 먹으러 봉동이라는 곳의 생음악식당으로 갔다.
봉동은 영태 집에서 차로 10여분 걸리는 가까운 곳인데, 이 곳에선 생음악이 되는, 이 인근에선 흔치 않은 생음악 음식집이 있었다. 여기 이 가게 주인 아주머니와 종업원 언니들과는 나도 구면이라 가벼운 인사를 한 뒤 저녁 식사를 먹었는데, 오랜 만에 70-80 풍의 옛노래를 들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보니 시간이 꽤 흘러갔다.
그래서 영태 부모님과 아이들은 집으로 보내 드리고, 영태와 나는 다시 호기롭게 떠들면서 술도 한 잔 더 하고 들려 오는 노래소리를 경청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영태가 하는 말이 두 번째로 들어와서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의 노래가 아주 수준 미달이라고 한다. 나는 유심히 듣지 않아 잘 몰랐으나, 아주 무성의하게 노래를 부르고 손님을 접대하는 가수로서의 기본 매너마저 없어서인지 아무도 박수를 쳐 대는 사람이 없었다. 영태 말이 저게 노래냐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듣기에도 그렇게 실력이 형편없다면 이 식당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의 인건비를 아무리 낮춘들 장사에 무슨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너무 수준이 떨어지는 가수를 쓰면 이런 가수를 쓰는 가게의 이미지도 형편 없어질텐데 하는 걱정도 들었다. 생음악을 감상한 후 영태와 나는 인근 장급 모텔에 방을 잡아, 하루 밤을 잤다.
2일째 기행
이날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변산으로 직행.
변산해수욕장은 과거에도 몇 번 와 본적이 있지만, 나는 변산을 떠올릴 때마다 옛날에 보았던 아름다운 변산의 落照 풍경이 생각난다. 변산의 낙조 경치는 드넓은 서해 바다와 어우러져 장관이었는데 아무튼 이 때의 정경이 떠 올라 변산에 대해선 아련한 느낌을 갖고 있었는데, 이 날은 비록 비는 오지 않았지만 구름이 많이 끼고 날씨가 다소 궂어 서해안의 황홀한 낙조를 보기엔 그다지 좋은 날은 아니었다.
물개처럼 수영에 일가견이 있는 조교수와 헤엄이라곤 평영과 배영 밖에 할 줄 모르는 원모 선수가 함께 바다를 오랫동안 누비다가, 배도 출출하고 하여 모래사장으로 나와 부근 음식점에서 멍게와 해물 칼국수, 맥주 등을 시켜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쳤다.
그러나 이렇게 바닷가에서 친구와 오붓하게 둘이 앉아 한 잔을 하게 되니, 내 마음이 기고만장(^^)해져서인지 내 말이 많아졌고, 이에 대한 영태의 날카로운 반론과 코멘트가 이어져 선방하느라 땀을 질질 흘리며 갑론을박 떠들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해져, 다시 삼례로 출발하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저녁 식사를 먹으려고 삼계탕 집에 들렸는데, 그 음식점의 이름은 이른바 ‘기차탄 영구’.
왜 그런 가게 이름이 지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삼계탕 집 이미지와는 그다지 안맞는 것 같다. '영구'하면 곧바로 심형래와 비실비실 걷는 걸음새가 연상되는데, 이 가게와 영구, 아니면 심형래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기차를 탄 영구’는 무슨 연고로 왜 그 이름이 나왔는지 아리송 하기는 했지만 궁금한 것을 모두 다 알아서 무엇하랴?
궁금한 것도 어느 정도 이 세상에 남겨두어야 할 것 아닌가?
기차탄 영구의 이미지와는 상관없이 음식은 맛도 괜찮고, 양도 푸짐해 먹을 만 했다. 그래서 다음에도 또 기회가 닿으면 가끔 오기로 했는데, 아무튼 오늘 하루는 영태의 인솔 아래 잘 먹고 잘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니 뭐니 해도, 여행을 다니는 즐거움은 먹는 재미와 보는 재미, 느끼는 재미 아니던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말이다.
3일째 기행
이 날은 특별히 여행 일정도 안잡혀 있는 날이라 느즈막이 일어난 뒤, 바람을 쐬러 전주 시내로 나와 거리를 돌아 다녔다. 10여일 전에도 영태와 내가 전주의 경기전(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과 한옥 마을 등을 둘러 본 적이 있어, 거리 풍경이 내겐 무척 익숙했는데, 이날도 우선 콩나물 국밥 집에 들려 해장을 하고(이 국밥집 술로는 맛있는 모주가 있음), 고서점가에 들려 헌 책들을 좀 샀다. 사다 보니, 어느새 30만원 가량이나 책을 구입하게 되어 정말 이 놈의 충동구매는 못말린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장사밑천이란 생각으로 즐겁게 마음먹기로 했다. 이 날 내가 산 책은 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인데, 전질이 모두 27권의 책으로서 書架의 장식용이나 베개용으로선 딱이다(ㅋㅋ).
그밖에도 해외여행용 안내책자들과 국내 명산을 소개하는 책자 등을 구입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고서점을 나와 영태와 나는 인근에 있는 전주의 명물 ‘덕진연못 공원’으로 갔다. 이 곳은 연꽃이 제 멋에 겨워 흐드러지게 핀 곳으로서 그 넓은 공원이 모두 연꽃으로 가득 찬, 국내에서는 좀채로 볼 수 없는 연꽃 명소인 곳이었다.
이 덕진연못은 이른바 “全州8景” 가운데 하나로서, 인근의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함께 4만 ㎡(1만 3천여평) 가량이나 되는 넓은 연못에 연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는 곳이라 한다. 특히 7-8월경에는 연꽃의 은은한 향이 아름다운 주변 풍경과 어울어져 선계에 와 있는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라, 정말 우리 친구들이 모두 함께 이 곳에 와서 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가족 단위로, 연인들끼리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 곳에 와서 흐드러지게 핀 연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기분이 즐거워졌다.
연꽃의 아름다움은 많은 시인 묵객들의 좋은 글 소재가 되는데, 우리 문학사에 빛나는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시 한 수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秋淨長湖碧玉流, 蓮花深處繫蘭舟
해맑은 가을 호수, 옥같이 푸르른데,
연꽃 깊이 우거진 곳, 란꽃 배 매어두고
逢郞隔水投蓮子, 或被人知半日羞
물건너 님을 만나 연밥을 따서 던져 주고선
혹여 누가 봤을까 반나절 부끄러워했죠.
한편 연못 속에는 음악분수가 있어 분수에서 나오는 음악도 감상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낮인데다가 시간도 안맞아(오후 2시, 5시, 8시, 9시 공연) 음악감상은 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무척 즐겁고 재미있는 장소였다. 안 와 보신 분들은 한 번 전주에 올 기회가 되면 가 보시도록. 숙소로 돌아 오는 길에 길가 모퉁이 찐빵 집에 들려, 영태와 나는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찐빵을 하나씩 먹으며 돌아왔다.
우석대학교에 들려 헬스 장에서 운동을 좀 한 뒤, 빼갈 한 독구리와 탕수육을 안주로 먹고 나니 온 세상이 내 것인 듯. 밤에 잠자리에 누으니 잠도 잘와 오랜 만에 꿀잠을 잤다.
(4,5일째와 6일째 여행기는 내일 쓰겠습니다. 재미없는 글 읽어주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첫댓글 두 교수님들의 휴가가 흥미롭습니다.
또하나의 싱클레어를 보는듯...좋은 시간 보냈구나...다음에는 같이 함 가자... 영태야, 조만간 보자...
나도 함 매려가보고싶은곳이 전준데..그쪽에 가면 국사봉에가서 옥정호를 담고싶어~
옥정호라. 이름부터 멋있구나. 여자 이름같은게^^.
멋있게 돌다 왔구만... 무작정따나는 기행... 삼삼하구만...
결국 이번 삼례행은 영진이가 원인 제공을 했구먼..새삼 대학 일학년 겨울 방학 때 군산이 집인 학과 동기 집을 찾아 간 기억이 나네..그때 처음으로 전라도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도 마시고 동양화가 걸려 있는 다방에서 차도 한잔 마셔보고... 첫 인상이 평야가 넓어 농지가 많아서 인지 사람들이 온순하고 인심이 넉넉하다는 느낌..그래서 그런지 모든 단어의 의미를 내포한 "거시기" 란 말이 일반 대화의 구십퍼센트.. 서울에서는 거시기가 거기(?)를 뜻 했었는데 말이여~~ 여튼 두 친구의 모습을 보니 옛날에 친구 찾아 가 놀던 기억이 나네..
혼자서 훌쩍 여행을 떠나서 친구를 만나는 천식이 부럽네....
원교수님 좋은 여행 하셨습니다. 친구와 동행하여서 즐거움이 배나 더했으리---
고맙습니다.김목사님. 목회 활동 바쁘시죠? 요즘 몽골에 다녀오셨다던것 같은데.
이글을 읽으니 담에 고국을 방문할 때 꼭.. 영태를 찾아가야겠다는 맘이 드네... 고맙다.. 글이 참 친근하게 맘에 다가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