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박이일 MT스케치
임 미 옥(霽月)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 가끔 빵도 사고 라면도 끓이고 치킨도 배달시킨다. 어찌 일만하고 살겠는가. 낮잠도 자고 휴가를 내어 산과 바다를 찾기도 해야지.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하룻밤을 지낸다는 설렘을 준비물 삼아 트렁크에 싣고, 푸른솔 문학 작가회가 주관하는 MT 장소로 떠났다. 조직의 움직임은 한사람만의 작품이 아니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창조하는 과정엔 교수님을 비롯하여 여러 문우들의 희망의 표현이 담겨 있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산세가 좋은 곳, 선발대로 도착한 우리를 환영하듯이 운무에 휩싸인 산등성이에선 구름이 휘장을 걷어내고 있었다. 아슴아슴 구름사이로 내미는 뾰족뾰족 파란 산봉우리 풍경은 꿈처럼 아름답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산과 산 사이를 넘나들며, 곡선으로 길게 누워 흐르는 강물과 만나 찐득한 더위를 식히니 달콤하다. 자연을 닮은 미소가 고운 카페주인이 이곳을 꾸미고 가꾸어 나그네들이 하루쯤 쉬어가도록 준비해 놓았다.
운무를 바라보는 눈은 같아도 느낌은 달랐으리라. 누구는 외로움에 젖어 들었고, 어떤 이는 함께 하지 못한 누군가를 아쉬워하며 그리움에 젖어든다. 또 누구는 망망대해 같은 세상의 바다에서 삶의 지표가 되어준 고향을 닮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늘 내가 서있는 이 자리와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다. 행복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태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즐겨야 내 것이리니, 어렵게 낸 일박이일동안 내 맘껏 행복을 누리리라.
큰언니 같이 다정한 문우님 두 분과 환경을 정리했다. 걸레질을 하고 전기 가스등, 시설들을 확인하고 “반딧불로 쓰는 여름밤의 수필” 이라는 현수막과 풍선을 불어 꽃모양으로 장식했다. 큰 거실에 사절지 켄트지를 참석예정자 수대로 부착하여 이름을 쓰고 색종이로 장식했다. 함께 지내면서 평소하고 싶었던 말들을 각자의 게시판에 써주기 위해서다. 쓰는 사람 이름을 밝히지 않을 것이니 진솔한 마음을 표현하기엔 좋은 기회일거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교수님을 비롯하여 정시에 출발한 문우님들이 도착했다. 친정어머니를 만나듯 서로 얼싸 안는다. 오라버니같이 품이 넓은 회장님이 땀을 흘리며 먹을거리들을 옮기니 대형 냉장고가 가득 찬다. 사람의 품위는 결코 외적조건만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 그것은 정직하고 배려 깊은 그 어떤 것, 타고난 인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없다면 왕이라도 전혀 품위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있다면 평범한 농부라도 품위가 넘칠 것이다.
갑자기 품위를 말하는 것은, 문인들과의 교제를 하면서 느끼는 평소의 생각이었는데 이번 MT를 통하여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이차가 이삼십년씩 되기도 하는 다양한 계층의 분들이지만 서로 간에 깊은 유대감을 느끼도록 정성을 다하여 대한다. 엄격하신 교수님이 하루쯤 살짝 흐트러지고 망가져서 함께 흐르니 감사했다.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절제하며 나이를 잊고 밤을 지새우며 어울려서 행복해 하시는 문우님들이 선하고 다정스러웠다.
한옆에선 묵은지에 고기 익는 냄새가 진동하고, 싱그러운 바람 맞으며 삼삼오오 무리지은 모습들이 정답다.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자 술기운 돌기 전에 공부해야한다면서 교수님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잘 다듬어진 파란 잔디밭 한옆 정자에 둘러 앉아 반딧불에 얽힌 어린 시절 추억담을 소재로 글감들을 발표했다. 한 종류의 반딧불이건만 경험담을 추억하는 글감들은 다양했다. 누구는 호박잎에 반딧불을 담고 다녔다 했고, 누구는 한 움큼 잡아 입안에 넣고 귀신놀이를 했다고 말했다. 반딧불의 정체 개똥벌레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기린 목을 하고 기다리던 후발대가 퇴근 후 달려와 도착하자 본격적인 여름밤이 무르익어간다. 한 문우님이 사각 정자를 빙 둘러 촛불을 밝힌다. 바람이 시샘하는지 촛불이 자꾸만 꺼진다. 포기하지 않고 촛대에 종이컵을 오려 씌우고 불을 붙이느라 애를 쓴다. 당신은 누구시기에 바람과 맞서며 그리도 불을 붙이려고 마음을 쏟으시나요. 신기한 꽃을 대하듯이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몰두하면서 다가가 마음을 풀어 놓으니 하룻밤이 짧기만 했다.
가슴이 꽉 차는 감정의 북받침과 마음에 뭉클한 울림과 공명을 느끼며 우리는 여름밤 풍경의 일부가 되고 한편의 시가 되어 출렁거렸다. 다정한 분들과 나란히 해먹에 앉아 맘껏 흔들리며 여고생들처럼 화음 맞추며 노래를 불렀다. 고운노래가 밤하늘에 울려 퍼지며 청천 하늘을 수놓으니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낙원체험이다. ㅇㅇ칠빵과 개발바닥이란 게임을 했는데 지나치게 웃고 엉키며 뒹굴어 턱이 아프다고들 했다. 누구는 평생 가장 많이 웃은 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래방음악에 맞추어 몸을 얼싸안고 흐느적거리다보니 새벽 세시가 넘자 한분 한분씩 잠이 들었지만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였는데 새벽단비 쏟아지는 소리에 일어났다. 모두가 잠든 고요함을 뚫고 뿌옇게 동이 트자 비에 젖은 새벽길을 산책했다. 빗길에 바닥 여기저기 널브러진 꿈틀거리는 파충류에게까지 마음을 기울이며 조심조심 걷자니 행복으로 가슴이 충만하다. 삶은 격렬하고 정신없는 놀이가 아니던가.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것, 위험을 감수하는 것,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늘 들끓었다. 오늘 쉴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여기에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 산과 강과 하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너그러움 뿐이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누군가 호감이 가는 이를 향하여 다가가 문을 두드리고 싶다고. 마음은 있어도 표현 하지 못하는 대상을 바라만 보고 있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아마 알 거다. 바람 좋고 햇살 좋은 자연 속에 묻혀 하룻밤을 지새우면 굳이 말하지 아니해도 얼마나 친밀해져 있는가를. 일박이일동안 행복했던 마음들은 미련으로 남겨두고 돌아오는 길, 어느새 그리움이다.
그리움이 따르는 걸 보니 좋은 행사였는가 보다. 그리움이 따르지 아니하면 이내 시들해지고 말 것이다. 일행차량이 길이 갈라지자 두 번 경적을 울리며 사라져간다. 더 바쁜 일보다 모임을 우선하여 차량봉사해 준 마음이 눈물겹다. 자연과 사람들에게 꿈처럼 젖어들었던 일박이일, 돌아오는 차안에서 곰곰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진한 영혼의 울림이 전해져온다. 영혼의 진동이 없다면 일회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제1회 반딧불로 쓰는 여름밤의 수필” 행사는 해가 거듭될수록 반딧불처럼 더욱 반짝거리며 발전하리란 예감이다.
첫댓글 부지런한 총무님 어느새 글을 한 편 썼네요. 고향의 꿈속 같은 잊지못할 여름밤이었습니다. 서로의 사랑이 밤 깊도록 어우러져 웃음꽃을 피우는 소리에 참으로 행복하였습니다.
준비하신 임원진님, 나눔의 봉사로 수고해 주신 회원님, 행사에 함께한 모든 회원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날의 여름밤처럼 늘 행복하세요.
반딧불 - 축제에 참석못하고 마음만 참석해 상상의 나래를 폈었는데 제월 총무님 글을 두세번 읽으니 마치 제가 주인공이 된것 같은 착각에 나름대로 행복했습니다.총무님 너무 멋진 글 표현 잘 눈여겨 보며 배우겠습니다. 감사한 선생님!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산과 산 사이를 넘나들며, 곡선으로 길게 누워 흐르는 강물과 만나 찐득한 더위를 식히니 달콤하다.
부지런 쟁이 임미옥 님! 물 만난 고기 처럼 유영하는 필치가 대단 하십니다.
같이 하지 못 한 아쉬움을 작가님의 글로 달래고 가네요.
다음 기회를 기다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훌륭하고 즐거운 행사가 있었네요.
부드럽게 부드럽게 행사를 잘도 표현하셨네요.
아이구~ 저도 가도 되는 자리인지는 몰라도 마음은 그날 그곳에 함께 하였답니다. 그날 저는 선대조 산소 사초를 하는 날이었답니다. 진심으로 참 좋았을꺼란 생각은 하였답니다. 임미옥 총무님께서 달관된 수필로 이렇게 자서히 발표해 주셔서 참석하지 못했던 문우들이 참 고마워 할겁니다. 참 고맙습니다. 푸른솔 문학 작가회 회이팅!! 교수님 그리고 장란순 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참가는 못했지만 글 속에서 풍경이 그려집니다. 반딧불이 반짝이는 여름밤! 그리운 고향 풍경입니다. 함께하신 님들의 넉넉한 마음이 수필의 소재이지요, 좋은 소재도 찾고, 친목도 도모하는 즐거운 생사 축하드리며 생동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가슴이 꽉 차는 감정의 북받침과 마음에 뭉클한 울림과 공명을 느끼며 우리는 여름밤 풍경의 일부가 되고 한편의 시가 되어 출렁거렸다." 내면의 느낌이 전해지네요.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
'반딧불로 쓰는 여름밤의 수필'이라는 제목부터가 근사합니다. 여름 밤 문학을 토론하고 노래를 같이 부르면서 가졌던 친교의 시간 부럽습니다. 임선생님의 유려한 수필에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박이일이 잘 담겨 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글 속에서 영혼의 진동을 느낍니다 . 함께 하지 못한 자리라 더 그럴까요? 생동감있는 글속에서 사람냄새를 오랜만에 맡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일박이일동안 행복했던 마음들은 미련으로 남겨두고 돌아오는 길, 어느새 그리움이다."
아름다운 마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참으로 초 스피드 입니다. 어찌어찌하다 한발늦었습니다 그려
"신기한 꽃을 대하듯이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몰두하면서 다가가 마음을 풀어 놓으니 하룻밤이 짧기만 했다."~ 즐거움을 함께한 행복~~ 감사! 감사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반딧불과 함께하는 문학의 자리가 정말로 아름답게 보입니다. 참석은 못했어도 생생한 글속에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고맙습니다.
너무나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그날의 풍경들을 어찌 이리도 잘 표현하여 주셨는지요. 영원히 기억될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2회 3회 4회...이어지는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진행하여주시느라 수고 많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자연과 사람들에게 꿈처럼 젖어들었던 일박이일, 돌아오는 차안에서 곰곰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진한 영혼의 울림이 전해져온다. 영혼의 진동이 없다면 일회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 글속에서도 많이 행복해 보입니다. 안갔어도 갔다온 느낌입니다. 모처럼 많이들 웃으시고 유익하고 보람된 시간을 가지셨군요. 선한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인지라 더 그런것 같습니다. 자알 읽었습니다. 감사감사..
기행문을 읽으며 마치 나 자신이 그 속에 있는 듯, 내가 꿈을 꾸듯 단숨에 읽었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들... 그리고 꿈을 보듬은 사람들, 그들의 가슴엔 또 한 곳의 아름다운 지명이 명명되겠지요.
우리 총무님 수고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부럽기도 하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