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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楚漢誌) 2-73 (103)
《대주(代州) 평정》
"귀공은 어찌하여 말 같지 않은 말씀을 하고 계시오. 한왕은 워낙 관인대도(寬仁大度)하신 관계로,
만천하의 창생(蒼生)들이 그분을 부모님처럼 받들어 모신다오.내 아들이 천만다행으로 그와 같이
훌륭한 어른을 주군으로 모시게 되어, 이 어미는 항상 하늘에 감사하고 있다오.
만약 내 아들이 한왕에게 충성을 다하여 다소나마 공을 세운다면, 나는 공신의 어미로써
죽어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될 것이오.그것이 바로 사람의 도리이거늘, 어찌하여 구차하게
일시적으로 생명을 건지자고, 내 아들을 역적에게 항복하여 악명을 천추에 남게 하겠소.
귀공은 속히 돌아가셔서 내 아들에게 나의 뜻을 분명하게 전해 주시오."
왕릉의 어머니는 그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옆에 서 있던 호위병의 허리에서 단도를 낚아채더니
자기 자신의 가슴에 칼을 꼿고, 땅바닥으로 엎어지며 자살을 하는 것이 아닌가 ?
말릴 새도 없이 눈깜빡 할 사이에 벌어진 일로,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숙손통은 물론, 항우를 비롯하여
입시했던 호위병과 형리들도 미처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항우는 자신을 <역적>으로 몰아붙이며 눈앞에서 장렬하게 죽어가는 왕릉모의 광경을 보자
분통이 터져 올랐다. 그리하여,"저년의 시체를 당장 끌어내어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버려라 ! "
하고 무서운 호통을 내질렀다.그러자 옆에 있던 용저가 항왕에게 간한다.
"폐하 ! 저 늙은이의 죄는 백번 죽어 마땅한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노파의 장례를 예를 갖추어 지내 주게 되면, 왕릉이 그 은공에 탄복하여 결국에는
우리에게 귀순해 올 수있는 계기가 되겠사오나, 만약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 없애면, 왕릉은 원한이
골수에 맺혀 반드시 보복을 하려고 이를 악물고 덤벼올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장래를 생각하시어 노파의 시체를 고향인 팽성으로 곱게 보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항우도 그 말에는 수긍 되는 점이 있어, 노파의 시체를 팽성으로 보내 주도록 허락한 뒤에 숙손통에게
이렇게 말했다."귀공은 영양성으로 돌아가거든 왕릉더러 지금이라도 귀순하도록 권고해 주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나는 대군을 일으켜 왕릉뿐만 아니라 한왕 유방까지 모두 사로 잡아 목을 잘라 버릴 것이오.
유방에게도 나의 뜻을 분명하게 전하시오. 살고 싶거든 왕릉을 하루 속히 내게 보내라고 말이오."
그야말로 안하무인의 폭언이었다.항우는 막강한 힘을 가진 강자(强者)인지라 그가 총력을 기울여
공격해 온다면 한왕이 나라를 지탱하기가 어려울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기에 숙손통은 그와 같은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항우에게 다음과 같은 거짓말을 하였다.
"실상인즉, 한왕은 현사(賢士)들에 대한 태도가 이만저만 불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작부터 폐하에게 귀순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왕릉 장군 역시 평소부터
저와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하니 이번에 제가 돌아가게 되면 왕릉 장군과 상의하여
머지않아 폐하 앞으로 귀순해 오기로 하겠습니다.''항우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귀공도 그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니, 그야말로 고마운 일이오. 그러면 속히 돌아가
왕릉을 꼭 데려오도록 하시오. 그래 주면 귀공에 대한 대우는 특별히 생각해 주기로 하겠소."
항우는 숙손통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이번에는 한나라의 군사비밀을 알아내려고 이렇게 물었다.
"유방은 지금 병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기에 나에게 항복을 아니하고 버티는 것이오 ?"
숙손통이 대답한다."지금 한나라의 병력은 20만이 넘고, 대장만도 6,70명 가까이 있사옵니다. 게다가
무기와 군량도 풍부하게 가지고 있어 폐하께서 장기전을 펼치시면 불리하게 되실 것이옵니다.
이런 군사력과 군비가 있음에도 이번 전투에서 시종일관 수비 태세로 나오는 것은 그 나름대로
깊은 계략이 있기 때문이옵니다."항우는 그 말을 듣고 귀가 번쩍 틔이며 물었다.
"그 계략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실상인즉 한신이 위나라를 평정하고 나서, 지금 폐하가
부재중인 틈을 타서 팽성으로 쳐들어가 볼모로 잡혀 있는 태공과 여왕후를 탈환해 올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옵니다.그런 뒤에는 일단 영양성으로 돌아와 제(齊)나라와 연(燕)나라를 차례로
정벌하여 폐하를 오도가도 못 하도록 궁지에 몰아 넣을 계획을 꾸미고 있는 중이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유방과 한신이 그렇게도 엄청난 계획을 꾸미고 있단 말이오 ?"
"물론입니다. 한신이 팽성으로 쳐들어가면 그때에는 한왕도 정면으로 공격해 올 것인데, 전후방에서
일시에 공격해 오게 되면, 폐하께서도 이번만은 저들을 막아내기가 어려우실 것이옵니다.
그러니 속히 팽성으로 돌아가셔서 한신의 공격을 막아낼 태세를 미리 갖추어 놓으시는 것이
상책일 것이옵니다.""알겠소. 그러면 귀공과 왕릉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팽성으로 철군할 테니
빨리 다녀오시오."숙손통은 항우를 팽성으로 즉시 철수시키는 데는 실패하고, 부득이 영양성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항우의 공격을 지연시키는 데는 크게 성공한 셈이었다.
숙손통이 영양성으로 돌아와 왕릉 장군의 어머니가 처참하게 자살한 경위를 자세히 말해 주니,
왕릉은 미친 듯이 통곡을 하며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는다."항우란 놈이 내 어머니를 죽게 했으니,
항우는 나의 불구대천지 원수로다. 이제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항우를 내 손으로 죽이고야 말리라."
항우가 아직도 팽성으로 철군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장량이 진평을 불러 상의한다.
"항우가 한신 장군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하여 팽성으로 철수하고 싶어하면서도 숙손통(叔孫通)과
왕릉(王陵) 장군이 귀순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니, 우리는 우리대로 손을 써야만 할 것 같구려."
진평이 반문한다."손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항우가 숙손통의 속임수에
넘어간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울화통이 터져서 무섭게 덤벼올 것 같으니,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겠다는 말이오.""듣고 보니 과연 옳은 말씀이시옵니다.
그러면 어떤 대책을 쓰는것이 좋겠습니까?"
"나에게 비책이 있으니, 대왕 전하의 윤허를 받아 그 비책을 쓰기로 합시다."
장량은 한왕의 윤허가 내려지자 곧 전옥(典獄)을 불러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옥중에 있는 두 사람의 사형수의 목을 잘라, 성문 위에 높이 매달아 놓도록 하여라.
그리고 그 옆에는 방문을 써 붙이되, 숙손통과 왕릉이 항우와 내통을 하고 있었기에 이를 적발하여
두 반역자의 목을 베어 효수(梟首)한다는 사실을 자세히 써넣어라."
진옥이 장량의 명령대로 죄수 두사람의 머리를 베어 성문위에 높이 걸어 놓고 방문까지 써붙이니,
성안의 사람들은 효수형을 당한 죄수가 숙손통과 왕릉인 줄로 믿게 되었다.
이러한 소문이 널리 퍼져 마침내는 정찰병의 입을 통해 항우의 귀에까지 들어가니, 항우는 놀라움과
동시에 애석함을 금치 못했다.(저런저런, 숙손통과 왕릉은 틀림없이 나에게 귀순해 올 사람이었는데,
그들이 모두 효수형을 당했다니, 이런 애석한 일이 어디있단 말이냐... !
내가 이번 전투에서는 운이 나쁜 모양이니, 이제는 빨리 철수하여 팽성이나 굳게 지켜야 할 것이다 ... ! )
한왕은 항우가 철군한다는 소식을 듣고 장량에게 물었다.
"항우가 철군을 시작했다니 이 기회에 적의 후방을 공략하는 것은 어떠하겠소이까 ?"
그러나 장량은 고개를 가로 젖는다."지금의 우리 형편에서는 그런 때가 아니옵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지 마시옵고 때를 기다려 주시옵소서."항우가 팽성으로 돌아와 범증에게
영양성에서의 철군 과정을 말해주니, 범증은 땅을 치며 탄식하였다.
"숙손통과 왕릉이 귀순을 약속했다는 것도 말짱 거짓말이었사옵고, 두 사람이 효수형을
당했다는 것도 폐하를 속이기 위한 장량의 사술(詐術)이었음이 분명합니다."
항우는 범증의 말을 듣고서야 숙손통에게 속은 것을 깨닫고 땅을 치며 분노하였다
한신은 위(魏)나라를 깨끗이 평정하고, 위왕을 생포해 돌아와 한왕에게 승전 보고를 올렸다.
한왕은 한신의 전공을 높이 치하하며 말한다."그동안 장군의 노고가 너무도 크시오. 위나라를
평정하느라고 너무도 고생했을 터이니, 당분간 사가(舍家)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시오."
그러나 한신은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대답한다."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그러나 천하 통일의 대업을 생각하면, 신이 편히 쉴 형편이 못 되옵니다."
한왕은 그 말에 크게 감격하며 말한다."오오, 고마운 말씀이오.
그러면 장군은 이번에는 어느 나라를 평정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해 보구려."
한신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대답한다."위나라는 이미 평정했사오나, 그 옆에 있는 대주(代州)의
하열(夏悅)과 장동(張同)등은 아직 우리에게 항복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하니 조만간 그들을
평정할 계획이옵니다.""그들은 명색이 나라일 뿐, 조그만 현(縣)이 아니오 ?"
"그러하오나 성주 하열은 야심이 대단하여 지금 손보아 두지 않으면 후일 골칫거리가 되겠사오며
이들을 정벌함으로써 인근 작은 성의 성주(城主)들을 제압하는 효과를 거둘 수가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장군의 의향대로 하시오. 그 다음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소이까 ?"
"우선 대주를 평정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조(趙)나라를 점령하고,
그 다음에는 연(燕)과 제(齊)를 굴복시킨 연후에, 최종적으로 초나라를 격파하면,
대왕의 통일 성업은 완전히 성취될 줄로 아뢰옵니다."
한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이 꿈꿔왔던 웅대한 포부를 한신의 입으로부터 직접 듣게되자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장군도 잘 알고 있다시피, 나는 만천하를 하나로 통일하여
억조창생(億兆蒼生)에게 인덕을 골고루 베풀어 주는 것으로 일생의 목표로 삼아온 사람이오.
이같은 나의 포부를 장량 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장군도 이런 나의 뜻을 이처럼 잘 알아주시니
고맙기 한량없소이다. 그러면 수고스런 대로, 이번에는 대두의 하열과 장동등의 무리를 평정시켜
주기를 바라오."''분부대로 거행하겠사옵니다. 그러나 출발 전에 대왕께 재가를 받아야 할 일이
있사옵니다.""새삼스럽게 무슨 재가를 ...? ""서위왕 위표를 신의 마음대로 처단할 수가 없어,
이곳까지 생포해 가지고 돌아 왔사옵니다. 그러하니 대왕께서 위표에 대한 처단을 친히
내려 주시옵소서."한왕은 <위표>라는 말을 듣자 얼굴에 노기를 띠었다.
"위표를 생포해 왔거든 그자를 당장 이 자리에 끌어내 오시오.
내가 한신 장군을 대신하여 그자를 대장군으로 발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자가 맡은 직책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내가 초패왕에게 크게 패했던 것이오.그러나 나는 끝까지 그자를 관대하게 용서하고
고향에 보냈더니 나를 배반하고 군사를 일으켜 공격을 감행하였으니, 그 죄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오."
평소에는 관인 후덕한 한왕이었지만, 이때만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위표가 수레에 얹은 짐승 우리인 감차에 갇힌 채 한왕앞으로 끌려 나오자, 한왕은 눈을 부라리며
위표에게 호통을 친다."네 이놈 ! 너는 56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싸우러 나가서 싸움은 아니하고
주색에 미쳐서 돌아가다가 30만 군사를 잃어버렸다. 내가 천운이 좋았길래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네 놈 때문에 깨끗이 망할 뻔 하였도다.그래도 나는 네 놈을 죽이지 아니하고
고향에 돌아가 근신하게 했거늘, 네 놈은 그런 은공을 모르고 이번에는 나를 배반하려고 했으니,
네 놈의 죄는 결코 용서할 수가 없노라, ....여봐라 ! 저 놈을 당장 끌어내어 참형에 처하라 ! "
감차에 갇혀 있는 위표(魏豹)는 고개를 수그린 채 얼굴를 들지 못했다.
그 순간, 80객 노파인 위표의 어머니가 허겁지겁 영문 안으로 달려 들어오더니, 땅에 엎어지며
울면서 한왕에게 호소한다."대왕 마마 ! 제 자식놈인 위표의 죄는 백번 죽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하오나 저의 가문이 오대째 독자(獨子)로 내려오는 관계로, 저 아이가 죽으면 조상의 제사를
지낼 사람이 없게 되옵니다.자비하신 대왕님께서는 그런 점을 고려하시어 저 놈의 죄를 제가
대신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이 늙은 어미가 두 손을 모아 비옵나이다."
한왕은 늙은 어머니의 간절한 호소에 갑자기 눈시울이 후끈 달아올랐다."위표는 듣거라 !
네 놈은 어머님을 뵙기에 부끄럽지 않느냐. 내, 네 놈을 마당히 참형에 처해야 옳을 일이로되,
늙으신 어머님의 심정을 고려하여 특별히 살려 줄 테니, 집에 돌아가거든 노모에게 효양(孝養)을
극진히 하도록 하여라.그리고 형리는 위표를 풀어 주고 고향으로 보내주되, 그간의 관직은
모두 박탈하고 다만, 고향에서만 살 수 있도록 해 주어라."
위표 문제가 한왕에 의해 결말이 나자, 한신은 군사들을 이끌고 대주 정벌에 나섰다.
이때 대주 성주(城主) 하열(夏悅)은 대장 장동(張同)과 함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좁은 영토 안에서 거드름만을 피우고 있었다. 말하자면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는 날 정찰병이 달려와,"한나라 장수 한신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우리를 치려고
30리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중입니다."하고 알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하열과 장동은 세상 정세에 워낙 어두운 관계로, 한신의 내습을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뭐야 ? 한신이라는 자가 우리나라를 치려고 군사를 이끌고 왔다고 ? 한신이란 자가 얼마 전에는
위표를 생포해 갔다고 하더니, 이제는 마음이 교만해져서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일이다."하열은 한신을 우습게 여기며 장동에게 말한다.
"한신이란 자가 멀리서 오느라고 군사들이 무척 피로해 있을 것이오. 허니 그들이 피로를 회복하기 전에
우리가 선수를 쳐서 지금 당장 때려부수는 것이 어떻겠소 ?"장동이 즉석에서 찬성한다.
"참으로 좋으신 생각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때려부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장군은 성을 지키고 계시오. 나 혼자서도 충분히 때려부술 수가 있으니...! "
하열은 혼자 싸워서 승리해 보임으로써 자신의 용맹함을 장동에게 과시해 보이고 싶어 이렇게 말을 하고,
2만 군사를 거느리고 혼자서 일선으로 출동하였다.
한편,한신은 대주성 30리 밖에 진을 치고 난 뒤 모든 장수들을 불러 말한다."하열과 장동은 병법은
서툴지만 용기는 누구 못지 않게 대단하여, 저들은 반드시 우리에게 먼저 덤벼 올 것이오. 그러면 우리는
작전 계획을 단계적으로 펼쳐서 저들을 생포해 버리기로 합시다."장수들이 고개를 기울이며 말한다.
"어떤 방법을 쓰면 생포할 수 있을지, 원수께서 명령만 내려 주시면 저희들은 그대로 실천에 옮겨
나가겠습니다.""조참 장군은 일군을 거느리고 나가 적과 싸움을 시작하고, 관영 장군과 노관 장군은
좌우에 매복을 해 있고, 번쾌 장군은 그보다 훨씬 후방인 산 그늘에 잠복해 있으시오.
조참 장군이 한바탕 싸우다가 거짓으로 쫒겨 오면, 저들은 반드시 맹렬하게 추격해 올 것이니,
그때 추격대 병력이 중간 쯤 지날 때에 관영 장군과 노관 장군은 좌우에서 협공하여 적을 혼란하게
만들도록 하시오.
그래서 적들이 산속으로 쫒겨 들어가거든 그때 번쾌 장군이 나서서 적들을 일망 타진 해 버리시오."
모든 장수들이 명령을 받고 작전 전개지로 떠나가 버리자, 한신은 정병 5백 명를 데리고 산골짜기에
깊이 숨어 있었다.이윽고 오시가 되자, 하열은 2만 군사를 거느리고 한신의 진지로 육박해 왔다.
그러면서 적진을 향하여 앞서 달려 나오며 큰소리로 외쳐대었다.
"천하의 비겁자 한신아 ! 용기가 있거든 싸우러 나오라."
그러자 적진에서 한 장수가 말을 타고 달려 나오는데,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선봉 대장 조참이었다.
하열은 <조참>이라고 쓰인 대장 깃발을 보고 소리를 크게 내어 웃는다."네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구나.
한신이라는 자는 내 이름만 듣고도 겁이 나서 네 놈을 대신 내보낸 모양이로구나. 이왕 나왔으니
어디 내 칼 맛을 보아라 ! "하열은 이렇게 외치기가 무섭게 조참에게 번개같이 덤벼들었다.
하열과 조참은 정면으로 싸우기 시작했다.하열의 무예 솜시는 보통이 아니었다.
조참은 10여 합을 싸우다가 거짓으로 쫒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하열은 신바람이 나서 맹렬히 추격하기 시작했다.
"적들이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도록 뒤따라가 무참히 베어 버려라 ! "
하열이 조참을 맹렬하게 추격할 수록 맹렬하게 쫒겨간다.이렇게 20여 리쯤 추격할 무렵에
홀연 좌측에서는 관영의 군사들이 들고 일어나고, 우측에서는 노관의 군사들이 들고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화살을 빗발치듯 쏘아대니, 하열의 군사들은 크게 당황하고 흩어지며 낙엽처럼 쓰러져 가고
있었다.(이크 , 큰일났구나 ! )하열은 그때서야 곤경에 빠진 것을 깨닫고 말을 돌려 도망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도망을 치던 조참까지 뒤로 돌아서 삼면으로부터 총공격을 퍼부어 오니, 도망을 치려 하여도
빠져 나갈 곳이 없었다.하열은 궁여지책으로 산을 향하여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해는 이미 저물어 서산에는 달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하열은 부하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우선 나 살기에 바빴다. 그는 달빛을 등불 삼아 어두운 산속으로만 몸을 숨겨 들어갔다.
이렇게 10여리 쯤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니, 별안간 어두운 숲속에서 수많은 횃불이 일시에
피어 오르더니 한떼의 군사들이 함성을 울리며 일시에 일어서는 것이었다.(아이쿠 깜짝이야 ... ! )
하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도 잠깐,호랑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었다.
"네 이놈 ! 나는 무양후(舞陽侯) 번쾌 장군이다. 나는 네 목을 가져 가려고 이곳에서 오래 기다렸노라 !"
하며 하열의 앞으로 썩 나서는 것이 아닌가?
하열은 번쾌의 고함소리에 혼비백산하여, 몸을 돌려 반대편 골짜기로 천방지축으로 달려 나갔다.
바위를 뛰어넘고 산봉우리를 달려 넘으니, 그처럼 극성스럽던 번쾌 부대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한다.
하열은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쉬며,"휴~.. 이제야 사지(死地)를 벗아났구나 ! "
하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말을 멈추었다.그러나 이게 웬일일까 ?
하열이 가쁜 숨을 미처 돌리기도 전에 5백여 명의 군사들이 별안간 숲속에서 햇불을 들고 자신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더니, 자신이 손쓸 틈도 없이 밧줄을 몸에 걸어 말에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하열(夏悅)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결박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한 사람의 장수가 말을 타고 하열의 앞에 위연한 자세로 나타나더니,
"나는 네가 우습게 여겨 오던 한신 이다... 여봐라 ! 우리의 계획대로 대주성 성주를 생포했으니,
이제는 이자를 데리고 모두 본진으로 돌아가자."
우물 안 개구리 하열은 아무 할 말이 없어 고개를 수그리며 한숨만 쉬었다.
한편, 성을 지키고 있던 장동은 날이 어두워도 성주 하열이 돌아오지 않자 크게 초조하였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성주께서 큰 곤경에 빠진 것이 분명하구나 ! )
이렇게 생각이 된 장동은 5천여 군사들과 함께 횃불을 밝혀 들고 하열을 찾기 위해 성을 나섰다.
2-7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