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정교회 세계엔 2개의 거대 제국이 이었다.
한쪽은 모든 정교인들의 황제이자 신의 대리인이던 비잔틴 황제
다른쪽은 모든 루스인의 왕이자 크로아티아,헝가리,폴란드의 왕이었던 루스왕이었다.
이들은 총 세번의 국경분쟁이 일어났는데 이 세번 모두 루스왕국이 이김으로써 비잔틴 내부의 분열은 가속되었다.
12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11세기엔 오랜 황제가문이었던 듀카스 가문이 몰락했으며
새로운 황제가문이 들어서게되었다.
이들은 부족한 정통성을 채우기위해 루스왕의 공주들과 혼인을 계속 추진함으로써 양국간의 갈등은 축소되는듯했다.
이 결혼동맹이후 발칸반도엔 루리크 가문의 일원들이 속속 공작위를 차지하며
발칸반도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지배권이 점점 약해졌다. 발칸반도에 아직 남아있던 듀카스 가문역시
류리크가문과의 혼인을 통해 저들과 결합하는 쪽으로 선택했을 정도였다.
점점 발칸반도는 루스인들로 채워져갔다. 이 일의 정점을 찍은게 루스왕자와 비잔틴 공주와의 결혼이었다.




1256년 몽골인들이 다시 나타나 국경을 휩쓸었지만 이번에 그들은 별 수확을 얻지못하고 패퇴하였다.
-루스 왕국사 17권

한편 루스땅옆에 있던 스칸다비아 영토에 있던 스웨덴이라는 국가가 패권을 잡아갔다.
이에 루스왕 콘스탄틴 4세는 둘째아들을 핀란드 공작에게 장가를 보냈다.
그리고 1284년
정교회의 통합이 이뤄진 날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매우 화가났다.
수도였던 에데사에 살았던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틴 5세를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그의 즉위식에서도 불만을 표했었다.
이러한 불만은 그리스 전역으로 번져가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나타났다.
그리스의 황제가 된 루스인 콘스탄틴 5세는 이러한 모습에 매우 실망했다.
젊은 나이에 루스왕에 오른 그였지만 그는 이미 수많은 성경과 그리스인이었던 어머니이자 여황제였던 그녀에게
그리스인에 대한 사랑과 황제의 의무를 배웠기에 그리스인에 대해 좋은 감정을 나타냈으나
이후로 그는 그리스인과 애증의 관계를 나타내기시작했다.
-콘스탄틴 5세의 생애. p.129

어김없이 몽골인들이 국경을 어지럽히자 콘스탄틴 5세는 군대를 보내었다.-루스 왕국사 19권



무려 5년간의 내전끝에 모든 그리스인에 대한 반란과 탄압은 끝이 났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황제이자
루스인인 콘스탄틴 5세를 어쩔수 없이 받들기로 결정했다.
콘스탄틴 5세는 반란군 지도자들을 모두 용서했지만 몇몇은 영토와 재산을 몰수해 황제의 재산에 넣었다.
그들에게서 강탈한 땅중 하나인 아드리노폴리스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200년 넘게 루스왕국의 수도였던 키예프는 이때부터 몰락하게된다.
10세기. 즉 이때로 부터 300년전 키예프 루시의 스뱌토슬라브의 꿈이
그들의 후손들에게 의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황제는 그리스인에 대한 관용과 사랑을 지키겠다고 서약했으며
그리스 귀족 여인과 결혼을 선포한다.
-루스왕국사 19권.
첫댓글 흠 저 몽골인을 보니 꽈찌쭈가 연상되네요
후덕한 짜르
보고있는데 은근 재밌내
잘보고있음요ㅎ 잃어버린 왕국사는 어디에 ? 데헿
앙돼! 그리스인의 로마제국이 야만스러운 루스인에게 넘어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