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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원천식의 남도 기행 제2부
앞에 쓴 글에 연이어 이야기를 풀어 나가겠습니다.
제4일째 기행(8월 13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다시 여행 준비를 하고, 본격적인 남도 기행을 나섰다. 이날 아침 조영태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나 혼자 광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광주에 도착하니 어느새 오후 12시경이 되었고 시내에는 늦장마 비가 주룩 주룩 내리고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 개인적으로 광주에 소재해 있는 光技術院에서 LED 사업단장인 유영문 동문과 만날 약속이 되어 있어, 광기술원에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도착한 뒤 점심을 먹고 나서도 광기술원에 방문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일러,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다가 시간보내기에 제일 만만한 것이 서점이라 서점에 들어가 시간을 떼우기로 했다.
그래서 고속버스 터미널 안에 있는 서점에 들려 책을 둘러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몇 권의 책을 고르고 신간 책들의 내용을 대충 훑어 보고 나니 어느덧 5시가 넘어서고 있어, 이젠 시간이 충분히 되었다 싶어 광기술원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 12회 동창인 유영문 동문이 근무하고 있는 한국광기술원(KOPTI: KOrea Photonics Technology Institute)을 소개해 보면, 한국광기술원은 광주지역의 ‘주력전략산업’이라 할 수 있는 ‘光産業’을 연구, 개발하기 위해 설립된 정부출연기관이다. 또한 광산업은 잘 알다시피, 최첨단 과학기술을 토대로 향후 21세기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초석이 될 산업으로서, 아주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중 하나이다.
한편 유영문 동문과 내가 근무하는 산업연구원과는 업무적으로도 상당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그동안 유영문 동문도 우리 연구원에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고, 특히 IT 분야 및 전자산업 연구담당자들과는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 마침 내가 남도 기행을 하는 김에 겸사 겸사해서 이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찾아 가니 아주 반가와 해 오랜 만에 다시 한번 우정을 나누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먼저 나는 광기술원에 도착하자 일단 광기술에 관한 현장견학을 하고 싶어, 최첨단 LED 기술 연구 및 제작 공정을 보여달라고 유동문에게 부탁하였는데, 흔쾌히 승낙해 주고 젊은 박사급 연구원에게, 서울에서 온 나의 안내를 지시해 주어 LED 연구 현장을 꼼꼼히 관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매우 유쾌한 경험을 갖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그냥 한가로이 놀러 온 친구에게 바쁜 중에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은 유영문 동문에게 감사의 정을 표한다.
우리 동창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광산업에 대해 부연 설명하면, LED는 흔히 發光 다이오드(Light Emitting Diode)라고 하는데 한 마디로 전류가 흐르면 빛(光)을 방출하는 다이오드의 한 종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 동문은 한국 광기술원에서 이 LED사업단의 단장직을 맡아 광산업분야에서는 국내에서는 아주 핵심적인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어쨌든 이 친구의 배려로 현장 견학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인근 일식집으로 갔는데, 유 동문이 광주에서 현재 근무하고 있는 우리 경희고 후배들과도 함께 만나자고 내게 제안해 즉석으로 ‘在光州 慶熙高’ 동창회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여기 광주에 서 근무하고 있는 후배 두 분과 합석을 해서, 술 한잔을 하는 자리가 ‘번개미팅’처럼 마련되었다.
두 후배중 한 후배는 우리가 3학년 때 1학년이었던 14회였고, 또 한 후배는 15회였는데, 모두 전자산업 분야에선 전문가였고 베테랑들이라, 업무적인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다가, 화제는 자연스레 고교 시절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한참 웃고 떠들다 보니 술도 고프고 배도 출출해 식사를 시켰는데, 나는 우리 연구소에서 나와 같은 부서(국가균형발전연구센터) 직원인 광주지역담당 연구자가 최근 내게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좀 아는 척 하고 싶어 종업원 언니에게 ‘三色酒’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한 마디로 삼색주란 하얀 색(소주), 붉은 색(복분자주), 노란 색(백세주)의 三色이 술잔 속에서 칵테일되어, 영롱하게(?) 한동안은 잘 섞이지도 않고 제 색깔을 내면서 빛나는 술인데, 광주에선 빛고을주, 월경주(^^)라고 한다고 하면서 종업원 언니가 깔깔 웃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삼색주 제조하는 과정을 좀 보여 달라고 했더니, 오히려 우리에게 먼저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 맞추어 보라는 것이다. 틀리면 벌칙이 있다나, 어쩧다나.그래서 우리는 나름대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는데, 모두 틀리고 말아 한참을 웃었다.
결국 만드는 과정은 별것도 아니고, 소주와 복분자주를 먼저 섞은 뒤, 조금있다가 이것을 백세주를 미리 따라 놓은 술잔 속에 섞는 것 같았다(사실 아직 완전한 제조과정은 잘 모름).
아뭏든 ‘빛고을주’로 몇순배 돌면서 얼큰하게 먹다 보니, 시간이 꽤 가서 인근 노래방으로 옮겨 한잔 더 하고 꿈나라로 들어갔다.
제5일째 기행(8월 14일)
이 날도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담양의 소쇄원(瀟灑園)이란 곳이 대나무도 많이 우거져 있고, 고즈녁한 풍광이 아주 뛰어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갑자기 이 곳에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유영문동문에게 마침 광주에 온 김에 소쇄원에도 한번 가 보려고 한다고 했더니, 소쇄원까지는 왕복 택시비도 상당히 나올 거라면서 자기가 부하 직원에게 부탁해 승용차를 한대 배차해 줄테니, 갔다 오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공무로 출장온 것도 아니고, 단순히 개인적으로 南道에 여행을 온 것 뿐인데 미안하기도 해, 완곡히 거절했지만 물보다 진한 경희 고등학교 친구의 우정어린 배려를 받아 들여 가 보기로 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소쇄원으로 출발.
소쇄원은 약 480여년 전에 ‘梁山甫’라는 분이 당시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은둔생활을 하면서 3대에 걸쳐 약 70여년 간에 걸쳐 만든 정원이라고 한다. 이 소쇄원은 우리나라 남도의 대표적인 멋진 조경을 갖춘 정원으로서, 대나무숲 속의 정자가 高雅하고 隱逸한 선비의 지조와 멋을 보여주는 상징과 같은 곳이다(소쇄원의 아름다운 사진 등을 보고 싶으면 www.soswaewon.org참고해 보세요. 사진찍어 온게 없어서리^^).
이 곳 정자에 앉아 비가 내리는 정원을 바라 보노라니, 仙界에 와 있는 듯, 아무튼 우리 옛 선비의 고상한 풍모와 기상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1시간 남짓 이 곳을 배회하다가 소쇄원을 나와 광주버스터미널로 직행.
여기서 나는 안내해준 광기술원 직원과 헤어지고 완도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완도에 도착하니, 오후 3시경이 되어 나른한 시골 읍내 풍경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읍내를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바닷가로 나오니 생각보다는 바닷물도 얕고 배도 얼마 없고 재미도 없어 여기 완도서 하루밤 자느니, 차라리 넓은 大處(^^)로 나가자고 마음먹고 목포로 가는 버스에 올라 탔다.
완도에서 목포까지는 약 2시간 거리. 버스에서 졸다 보니 어느새 버스는 목포시내로 접어들고 있었다. 멀리 유달산의 산자락이 보이고, 밤으로 접어드는 목포시내의 화려한 불빛을 보니, 역시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다소 아쉬웠던 것은, 내가 약간만 일찍 목포에 도착했더라면 목포시에서 운용하는 목포관광코스(저녁 시내관광 투어코스, 요금은 3천원임)를 이용해 볼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시간이 빡빡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이 투어에 참여해 보진 못했지만 참고로 목포시에서 운용하는 목포문화기행(당일코스)를 하나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코스는 A,B,C,D 코스 등 꽤 많이 있음).
C코스의 경우, 노적봉 → 오포대 → 목포시사 → 보광사 짓샘과 석조미륵 → 마애불 → 목포 문화원 → 이훈동 정원 → 구 동양척식 회사 → 유달산 순환로비 → 유달산 표비 → 충무공이순신 동상→ 목포의 눈물 노래비 → 유선각 표비 → 철거민 이주기념탑 → 차없는 거리(루미나리에 거리)로 이어진다.
나는 목포역 앞에 새롭게 단장된 차없는 거리(일명: 루미나리에 거리. 이 거리는 최근 서울 청개천 복개공사 이후의 명동앞 다리 부근처럼 아주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불빛이 몇백미터 이어지는, 멋진 청춘의 거리이면서 낭만의 거리였음)를 돌아 보며, 거리를 걷다 보니 내 발걸음은 어느새 목포국제해운 터미널에 도착해 있었다.
터미널에 들어가 보니 상하이로 가는 배가 있었는데, 나는 여권도 없고(물론 안가지고 왔으니까 당연히 없지^^) 비자도 없으니, 이 배를 타 볼 수는 없지만 만약 준비만 해왔다면 그냥 이 배를 타고 상해로 가 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았다. 뱃삯은 1등석은 엄청 비쌌지만 3등석은 상해까지 12만원 수준.
밥은 3끼는 공짜로 제공해 준단다(목포에서 상해까지 여행일정은 이틀이 걸려, 밥만 6끼를 먹어야 함). 이 국제 터미널 앞에 와서 보니, 터미널 앞에는 많은 오퍼상들과 참기름이나 값싼 중국제품을 수입해서 파는 영세업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상해로 가는 이 배는 아마 보따리상(따이꽁, 帶工)들이 상당히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는데, 보따리상들은 목포에서 상해까지 한번 왕복만 하면 1주일도 금방 지나가 버리겠지.
나는 목포국제해운터미널을 나와 부두가를 거닐다가 꽃게탕과 맥주 한잔으로 피로를 풀고, 인근 모텔에 들어 잠 자리에 들었다.
6일째 기행(8월 15일)
날이 밝자 나는 아침 일찍부터 목포 연안해운터미널로 가서, 섬으로 가는 배편을 알아 보았다. 시간만 좀더 있었더라면 목포에서 제주도로도 가 보고 싶었으나(요금 2만 3천원,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함. 승용차도 배에 싣고 갈 수 있음 ), 다음날에는 출근을 해야 하니까 너무 무리를 할 순 없고 비교적 가까운(?) 흑산도나 들어갔다 나와야겠다고 마음먹고 흑산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배에는 흑산도와 홍도로 가는 손님들이 꽉차 역시 바캉스시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
15년전쯤 영태와 나는 배를 타고 홍도에 들어가 이틀인가 자고 나온 적이 있었는데 흑산도로 가는 船上에서 문득 그 때가 생각나, 그 패기 넘치고 희망에 부풀던 젊은 시절로 다시 한번만 되돌아가 보고 싶었다(나이를 먹다보면 왜 자꾸 옛 일만 생각나지?).
섬에서의 휴가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무미건조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뚝 제방이나 선창가를 찾아 마을 노인네들과 이런 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랑 고기잡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도 재미있고, 드넓은 밤바다를 바라보며 횟집에서 소주 한 잔 하는 것도, 섬을 찾는 나그네 만이 느낄 수 있는 정취라 하겠다.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니 배는 어느새 흑산도에 도착. 2시간 남짓 걸리는 걸 보면 목포와 흑산도는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닌 듯 하다. 흑산도에서 바닷내음을 맡으며 밥을 먹자 마자 귀경해야 하니까 시간도 별로 없어 곧바로 목포로 출발.
다시 파도와 물새가 나는 것을 바라 보며 갑판 위에서 서성이다 보니, 어느새 배는 다시 목포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우선 귀경 시간도 빡빡해, 목포역으로 닿자 마자 서울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기차표를 끊고 나니, 이 번 남도기행이 5박 6일이라는 상당히 긴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는 허전함과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기분은 여행을 하다보면 늘 느끼게 되는 기분이니 어찌하리오.
아무튼 고단한 몸을 이끌고 기차에 올랐는데, 이번 남도기행을 내 나름대로 되새겨 보면 시행착오(완도로 가선, 그다지 볼거리가 없어 재미없었음)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론 재미있고 알찬 여행이었다.
(* 앞으로 기회가 되면 우리 동창들과 함께, 경치 좋고 먹을 것도 많은 남도에 한번 다녀 옵시다그려.)
첫댓글 천식이 글잘쓰는데 그동안 겸손---- 나도 얼마전 KTX 타고 목포로, 거기서 흑산도로, 보성과 율포를 거쳐 광주,담양,전주로 해서 휘리릭 전라도를 한바퀴 돌았었는데 원박사덕에 한번더 돌아온 기분이네--- 아! 좋다
광주에 동행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유영문군이 대전 집으로 퇴근하는 날, 삼례에 들르게 해서 한 잔 같이 하면 어떨까?
좋다. 한번 기회를 만들어 보자.
그래도 혼자 하는 여행 보다는 친구와의 동행이 더 재미있지 않나 ?
천식이 글 보며 나도 조만간 혼자서 떠나봐야겠단 생각해본다 좋은 여행과 영태,영문..또 후배들과 만난 멋진 여행이었던것 같다 넘 좋다!
혼자 느닷없이 떠나는것도 괜찮은거 같다....날을 잡아 외국으로 가보자
천식가이드(?)의 주최로 몽골여행 함 주선해봐라. 경산회주최로.....응?,....덕영아..
천식아, 삼춘말 들었니? 삼춘, 몽골전에 먼저 가야할곳이 있어요....어디냐하믄...에~~~~...우즈벡..
몽골이나 우즈벡키스탄^^^^. 모두 좋지요.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역사문화기행. 참 좋은 이벤트입니다. 그런데 각자 시간이 어떨지--. 아무튼 저도 여행이라면 자다가도 벌떡(?)일어나는 사람이니까 밑에 회장님 말슴대로 한번 추진해 보겠습니다.
몽골이나 우즈벡키스탄^^^^. 모두 좋지요.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역사문화기행. 참 좋은 이벤트입니다. 그런데 각자 시간이 어떨지--. 아무튼 저도 여행이라면 자다가도 벌떡(?)일어나는 사람이니까 밑에 회장님 말슴대로 한번 추진해 보겠습니다.
천식이를 떠올리면 잘 익은 막걸리가 떠 오르고...그래서 남도 기행은 더욱 어울리는 여행이 되었을 것 같다. 5박 6일간 멋진 여행 좋았겠구나. 나 또한 네 글로 인해 추억에 잠겨 잠시 눈을 감는다.
명진아. 어때? 미국이나 캐나다 여행은 잘하고 있지? 네 사진이나 글을 읽노라면 나도 그 곳에 가잇는듯하이.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캐나다도 참 아름다운 나라라는 생각도 들고. 박명진 동문, 조만간 귀국하면 한번 가까운 산에라도 한 번 가보자꾸나.
남도 기행에 ... 해남에 있는 김동식에게도 들리면 좋겠지... 천식아 잘 읽었다.. 고국의 정취가 확 풍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