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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신라,가야토론방 대야성 및 대야주가 진덕여왕 2년(648년)에 신라에 의해 회복되었다고 판단 하는 이유(추가)
소호금천씨 추천 0 조회 479 10.02.04 12:09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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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2.04 18:11

    첫댓글 자신의 의견 역시 개인 추측에 불과하면서 상대방에게 고고학적 근거를 대라니 이건 심히 난감하군요... 자신의 의견은 추측이면서 반론에 대한 재반박의 여지만으로 자신의 의견이 근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마셨으면 합니다. 지금 본문은 ' 내가 볼 땐 이 상황이 확실하니, 신라가 대야성을 함락한 상황이라고 봐야 하지 않느냐 ' 인데; 네, 그 상황이 전혀 설득력이 안 느껴지고 공감이 안됩니다. 본기나 열전이나 647~8년 주변 전후 전쟁 기사들이 상세히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그 ' 보복전 ' 만 빼고 본기와 열전 내용은 그대로 다 매치가 됩니다. 자, 뭉텅이로 몇년씩이 빠진 것도 아니고

  • 작성자 10.02.04 20:10

    말뜻을 전혀 못알아들으니 역시 답변의 가치가 없군요...차라리 님께서 본문으로 정리해 주시죠.

  • 10.02.04 20:51

    말뜻을 다 알아듣고 반박했건만, 이런 반응이라면 본문을 써도 마찬가지겠지요~ 오히려 못알아들은 쪽이 어느 쪽인지를 생각해 보세요. 덧붙여 ' 합리적인 설명과 추론 ' 하고 ' 함부로 당연시하는 개인의 믿음 ' 을 혼동하지 말기 바랍니다.

  • 10.02.04 18:27

    그 ' 전쟁 기사 ' 가 없다는 겁니다. 백제가 20여 성을 빼앗기고 3만여명까지 잃은 관산성 전투급 패배 (어쩌면 그 이상이겠군요) 를 당했다면, 그 다음해에 또 도살성 전투가 그렇게 쉽게 일어난다고 보세요? 본기에도 적혀 있네요~ 의직의 공세를 막고 역습해서 추격하여 병사들을 거의 다 죽였다고.... 그러한 이후 추격전이 크게 과장되어 적혀 있는 것이 열전의 내용이라 봐야지요.. 더군다나 651년 백제가 입조했을 때도 당이 백제에게 말렸을 정도라면 (이미 그 전 전투의 신라 승전과 태평송을 바친 이후) 신라가 그렇게 20여 성과 3만여명을 죽일 정도의 공세로 전환될 정도면 신라가 뭐가 아쉬워서 당에게 태평송까지 바쳐가며

  • 작성자 10.02.04 20:16

    이 부분도 님의 추측이니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니군요..뭐 본문과 님의 댓글을 비교하면서 본 내용을 보시는 여러 회원님들이 판단하시겠지요!

  • 10.02.04 18:26

    " 백제좀 쳐줘요 " 이럴까요? 그리고, 말씀하신 661년 이후 거창과 함양에서의 부흥운동시기의 혈전은, 661년에 신라가 대야주를 접수한 이후 거창과 함양 쪽에 머물러 있던 부흥백제군 병력이 벌인 혈전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데요? 본문대로, 신라는 660년까지 잘 참고 한방 모아 당과의 공동작전이 성사되자 ' 백제의 도성 ' 을 쳤습니다. 왜 그들의 포커스가 대야성에 맞춰져 있었을 거라고 단정합니까? 아니, 대야성에 맞춰져 있었다 한들, 김춘추가 이를 갈고 복수를 다짐해도 대야성을 쉽사리 뺏지 못한 이유는, 그만큼 그 당시 신라 단독만으로는 백제에 비해 수세였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당에도 건너간 거 아닙니까?

  • 작성자 10.02.04 20:12

    그렇다면 대야성은 언제 신라에 귀속되었지요?

  • 10.02.04 20:26

    제가 ' 대야성은 어느 시기에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 귀속되었다 ' 라고 밝혔습니까? 대야성의 신라 귀속을 저는 역시 661년의 대야주 설치에 관련해 보고 있습니다만, 여타 다른 그림이야 다양하게 제시할 수 있죠.... 문제는 앞뒤가 맞고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있느냐지요~ 제가 말하는 건, 소호님의 대야성의 신라귀속의 논지가 정황 흐름상 공감이 안되어, 그럴듯하다고 여기기엔 섣부른 일반화라는 지적을 하는 겁니다.

  • 작성자 10.02.04 20:35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뭐지요?..대야성이 백제의 것이든 신라의 것이든 분명히 어느 시기에 어느쪽으로 귀속은 되어야지요..그래서 나름대로 피력한 것인데 그것을 반론할려면 님이 언제 귀속되었는지를 분명하게 찾아서 이런 연유로 다르다라고 반론 하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이도 저도 아니면 차라리 가만히 계시고 그냥 님혼자서 생각하셔야지요..남의 주장에 자신의 답은 없고 자신이 이해가 안된다 하여 그냥 딴지만 거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잖아요?..문제는 님이 공감이 안되면 전부 공감이 안된다는 법칙이라도 있는지요?

  • 10.02.04 20:49

    말했잖습니까? 661년 대야주 설치와 더불어 귀속된 것으로 보는 게 적어도 ' 소호님 펼치는 논지 ' 보다는 더 자연스러운 그림이라고....... 적어도 660년 전까지 백제가 대야성을 털린 일은 없고, 다만 그 주변 일대에서 광범위한 격전이 벌어졌을 거라구요... 땅따먹기 게임마냥 현대 영토 국경선 가르듯이 언제는 여기쯤에서까지 그런 걸 낱낱이 전쟁사로 추정해 밝힌다는 게 이 사료 적은 고대사 논쟁에서 의미나 큰 공신력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다만, 거시적으로 대야성이 648년에 신라로 넘어가고 공세가 뒤바뀔 정도의 저 논지는, 642년부터 660년까지 당에 구원을 요청하는 신라의 수세 정황상 설득력이 없다는 거 아닙니까~

  • 10.02.04 21:06

    이미 토론을 그만두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평행선을 달리면서 서로에게 이견만 제시하고 합의점을 못본다면 더이상 지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네요. 이정도 선에서 토론을 끝내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 10.02.05 16:02

    운영자님의 고충을 십분 이해합니다..상대가 여러 사료와 정황을 들어 나름대로 결론을 짓거나 피력을 하였으면 반론자는 오류된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하여 다른 사료나 증거를 들어 반론하여야 올바른 토론이 되는 것 아닌지요?..스스로가 얼마든지 본문으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 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매한 댓글로.아무런 결론이나 상대의 오류를 지적하질 못하고 저렇게 상대의 감정을 자극하는 딴죽을 거는 댓글들에 무슨 합의점이 있겠습니까?.

  • 10.02.04 23:54

    자신에게 불리한 주장인 대야성 함락 기록이 삼국사기에 없는 이유는 삼국사기가 오류가 많은 역사서이고, 김유신열전에는 왜 없냐니까 그냥 누락이라고 간단하게 치부하고 648년 대야성 함락이 확정적이라고 단정지으니, 이런 무의미한 논쟁이 거듭되는거 같습니다. 비사인님의 말씀을 존중합니다만, 이점은 꼭 집고 넘어가고 싶군요. 부여장님께서도 지적했지만, 왜 본인에게 불리한 주장은 어떠한 근거도 없이 그저 누락이라고만 단정지으며, 남이 주장한 증거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나 사료를 제시하라고 하는지가 황당할 따름입니다. 소호금천씨님이 제시한 주장역시 심증은 될지 몰라도, 확증은 될수 없습니다.

  • 작성자 10.02.05 15:50

    운영자님의 요청으로 이선에서 마무리 하겠습니다..백제사랑님의 지금 댓글은 다시 정리하여 공개적으로 반론예정입니다..고고학적 증거나 사료를 백제사랑님이 먼저 거론하셨기에 고고학 증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본문의 글임에도 님께서는 이상한 댓글을 쓰시는군요..본문을 다시 앍어 보시지요.. 본인이 뜬금없는 고고학적 증명을 제시하란 적이 없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0.02.05 16:15

    예 옳은 지적입니다..애초부터 잘못된 입씨름입니다...상호 발전적으로 본문의 주장에서 오류된 부분이나 누락시킨 부분을 지적하여 나름대로 반론하다가 견해차가 심하면 따로 스스로 나름대로 피력하는게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이 되지만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 하여 본문의 취지를 무시한 처음부터 딴지를 거는 댓글은 소모성 입씨름으로 이런 댓글에서 해답을 찾는 것 보다는 차라리 본문의 오류나 아니면 공감을 찾는것이 보다 옳은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 10.02.05 19:17

    백제사랑님과 新羅大將軍金庾信님. 이번 토론에서 불필요한 언사를 보여주신 부분은 안타깝습니다. 또한 토론 이후에도 이에 대해서 상대방에 대해 부정적인 말씀을 하시는 점에 대해서는 매우 아쉽게 생각합니다. 부여장님과 소호금천씨님과 함께 일주일간 활동정지 처분을 하오니 이해해주시고 차후 토론에서는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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