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밥상 주인아낙
반송시장은 재개발된 고층아파트단지 사이 위치한다. 백화점과 대형할인매장이 즐비한 시내 중심과 멀지 않아 재래시장 활기는 예전 같지 않다. 과일이나 생선은 회전이 잘 되지 않아 신선도가 떨어져 찾는 손님이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떡볶이나 김밥을 비롯해 칼국수나 족발 등 몇몇 업종은 성업을 이루기도 한다. 유동인구가 많아선지 시장 경기가 어느 정도 유지되는 듯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반송시장에서 멀지 않다. 아침 출근은 교육단지로 걸어가고 퇴근은 학교에서 반송시장을 거쳐 집으로 온다. 종합운동장 만남의 광장에서 원이대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반송시장이다. 우리 집 봄철 푸성귀는 내가 산과 들에서 뜯는 푸새로 해결된다. 여름이나 가을이면 지인 농장 남새를 마련해 오기도 한다. 그러니 시장에서 부식 찬거리를 별도로 살 일이 드물다.
반송시장에서는 노점 과일 정도 사는 경우가 있다. 내가 과일을 자주 사 얼굴을 익힌 노점상과는 길을 지나치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다. 그 밖에 반송시장에서 내가 들리는 가게가 두어 군데 된다. 족발가게와 민속주점이 있는데 그 두 곳은 혼자 찾은 경우는 드물다. 가끔 교류가 있는 예전 근무지 동료와 대학 시절부터 끈끈한 정을 이어오는 친구와 잔을 기울일 때 들리곤 한다.
퇴근길에 내가 혼자 찾는 시골밥상이 있다. 거기서 가끔 막걸리를 한 잔 들고 간다. 칼국수 가게 골목과 인접한 허름한 식당이다. 좁은 공간에 앉은뱅이 탁자가 세 개 놓인 비좁은 밥집인데 주인아낙이 사는 곳이 어딘지 성함이 어찌 되는지도 물어보질 않았다. 나이는 짐작컨대 예순 중반은 되지 싶다. 어느 기회 듣기로 친정이 지리산 서쪽 남원으로 우리 지역과 억양이 사뭇 달랐다.
주인아낙은 손이 무척 빠르고 솜씨가 좋아 서민적인 식재료들로도 음식을 맛깔스럽게 잘 차려내었다. 일손이 달리는 점심시간 전후 시간제 도우미 지원을 받아 손님을 맞을 정도로 바빴다. 학원가 강사들을 비롯해 자주 들리는 단골이 있었다. 노점 상인들은 자리를 뜨지 못하는 영업 특성상 시골밥상에다 찌개를 배달시켜 먹기도 했다. 그럴 경우 노점까지 기꺼이 밥상을 차려나갔다.
내가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가면 한 시간 이내다. 시골밥상에 들려 곡차를 한 잔 들기라도 하면 반시간 남짓 더 지체된다. 일주일에서 한 번 될까 말까다. 주중에 들리지 않으면 주말에 산행을 하고 귀갓길에 들린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산에서 뜯은 산나물을 일부 부려 놓으면 배낭이 훨씬 가벼워졌다. 내야 집으로 다 가져가 봐야 처치 곤란인데 알맞은 소비처가 있어 다행이었다.
주인아낙은 장어 국을 끓이는 솜씨가 좋다. 내가 시골밥상에 들려 식사를 하는 경우는 없다. 끼니야 집에서 해결된다. 곡차도 집에서 자작하고 싶다만 아내가 달가워하질 않아 그러질 못한다. 내가 시골밥상에서 드는 곡차는 ‘창원생탁’이다. 안주는 계란프라이나 부두전으로도 충분하다. 생탁 한 병으로는 아쉽고 두 병이 알맞은 양이었다. 계산은 언제나 만원 한 장 건네고 일어선다.
서너 달 전 언 땅이 녹아가던 봄이 오던 길목이었다. 나는 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면서 냉이를 제법 캤다. 시골밥상에 들려 같은 아파트단지 초등학교 친구에게 보내려고 배낭을 풀어 냉이를 분배했다. 그러면서 주인아낙에게도 제법 건넸더니 아주 고마워했다. 반송시장 노점 냉이보다 뿌리가 굵어 향이 진하고 깨끗했더랬다. 나중 듣기로 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좋아했단다.
엊그제 연휴 아침나절 비가 그쳐가던 무렵 여항산 미산령을 넘었다. 길고 긴 임도를 걸었더니 길섶으로 칡넝쿨이 뻗쳐 나왔다. 어느 날 시골밥상 주인아낙으로부터 칡순이 좋다면서 구했으면 싶은 얘기를 들은 적 있었다. 문득 그 얘기가 떠올라 무념무상 길을 걷다가 칡순을 몇 줌 따 귀로에 건네주었다. 아낙이 고마워함은 당연했다. 용처를 물었더니 말려 차를 끓여 먹을 거라더군. 18.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