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마곡사 오층석탑(公州 麻谷寺 五層石塔)
종목 보물 제799호(1984년 11월 30일 지정)
시대 고려시대
소유 마곡사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公州 麻谷寺 五層石塔)은 충청남도 공주시 마곡사 대웅보전 앞에 있는, 고려 후기의 석탑이다. 1984년 11월 3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799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마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구한말에는 독립운동가 김구와도 인연이 깊었던 사찰이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일본인 장교를 죽인 후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로 지냈는데, 지금도 대광보전 앞쪽에는 김구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절 마당에 우뚝 서 있는 이 탑은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현재는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길쭉한 감이 있어 안정감은 적으나 당당한 풍채로 버티고 서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머리 장식의 독특한 모습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후기 즈음으로 여겨진다. 즉 고려 후기 당시 원나라와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도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은 그 문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탑 안의 보물들을 거의 도난당하였으나, 1972년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현지 안내문
이 탑은 고려 말기에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탑이다. 높이는 8.7m이며, 높은 이중 기단 위에 높게 서 있는데 지붕돌 폭의 변화가 거의 없어 안정감이 없다. 이층 몸쳇돌에는 사방을 지키는 사방불이 새겨져 있고, 탑의 끝 부분에 라마탑에 보이는 풍마동 장식을 두었다. 다보탑이라고도 부른다. 라마교는 티베트에서 발생하여 원나라 때 크게 융성한 불교의 한 종파이다. 대광보전이 불탔을 때 크게 훼손되었고, 1974년에 현 위치로 옮겨 세웠다. 경천사탑, 원각사 탑과 함께 원나라 탑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공주 마곡사 영산전(公州 麻谷寺 靈山殿)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시대 : 조선/조선 후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개설]
공주 마곡사 영산전은 마곡사 안의 불전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수행 가람의 중심 건물이다. ‘영산(靈山)’은 영취산(靈鷲山)의 준말로, 중부 인도 마가다국 왕사성 부근에 있는 산으로서 석가모니가 설법을 한 곳이다.
[형태]
공주 마곡사 영산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배흘림이 강한 원주를 세웠다. 기둥 윗부분에는 창방을 끼우고 주상에만 공포(栱包)를 짜 올린 주심포식 건물이다. 공포와 공포 사이에는 화반을 끼워두었다.
공포는 앞면과 뒷면이 조금 다르게 짜여 있는데, 앞면과 뒷면 모두 이출목 삼익공식이지만 앞면은 제공 끝을 운공 형식으로 조각하였고, 뒷면은 제공 끝을 첨차 형식으로 마무리하였다. 따라서 앞면의 공포는 매우 화려하게 보인다. 양 측면에는 풍판을 달지 않았고, 박공판으로 마감을 하여 측면 구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지붕은 1고주 5량집 구조이며, 천장은 우물반자를 2단으로 처리한 층급 천정이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다. 내부 불단은 ‘⊓’자 모양으로 조성하였고, 삼존불과 천불을 병렬 배치하였다. 창호는 앞면 모든 칸에 삼분합문을 달았는데, 어칸 살은 교살문이고, 나머지는 ‘정(井)’자살문이다. 측면에는 앞면 쪽으로 출입문을 하나씩 설치하였다.
[현황]
마곡사의 수행 가람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영산전은 조선 후기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공주 마곡사 영산전은 규모가 그리 작지 않으며, 보물 제8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공주 마곡사 영산전은 조선 후기에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공포를 짜 올린 세부 기법을 살펴보면 조선 중기의 건축적 특징이 드러난다. 조선 중기에 처음 건립한 이후 여러 번 중수를 거치면서 조선 후기의 기법이 가미된 것으로 추정된다. 1984년 11월 30일 보물 제80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마곡사 대웅보전 : 보물 제801호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公州 麻谷寺 大雄寶殿)은 마곡사에 있는 보물 제801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17세기(조선 중기)에 건립된 마곡사의 법당이다.
하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 상층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1.5m 높이의 기단 위에 세운 중층(重層) 다포계(多包系)의 팔작건물로서 다른 건축양식에 비해 구조가 특이한 점이 특징이다. 외부는 일부가 변형되었으나, 내부는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현지 안내문
이 건물은 대광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이다.
원래의 건물은 임진왜란(1592년) 때 불타 없어졌고, 현재의 건물은 1651년(효종 2년)에 각순대사와 공주목사 이주연이 다시 지은 것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 건물 형태인 중층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중심에 석가여래불을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건축양식은 조선시대에 유행하였던 다포식으로서 외관이 화려하면서도 장중한 감을 준다. 팔작지붕으로 된 네 모서리에 처마를 받쳐주기 위한 활주가 세워져 있다.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축물 가운데 많지 않은 중층건물로 목조 건축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마곡사 대광보전 : 보물 제802호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公州 麻谷寺 大光寶殿)은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마곡사 (운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이다. 1984년 11월 3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02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된 다포계 양식의 단층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자연석 더미 기단 위에 세웠으며, 기둥에는 뚜렷한 배흘림이 보이고, 개구부는 앞면 5칸과 측면 앞칸에만 두었다. 1787년에 만들어졌으며, 세조가 김시습을 만나기 위해 타고 온 어가가 보관되어 있다.
현지 안내문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이다.
원래의 건물은 임진왜란(1592년) 때 불타 없어졌는데, 1823년(순조 13년)에 다시 지었다. 건물 안 바닥에는 참나무로 만든 돗자리가 깔려 있고, 그 위에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으며, 부처님이 서쪽에서 동쪽을 보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건축양식은 외관이 장대하면서도 화려한 특징을 갖는 다포식이며, 건물의 양쪽엔 다양한 무늬의 꽃살 무늬의 문을 달았다.
건물 내부의 화려한 공간 구성과 함께 조선 후기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전통 목조건물이다.
마곡사 석가모니불괘불탱(麻谷寺 釋迦牟尼佛掛佛幀)
종목 보물 제1260호(1997년 8월 8일 지정)
수량 1폭
시대 조선시대
소유 마곡사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정보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공주 마곡사 석가모니불괘불탱(公州 麻谷寺 釋迦牟尼佛掛佛幀)은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탱화이다. 1997년 8월 8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60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열 때 사용하던 대형 불화를 말하며, 이 괘불은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그린 것이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6대 보살, 10대 제자, 제석천과 범천, 사천왕, 천자, 아수라, 용왕 등이 좌우 대칭으로 화면 가득히 그려진 모습이다. 석가모니불은 용화수가지를 양 손에 받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손이 다른 신체 부분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둥근 머리광배와 배(舟) 모양의 몸광배로 구분되는데 머리광배에는 작은 부처 여러 구를 그려 넣었다.
석가모니불을 좌우에서 협시하고 있는 제화갈라보살을 비롯한 6대 보살은 관음·대세지·문수·보현보살로 구성되었으며 10대 제자상과 보향·명월천자가 상단 좌우 끝에 그리고 아수라 가루라 용왕들이 배치되어 있다. 남아 있는 글로 보아 시주자를 비롯한 여러 승려와 일반인들이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석가탄신일 외에도 수륙재와 49재에 쓰였던 그림임을 알 수 있다.
대형화면에 나타난 중후한 형태·화려한 색채 등 17세기 전반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으로 본존불을 중앙에 크게 묘사하고 다른 무리들을 주위에 작게 배치하여 석가모니가 일반 대중들을 압도하는 듯한 인상을 전달하고 있다.
삼신불 가운데 석가불을 노사나불과 동일하게 보살형으로 형상화한 독특한 형태의 그림이며 ‘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이란 석가의 존명과 함께 각 상들의 명칭도 기록되어 있어 불화 연구에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마곡사 가람 배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