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저녁 울산역에서는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울산지역 노동자들 500여명이 모여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단결을 다짐하는 ‘비정규직·정규직 연대한마당’이 열렸다. 이날 연대한마당에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다정하게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다.
자본의 분열책동을 물리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진정한 단결을 꾀해 나가기 위하여 서로의 깊은 마음이 담긴 편지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비정규직이 정규직에게
눈알이 핑핑 돌아가는 콘베이어, 한 공장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형님, 아우로 지내왔습니다. 연봉 6000만원은 개소리, 정규직 형님들은 오랜 기간 반복노동에 골병이 들고, 비정규직 아우들은 이중착취, 인간차별로 가슴에 피멍이 듭니다.
언젠가 저희들에게 술자리에서 그런 말씀을 해 주셨지요. 일천구백 하고도 팔십 몇년도에 콘베이어 타다가 화장실 가려는데 바꿔주지도 않는 현실, 인간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소위원 활동을 시작하셨다고. 그렇게 십여년 노동조합 활동에, 노동자 해방을 위해 젊음을 불태우셨다고. 거기에다 자본의 무차별 정리해고, 무급휴직에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리셨다고. 십수년 콘베이어 잔업철야와 노조활동으로 몸뚱아리는 망가져 가는데, 연봉 6천, 배부른 노동자 소리에 기가 막히고 한이 서린다고 말이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 저희들이 당하는 고통이 십수년 전 선배활동가들이 겪었을 고통임을, 그리고 우리 스스로 이 어둠의 세월을 찢어내지 않는 한 미래가 없다는 사실도요.
저희들도 현장에서 뺑이치며 정규직 선배들에게 말 못할 고민들이 많이 있답니다.
여유인원도 없이 철야특근을 들어가 밤을 새워 몇 공정씩 타다보면 하늘이 뱅글뱅글, 저희들에게 맨아워 협상이 있겠습니까, 아니면 함께 싸워줄 노동조합이 있었겠습니까. 몸이 아파 쓰러질 지경인데도 조퇴·월차·외출 끊기란 하늘에 별따기나 마찬가지였지요.
어렵고 힘든 일은 우리 비정규직이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회사가 어렵다고 졸지에 해고되어야 했습니다. 솔직히 이 과정에서 정규직 고용의 방태막이로 우리 비정규직을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정규직 선배님들에게 섭섭한 마음도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현장이 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정규직 선배들이 집회에도 나오라하고 투쟁가요도 배워주고 “니들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는 말도 해주시고, 업체의 서슬퍼런 탄압에 입이 봉해졌던 저희들은 벙어리가 입을 열 듯 하나둘씩 나서기 시작했고, 마침내 “비정규직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수십수백의 목소리가 되어 떨쳐 일어섰습니다. 현장에서 관리자 눈치만 살피던 친구들이 점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우리 손으로 한글자 한글자 적어넣은 요구안을 들고 당당하게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어디 처음 시작하는 일이 술-술 잘 풀리기야 하겠습니까? 하지만 기왕에 시작한 일, 뼈빠지게 한번 해볼랍니다.
형님들도 노조활동 처음 시작하셨을 때 실수도 많이 해보셨다며, 그때를 회상하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드신다며 추억을 더듬어 보신 적 있으시지요?
저희들도 초짜뱅이들이다 보니 실수도 많이 하고 그럴 겁니다. 그때마다 너무 어리다 타박만 하시지 말고 “나도 옛날엔 다 그랬데이” 하며 몇 마디 타일러 주셔도 좋겠고요.
세계 최일류의 자동차 왕국의 꿈, 노동자 밥줄을 위협하는 고용불안, 더욱 싼 값의 노동력, 높아만 가는 라인속도... 이제 자본이 붙여놓은 정규직, 비정규직의 장벽을 허물고 노동자 단결로 함께 일어섭시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무더운 여름을 지나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쯤은 오랜만에 찾아뵙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고향의 풋풋한 정을 느끼고 싶은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으로부터 봄이면 씨앗을 뿌리고, 가을이면 수확을 한다는 것을 몸소 실천으로써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자본가들에게 한 없이 착취만 당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제 착취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어 버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간선언과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동지들이 모여 오늘 비정규직 철폐 문화제를 개최하는 동지들에게 광주에서 연대의 정을 보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 멀리 전라도 광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입니다.
요즘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향상시키는 대신에 정규직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하겠다고 합니다. 이 땅에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든 것이 누구인데, 노무현 정권과 자본은 교묘하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노 갈등으로 포장하려 합니다.
지금까지 대공장노동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의 방패막이로 삼아오던 사이 대공장 노조는 사회적 고립을 자초했습니다. 지금 노무현 정권과 자본, 언론은 삼위일체로 대공장노조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왔습니다.
이제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도 의식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대공장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의 방패막이로 삼아 고용을 보장받으려 한다면 오만이고 착각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도 비정규직 투쟁이 있었습니다. 2001년도 광주공장 상황은 극히 좋지 않았으며, 조합원은 고용불안을 느껴야 했습니다. 이에 현대자본과 일부 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들은 정규직의 잔업을 보장받기 위해 비정규직을 정리해고하려 했습니다. 사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 기아사내하청노동조합을 만들고 정규직 노동조합과 함께 투쟁했습니다.
투쟁의 과정에서 어려움과 위기가 있었지만, 끝까지 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결과 비록 일부 비정규직의 정리해고는 막아내지 못했지만, 남아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쟁취했습니다. 일부 계약직이 현재도 존재하고 있지만 이들도 정규직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막연하게 비정규직이 있어야 정규직의 고용이 보장된다는 생각들이 지배하여 정규직 노동자들이 소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더라도 정규직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투쟁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광주공장은 3개의 신차종을 투입하기 위해 공장재편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2천년 광주 하남공단에서 울려 퍼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캐리어자본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캐리어사내하청노동조합을 설립하여 투쟁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공장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러나 정규직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고용을 보장받으려 스스로 구사대로 나서 사내하청노동자들을 폭력으로 진압했습니다. 캐리어 자본은 그동안 정규직과 맞먹는 비정규직을 고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착취하는 데만 혈안이 되었지 새로운 투자는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비정규직 노조만 없애면 정상적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정규직 노동자들은 최근 캐리어자본으로부터 900여명의 정규직 노동자 중 6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을 폐쇄하겠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급기야 캐리어자본은 600여명의 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휴업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깨달았습니다. 10여년 전 우리 정규직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외치며 생존권 보장과 노동조합 활동 보장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듯이, 오늘날 비정규 노동자들도 똑같이 일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비정규직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정규직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함께 연대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뛰어넘어 함께 실천하고 함께 투쟁합시다. 차이와 차별을 넘어 하나되는 노동자’는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과 자본이 갈라놓은 서로의 차이를 넘어 실천할 때만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저도 비정규 동지들의 승리와 노동자가 하나되어 투쟁하는 그 길에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