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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맡기는 삶
참고말씀: 창12:17; 20:3; 출14;21,22; 16:4; 수10:42; 대하36:22,23; 잠16:3; 잠19:3; 마11:28-30
읽을말씀: 시편37:5
주제말씀: 시편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첫째, 맡기지 않으면 직접 책임져야 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37:5)
신앙생활은 한 마디로 어떤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맡기는 삶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전까지는 내가 직접 계획하고 직접 방법을 찾고 직접 진행해왔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맡겨드려서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인생을 계획하시고 친히 우리에게 길과 방법을 알려주시며 친히 우리의 삶을 인도해가시도록 하는 것이 곧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어떻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믿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제대로 맡기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왜 그런 것입니까? 물론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혹 알더라도 아직까지 하나님이 못 미더워서 하나님께 맡기는 것 자체가 불안하게 여기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소위 누구라고 부르기도 합니까? 실존적 무신론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겉으로는 교회도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삶에서는 하나님을 전혀 찾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누구와 다를 바가 없습니까? 불신자, 즉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교회에 다닌다고 하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 불신자보다 나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흔히 어떤 삶을 살아갑니까? 내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삶입니다. 즉 내가 직접 내 인생을 계획하고 설계해야 하고, 내가 직접 길을 찾아야 하며, 내가 찾은 방법대로 움직이려하며,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운전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삶에 누가 낄 자리가 전혀 없습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마치 무엇이라고 항상 말하는 것 같습니까? ‘내 일은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하나님은 그저 지켜나 보고 계세요.’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런 삶은 오로지 자신이 다 책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으니, 하나님께서도 책임질 의무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명심하십시오. 맡기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다 책임져야 합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탓해서도 안 됩니다. 맡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간혹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서도 일의 잘못을 하나님께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일은 자신이 다 망쳐놓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부류입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19:3) 이런 사람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잘 되면 내 탓이고, 잘못 되면 하나님 탓’입니다. 이 얼마나 어이없고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을 오해한 채 여전히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하며 내가 다 책임지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팍팍한 신앙생활이겠습니까? 이제라도 ‘신앙생활은 곧 하나님께 맡기는 삶’임을 깨닫고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16:3)
둘째, 그러나 맡기면 다 책임져주십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37:5)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면 오로지 내가 다 책임져야 하지만, 만일 우리가 맡기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다 이루어주십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37:5)
어째서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맡기면 책임의 주제가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사람이 자기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면, 어떻게 하신다고 했습니까? ‘그’, 즉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고 했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37:5)
그러고 보니 모든 성경을 살펴봐도 누가 나서주실 때 비로소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즉 하나님이 두 번씩이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되찾아주셨고,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창12:17) /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창20:3)
하나님이 홍해 가운데 길을 여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셨으며,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출14;21,22) /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길이 큰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시77:19)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백성들을 먹이셨으며,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출16:4 상)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땅을 차지하게 하셨으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으니라.”(수10:42)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로부터 자기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라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대하36:22,23)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시37:5 상) /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잠16:3 상) 즉 하나님께 인계(引繼)하기를 원하고 하나님께 굴려버리기를 원합니다. 참고로, 여기서 ‘맡기라’(히, 골)은 ‘제거하다’, ‘굴리다’의 뜻으로, 메고 있는 무거운 짐을 타인에게 인계함으로써 자신의 짐을 더는 것을 가리킵니다.
언제까지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가렵니까? 이제라도 예수님께로 나아오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11:28 상) 예수님께 나아와서 그분 안에서 참된 쉼을 얻을 수 있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하) /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하)
참고로, 마태복음 11:28-30에서 ‘예수님 안에서의 쉼’과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것’이 동일시되고 있는데, 이 둘은 상충되는 내용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께로 오면 예수님께서 함께 멍에를 져주실 것이므로 그 멍에가 쉽고 가벼울 수밖에 없으므로 전혀 상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30)
한편, 맡긴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맡겨버리고 이후에는 나 몰라라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맡긴 이후에도 계속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37:5 하)
혹자는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을 계속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것이 정말 하나님께 맡긴 것일까요? 그럴 순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맡겼다면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의지해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은 곧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삶’임을 깨닫고,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계속 의지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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