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5. 큐티
여호수아 2:15 ~ 24
여리고 성의 붉은 줄
관찰 :
1) 정탐꾼의 여리고 탈출 시나리오
- 15절.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 기생 라합의 집은 여리고 외벽의 성벽 위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집에서 줄을 달아 내려오면 여리고 성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라합의 집은 여리고 성을 정탐하는데 있어서 탈출로까지 확보하는 최고의 조건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 16절.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뒤쫓는 사람들이 너희와 마주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의 길을 갈지니라” => 라합은 이제까지 정탐꾼들의 생명을 보존하게 하고자 지붕 위의 삼대 속에 숨기고, 추격자들을 따돌린 그 기지를 다시 한 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산으로 들어가 사흘을 유할 것을 제안합니다. 추격자들과 마주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완전히 따돌리고 무사히 귀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그런 장치가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라합의 이러한 기지는 위기의 상황에서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정탐꾼들이 채 생각하지 못했던 피할 길을 제시하기까지 하는 이러한 것은 단순히 라합의 지혜였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정탐꾼들의 약속
- 17절.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 정탐꾼들은 라합이 자신들에게 한 맹세를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맹세에 대하여 부끄럽지 않게 맹세했습니다.
- 18절.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 정탐꾼들은 이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하시면’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여리고를 무너뜨리시리라는 분명한 확신가운데 거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라는 표현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그 때 창문에 “붉은 줄”을 맬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 붉은 줄은 유월절의 어린 양의 피를 상징하고, 성경 전체로 볼 때 구원을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 19절.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 구원은 붉은 줄을 매달은 그 집 안에 있는 사람들에 국한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중의 누구라도 라합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댄다면 그 피는 이스라엘에게로 돌아올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 중에는 이 구절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원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구약에서도 지지하는 본문으로 보기도 합니다.
- 20절.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하니” => 정탐꾼은 세 가지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창에 붉은 줄을 매달 것, 둘째는 온 가족이 라합의 집에 모여 있을 것, 셋째는 정탐 사실을 누설치 말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정탐꾼들이 한 맹세가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탐꾼들과 라합의 사이에는 목숨을 내건 맹세가 오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이 장차 정탐꾼이었던 살몬과 라합이 부부가 되는 이유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3) 정탐꾼이 무사히 탈출하여 여호수아에게 보고하다
- 21절.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 라합은 정탐꾼들의 말에 즉각적으로 순종합니다. 정탐꾼들을 줄을 매어 탈출하게 한 뒤에 곧바로 붉은 줄을 창에 매달아 둔 것입니다. 긴 줄을 늘어뜨린 것이 아니라 창문에 매어서 식별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 22절. “그들이 가서 산에 이르러 뒤쫓는 자들이 돌아가기까지 사흘을 거기 머물매 뒤쫓는 자들이 그들을 길에서 두루 찾다가 찾지 못하니라” => 정탐꾼들도 라합의 말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곧바로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가지 않고 산으로 숨어서 사흘간 거했습니다. 추격자들은 여전히 이들을 찾으러 다녔고, 만약 발각되었다면 여리고성 공략은 매우 어렵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정탐꾼들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이 여리고성의 왕과 백성들은 성벽을 의지하고 방비를 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23절. “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가서 그들이 겪은 모든 일을 고하고” => 사흘의 시간을 머물고 무사히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온 정탐꾼들은 여호수아에게 자신들이 겪은 모든 일들을 보고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들과 함께 했는지를 잘 설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라합의 존재를 또한 잘 설명했을 것입니다.
- 24절.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 => 정탐꾼들의 보고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리고와 가나안 온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인해서 간담이 녹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보고는 여호수아가 갈렙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 가데스 바네아를 정탐한 뒤에 했던 보고와 같습니다. 그런 믿음의 고백을 듣는 여호수아의 심장은 크게 뛰었을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하신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심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시 담대하게 백성들을 이끌 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보고가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백성들에게 전달되어 민심이 하나가 되어 여호수아의 지도력을 따르게 되는 밑천이 되었을 것입니다.
가르침 :
1) 라합과 정탐꾼의 맹세는 서로 이어지게 됩니다. 목숨을 건 이 맹세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켜야 하는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라합은 붉은 줄을 매달아야 하고, 가족이 모두 라합의 집에 모여 있어야 하고, 정탐꾼의 존재를 여리고 성 사람들에게 들키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쉬운 일은 아녔을 것입니다. 옆 집에서 왜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아 두었냐고 물었을 수도 있고, 왜 라합의 집에 온 가족이 다 모여들었는지 묻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또 라합의 가족 중에서도 불편해서 뛰쳐나가고자 한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정탐꾼의 존재를 들키지 않는 것이 쉬운 일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려주시지 않았다면 이러한 라합이 지켜야 하는 조건이 충족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한 정탐꾼들은 여호수아에게 라합의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리고 성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다 죽이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라합과 그 가족을 살려두는 것은 복잡한 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정탐꾼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시혼과 옥의 백성들을 무찌를 때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기에 그러한 요구를 할 수 있는지는 그들도 가서 여호수아와 담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과해서 서로가 서로의 맹세를 지키게 되고 여리고성 공략의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지게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이방 민족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속에 물드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순결하게 되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여리고성 정복의 과정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라합은 분명히 기생, 창녀였고, 그녀의 형편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하나님을 따르고자 할 때, 하나님은 이방 여인인 라합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다. 그녀를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살몬과 맺어주셔서 장차오게 될 다윗과 그리스도의 조상의 반열에 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라합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로 정탐을 마친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는 여호수아의 뜨거워진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가데스 바네아 정탐의 결과로 이어진 38년의 유리 방황을 이제 종지부를 찍고자 하고 있습니다. 두 명의 정탐꾼의 확고한 믿음의 보고를 받으며 가나안 정복 전쟁의 서막을 열고자 하는 것입니다.
적용 :
1) 맹세는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린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과 더불어 한 맹세도 지켜져야 합니다. 주님은 그 약속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이 땅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님이 원하시는 수준이 이르는 것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바라보아야 하는 목표입니다. 맹세이고 추구해야 하는 바입니다.
2) 믿음의 보고는 지도자를 힘나게 하고 그 백성들을 하나님의 섭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런 믿음의 보고를 할 수 있는 제가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