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세생생 잘못된 생각의 버릇이 있습니다.
생각을 할 때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묻어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자들은 끊임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생각을 잘 ‘알아차림’하여
더 이상 나쁘게 되지 않게 노력합니다.
하지만 수행을 하지 않는 일반사람들은 톡톡 튀는 생각에
따라 일어나는 희로애락 감정에 빠져 그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 결과 윤회의 고통에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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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모든 물질이나 마음 그자체가 실체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 가르침이 무아(無我)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무엇을 보거나 어떤 이야기(뉴스/소식)를 들으면
‘좋다. 싫다. 어긋난다. 맞다. 괴롭다. 즐겁다.’라고 2가지 대립하는
상념들이 복잡하게 얽혀 끝없는 윤회를 반복합니다.
이것이 우리 중생들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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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에서 말하는 아상(我想). 인상(人相) 중생상(衆生想) 수자상(壽者相)도
한 생각 움직이는 데서 생겨납니다.
결국 ‘나에 맞으면 좋고 나에게 맞지 않으면 싫다.’는 생각에서
좋아함도 일어나고 화도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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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운전자가 나들목에서 좌측에서 우측으로 합류해야 하는 길에서
창문을 열고, 손을 들고 왼손을 내밀어 흔들면서 차를 좌측으로
깜빡이를 켜고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대 차들은 양보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리자
갑자기 화가 툭 튀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위협적으로 좌측으로 들어가다가 뒤에서
오는 차와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양 운전자들이 내려서 서로 멱살을 잡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을 하고 격렬하게 다투었습니다.
그 결과 그 도로가 2시간이나 온통 마비가 되었습니다.
툭 튀는 한 생각(무명/無明)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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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라면 “음, 자동차들이 많아서 서로 먼저 가려고 양보를 잘 하지 않는구나.
그래도 천천히 들어 가다보면 양보하는 사람이 있겠지.” 라고 느긋하게 생각하며
운전하다보면 아무 일 없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급하게
운전하며 들어가면, 그 난폭함이 위와 같은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또 수행을 하는 사람이나 평소 양보심이 많은 사람은
누가 자동차 끼어들기를 원하면 잘 넣어 줍니다.
그러면 서로가 기분 좋게 운전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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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우님들
툭툭 튀어 나오는 생각의 이면에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중생 습이 있음을 알고 그것에 빠져서
너와 내가 모두 고통 받는 일을 일어나지 않게 ‘알아차림’하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툭툭 튀는 생각은 번뇌의 뿌리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알아차림’이요
알아차림 후에는 너와 내가 모두 이익 되는 일을 하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정진(精進)입니다.
염불행자는 매일 부처님 생각하고 부처님을 부르며
자신의 말과 행동과 뜻에서 어떤 톡톡 튀는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관찰합니다.
그리고 선한 행동을 해 갑니다.
그러면 점점 마음 속 아미타부처님과 가까워지며
고요한 마음의 평화가 샘솟아 행복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자비불교정토회
정인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