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사 은행나무, 저의 학창시절, 교과서 어딘가에 나왔었지요.
그리고,문득 은행나무가 생각나서, 인터넷을 뒤져 사진 한 장을 찾아냈습니다.
벌레가 먹지 않는 유일한 나무잎이 은행나무랍니다.
은행잎의 노란색은 생명이 너무나 길어, 한 겨울 눈이 내려도 그 빛이 바래지 않는답니다.
“우리도 은행나무 처럼 살아야 하는데........은행나무 잎처럼 질기게 살아야 하는데.......”
일본의 늙은 퇴직자들을 젖은 낙옆이라고 비웃지요.
제가 살았던 30 년전, 그 시절은 그나마 일본의 전통이 도시에도 곳곳에 남아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일본 상인들의 전통의상과 기모노를 입은 젊은 여인, 그리고 노가다 판에도 일본식 버선을 신었던 청년들이 기억나곤 합니다.
그 시절의 일본여인들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었죠.
출근하는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앞치마로 남편의 구두를 닦아주던 모습이 자주 텔레비젼에 나오곤 했지요.
그러나, 또 다른 충격적인 일본 여인들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전통적인 일본의 여인들이 퇴직한 남편을 비웃던 말이 바로 젖은 낙옆이라는 말이지요.
낙옆이 젖으면 잘 떨어지지도 않고 달라붙는답니다.
바로 퇴직한 자신의 남편을 그렇게 표현한거지요.
남편이 돈을 벌어 올 때는 마치 하녀처럼 복종을 하다가, 남편의 중요한 역할이 끝나는 시점부터 그녀들은 귀찮아진거죠.
일본의 자본주의화를 엿볼 수 있었던 단서였습니다.
스쿠버 강사로서 동남아를 돌아다닐 때, 30대 였습니다.
필리핀 중부 비사야 지방의 두메게티 아포섬 앞의 해변에서, 나는 늙은 일본 여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그녀는 남편이 퇴직하자 바로 이혼을 하고 위자료를 챙겨 필리핀으로 와서 해변가에 아름다운 집을 짓고 필리핀의 잘 생긴 젊은 애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실제로, 나는 그녀가 그녀의 애인의 품에서 말을 타고 해변을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그녀는 애마부인이된거죠.
문득, 가을이 되니 용문사 은행나무가 생각나고, 젖은 낙옆이 이어지고, 일본의 여인이 생각나는 겁니다.
또 한 명의 여인이 생각납니다.
강릉에 살던 때, 옆집 지하에 술집이 하나 있었는데, 저는 자주 그곳에 들렸죠. 바로 그 술집 주인여자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고향은 남해인데, 그곳에서 술집을 하다가 불이 나서 망하고 고향에서 무작정 도망을 나와서 갈팡질팡 하다가, 우연히 용문사 표지판을 보았답니다.
그래서, 갑자가 교과서에서 용문사 은행나무가 생각나서 그곳을 찾아가 은행나무를 잠깐 보고, 다시 방황을 하다가 강릉이라고 써 있는 도로표지판을 따라 강릉에 왔답니다.
동경대 도서관 앞은 수십 미터가 넘는 은행나무가 수십 그루 서 있었다.
가을이면, 은행 열매와 잎이 너무나 많이 떨어져 학교 청소부가 처리가 불가능했다.
은행나무 밑을 걸으면 무릎까지 빠져서 눈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은행나무는 활엽수일까, 침엽수일까?
잎이 넓적한 걸 보고 활엽수로 대답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론상으로는 침엽수로 분류하기도 한다.
은행잎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는 부채 모양으로 퍼진 바늘 같은 잎맥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나무의 분류학적 위치는 침엽수도 활엽수도 아니라고 한다.
더 놀라운 건 은행나무가 지구상에 1과 1속 1종만이 존재하는 나무라는 것.
자신과 엇비슷한 친족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은행나무는 2억년 이상 지구에서 자라왔다.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지금은 가로수로 흔히 심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절이나 서원 같은 특별한 곳에 심어 경배하던 나무였다.
은행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저장성 서남쪽이다.
유럽 쪽으로 건너간 지는 250년쯤 된다 한다.
괴테가 살던 시대에는 독일에 은행나무가 없었다. 대문호이자 식물분류학자이기도 했던 괴테는 동양서적을 탐독하던 중에 은행나무를 발견했다.
그가 마리아네와의 연애에 빠져 있을 때였다.
괴테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은행나무 이파리를 그려 넣었다.
“은행나무 이파리 끝은 비록 갈라져 있지만 한 장이듯이 당신과 나 역시 둘이면서 하나지요.”
이 러브레터로 60대 노년의 괴테는 젊고 아름다운 마리아네를 연인으로 얻었다.
악취를 풍기는 은행열매를 떨어뜨리는 통에 광화문 세종로에서 은행나무 암나무를 앞으로 만나지 못한다는 소식이다. 가지가 삐죽한 수나무들이 얼마나 외로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