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직할체제로 국정원 개혁”… 원장 연내 지명
‘직무대행’ 1차장 용산과 소통해와
정보조직 본연 업무 복원에 방점
후임 원장 늦어도 연내 지명 방침
여권선 외부인사 발탁에 무게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김규현 전 국가정보원장을 경질한 가운데 대통령실은 늦어도 연내에는 후임 국정원장을 지명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일단 홍장원 1차장의 원장 직무대행 체제 속에서 국정원이 본연의 정보 업무 기능을 복원하도록 할 계획이다. 국정원은 그동안 진행해온 내부 감찰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고질적인 인사와 파벌 문제 등으로 국정원 지휘부가 갈등을 빚었고, 갈등이 외부로 노출된 만큼 진행된 감찰 문제는 계속되는 흐름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 尹대통령, 신임 국정원 차장들 신뢰
대통령실은 일단 새로 임명된 1, 2차장의 역량과 전문성을 강조하며 이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한 고위 관계자는 2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는 등 대북 정보가 더 중요해진 상황에 맞춰 신임 1, 2차장은 정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를 발탁했다”며 “본연의 정보 업무 기능을 강화하는 큰 방향 속에서 국정원 쇄신과 후임 원장 인선 작업이 신중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전날 신임 국정원 1, 2차장에 홍장원 전 주영대사관 공사와 황원진 전 국정원 북한정보국장을 각각 임명했다.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홍 1차장에 대해 “해외 첩보 수집 및 공작 부서에서 탁월한 업무 성과를 보였다”고 했다. 아울러 황 2차장은 “북한 정보 분야 외길만 걸어온 자타공인 최고 전문가로 북핵 일타 강사”라고 소개했다.
여권 관계자는 “홍 1차장이 국정원장 직무대행을 맡은 건 사실상 용산 직할 체제라는 뜻”이라고 했다. 홍 1차장은 최근까지 국정원장 특별보좌관을 맡았는데 용산 대통령실과도 소통해 왔다. 황 2차장도 국정원장 특보를 지냈다. 한 여권 인사는 “황 2차장도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새 원장 임명 전에 대통령실이 키를 잡고, 신임 국정원 1, 2차장이 이를 보좌하면서 국정원 내부 수술 작업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 여권 관계자는 “파벌 싸움을 벌인 이들을 정확히 가려내는 내부 감찰이 국정원 내에서 계속될 수 있는 것도 이 대목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 후임 원장, 조직 장악·방첩 역량 종합 고려
대통령실은 연내에 후임 국정원장 인사를 하겠다는 방침 속에 적임자를 찾고 있다. ‘인사 파동’으로 경질 사태가 일어난 만큼 후임 국정원장은 흔들린 조직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인사가 발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국정원의 방첩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능력도 고려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외부 인사로는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거론된다. 여권 관계자는 “김 처장은 윤 대통령의 고교 선배라는 점이, 김 1차장은 안보실 내에서 역할이 여전히 무거운 점이 인선의 문제로 거론될 것”이라고 했다. 내부 출신으로는 대북공작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지낸 김승연 국정원장 특보와 변영태 전 해외공작국장, 일본통인 김옥채 주요코하마 총영사 등이 거론된다. 대북심리전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도 이름이 나오고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내부 출신이 원장을 맡으면 이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내부 출신이 발탁될 것”이라고 했다. 조직 기강 확립과 방첩 역량 강화 등 여러 차원을 고려하면 일단은 ‘외부 인사’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정부 출범 1년 반 동안 국정원에서 벌어진 인사 파동이 벌써 5번째”라며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정보기관에서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정부는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정원장 공석으로 인한 안보 공백 우려와 관련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여러 가지를 감안해서 후속 조치를 지금 취하고 있다”고 했다.
이상헌 기자
“국정원 파벌싸움 한심, 일할 의욕 없어” “인사 위해 조직 있는듯 본말전도”
국정원 前現 직원들 반응
“직급체계 등 근본적 변화 필요”
“한심해서 일할 의욕도 없는 분위기다.”
국가정보원 직원 A 씨는 중견 직원들의 반응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간부 인사를 둘러싼 파벌 싸움이 외부에 고스란히 노출된 끝에 김규현 국정원장과 권춘택 1차장이 동시에 경질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지면서 “국정원 직원들의 사기와 자긍심이 땅에 떨어져 있다”는 것. 전·현직 국정원 직원들과 전문가들은 이번 인사 쇄신을 계기로 국정원이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전 정부를 거치며 약화된 대북 업무 역량 강화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인사를 위해 마치 조직이 있는 것 같은,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계속됐다”면서 “62년 동안 유지된 인사 시스템 문제가 이번에 터져 나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계급 정년으로 인해 인사 때마다 ‘라인’이 중요하고 승진에 목매는 분위기가 인사 갈등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남 교수는 “정보 수집, 분석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직급 체계 등 인사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전직 국정원 간부 B 씨는 “북한의 도발 위협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동맹 복원 등 안보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상반기에 정리됐어야 할 내홍이 너무 길게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김규현 전 원장을 한 차례 신임했는데도 조직을 다잡지 못하고 인사를 둘러싼 파벌 싸움이 지속돼 국가 안보에 악영향을 초래했다는 것.
전직 국정원 간부 C 씨는 “원래 국정원은 인사 갈등이 드문 조직이지만 전임 정부 시절 특히 인사 유연성이라면서 엉뚱한 사람이 발탁되고, 2∼3년 만에 4급에서 1급으로 특정인에게 직급 승진이 초고속으로 이뤄졌다”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전문가를 특수 보직에 앉히는 일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때 약화된 정보 수집이나 휴민트 관리 등 대북 업무 역량을 회복하는 과정이 인사 파동 등을 거치면서 더디게 이뤄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직 국정원 간부 D 씨는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정원의 대북 업무 역량에 의구심이 들게 한 이벤트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대북 역량은 절반 수준밖에 회복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김 전 원장은 27일 이임식에서 “지난 정부에서 길을 잃고 방황했던 국정원의 방향을 정하고 직원 모두가 큰 걸음을 내딛은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규진 기자, 고도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