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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楚漢誌) 2-76 (106)
《범증(范增)과 기신의 순절(殉節)》
우자기(虞子期)는 그 편지의 주인공이 범증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항간에 떠돌아 다니는 소문도 있으려니와, 장량과 진평이 자기를 대해 주던 태도의 변화등으로
미루어, 범증이 한왕과 내통하고 있다는 심증을 충분히 굳힐 수 있었다.
(범증(范增)이라는 늙은이가 이렇게도 음흉한 놈이라면 절대로 살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한 우자기는 범증을 처단할 물적 증거로 삼기 위해 문제의 편지를 가슴속에 훔쳐 넣었다.
이윽고 수하가 한왕을 모시고 들어왔다.한왕은 수인사를 받고 우자기(虞子期)에게 말한다.
"그 옛날 항왕과 내가 의제의 명을 받고 진나라로 쳐들어갈 때에 의제께서는 함양을 먼저 점령한
사람을 <관중왕>으로 봉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소.그런데 함양을 먼저 점령한 사람은 나였건만,
항왕은 관중왕의 자리를 나에게 빼았고, 나를 파촉으로 쫒아버렸소.
그리하여 나는 부모와 고향생각이 너무도 간절하여 부득이 군사를 일으키게 된 것이오.
그리고 이제 관중땅을 점령함으로써 나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므로, 피차간에 화친을 도모하려는 것이오.
공은 이런 나의 뜻을 항왕에게 솔직히 전해 주시오."우자기(虞子期)가 대답한다.
"항왕 폐하께서도 대왕의 뜻을 충분히 짐작하시고 저를 사신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바라옵건데
대왕께서는 사흘 안에 반드시 항왕 폐하를 찾아 오셔서 그 뜻을 직접 품고해 주시옵소서."
한왕이 다시 말한다."나의 참모들과 상의하여 사흘 후에 항왕을 만나러 갈 테니, 공은 먼저 돌아가
그 뜻을 전해주시오."우자기는 초진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항우에게 문제의 편지를 내 보이며,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음은 이 편지 한 통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사옵니다."
하고 장량과 진평에게 설움당한 사실까지 소상하게 보고하였다.항우는 그 서한을 읽어 보고
부들부들 떨며,"범증이란 늙은이를 당장 불러다가 이실 직고하도록 사정없이 고문하라 ! "
하고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졸지에 범증이 어전으로 끌려나왔고, 본인을 모함하는 편지의 내용을
추궁당하자 사태의 전말을 깨닫고 땅에 엎드려 울면서 아뢴다.
"평생을 두고 심혈을 기울여 폐하를 보필해 온 이 몸이 어찌 이심(異心)을 품을 수 있겠사옵니까.
이 편지는 장량과 진평이 신을 죽여 없애기 위해 조작한 모략이오니, 폐하께서는 속지 마시옵소서."
그러나 그런 변명으로 의심이 풀릴 항우가 아니었다.
"쓸데없는 변명은 그만 늘어 놓아라. 우자기 장군이 영양성에서 이 편지를 직접 훔쳐왔는데,
이것을 어찌 장량과 진평의 모략이라고 말할 수가 있단 말이냐 ?"
항우는 워낙 의심이 많은 성품인지라 아무리 변명을 늘어 놓아도 소용이 없을 것을 깨닫고,
범증은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소원을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 의심을 하시면 굳이 변명은 아니하겠습니다.그러나 지금까지 신의 공로가 적지 않았사오니,
여생을 고향에서 지낼 수 있도록 관대한 처분을 내려 주시옵소서. 이 늙은 신하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아무리 포악한 항우도 70고령의 범증이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일말의 측은감이
없을 수 없었다. 더구나 범증은 노구(老軀)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자신을 위해 충성을 다해 온
충신이 아니었던가 ?항우는 범증(范增)을 오랫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대의 마지막 소원이 그러하다면, 여생을 고향에서 보낼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해 주리다."
하고 관대한 처분을 내려 주었다.그렇게 범증은 군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죽음을 면하고 고향에 돌아오기는 하였으나, 범증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등창(背瘡)이 나서 육신조차 고통스럽기가 짝이 없었다.
등창이 열흘 쯤 계속 되자, 못 견디게 아프고 쑤셔와서 잠을 이룰 수도 없음은 물론이려니와
세상 만사가 모두 헛 것으로만 보였다.범증은 참고 견디다 못해 아들을 불렀다.
"여기서 동쪽으로 3백 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와우산(臥牛山)에 들어가면, 토굴 속에 양진인(楊眞人)이라는
백발 노인이 계실 것이다.그 어른은 나에게 도(道)를 깨우쳐 주신 은사일 뿐 아니라, 어떤 병이라도 잘 고치
는 천하의 명의(名醫)이시기도 하다.
너는 지금 곧 그 어른을 찾아가서 내가 등창으로 고생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좋은 약을 구해 오도록 하거라."
범증의 아들은 부친의 말을 듣고 와우산으로 <양진인>을 찾아갔다.
과연 와우산 어떤 토굴에는 족히 100세가 넘어 보이는 호호 백발의 양진인 노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범증의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고하고, 부친이 등창으로 극심한 고생중인 증상을 자세히 말하고 나서,
"가친의 등창이 속히 쾌유되도록 좋은 약을 지어 주옵소서."하고 간곡하게 말했다.
그러자 양진인 노인은 대뜸 고개를 흔들며 냉혹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범증을 위해 약을 지어 줄 수 없노라.그 옛날 범증이 나에게 도를 배운 것은 사실이나,
범증은 내가 가르친 정도(正道) 보다는 밀모(密謀)와 기계(奇計)를 좋아하는 성품이었기에, 범증이
하산할 때에 나는, <부디 명군(明君)을 택하여 정도의 길을 걸어가라>고 신신 당부를 한 일이 있었다.
그렇게 당부를 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증은 항우같은 암군(暗君)을 섬기다가 결국에는
몸까지 망치게 되었으니, 내 어찌 그런 자의 병을 고쳐 줄 수가 있겠느냐 ?
범증이 지금 등창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하늘이 내리신 천벌인 줄로 알고 있으라고 전해라."
양진인 노인이 그렇게 나오니 범증의 아들은 더 이상 말을 붙여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집으로 돌아와 양진인 노인의 말을 사실대로 전하니, 범증은 너무도 슬퍼하다가 "악 ! "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려져 죽고 말았다.때는 대한 (大漢) 4년 4월,범증의 나이 71세였다.
이로써 파란 만장한 한, 초(漢楚)의 정국 투쟁에서 일익을 담당하였던 큰 별이 지고 말았으니,
항우는 그 소식을 듣고 목을 놓아 울었고, 한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항우는 범증이 결백했음을 사후(死後)에서야 깨닫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아 아, 나는 장량과 진평의 반간지계에 속아서 둘도 없는 충신을 잃었구나 ! "
하고 며칠 동안이나 울부짖었다.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은 아무리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항우는 여러 날 동안 비통에 잠겨 있다가 하루는 종이매를 불러 말한다.
"나는 범증 아부와 함께 그대를 의심해 왔었다. 그러나 모든 의심은 이제 깨끗이 지워졌으니,
그대는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나를 도와주기 바란다.''종이매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신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폐하를 섬기는 데 어찌 두 마음이 있을 수 있으오리까. 지난번에 우자기
장군이 훔쳐 온 편지는 진평과 장량이 교묘하게 조작한 <반간지계> 였던 것이옵니다."항우가 대답한다.
"나도 이제는 모든 것을 명백히 알았노라. 그러므로 유방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맺혀서,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영양성에 있는 유방을 철저히 부숴버리고야 말겠다."
항우는 즉석에서 항백을 군사(軍師)로 삼고 전군을 총동원하여 영양성 정복의 길에 올랐다.
한편, 한왕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불안하여 중신 회의를 긴급 소집하였다.
"항우가 이번에는 단단히 벼르고 전군을 총동원 하여, 쳐들어 오는 모양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우리는 지금의 병력으로는 그들과 대적하기에는 절대부족 한데다가 한신 장군도 북방 정벌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우리측 장수와 병력으로는 항우를 당해 내기가 무척 어려울 것 같구려."
장수들은 고개를 수그린 채 대답이 없었다.그러자 장량이 조용히 입을 연다.
"범증이 우리의 계략으로 죽었기 때문에 항왕은 매우 격분하여 영양성을 대번에 함락시키려고
덤벼 올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적은 팽성에서 군량도 많이 수송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군량 걱정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들이 만약 영양성을 포위하고 나서 영양강(榮陽江)에 둑을 쌓고 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일시에 터뜨려버리는 수공법(水功法)을 쓰게 되면 우리는 꼼짝도 못하고 손을 들게 될 것 입니다.
그러나 옛날부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였으니, 대왕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그리고 나서 진평을 바라보며,"진대부는 어떤 신출귀몰한 묘책이 없겠소이까 ?"하고
물었다.진평이 대답한다."묘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옵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묘책을 쓰게 되면
영양성을 적에게 일시에 빼앗기지는 않고 대왕께서 무사히 피신하실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다만, 우리네 장수들 중에서 대왕을 위해 그만한 묘책을 실천해 옮겨 줄 용장이 과연 있을지,
그것이 문제입니다."진평의 말이 끝나자 모든 장수들은 아연 긴장하였다.
그것은 진평의 말이 모든 장수들을 겁쟁이로 취급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장수들은 한결같이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던 중에, 대장 주발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항의하듯 입을 열었다."선생은 어찌하여 저희 장수들을 이처럼 업신여기는 말씀을 하시옵니까 ?
저희들은 오늘날까지 주공을 위하여 신명을 바쳐 충성을 다해 왔사옵고, 앞으로도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이옵니다.선생께서 어떤 묘책을 쓰시려고 하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저희들은 주공을
위하는 길이라면 그 어떤 어려움도 감당해 낼 각오가 되어 있사오니, 묘책을 이 자리에서 밝혀 주소서."
진평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장군들이 그런 각오를 가지고 계시다니, 나로써는 기쁘기 한량없는 일이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묘책은 비밀을 요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모두 공개할 수는 없는 것을 양해하시오."
그리고 진평이 한왕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귓속말로 무언가 수군거리니,
한왕이 얼굴에 기쁨이 충만해 지면서,"참으로 기가막힌 묘안이오. 장량 선생과 상의하여
그 계책을 꼭 쓰도록 합시다."하고 말했다.
회의가 끝나자, 장량은 진평과 단둘이 마주앉아 문제의 묘책을 구체적으로 논의하였다.
그러면서 장량이 말한다."이 계책을 실천에 옮기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장수들의 사기를 크게 돋구워
놓을 필요가 있겠소.오늘 밤에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상의하여 내일 실천에 옮기도록 합시다."
다음날 장량은 느닺없이 주연(酒宴)을 성대하게 베풀고, 모든 장수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초청하였다.
그리고 주연이 벌어지는 석상에는 한 채의 수레와 그 수레를 추격하는 수백 명의 무장 군인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 한폭 걸려 있었는데, 귀인(貴人)인듯한 사람 하나가 수레에서 내려 우거진 숲으로
쫒겨가는 모습도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술이 거나하게 취한 장수들이 그림을 감상하다가
장량에게 물었다."자방 선생 ! 이 그림은 무엇을 뜻하는 그림이옵니까 ?"장량이 대답한다.
"이 그림은 그 옛날 제(齊)나라의 경공(景公)이 진(晉)나라와 싸우다가 크게 패하여 단신(單身)으로
도망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오.뒤에서 맹렬하게 추격하는 군사들은 모두가 진나라 군사들이지요."
"그러면 경공은 그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당시에 경공은 꼼짝 없이 적에게 붙잡혀 죽을 판이었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 난데없는 어떤 촌부(村夫) 한 사람이 달려오더니 경공더러
<사태가 매우 위급하게 되었사오니, 대왕께서는 소인과 옷을 바꿔 입으시고 빨리 숲속으로 도망을 가십시오.
이 수레는 소인이 어의(御衣)를 갈아입고 대왕을 대신하여 몰고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더란 거예요."
장수들은 장량의 이야기에 흥미가 진진하여,"그래서 제경공은 옷을 갈아입고 무사하셨습니까 ?"
하고 물으며 눈을 반짝이면서 장량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장량은 장수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려고 일부러 약간 뜸을 들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나라 경공은 우리 대왕님처럼 매우 인자하신 어른이셨소. 이처럼 인자하신 어른이, 어찌 자기가 살려고
남을 대신 죽으라고 할 수 있겠소.그래서 제경공은 옷을 바꿔 입고 도망가기를 거절하셨지요."
그러자 장수들이 모두들 혀를 차면서,"저런 저런 .....
그러면 제경공은 진나라 군사들에게 붙잡혀 돌아가셨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묻는다.
장량이 다시 말을 계속한다."그런 것은 아니오. 제경공이 옷 바꿔 입기를 거절하자, 촌부는 화를 내면서
<소인 하나 죽는 것은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오나, 대왕께서 돌아가시면 나라가
망할 것이 아니옵니까 ? 이런 판국에 무엇을 주저하시옵니까> 하고 말하며
옷을 억지로 갈아 입혀서 경공을 숲속으로 쫒아 보내고, 자기는 수레를 유유히 몰아 나갔다는 것이오."
"그야 말로 이름없는 의사(義士)였군요. 그러면 그 촌부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까 ?"
장량이 다시 말을 계속한다."그 촌부는 당연히 죽었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 역시 죽지 않고
살아 남았으니, 세상 일이란 참으로 기이한 일이지요.옛말에 <사생즉사 사필즉생( 死生卽死 死必卽生)
이라하더니>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죽고, 죽기를 각오한 사람은 살길이 트인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라고 해야 하겠지요."장수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들 눈들이 휘둥그래지며,
"아니, 제경공을 대신해서 어의를 입고 수레를 몰고 가던 사람이 어떻게 살아났다는 말씀입니까 ?"
하고 궁금하기 짝이 없어 하였다.장량이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진나라 군사들은 촌부를 제경공으로 알고 그를 생포하여 진왕(晉王)에게 끌고 갔는데,
진왕은 그 촌부가 가짜 제경공인 것을 알고 크게 노하며 <당장 목을 베어 죽이라>고 했더랍니다.
그러자 그 촌부가 진왕에게 말하기를<나는 이미 임금님을 위해 목숨을 내 놓은 사람이니 죽음이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소. 그러나 임금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을 죽인다면, 그런 충신을 함부로 죽인 어리석은
진왕을 위해 장차 위기에서 누가 대신 목숨을 바칠 것이오 ? 왕께서는 그 점을 각별히 생각해 보시오.> 라고
말했더니,진왕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결국은 그 촌부를 죽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풀어 주었다는 것이오. 이 그림은 그때 제경공이 쫒기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장수들은 장량의 말을 듣고 한결같이 감탄을 금치 못하며 다시 묻는다.
"그러면 그 촌부는 제나라 청사에 길이 남을 것이 아니옵니까 ? ""물론이지요. 그 후에 제경공은
진나라를 평정하는 대업을 완수하고 난 뒤, 그 촌부를 만고의 충신으로 추앙해 왔다오."
장량은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새삼스럽게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도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 촌부와 같은 충신이 꼭 필요하오."
그러자 모든 장수들은 장량의 말을 듣고 분연히 입을 모아 이구 동성으로 맹세하듯 말한다.
"이름 없는 촌부조차 임금님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알았거늘, 하물며 대왕의 중록(重祿)을
받아 오고 있는 저희들이 어찌 대왕을 위해 목숨을 아끼오리까 ?
선생께서 분부만 내려 주시면 저희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대왕전에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이옵니다."
장량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여러 장군들께서 한결같이 그와 같은 충심(忠心)을 가지고 계시니,
이 나라의 장래는 매우 믿음직스럽소이다. 그러나 여러 장군들도 알고 계시다시피, 지금 몰려오는
초군에게 우리는 언제 패망할지 모르는 상황이오.목전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비상수단으로 적에게 <위장 투항(僞裝投降)> 전술을 써 보는 길밖에 없겠는데, 그 전술을 쓰려면
용모가 대왕과 흡사한 용장이 한 사람 있어야 하오. 여러 장군들 중에 혹시 그런 사람이 없겠소 ?"
장량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장 기신(紀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소리로 외친다.
"그런 일이라면 소장에게 맡겨 주시옵소서. 소장의 얼굴과 용모가 용안(龍顔)과 흡사하기 때문에,
그런 임무라면 누구보다도 소장이 적임일 것이옵니다."
장량과 진평이 기신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기신은 왕과 용모가 헷가릴 정도로 흡사한 것이었다.
장량이 크게 기뻐하며 기신을 곧 대궐로 데리고 들어가 한왕에게 기신으로 하여금 <위장 투항> 하게
할 것을 품고하였다.그러자 한왕은 대뜸 머리를 가로 흔든다."그건 안 될 말씀이오.
나는 대업을 아직 완성하지 못해 수하에 장수들에게 아무런 은총도 베풀어 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데,
사랑하는 장수를 어찌 나 대신에 죽어 달라고 할 수 있으리오. 남을 죽여 이(利)를 취하겠다는 것은
인의(仁義)에 벗어나는 일이오."그러자 이번에는 기신이 자진하여 아뢴다.
"대왕 전하 ! 지금 우리의 사태는 매우 위급하옵니다. 만약 장량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이 계략을 쓰지 않아
영양성이 적들에게 함락되어 버리면, 그때에는 신이 살아 있은들 대왕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으오리까 ?
오늘날 신이 주공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지극히 가벼운 일이오나, 영양성을 지키고 나면
신의 미명(美名)은 영원히 살아 남을 것이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군신(君臣)이 다같이 속수무책으로 사태를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이옵니까 ?"
기신이 이처럼 애타게 호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왕이 아직도 주저하는 빛을 보이자, 기신은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아 자살할 기세를 보이며 말한다.
"대왕께서 신의 충심을 이처럼 믿어 주지 않으신다면, 신은 차라리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어 버리겠습니다."
한왕은 황급히 달려와 기신의 손에서 장검을 빼앗으며 타이르듯 말한다."잠깐만 .... ! "
그리고 기신을 가까이 데려다 놓고 조용히 말한다.
"장군의 충성은 하늘을 뚫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구려. 장군의 양친(兩親)께서는 아직 생존해 계시오?"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어머니 한 분이 계실 뿐이옵니다."
"그러면 장군의 어머니를 오늘부터 나의 어머님으로 삼고, 내가 모시기로 하겠소. 장군은 처자도
계시는가 ?""예, 있사옵니다. 아내와 아들 하나가 있사옵니다."
"그러면 오늘부터 장군의 부인은 나의 누이동생으로 삼고, 장군의 아들은 나의 친아들로 삼아,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양육에 책임을 질 테니, 장군은 안심하고 뜻대로 해 주기를 바라오."
기신을 위한 이같은 한왕의 인자한 배려에 동석했던 장량과 진평도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일단 위장 투항의 전술을 쓰기로 하는 방침이 세워지자, 장량은 영양성 앞까지 진군해 와서 진을 치고 있는
항우에게 한왕의 이름으로 손수 항표(降表)를 작성하여 보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왕 유방은 삼가 패왕 황제 폐하께 머리 숙여 글월을 올리옵니다.>
신은 일찍이 황제 폐하께 한왕(漢王)으로 봉함을 받고 파촉으로 부임을 했사오나, 그곳은 산 설고
물 설어서 건강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데다가 고향 생각이 너무도 간절하여 부득이 군사를 일으켜
관중을 점령하였습니다.그러나 팽성 전투에서 폐하에게 대패하고 나서부터는 용기를 상실하여,
지금은 영양성에서 간신히 목숨만을 보존해 오고 있는 형편이옵니다.
한신은 동정(東征)의 길에 오른 이후로 불러도 돌아오지 아니하고,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장수들도
날마다 떠나가 버리니, 이 어찌 나의 무능한 소치가 아니오리까. 이제 폐하께서 사상 초유의 대군을
발동하여 영양성을 치려하시니, 우리의 운명은 오로지 폐하의 손에 달려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만약 지난날의 우정을 생각하시어 저의 목숨만을 살려 주시겠다 하오시면, 저는 오늘이라도
투항할 결심이 확고하게 서 있사옵니다. 바라옵건데 폐하께서는 연민지정(憐憫之情)을 두텁게
베풀어 주시옵소서."
<유방 올림>
항우는 유방의 항표를 읽어 보고 사신에게 물었다."유방이 언제쯤 성을 나와 항복하러 오겠다고 하던가 ?"
사신이 대답한다."폐하께서 허락만 내려 주시면, 오늘 밤이라도 항복하러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77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