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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니콜라 테슬라 (Nikola Tesla, 1856~1943)
通知が 추천 0 조회 799 17.05.09 00: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니콜라 테슬라는 어린시절부터 특이했다, 한번 읽은 책은 단어 하나하나까지 외워버렸으며 그릇이나 찻잔의 속부피를 계산하고 있곤 했다, 후에는 자신의 정신적인 눈으로 기계를 발명하기도 했다, 니콜라 테슬라는 1856년 7월10일 크로아티아의 조그만 도시 스밀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적부터 그의 특이한 재능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 그 기발한 재능은 당시에 형 다니엘이 죽고 상심한 부모님을 위로하는데 쓰이곤 했다, 입학을 했으나 ,그는 그 과정을 시시하다고 느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그의 관심은 잘 꾸며진 물리학 실험실에 쏠렸다, 그는 거기서 지금까지의 것보다 훨씬 개선된 기능을 가진 새로운 원동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그는 그의 물건을 시각화하는 범상치 않는 능력을 인지 하게 된다, " 나의 방법은 다르다, 나는 곧 작업에 착수하지는 않는다, 내게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나는 곧 이미지로 그것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설계를 바꾸고 개선을 하고 ,만들어진 기계를 머릿속에서 작동시켜 보는것이다,"

그러나 테슬라의 천재성은 자연과학 분야에만 한정되는것이 아니었다, 언어나 문학에도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영어,불어,독어,이탈리아어, 이외에도 몇몇 슬라브언어를 구사할수 있었다, 말년에는 12개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고 알려져 있다, 전통에 따라 그리스정교목사가 되길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등과정을 마친 후 그라츠로 가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875년 테슬라는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의 새로운 발명품인 그람기계로(GRAMME MACHINE)로 실험을 하는 유명한 푀실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강한 불꽃전류로인해 에너지 손실이 큰 그 기계를 개선하고 직류대신 교류로 작동을 해보고자 하였다 그의 이 생각은 몇년 후 자신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중 하나-교류발전기-를 만드는데 기초가 된다 1881년 공부를 마친 테슬라는 부다페스트의 한 전화상회에 직장을 얻었다, 어느날 부다페스트의 시립공원을 거닐던 그는 세상을 바꿀만한 전광석화와도 같은 깨달음을 얻게된다, 전류를 수백킬로미터 떨어진곳으로 운반하는것을 가능케하는, 유도모토(INDUCTION MOTOR)라고도 알려진 교류모터의 구상이었다, 에디슨의 추천으로 테슬라는 1884년 파리에서 미국으로 건너가고 그 둘은 곧 같이 일하게 된다, 테슬라는 또한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자신의 연구를 밀어주는 후원자를 얻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 두사람은 성격,열정 그리고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정반대였다, 에디슨은 직류에 모든것을 걸고 있는 데 반해 테슬라는 교류를 선호했다, 에디슨과는 달리 테슬라는 자신의 많은 발명품에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인류가 다같이 공유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 사이가 금가는것은 예정된 수순이었고 일년동안의 공동작업 끝에 테슬라는 사표를 내고 만다, 1887년 그 발명가는 뉴욕에 "Tesla Electric Light Company" 를 설립했다, 한결같이 밤낮으로 일했고 1887년과 1890년 사이에 40개의 특허를 출원했다, 그는 강의를 하기 시작했고 그 명확성과 이해도는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점차로 테슬라는 학계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산업계의 거물 조지 웨스팅하우스도 그를 주목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던 웨스팅하우스는 별 손실없이 먼 곳으로 운반이 가능한 교류시스템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많은곳에 세워졌거나 세워지고 있는 직류발전소였다, 또한 에디슨 상회와 톰슨-휴스턴 상회는 교류에 대해 대대적으로 대항하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테슬라에게 불리하게 시작되긴 했으나 교류시스템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설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이 니콜라 테슬라는 자신의 특허를 팔아 부자가 되어 있었고 1881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1900년, 시대를 앞서가는 이 학자는 석탄이나 석유같은 화석연료의 연소에 대한 자신의 가장 중요한 논문중 하나를 썼다, 그에 따르면 지구를 대재앙으로 이끄는것을 막기 위해서 인류는 이제 재생되는 에너지원에 대한 연구에 투자를 해야했다, 1898년 테슬라는 라디오파에 대한 실험을 하기 위해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향했다, (레이다가 40년은 먼저 발명되었을 상황아닌가~!) 은행가 J.Pierpont Morgan이 후원자로서 동참했으나 구글리엘모 마르코니가 모르스신호를 대서양을 건너 송신했다는 뉴스를 듣고 후원약속을 취소했다, 이후 테슬라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1936년 무렵에는 거의 잊혀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니콜라 테슬라는 미국으로 이민해 온후 거의 모든 시간을 호텔과 실험실에서 보냈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1843년 1월 뉴욕의 한 호텔방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이미지 시각화 능력이 얼마나 큰 손실인가 하는것은 후에 밝혀진다, 재정적인 이유로해서 구현될수 없었던 발명품들은 결국 그의 머리속에만 남은 셈이다.

 

 

 

니콜라 테슬라의 미스터리한 연구들

 

 기사요약
지난 1943년 미국 필라델피아 해군항에서 실시된 필라델피아 프로젝트는 일종의 스텔스 함을 개발하려는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 선박은 초록빛..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교류전기 시스템의 발명은 노벨상을 수상하고도 남을 위대한 업적이다.



지난 1943년 미국 필라델피아 해군항에서 실시된 필라델피아 프로젝트는 일종의 스텔스 함을 개발하려는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 선박은 초록빛 안개에 가려졌고, 연구진은 이 초록빛 안개를 통해 선박이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2차 실험에서는 선박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현상도 발생했다.

필라델피아 프로젝트는 니콜라 테슬라가 개발한 테슬라 코일을 바탕으로 실험이 이뤄졌는데, 이외에도 테슬라가 행한 미스터리한 연구들이 아직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과학상식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테슬라(tesla)’ 또는 ‘테슬라 코일’이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테슬라는 자기력선의 단위를 측정하는 단위고, 테슬라 코일은 흔히 전기를 이용해 인공번개를 만들어 내는 장치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인공번개 실험을 위해서는 초고전압을 만들어내는 테슬라 코일을 이용하고 있다.

이 두 단어의 공통점인 테슬라라는 단어는 세계적인 발명가 에디슨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천재적인 전기 공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856년 유고슬라비아의 크로아티아 공화국에서 태어난 니콜라 테슬라는 1882년 미국으로 건너가 에디슨의 전화회사에 근무하면서 교류 전기를 개발했다.

에디슨과 결별한 이후에는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으며, 뢴트겐보다 먼저 엑스레이를 개발했고 마르코니보다 먼저 무선전신 기술을 개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테슬라의 업적 중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교류 전기의 개발이다. 당시 에디슨은 대량 전기 공급에 대해 안전성 등을 들어 배터리와 같이 두개의 극성을 분리해 사용하는 직류 전기를 주장하고 있었다.

직류 전기는 두 극성을 결합하기 전까지는 안전하지만, 장거리 전기 전송이 거의 불가능하고 전기 손실률이 크기 때문에 직류 전기 시스템 하에서는 작은 마을 단위마다 발전소를 세워야 하는 실정이었다.


엘드리지호에서는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순간이동 현상이 나타났다.


반면 테슬라는 교류 전기를 이용해 전기손실 없이 장거리 전송이 가능하고, 안전성에도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것을 기술적으로 입증했다.

물론 이 기술은 후에 미국 전기회사 웨스팅하우스가 특허를 사들여 세계 최초의 교류전기 시스템을 전 세계에 공급하게 됐다. 아무튼 이러한 대립으로 인해 테슬라는 에디슨과 결별했다.

이후 테슬라가 중점적으로 연구했던 분야는 다름 아닌 무선으로 전기를 전송하는 기술이었다.

물론 자금문제 등으로 무선 전기전송 기술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현재의 기술로도 완성되지 못한 이 연구가 완성됐다면 충전이 필요 없는 전기 자동차나 배터리가 필요 없는 휴대폰이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전신주나 전기선이 만들어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음모론이나 미스터리가 전혀 가미되지 않은 명백한 진실들이다.
테슬라는 에디슨과의 결별 이후 전기와 관련된 다양하고 혁신적인 연구를 수행했지만 그의 연구나 삶은 상당부분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베일 속에 가려진 천재적인 전기공학자의 삶. 음모론자들은 이러한 테슬라의 연구에 대해 다양한 미스터리를 덧붙이고 있다.

테슬라와 관련된 대표적인 미스터리는 ‘필라델피아 프로젝트’와 ‘전류 방패 막 실험’이 있다. 물론 이 실험이 실제로 수행되었는지 불투명하지만 음모론자들은 테슬라가 이 두 가지의 미스터리한 실험을 진행했지만 엄청난 파장으로 인해 은폐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영화 소재로도 사용됐던 필라델피아 프로젝트는 선박을 전기 자기장으로 둘러싸 적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의 연구다. 접근 방향은 약간 다르지만 목적은 오늘날의 스텔스 선박을 개발하려는 것과 동일하다.

이 필라델피아 프로젝트를 니콜라 테슬라가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테슬라의 연구업적을 토대로 한 것은 분명하다.

음모론자들은 지난 1943년 7월 20일 미국 필라델피아 해군 항에서 이뤄진 이 실험이 ‘엘드리지(USS Eldridge DE 173)’라는 경구축함에 75Kwh(1,500억V로 승압) 발전기 두 대와 자기장을 만드는 테슬라 코일 4개를 탑재한 뒤 강력한 전기 자기장으로 선박을 감싸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실험 목적은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선박의 개발이었다.

하지만 실험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강력한 전기 자기장이 선박을 감싸기 시작하자 선박은 초록빛 안개에 가려졌고, 연구진은 이 초록빛 안개를 통해 선박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을 경험했다.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선박보다 한발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예상 밖의 만족스러운 결과였지만 엘드리지호의 선원들은 넋이 빠져 있거나 어지러움 또는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미 정부와 연구진은 선원을 전원 교체하고 같은 해 10월 28일 2차 실험을 단행했지만 2차 실험의 결과는 끔찍했다. 2차 실험을 진행하자 엘드리지호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다가 푸른 섬광과 함께 선박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엘드리지호는 순간적으로 약 400km 남쪽에 있는 버지니아 주 노포크 항에 수 분간 나타났다가 다시 필라델피아 해군기지 앞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엘드리지호에는 181명의 승무원 중 120명이 사라져 버렸고, 40명 사망해 21명만이 살아남았다.

더욱 끔찍한 것은 생존자와 사망자 일부는 신체의 일부가 선박의 철판 등 구조물에 박힌 채로 나타난 것이다.

즉 엘드리지호에는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텔레포테이션(순간이동) 현상이 일어났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선박 구조물과 승무원의 신체가 뒤섞여 버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후 미국 정부와 연구진은 황급히 이 프로젝트를 폐쇄하고, 연구 결과를 은폐했다는 것이 음모론자의 주장이다.

또 다른 연구는 테슬라가 연구했던 전자 방패 막 실험과 관련된 것이다. 이 연구는 강력한 전기를 이용해 전류 방패 막을 만들면 적의 포탄이나 폭격기를 튕겨 낼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음모론자들은 테슬라의 이 연구를 1908년 발생한 시베리아 퉁구스카 대폭발 사고와 연결 짓고 있다.

당시 시베리아 퉁구스카 지역에는 원인불명의 대폭발이 있었으며 핵실험, 소행성 충돌 등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음모론자들은 이 폭발 사고가 테슬라가 수행했던 전류 방패 막 실험 중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일어났으며, 테슬라 코일을 통해 막대하게 증폭된 전류가 퉁구스카 지역에 순식간에 쏟아짐으로써 대폭발 사고가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또한 1910년 7월 고비사막에서 있었던 대폭발 사고 역시 테슬라가 초고압 전기를 하늘에 발사해 광선무기처럼 사용하는 실험을 하던 도중 예상치 못한 고비사막 지역으로 반사돼 대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처럼 테슬라와 관련된 이 두 가지 미스터리한 실험은 실제로 일어났는지, 또는 테슬라와 관련된 것인지 조차도 불명확하다.

하지만 교류전기의 발명, 무선 전기전송 실험, 우주 방사선을 이용한 전기 생산, 엑스레이, 무선전신 등에 관한 연구를 니콜라 테슬라가 진행했던 것은 분명하다.

특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교류 전기시스템의 발명은 노벨상을 수상하고도 남을 만큼의 위대한 업적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가는 연구를 수행했던 천재적인 전기공학자가 세상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연구 결과물조차 거의 남겨지지 않은 채 빈곤 속에서 쓸쓸히 사라져간 사실만으로도 음모론자들은 수많은 미스터리를 양산해 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음모론을 한 꺼풀 걷어내고 니콜라 테슬라의 천재성이 다시금 조명된다면 미스터리나 음모론이 아닌 세계 최고의 발명가라는 에디슨을 뛰어넘는 위인으로 기록될 만한 테슬라의 진실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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