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이 집권 이후 2년 동안 펼쳐온 외교가 논란의 중심에 놓여 있다. 먼저 과거사를 버리고 협력을 택한 대일본 외교의 전환이다. 윤석열 정권은 한일 갈등의 최대 현안이었던 강제 동원 노동자 피해 보상 문제를, 일본이 하자는 대로 했다. 대법원의 판결과 피해자의 요구를 무시한 채 한국 쪽의 돈으로 보상해 주는 '제3자 변제' 방식을 택한 것이다. 과거사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굴욕적인 해법이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강제노동의 '강' 자도 꺼내지 않고 공허한 웃음만 흘렸다.
둘째, 지난해 8월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다. 세 나라는 이 회담을 계기로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준군사동맹을 구축했다. 윤 대통령은 3국 회담을 전후해 두 나라를 자극하는 발언과 행동을 거리낌 없이 했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뒷배를 믿고 했는지, 미국과 일본의 뜻을 반영한 행동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행동과 3국 정상회담의 결과, 중국과 러시아와 관계가 극도로 나빠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생즉사, 사즉생의 정신으로 연대"를 제안하는 등, 러시아의 코털을 자극했다. 서방과 손을 잡고 우크라이나에 155밀리미터 포탄을 포함한 군수물자를 직간접으로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가 1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한국 사람을 간첩 혐의로 붙잡아 구속한 것은 러시아의 본격적인 보복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이 핵심 이익 중의 핵심으로 여기는 대만 문제를 건드려 중국을 격분시켰다. 경제적으로는 집권 초부터 탈중국을 외치며,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공급망 분리 정책에 앞장서 가담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중국과 무역에서 처음으로 적자를 보는 등, 한국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한중일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지난해 열심히 추진했던 3국 정상회의 개최는 중국의 비협조로 언제 열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진 뒤 2년 안에 정상 간 상호방문을 이루지 못한 최초의 정권이다.
미국-일본 추종과 한미일 군사동맹 외교의 그림자는 중국과 러시아 관계에만 머물고 있지 않다. 이런 외교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군사적으로 억지하는 데는 일시적으로 효과를 거뒀을지 모르지만, 불안과 갈등도 증폭시켰다. 군사 위협을 느낀 북한이 러시아와 손을 잡고 대항할 명분과 길을 터줬다. 이로써 한반도에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새로운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대화와 외교 없는 무력 중시 정책이 오히려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도록 조장한 셈이다.
셋째, 윤석열 정권이 총력을 기울여 유치 운동에 나섰던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이다. 투표 전날까지 앞서가던 사우디아라비아를 누르고 '대역전'할 수 있다고 하더니, 119대 29의 대참패로 끝났다. 한국 외교의 정보 수집력과 판단력이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난 사건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만 사과하는 척하더니, 주요 관련자들은 장관이네 총선 후보네 하며 꽃길을 걷고 있다. 이로써 참패를 외교력 정비의 기회로 삼는 기회는 자연스레 증발했다.
넷째, 해병대 채상병 사망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한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쉽게 말해,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사실상 주요 사건의 피의자를 대사 임명이라는 꼼수를 사용해 해외 도피시킨 것이다. 공직과 외교를 '내 편'을 보호하려고 사유물처럼 쓴 대표 사례이다. 외교부 직원도 상대국 국민도, 아니 그들 편이 아니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외교마저 사유화'의 상징이다.
이렇듯 네 가지의 사건만 들여다봐도 윤석열 정권의 외교가 그동안 얼마나 문제투성이인지 알 수 있다. 세상은 다변화하고, 각 나라는 이런 속에 실리 외교로 난국을 돌파하려고 하는데 윤석열 정권만 유독 가치 외교를 내세우며 고립을 자초해 왔다. 세상의 변화가 크고 심할수록 사태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응해야 하는데, 외교를 외유로 착각하고 공관장을 비롯한 외교관을 전쟁 뒤 부하들에게 나눠주는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외교의 기조가 집권 3년 차에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올해 1월 외교부 장관 교체를 하면서 외교 정책 방향을 바꿀 기회가 있었지만 놓쳤다. 장관 교체를 정책 전환을 위해서가 아니라 총선에 출마하려는 박진 장관의 공백을 메우는 땜빵으로 했다. 더욱이 대통령실이 주도하고 외교부가 따라하는 지금의 외교 구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후임 조태열 신임 장관이 정책 전환을 꾀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윤석열 정권의 외교 안보 진영에서 국가안보실장도 두 번이나 바뀌고 관련 장관도 모두 바뀌었지만, 처음부터 지금껏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 윤석열 정권의 외교 안보 실세로 불리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다. 그가 버티고 있는 한 윤석열 정권의 외교 정책은 3년 차에도 이전처럼 그대로 이어질 것이다.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세계정세의 변화가 요동칠 것이 확실한데 말이다. 윤 대통령의 '유일한 친구'인 기시다 총리도 지지율이 바닥을 치면서 위태위태하다. 미국과 일본 중심, 가치 중심 외교의 환경이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윤석열 정권의 '천동설 외교'가 불러올 후폭풍이 두렵다.(오태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