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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리역 Delhi Junction、Old Delhi Railway Station ; 旧德里火车站
▲ 인도 델리역(Delhi Junction) - 통상으로는 올드델리역(Old Delhi Railway Station)이라 한다.
많은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쓰기로 하고 필자는 이번 여행에서 중요한 관광지 중 하나인
인도의 델리역에 내렸다. 그런데 델리역이라고 하면 ‘Delhi Station’ 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그곳에서는 Delhi Junction[déli dƷʌ́ŋkʃən]이라고 말한다. 필자세대로서는 비교적
외국어를 조금 잘 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다. 우리는 흔히 표기
에 [ʌ]를 ‘어’로 하여 junction 을 ‘정션 ́이라고 하는데, 인도사람들은 [ʌ]를 완전히 ’아‘로
발음한다. 그래서 필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니까 Old Delhi Railway Station 이라고 다시 말
하여 올드델리역을 말하는 것을 알았다.
▲ 인도의 고락뿌르(Gorakpur)에서 델리(Delhi)로 가는 기차의 침대칸에 누워있는 두류봉.
▲ 델리역(Delhi Junction)을 측면에서 찍은 사진 - 인도는 기차역도 촬영금지다.
필자는 junction 이라고 하면, ‘교환(하다), 연결, 환승, 교차점’ 이란 뜻만 알고 있었고, 기
차역인 railway station 이란 뜻이 있는 줄은 몰랐다. 더구나 한쪽에 영어로 Delhi Junction 이
라고 병기해 둔 것을 한참 후에 역을 나오면서 보았다. 모든 내용을 힌디어로 पुरानी दिल्ली
रेलवे स्टेशन 라고만 써 두었다. 힌디어를 필자는 알파벳 한 글자도 읽을 줄 모른다. 어쨌든
델리역을 빠져나와 그 혼잡한 역앞에서 오토릭샤를 탔다. 델리에 오는 모든 여행객이 찾는
다고 하는 여행자의 거리라는 빠하르간지(Pahar Gang or Pahar Ganj、帕哈拉甘地区)의 메
인바자르(Main Bazar)로 가자고 하였다.
▲ 올드델리역(Delhi Junction)에서 오토릭샤를 타고 빠하르간지의 메인바자르로 왔다.
필자를 태운 오토릭샤는 그 복잡한 거리를 잘도 빠져나와 드디어 뉴델리역 앞의 빠하르
간지(Pahar Gang)지역의 메인바자르(Main Bazar)에 도착했다. 퇴근시간을 지나 저녁시간
으로 넘어가는 때라서 뉴델리역 앞에서부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혼잡스럽다. 오토릭샤
를 모는 운전수는 도저히 빠하르간지 길을 들어갈 수 없다면서 양해를 구한다. 필자는 배
낭을 지고 릭샤에서 내려 몹시 붐비는 빠하르간지 길을 조금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여
관이 많이 있을 듯싶은 골목길로 들어가 보았다.
▲ 뉴델리(New Delhi)역 앞의 길 건너편이 빠하르간지의 메인바자르이다.
◆ 빠하르간지 거리 Pahar Gang or Pahar Ganj ; 帕哈拉甘地区
어느 여관 앞에 개가 한 마리 드러누워 있다. 괜히 그 집에 들어가 내용을 알아보고 싶은생각이 들었다. 프런트에 가서 문의하니 방이 있다고 하는데, 가격이나 여러조건이 괜찮
아 협상이 이루어졌다. 저녁은 먹었으니 방에 들어가 배낭을 벗어놓고 제일 먼저 할일이
샤워와 빨래다. 물속에 몸을 담가도 시원하지 않다. 국내의 적십자사에서도 나이가 많은
데다가 건강이 별로 좋지 않다고 헌혈을 강요하지 않았는데, 인도의 기차 안에서는 인도
모기란 놈들이 강제로 나의 피를 다 빼내어 갔다. 그냥 그날 저녁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
었다.
▲ 빠하르간지(Pahar Gang)골목길의 어떤 여관 앞에 개가 한마리 있다. - 오늘밤 여기서 하루 머물자.
▲ 빠하르간지(Pahar Gang)의 골목길에 있는 조그만 여관 Sterling Inn을 숙소로 정했다.
▲ 복잡한 빠하르간지(Pahar Gang) 거리에서 배낭을 지고 골목길로 들어가 숙소를 잡았다.
▲ 델리의 밤은 깊어가고 빠하르간지(Pahar Gang)의 여행자 골목은 몹시도 혼잡스럽다.
▲ 하룻밤 자고난 빠하르간지(Pahar Gang)숙소의 프런트에서 젊은 여행객들 속에 포즈를 취한 두류봉
● 다음날의 계속된 델리생활
▲ Good Morning! Mr. manager. 호텔지배인과 아침근무 담당직원과 함께 한번 찰칵.
05:00 기상、 배변 및 세면 후 운동
05:50 빠하르간지(Pahar Gang)의 골목길에 있는 Everest Bakery Cafe 에서 네팔아줌
마가 만들어주는 볶음밥을 먹었다. (180Rs、인도음식은 대개 20~40Rs이니 상
대적으로 무척 비싸다)
(인도의 1Rp는 우리 한국돈으로 약 25원쯤 되고, 구매력은 ×100 이상이니까 환율로 계산
하면 4500원쯤 되지만, 실제적인 구매력이나 소득수준 또는 물가수준을 기준으로는 한다
면 약 20,000원 정도의 가치로 인도인이 보통 먹는 한끼음식값의 10배정도 되는 셈이다)
▲ 빠하르간지(Pahar Gang)의 골목길 - 아침 일찍은 크게 붐비지 않는다.
▲ 빠하르간지(Pahar Gang) 골목길을 높은 빌딩 옥상에서 내려다 본 광경
▲ 필자가 아침을 먹은 빠하르간지(Pahar Gang) 골목길에 있는 에베레스트 베이커리 카페
▲ 빠하르간지(Pahar Gang) 골목길에서 먹은 신라면 - 한국신라면이 인도라면보다 3~4배 비싸다.
▲ 빠하르간지(Pahar Gang) 골목의 식당에서 차려주는 인도식 백반.
▲ 빠하르간지(Pahar Gang) 골목길의 식당에서 시중드는 종업원.
06:30 델리의 아침기온이 32도 정도 되는데, 아침 먹으려 나갔다 오니 온몸에 땀이
배고 옷이 흥건히 젖어서 옷을 벗어서 빨고 샤워를 했다.
07:30 슬슬 걸어서 그냥 지하철을 탔다. 비좁기는 말도 못할 정도이고, 덥고 땀내가 심
해도 이것이 참뜻의 현지를 아는 여행이다. 외국에서 해당도시를 알려면 지하철
이나 버스를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멀리 나갔다가 길을 잃으면 지도를 보고
숙소까지 찾아오는 것이 외국도시의 자유배낭여행의 묘미를 맛보는 것이다.
▲ 인도 델리의 메트로 전철 토큰
▲ 빠하르간지 서쪽인「라마르크리쉬나(Ramakrishna) 아쉬람 마르그(Ashram Marg)」역
▲ 빠하르간지 바깥쪽의 메트로는 지상철로 되어있는데, 불루라인(Blue Line)으로 3호선이다.
○ Ramakrishna Ashram Marg 역에 가서 전철을 타고 보니 동서로 달리는 파란색의 3호
선이다. 서울의 2호선 한양대-강변 구간처럼 지상철인데 토요일인데도 몹시 붐빈다.
델리(Dehli)에서는 전철이 지하철이든 지상철이든 그냥 메트로(Metro)라고 부른다.
델리(Dehli)기차역인 찬드니쵸크(Chandni Chowk)로 가려면 동쪽으로 한 구간을 가서
노란색의 2호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북쪽으로 3구간을 가야한다.
▲ 델리의 메트로 노선도
▲ 델리의 메트로 노선 중 지상철 구간
델리의 지하철요금은 총 4구간을 가게 되니 기본요금인 4루피인데, 인도는 전철도 군사
적 보안시설이라 비행기 타듯이 짐검사를 하고 몸수색을 한다. 그리고 역구내나 전철내
에서는 촬영금지구역으로 카메라를 꺼냈다간 바로 군경에게 제지당하고 끌려가기도 한
다. 1구간을 가서 갈아타려니 2호선은 지하철이라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깊은곳
으로 내려가야 한다. 서울의 이태원역처럼 계단을 뱅뱅 돌면서 딛고 내려가서 갈아탔다.
▲ 델리의 시내에도 이렇게 녹지대도 있지만, 대체로 복잡하고 거리질서가 엉망인데다 지저분하다.
▲ 인도의 수도인 델리시내도 복잡한데다 지저분하고 음식을 먹거나 배변이 비위생적이다.
▲ 델리의 번화가의 힌두교 교회에서 음식을 나눠주는데 우리 입장에선 역겨울 정도로 비위생적이다.
▲ 델리의 어디를 가도 북적거리고 시끄럽고 복잡하다.
델리의 메트로2호선인 옐로라인(Yellow Line)의 찬드니쵸크(Chandni Chowk)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이 지역은 정말로 사람도 많고, 온갖 교통수단이 뒤범벅이다.
무수한 행인、우리나라의 모닝차가 현대모닝이란 상표를 달고 달리고、오토릭샤、사이
클릭샤、달구지꾼과 청소차까지 그냥 대낮에 거리를 다닌다. 차와 사람사이를 간신히 비
집고 길을 건너고 모퉁이를 돌아서 지하도로 내려가 길을 건너 마지막으로 붉은 성(Red
Fort)앞으로 나갔다. 이곳은 행상들이 길거리를 모두 막아서 있다.
▲ 찬드니초크(Chandni chowk)역 표시판
▲ 델리의 메트로(전철) 차안광경(플래쉬 터지지않는 작은 디카로 잡혀갈 각오로 몰래 찍었다)
▲ 델리의 메트로(지하철) 차 기다리는 승객들의 모습
▲ 델리의 메트로(지하철) 승하차 모습 - 필자가 내리고 다음 차를 기다렸다가 촬영
▲ 델리의 메트로역 시설 중 가장 잘 되어있는곳(?) - 가장 붐비며 올드델리역과 연결
▲ 델리의 메트로시설은 우리나라와의 기술제휴로 건설하여 아주 훌륭하다.
그 사이를 빠져나와 길을 걷고 또 갈라진 길을 건너서 드디어 붉은 성 앞길의 지하도를
지나는데, 지하도 안은 컴컴한데다 그냥 그곳에서 노숙자들이 대낮에도 잠을 자고 있다.
잘못하다간 잠자는 사람을 밟을 수도 있는데, 만약 그 사람들이 밟히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드디어 붉은 성에 도착했다.
▲ 찬드니초크(Chandni chowk)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와 이런 길을 걷고 또 대로를 건너고
▲ 컴컴한 붉은성앞 지하도를 건너니 왼쪽 야무나시장(Yamuna Bazar)오른쪽 붉은성(Red Fort) 표시
▲ 지하도를 건너 오른쪽 입구로 걸어 올라와서 나왔다.
▲ 오른쪽 지하도를 나오니 노점상과 사람들로 완전히 통행이 불가능한 상태다.
◆ 랄 퀼라 Lal Qila - 무굴제국의 힘을 자랑하는 붉은 성(Red Fort) - 德里红堡
- 델리(Dehli)성은 '적성(赤城)' 즉 붉은 성이라는 별칭을 가진 성으로서 인도의 델리
에 있는 성(城)이다.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 델리의 붉은 성(Red Fort) 앞 광장과 외부에서 본 성의 전면사진
▲ 델리의 붉은 성(Red Fort) 의 상징적인 부분을 나타낸 사진.
▲ 델리의 붉은 성(Red Fort)을 설명한 안내판 옆에 서 있는 두류봉.
붉은 성(Hindi: लाल क़िला, Urdu: لال قلعہ, usually transcribed into English as Lal Qil'ah or
Lal Qila)과 성이 위치한「샤 자하나바드(Shah Jahanabad)」는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인
「샤자한」이 조성한 것이다.
▲ 바깥에서 성안으로 들어가는 데도 회랑식 복도처럼 좁은 문으로 되어있다.
▲ 성안에 들어가서 성의 뜰에 들어가는 데도 복도처럼 좁은 골목을 걸어들어가야 한다.
성의 기본 도안은 기존의 성 양식을 통합하여 보강하도록 설계되었다. 성곽형태의 궁
전은 중요한 도시적 면모를 띠며 인도의 중세시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전체적인 면모
와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무굴제국의 활동과 창조성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다.
▲ 문을 지나 성안에 들어가려면 기념품점이 늘어선 차타초크(아케이드)가 있다.
▲ 아케이드식인 차타 초크 앞쪽에 일반접견실인 디완이암(Diwan-i-Am)이 있다.
▲ 성안에 들어가서 성의 뜰에 들어가는 길목도 오직 하나밖에 없는 특수한 공법으로 만들어져 있다.
건물의 일대 변화는 영국의 식민지지배에서의 1차 독립전쟁 때였다. 독립이후 구조 변형
과 보수에 따라 상당 부분이 교체되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군의 병영지로 쓰이고 독
립 후 2003년까지 인도군의 속영하에 있었다.
▲ 붉은 성안에 있는 인도전쟁기념박물관(Indian War Memorial Museum) 안내표시판
▲ 붉은 성안에 있는 인도전쟁기념박물관(Indian War Memorial Museum)
▲ 인도전쟁기념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디완이암 (Diwan-i-Am)의 전체모습
붉은 성을 짓도록 한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샤자한」은 아그라 성에서 델리로 천도하
여 당대의 번영을 뽐내길 원하였다. 그는 천도(遷都)를 하면서 방대한 건물 계획과 능력
을 과시하였다. 시의 동쪽 외곽인 올드델리의 중심지에 <랄 퀼라(Lal Qila)> 즉 <붉은 성
(Red Fort)>을 지었는데, 붉은성이라는 이름은 성의 거대한 벽이 붉은 빛을 띠고 있어서
이다. 전체 벽은 2.5km에 달하며 높이는 차이가 나지만 대개 16~33m이다.
▲ 일반 접견실인 디완이암 (Diwan-i-Am)의 붉은 기둥들.
▲ 일반 접견실인 디완이암 (Diwan-i-Am)을 정면에서 본 모습.
문을 들어서서 다시 기념품점이 늘어서 있는 차타초크가 있고, 그 앞쪽에 일반 접견실인
디완이암(Diwan-i-Am) 이 있다. 정면의 높은 곳에는 옥좌가 있는데, 이곳에는 루비나 사
파이어, 에메랄드 등의 보석이 박혀있었다고 전해진다.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야무
나(Yamuna)강을 뒤로 하고, 귀빈 접견실인 디완이카스(Diwan-i-Khas)와 랑 마할 (Rang
Mahal ; 황비의 처소), 카스 마할(Khas Mahal ; 황제의 처소) 등 궁전이 늘어서 있다. 야무
나강변에 서 있는 성은 벽의 대부분이 연못으로 둘려 싸여있어 해자 형태를 띤다. 건축은
1638년 시작되었으며 1648년 완공되었다.
▲ 귀빈 접견실인 디완이카스 (Diwan-i-Khas)의 모습.
▲ 황비의 처소였던 랑 마할(Rang Mahal).
1783년 5월 11일, 시크교도가 성으로 들어오면서「다완이암」이 성을 점유하게 되었다.
붉은 성은 전체적으로 계획의 통일성에 충실하여 지어져 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여러
상해를 입게 된다. 또한 1857년 세포이 항쟁이후 성이 영국군의 본부로 쓰이면서 5분의
4에 해당하는 전각을 해체하였고 정원도 망가뜨려버렸다. 복구 계획이 1903년 시작되었
다.
▲ 황제의 처소였던 카스 마할(Khas Mahal). -(1)-
▲ 황제의 처소였던 카스 마할(Khas Mahal). -(2)-
▲ 황제의 처소였던 카스 마할(Khas Mahal). - (3) -
● 붉은 성의 건축은 장식과 미술적 양식을 고도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다. 미술적으로는 페르시아, 유럽, 인도 미술을 고루 배치하였고 결과적으로는「샤
자한」왕대의 미술 양식을 고도로 표현하는 방식을 낳았다. 색채와 표현법, 형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균형을 두루 갖추었다.
▲ 폭염의 더위 속에서도 항상 관람객으로 붐빈다.
▲ 항상 관람객으로 붐비는 붉은 성 안의 모습
▲ 인도사람들도 관람을 와서 가족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이 부부는 비교적 적은 수인 6명의 자녀이다)
그래서 붉은성은 모든 인도의 건축을 대표할 만큼 중요한 건물이다. 시간과 공간을 거슬
러 현대에 과거의 시간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인도전체의 번영과 예술적 능
력을 상징하기에 1913년에는 성을 보수할 적에 전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기도 했었다.
▲ 필자와 대화를 많이 나누고 같이 다닌 독일 함부르크에서 온 젊은 여성관람객
▲ 필자도 잔디밭에서 사진을 한판 찍고는 나무그늘에서 좀 쉬었다.(이 사진은 독일여성여행객이 촬영)
▲ 붉은 성을 영어로 안내해주는 봉사자가 사람들 앞에서 붉은 성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붉은 성은 델리의 가장 대중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며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이 찾는
다. 또한 인도의 초대 총리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곳이 이곳이다.
▲ 붉은 성의 내부에 배치되어 여러 전시관을 파노라마로 일별하여 보기
▲ 성 안을 한 바퀴 돌아보고나서 너무 더워 관람객들이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다.
▲ 인도 네팔 쪽에는 서양의 여행객들이 아주 많다.
▲ 성 안의 뜰에서 그늘을 만들어 주는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한 보리수나무 - (1) -
▲ 성 안의 뜰에 있는 그늘을 만들어 주는 키 큰 보리수나무의 밑둥부분 - (2) -
원래는 3,000명 정도의 주민이 요새와 인근 단지에 거주하였으나 1857년 영국의 소유처
럼 궁전이 사용되면서 주거기능이 사라졌다. 1947년 인도가 독립하자 인도군(印度軍)이
성의 소유권을 가져갔다. 2003년 12월 군이 소유권을 인도 관광청에 넘겼다.
▲ 인도에서는 중요문화재도 군사적인 보안지역이라 입구에는 초소를 만들어 군인이 주둔하고 있다.
▲ 대낮더위가 심한데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붉은 성 광장에는 관람객으로 붐빈다.
◆ 찬드니 초크 Chandni Chowk ; 月光集市
- 랄 퀼라(Lal Qila)의 정면에는 활기찬 대로가 뻗어있다. 바로「샤 자하나바드(Shah
Jahanabad)」의 중심대로였던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로 일명 달빛거리라고 한
다. 옛날에는 마차와 귀인이 가마를 타고 다녔으나, 지금은 승용차(우리나라의 현대
모닝이나 작은 모닝형이 주종을 이룸)․트럭․릭샤․우마차․인력거는 물론이고, 코끼리
와 낙타까지 차선이나 신호가 잘 지켜지지 않고 마구 달린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각
양각색의 다양한 인도 사람들과 외국인이 뒤범벅이 되어 이런 교통수단 사이로 빠져
서 길을 건너자면 너무 위험하고 불안하다. 아마도 인도의 다양성과 혼잡 내지는 혼
돈을 바라보는 상징적인 모습이랄까(?)
▲ (올드)델리 최대의 혼잡지역인 찬드니초크(Chandni Chowk)거리는 여러 교통수단으로 뒤범벅이다.
▲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 큰거리에서 시장(Bazar)거리가 갈려나가는 골목길 입구이다.
▲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와 거리에 걷고 있는 사람들
대로 양쪽에는 상점가로 상인들의 거리이다. 인도의 전통적인 가게모습도 보이고, 대형
상점도 있다. 특히 금은(金銀)보석이나 금은세공점(金銀細工店)은 유명하다. 이런 중심
거리에 학교도 있고, 빈민가도 있으며, 자이나사원, 힌두사원, 시크사원인 쿠르드와라,
모스크도 있는 복잡하면서 활기 넘치는 곳이다.
▲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거리는 복잡하고 조금 지저분해도 값싸고 질좋은 상품도 많다.
▲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는 복잡한 속에서도 여러 인도의 종교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의 시장골목 상가에 진열되어 있는 여러 가지 상품들
▲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의 시장골목길에는 이렇게 노천상가에도 상품이 즐비하다.
찬드니 초크의 중간지점쯤 되는 곳인 작은 분수가 있는 모퉁이를 북쪽인 오른쪽으로 돌
아 들어가면 델리역이 나오고, 왼쪽으로 꺾어들면 서점 종이가게 등이 모여있는 아미르
찬드 마르그(Amir Chand Mg.)가 나온다.
▲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거리에는 인도의 온갖 유행패션도 다 보인다.
▲ 찬드니 초크거리에는 예쁜 패션의복을 입은 여인도 있고, 생활에 찌든 빈민들도 보인다.
▲ 찬드니초크거리에 있는 학교 - 초, 중, 고등학교가 같이 있어 어린이도 상당한 나이의 청소년도 있다.
필자는 붉은 성을 관람하고 나와서「찬드니 초크(Chandni Chowk)」거리를 걸어서 이곳
거리에 있는 거대한 모스크인「자마 마스지드(Jamma Masjid)」앞에 와서 길을 건너 인도
의 시장을 구경하러 시장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미 시각은 12시반이 되어 점심시
간이다. 조금 피곤하고 배도 고팠다. 우선 골목입구에 있는 카림호텔(KARIM HOTELS)음
식을 먹으러 들어갔다. 홀 안에는 손님으로 가득 차 있고, 문밖에는 차례를 기다리고 있
는 사람도 있었다.
▲ 인도에서는 아무리 복잡한 골목에도 소가 돌아다닌다.
▲ 찬드니 초크의 번화한 거리 앞에도 아무렇지 않게 빈민가가 자리잡고 있다.
▲ 찬드니 초크 거리 한쪽 켠에 이불을 쌓아두고 그냥 거리에서 잠자는 사람도 많다.
▲ 찬드니초크의 자마마스지드(Jamma Masjid)앞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면 카림(KARIM)이 있다.
첫댓글 델리의 고적과 고궁등 인도인들의 문화와 평범한 일상까지 상세하게 올려주신 자료들이 대단하십니다!
나마사떼로 시작되던 엽서가 생각납니다...여동생이 대학시절 인도로 배낭여행때 보낸사연이
유럽이나 미국등 여러 나라들보다 정겨움으로 다닌곳인듯 ...종일 여행하고 저녁나절 길가 가게앞에서
석쇠위에 지글거리는 고기와 차가운 맥주한잔으로 즐거움이 넘친다면서 어딜가나 아이들의 착한 눈망울로
나누는 인사와 선량한 사람들과의 만남들이 편하고 따뜻했다는 ...벌써 이십여년전의 이야기가 되었군요.
미소님! 이렇게 오셔서 필자의 글을 읽어 보시고 댓글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두류봉은 이번에 배낭여행을 비행기는 타지 않고 배타고 天津으로 가서 기차와
버스나 자동차만 타고 티베트를 거쳐 네팔 그리고 인도를 돌아다니다가 파키스탄
그 다음에는 쿤자랍고개를 넘어서 신강(서역) 그리고 키르기스와 우즈벡으로 갔다가
카자흐를 거쳐서 중국으로 하여 연운항에서 인천으로 배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인도는 역시 주위가 지저분하고 개발이 부족해도 전통과 순수함이 살아있죠.
감사합니다.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보따리를 조금씩 풀어헤칠 게요.
조목조목 해설도 곁들여 주시니 좋았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무릉도원님, 감사합니다. 필자의 글을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되는 대로 필자와 자주 교감할 수 있기를 빕니다.
혼돈과 무질서......그 안에도 질서정연함이 숨어 있겠지요. 두류봉님 덕분에 인도 구경 잘 하였습니다.(일부라서 아쉽지만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우선 조금 엿보기만 하였지만,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많은 얘기를 하게 될 겁니다.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채찍질 하시고 이끌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안하세요. ^^
감사합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정신 세계를 깨우치는 무한한 철학이 숨쉬는곳 인도 -
네 감사합니다. 인도는 신의 나라라고 하더군요.
각양각색 천의 얼굴을 한 인도는 우리들에게 깊은 정신을 심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