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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해 지는 복
12년 전 내 나이 58세 때 네 살 된 여자아이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품에 안았던 때가 있었다.
요 사랑스런 꼬맹이가 어느새 자라 중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사춘기가 영원할 것처럼 공포 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 막내딸로 인하여 깊은 터널속에 들어와 있는 이 느낌은 무엇일까 검은 구름속에 깊은 긍휼을 기대하며 다섯번째 맞이하는 사춘기 인데도 영 적응이 안된다
각자 자기방에 문 닫고 들어가면 문은 좀체로 열리지 않고 '남들도 다 그라고 살제'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막내딸의 사춘기는 위의 네 오빠와는 차원이 달랐다
정체성 혼란으로 '우리가족은 나한테 관심이나 있어? 다 싫어 죽고 싶어 언제 내얘기 진심으로 들어준적이 있냐구? 엄마가 나한테 해준게 뭐냐구? ' 악다구니를 해댔다
언제나 일로 바쁜 늙은 엄마는 '이누무 지지배가 뭔 복에겨운 투정이냐구! 내가 지를 을매나 이뻐 하는디' 라며 쎈척 호기를 부려보지만 언제 부터 인가 부모에게는 자녀가 갑이다.
서로 사랑의 온도차가 하늘과 땅으로 벌어지기 시작하며 감당이 안되었다
그 나이에 있을법한 자해. 자살. 유트브 에 심취해 위에 네 오빠들 에게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음주가무에 능하고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막내딸의 행보는 늙은 엄마를 충분히 겁먹게 했고 입양아 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거짓말에 도벽 까지 학교부적응 으로 엄마로 하여금 대안학교를 찾아 전국을 떠돌게 했다.
굳게 다문 입은 열리지 않았고 오로지 핸드폰 에만 매달려 죽기살기로 끝장을 내기라도 할 듯 체팅방에서 온종일 낄낄 거렸다
교회 가는것도 마지못해 질질 끌려가고 가정예배도 못마땅해 찬양도 기도도 이런걸 왜 하느냐는 표정으로 시큰둥해 하며 잔뜩 뿔이났다
주의 집중력을 높이는 약 처방은 점점 강도가 쎄지고 약 먹일때 마다 실갱이를.한다
가정 예배드린후 공감능력 바닥인 가족들이 공감 능력 키우는 공부를 시작했다
초딩 으로 돌아 가서 그림 그리고 주일 오후엔 아들집 뒷산 덕고산에 올라 자연경관을 접하고 평소 관심없던 소설책 들여다 보고 가족들은 막내딸이 현실로 나오지 못하는 가상 세계에서 말 안되는 얘기 지절거려도 '~구나 ~아팠겠구나, ~힘들었겠구나 ,~좋았겠구나 ,~짜증났겠구나' 를 연발 내뱉으며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다
이제 곧 3월이면 새 학교로 전학 가게 될 꿈도 생겼다 . 핸폰을 내려놓고 책을 손에 들었다
어느날 부턴가 규칙을 정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피아노 학원부터 다녀온 후(학원가는거 엄청시리 싫어함)
찬양 5곡 부르고 성경5장 읽고 그리곤 핸드폰 찾아 간다
하루 폰 6시간 안 넘기기 규칙을 세워 놓고 위반하면 한달 일시 정지 하기로 한다
저녁 9시면 온가족이 핸드폰 내고 취침을 한다
'팔다리 없는 귀신이 눈앞에 떠 돈다'는 것도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것도 귀담아 듣고 약을 챙겨 먹인다
일중심이었던 엄마가 가정을 살리기 위해 턴하기까지 늘 피로에 쩌들었던 지친 삶에서 벗어나게 해준건 막내딸의 사춘기 덕분이다.
'에공 요가시나가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속에서 솟았나.'하며 물고빨고 하던 시간들도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학교를 안 가겠다며 생떼를 쓰며 가족들을 공포에 집어 넣을때도 나의 뇌종양을 고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또 좋은 경험 주시는구나 남들이 가지 않는길을 여시는구나'
하며 고난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아이 고칠 상담가는 내가 보기엔 강원도에는 없는것으로 보이 니 서울로 가보시는것이 좋겠다'는 조언도 상담을 전공하신 담임 목사님으로 부터 들었다
1 학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사춘기가 2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고난은 끝이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해맑게 웃으며 학교로 등교 하던 날 가족사진 찍고 싶다고 오빠들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바로 위 넷째 오빠도 대학교 기숙사로 떠났다
어렴풋이 5년전 운동하는 넷째아들의 슬럼프로 고통 하던 때가 기억이 났다. 고2때 코치와의 불협화음으로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며 강원체고에서 일반고로 전학 가서 운동은 그만두고 공부를 하겠다며 밤낮 떼를 썼다 감독선생님은 '어머니 잘 달래보세요' 수시로 전화를 하시고 아들은 ' 왜 내맘대로 못 하게히느냐'며 울고불고. 심술만 커져갔다
영어에 재능이 보이는 것 같아서
'아들, 그러지 말구 외국에 나가 공부해 그리구 원어민 강사로 들어와'
'에고 그건 나중에 천천히 생각할래요'
이유는 코치샘의. 언어폭력때문이었다 '그럴꺼면 집에가라' 는 식의 실망스런 말투 선배들의 후배 기강 잡기 심부름등
마음이 여린 아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우울해 하던 중이었다
'투포환은 그만 둘래요 코치가 맘에 안들어요' 하며 레슬링부에 가서 기웃거리다가(키 190, 몸무게 110kg)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겠다고 하다가 학교에서 절대로 놓아줄 기미를 안보이자 하는수 없이 다시 돌아와 코치와의 대면을 어려워하던차에 코로나사태를 맞았다
피할길을 주시는하나님 학교에 가지 못 하고 단톡방에 올라온 코치의 지시에따라 하루하루 운동량을 채워 나가면서 가족들과의 유대관계도 좋아지고 코치와의 비대면 수업이 유효적절했다
코로나가 나를 살렸다
어제는 가족들이 그때그 이야기를 하며
'아이고 . 내가 그때 운동 때려 쳤으면 지금 상비군이 됐겠어요'''? 하며 고마움인지 미안함인지 모를 너스레를 떤다.
코로나로 인해 얻은 수확은 더 있었다
난 아이들 에게 온종일 먹거리 대는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밥 먹을때 조차 손을 잘 씻지 않던 아이들이 손을 잘 씻게 되었고, 예배를 부담스러워 하던 아이들이 예배에 열심하게 되었다
전염병으로 종말을 말할수 있어 천국 소망을 가지게된것 은 은혜였다
성경 에서 읽었던 말씀들이 실제 상황이 된것에 대해 말씀을 더 이해하고 성경필사를 힘들어 하던 아이들이 팔이 아프다면서도 열심히 쓰고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주제가 있어 많은 대화를 나눌수 있게된것 사춘기를 무사히 지낼 수 있게된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혼자 하던 중보 기도를 가족과 같이 할수있어 힘이 되었다 중보기도란? 모든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것이기에 중보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알게 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그뜻을 알수있다
고로. 나는 하나님 이 하시는일을 같이 하고 있는 동역자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에 영향 받지 않는 일터 주셔서 감사 했다 (요양일)
탄산음료를 즐기던 아이들이 엄 마가 만든 각종 과일 효소를 즐겨 먹게 되었고 불량식품 군것질 보다 질좋은 엄마의 요리를 좋아 하게 되었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로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와 준다
아주 오래전 전염병 신종플루에.걸렸던 우리 아들이 있었다
엄마 아버지는 아들을 이웃집 할머니에게 맡기고 행방불명이었다 아들의. 양육을 맡았던. 이웃집 할머니는 친아버지가 양육비를 안준다는 이유로 아들을 볼모로 잡고있었다
그러나 그 환경은 너무나 열악했다 집안은 온통 담배 연기 자욱한 가운데 노름꾼들로 늘 북적거렸고, 그들이 내는. 자릿세로 근근히 이어가는 할머니의 삶이었다
안타까웠지만 친할머니 조차 그 아들을 어찌지 못했다. 밀린 양육비가. 데려가는 전제조건이었다
난 그동네 동사무소 사회복지과에 연락을 해 가정방문.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 와중에 아이는 신종플루라는 전염병에 걸리게되었고 겁이난 할머니는 친할머니에게 데려가라고 아이를 내 주었다
그러나 . 친가에서도 신종플루라는 말에 겁을 먹고 나에게 보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가족은 그 아이와 끌어안고 같이 밥도 먹고 지내다가 아이가 원주의료원에 예약이 되어 있어 갔더니 신종플루 였음이 드러났다
그아이를 방에가두고 우린 거실에서 지내며, 아이가 신종플루임을 쉬쉬,하며 비밀로 했다 그 이유는 가족중에 한사람이라도 신종플루가 있으면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7살. 혈기 왕성한 어린 아들을 방안에 가두어 놓고 아무도 접촉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은 서로에게 고통 이었다
그러나 우린 '신종플루야 고맙다' 를 얼마나 외쳤던지' 네가 내 아들이 된것은 다 신종플루 덕분이야!' 하며지금도 그 당시를. 떠올리며 코로나로 위기를 맞으며 우린 또 곧 '코로나야 고마워다 네덕분이야!' 라고 외칠날이 올것이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지금의 사태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우리는 알게되리라 의미를 부여해본다 의미가 생기면 무슨일이든지 상관없다 여기가 좋다 지금이 좋다 ' 로 결론 짓게 되기 까닭이다
우리 가족사진을 본 친구가 ' 자식농사 잘 지었네' 라고 한다.
아직 단언하긴 이른감이 있다 그렇게 변화 무쌍한 게 자식농사 인 듯 풀도 어렸을 때 뽑아야지 쉽게 뽑힌다는 것이 무엇이든 시기를 놓쳐 버리면 뽑기도 힘들뿐더러 옆에 곡식까지 뽑아지는 안타까움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의 사춘기는 적당히 드러내 주는 것이 맞고 사춘기를 기회로 상처가 치유 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면서 딸의 사춘기가 요동칠 때 마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했다
기질적으로. 조용히 혼자 만의 시간을 즐기며 에너지를 받는 나와 시끌벅적 관계를 통해 에너지를 받는 딸과 나는 극과 극이다 딸은 극한 외로움을 핸드폰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핸드폰 속에는 딸을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 체팅을 밤낮없이 하며 시끌벅적 떠들며 가족들과는 점점 멀어져 갔다
네 명의 아들들을 통해 충분이 인간이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동안 막내딸이 훅'? 하고 쳐들어와 사람 되긴 멀었다고 어림없는 소리라고 하는 거 같았다
길거리에 노랑머리 소녀들이 지나가는 걸 보면서 설마 내 딸은 아니겠지? 했던 때도 있었다.
그 노랑머리 딸이 나랑 같이 붙어있지 않으면 아무도 내 딸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어찌 사람들을 피해 다닐 수 있겠는가 딸과 함께 저녁산책을 하며 동네 어르신들을 마주한다.
'김신혜 딸이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였더라' 소문나는 건 시간 문제다. 어제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염색약을 비벼댄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다
제발 개학날 하면 안 되겠나? 사정해 보았지만 그 씨름이 무의미 하다는 걸 깨닫는다 (개학날 하면 어쨌던지 동네 사람들에게는 숨길수가 있으니 말이다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진다. 네 모습이 어떻든 너를 사랑해야만 하고 사랑스럽게 보기까지 너무 먼 길을 돌아서 왔다 이제는 아이의 그 어떤 모습에도 놀라지도 호들갑 떨지도 않을 자신이 생겼다
딸이 나를 그렇게 변하게 했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나의 고백이 진짜가 되게 하자
아이가 집을 나간 지 9개월 하고도 9일 이 지나 해도 바뀌고 달도 아홉 번이나 바뀌었다 . 동네 소문은 감금 폭행 그리고 내쫒았다 였다. 그것이 아이의 머리에서 나온 꼼수라고는 지금도 그때도 믿지 않는다 아동학대 무혐의 판정을 받았지만 변명한다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었다.
’ 왜 다시 받아들이기로 하셨어요?‘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 앞에서 ’ 오해를 풀어야지요‘ 라는 말 밖에 할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 당시 생각은 그냥 ’잘 살자 잘 살아보자’ 였다
이제 난 뭘 해야 하나? 일 중심 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 볼까? 내 중심이 아닌 아이 중심으로 살아 볼까?‘ 내 친구만 소중한 게 아니고 아이의 친구들도 아무리 부족하다 느껴지더라도 허용하고 관심을 보이자’ 였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오나 보다.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골리앗인지 사울인지 아무튼 그런 그림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며 아주 가까운 곳에서 늘 만나고 호흡하고 가장 믿었던 사람이 전혀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지속적인 괴롭힘을 가해왔다
갑자기 두려움이 덮쳐오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비난하는 자가 차라리 내 원수 였다면 , 나를 미워하는 자가 차라리 자기가 나보다 잘났다고 자랑하는 내 원수였다면 나는 그를 피하여서 숨기라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비난하는 자가 바로 너라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바로 내 동료, 내 친구, 내 가까운 동역자라니! 우리는 함께 사역하며 장애부모회, 여전도회, 성가대, 주일학교 교사로 사람들과 어울려 하나님의 집을 드나들곤 하였다 함께 걸었던 길은 배반의 피로 더럽혀졌다 내 마음은 공포로 떨리고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함께 커피를 마시던 장소와, 같이 장애자녀를 가진 부모모임에서 임원으로 좀더 좋은 환경과 처우개선을 위해 토론했던 시간들이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나라에 속하고 말았다 서로 얽혀 있던 친밀한 관계들과 인간관계도 끊어지고 서로 공유했던 이야기 들을 이제는 그 누구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상실한 우정은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것은 마치 산사태처럼 가파르게 곤두박질치며 내가 오랫동안 쌓아왔던 우정이 와해되고 난 후 우리 두 사람이 다 알고 지내던 친구들마저 떠났다 관계란 영구적일 것 같지만 땅처럼 지진이 나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그는 골리앗처럼 나보다 강했고 사울처럼 권력이 있었다 마을 어디서든 그 녀를 만날까봐 걸어서 다니는 일은 자제했다 상실감을 잘라 버리고 지금 일어난 모든 상황을 단절시켜 버리는 이 방법을 모색했다 마스크 하고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선그라스까지 착용하고 복면가왕으로 외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런 나를 아무도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는 것은 코로나 덕분이었다
입양과 위탁과 장애어르신을 모시는 일로 주변에서는 대단하세요, 누구나 갈 수 있는 쉽지 않은 길인데' 라고 칭찬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반대로 색안경을 끼고 정부에서 얼마나 지원을 받느냐? 고 노골적으로 물어 오는 이도 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원망불평으로 믿음이 없어지고 고난은 해결되지 않고 내가 사망을 향해 가기를 원하는것일까?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고난 속에서 나는 마음이 가난해 져야만했다
정말 죄의 문제가 아니라면 내가 이렇게 가난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하나님 앞에서 나아가 겸손하게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
이 고난에서 벗어나도록 믿음을 보여야만 한다 우리는 고난의 이유를 다 알지 못한다 단지 그 고난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이 있음을 알 뿐이다 이것이 가장 빠르게 고난을 이기는 방법이다 엄청난 고난의 한가운에 있을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않고 기도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평상시 작은 고난이 있을 때 잘 훈련 해야 한다 이유를 묻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겸손하게 마음을 가난하게 만드는 방법은
'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예수님을 이해하고 깊이 알아가는 시간으로
고난은 잘 통과해야 한다기보다는 인내로 버텨야하는것이다
그녀는 내게 따져 물었다 ‘왜 자신의 수치를 만인 앞에 공개하죠? 나 같으면 안 그럴 거 같아요’ 나는 대답했다
‘그게 저만의 치료 방법입니다’
사람에게는 ‘자기 보호 본능‘이라는 것이 있어 자신의 잘못이 노출되는 경우에 몇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는 죄를 숨겨 덮어 버리려고 한다 죄를 은폐하려는 마음이다
둘째는 핑계를 대거나 변명을 한다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는 책임회피자이다 셋째는 죄를 합리화 또는 정당화 하려고 한다 넷째는 죄책감에 시달려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자학하는 태도이다
나는 핑계거리도 있었고 변명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만이 고칠수 있다‘ 라고 생각했고 겸손과 용기가 필요했다 거기는 환영과 긍휼의 박수가 있을 것이고 선의 공동연대를 경험하게 응원하고 권면과 조언이 있을 것이다
사단은 거짓말로 유혹한다 '정당화 시킬 수 있어 정직하면 무시 받고 고립될 것이야',
그러나 나는 죄인이다 권사,라는 이미지는 중요하지 않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옷을 벗고 자비를 구하기로 한다 주님은 우리를 더럽다 하지 않으시고 자비를 베푸실 것을 신뢰하기 까닭이다
모든 상황에 홀로 맞서 해결해야 했다 문제 해결에 압박과 분노가 내 영혼에 불붙듯 번지는 걸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도움을 청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불이 나를 전부 태워 버릴까봐 거칠게 저항했다. 명예훼손 과 거짓유포가 해를 넘기며 지속됐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택함 받은 자임을 자처하면서 악감정 으로 가득하고 비방과 참견을 좋아하는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면서 또한 마귀의 종인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선하다 나는 어떤 돈이든 정직하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나는 훌륭한 성도다 ‘ 자신을 과시하며
’회개하시오 하나님 영광 가리우지 말고 ‘ 고함치며 내 직위 (장애부모회회장)에 대해 우롱하고 조롱했다
나는 가지고 있던 모든 직위를 내려 놓아야만 했고 바로 그 자리를 그녀가 차지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면 소름이 돋고 뼈가 녹는 기분이다 ’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로 말미암아 내가 맹렬한 분노에 사로 잡혔 나이다‘ 라고 한 다윗의 심경을 떠올리게 한다
공격을 받으면 마음이 꺽인다 는 표현이 적절했다 나는 수시로 꺽이는 마음을 다시 꼿꼿이 세워야만 했다
내 의연함 뒤에는 치열한 내적싸움이 있었다. 믿음을 택하고 성숙하게 표현하기까지 평안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너무도 치열했다 내겐 자신을 들여다보거나 슬픔과 연민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영적퇴로가 없었다.
순종은 어렵다 고난을 통해서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고난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시고 누군가는 쫒고 누군가는 쫒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런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훈련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너무도 긴 시간 기다림이 필요했다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 해야 맞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은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 했다고 말씀한다 왜?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느냐 떠났느냐‘ 에 따라 상황은 극명하게 역전 된다 정작 궁궐에서 호의호식하는 살해자는 공포에 떨고 동굴에서 은신하는 자가 안전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인생의 역설이다 골리앗은 단칼에 사라졌지만 다시 뒤를 이어 사울의 위협과 조롱으로 마치 바로의 마음이 점점 더 강퍅해 진 것 처럼 들려오는 소문은 언제나 싸움을 돋우려는 것뿐 그 어떤 상식도 통하지 않았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보여주는 ’ 믿음의 실천편‘ 같았다
치명적인 적개심 질투심에 눈이 먼 사울의 분노와 증오는 광기로 치달았다
사울을 참 많이 닮아있는 그녀를 보며 나 또한 닮은 부분이 참 많구나 모난 부분이 갈등을 겪던 상대에게서 거울 효과를 통해 연민을 가지며 ‘참 많이 힘들구나’ 그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문제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큰일을 기대하며 내 인생길에 골리앗이 아니었으면 사울이 아니었으면 난 여전히 내가 다윗 인것처럼 착각 속에서 살았겠구나 고마운 마음에 무거운 한해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해를 가벼운 마음으로 맞고 싶었다
가족들과 송구영신 예배를 일찍 드리고 어려운 걸음으로 그 여인의 집을 찾았다. 예수님을 배반한 베드로를 일터로 찾아가던 예수님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님도 이런나를 측은히 여기는듯 했다
마침 그녀의 남편도 함께 있어 잘되었다 싶었다. 지난 1년 넘게 우리 가족을 괴롭힌 전적으로 보아 크게 기대는 안했다
물론 원인 제공은 나였지만 나의 행위가 결코 고의는 아니었기에. 충분히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였건만 그 의 괴롭힘은 집요하고도 고집스러웠다
역시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당장 나가지 못해요? 경찰을 부르겠어요,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하며 고함을 질러댔다
그녀의 남편은 놀라고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여보 이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얘기나 들어 봅시다 ’ 하며 우리 가족을 거실로 안내 했다
남편은 차분히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다
‘ 잘 오셨습니다. 집사람 대신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런줄도 모르고 저는 여호와 증인인줄 알았어요, 용서 하세요’
정중하게 사과를 하며, 아내에게 차를 좀 내오라고 했다. 그녀는 못마땅한 듯 차를 내왔다. 남편의 겸손하고 정중한 태도에 잠시 당황스러웠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아내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어려운 방문이었지만 오길 잘했다 생각이 미치자 위안이 되었다.
결국 우리의 갈등은 평행선을그었지만 내뜻을 같이 해준 그녀의 남편, 그는 분명 나를 위해 준비해 두신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렇게 치욕스런 한해를 상처로 마무리 하면서 느낀 감정은 저 여인의 강퍅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는구나,’ 생각이 들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1월에는 더 깊은 시궁창에 빠지는 느낌이 나를 괴롭혔다
우리는 인생가운데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숱하게 만난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시편 41;9)발꿈치를 들었다는 것은 배신 배반으로 해석된다
12년 감옥 생활을 하며 천로역정을 남긴 존번연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될 줄이야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 사실 나는 그때처럼 하나님 말씀에 깊이 심취해본적이 없었다 전에는 별의미 없어 보이던 말씀들이 생생하게 다가왔고
말씀 속에서 만나는 주님과의 깊은 교제는 그 어떤 두려움과 불안도 물리치게 했고 나를 확신 가운데 거하게 했다. 감옥살이는고통스러웠지만 나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를 세심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은혜로 나는 감옥생활 내내 세상 그 어떤 자유와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잔잔한 편안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라는 고백을 접하며 내게도 이같은
고난이 없었다면 결코 이룰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다
이 사건은 나의 소소한 죄까지도 다 토해 내도록 주님 오시는 그날 심판대 앞에서 드러날 나의 죄목을 미리 치루고 있다는 느낌으로 성령께서 가슴속 깊은 곳에 울림을 주셨다.
사랑하는 딸아 저 여인의 모습이 바로 너의 모습이란다.‘ 얼마 전까지 넌 딸에게 바리새인처럼 굴더구나. 도덕적인 의를 내세우며 딸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판단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내가 너와 똑같은 사람을 너에게 보낸 거란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나의 계획 이었단다 . 자 이제부터 시작이야 넌 딸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지 알겠지? 네가 그 여인에게서 본 혐오스럽고 무례함으로 일관했던 그 모습 그게 바로 네 딸이 너에게서 본 모습이란다.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제 그 여인이 어떻게 바뀌길 원하지? 고집을 내려놓고 너를 용서해 주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아? 너도 그 고집과 아집을 내려놓고 딸을 용서 하렴!
방황하는 딸에게 모질게 굴었던 나의 모습이 파노라마가 되어 스쳐 지나간다.
나는 틀린 것을 보면 참지 못한다 본래 화를 잘 내는 데다 의로운 분노가 많아서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도 틀린 것을 보면 잘 참지 못한다 문제는 이런 연약함이 딸을 힘겹게 만든거 같다 남의 틀린것을 참지 못하는 연약함은 오랜시간 나를 괴롭혔다 나는 늘 다른사람의 틀린것만 지적하고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은 없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시니 사랑을 부어주십시요 제 안에 선한것이 없습니다 주님!
나 역시 죄인이고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며 죄악 때문에 종종 비참한 지경에 처한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딤 1;15)
직접 느껴보기 전까지는 누구도 죄의 심각성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율법의 무서운 정죄를 통해 우리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기 전에는 죄의 적절한 잣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대상은 심판의 대상이 아니고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겨야 하는 대상이라는것을 다짐한다
퍼즐을 맞추듯 마지막 한 개 남은 퍼즐을 끼우며 지난 한 해 동안 풀지 못한 숙제를 풀 듯 개운한 느낌이 들면서 이제 더 이상 그녀로 인해 나의 일상을 허비하지 않기로 했다
원수를 사랑하라 !
용서하기로 한다. 그러나 나에겐 용서할 힘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닫는다. 인간끼리 누가누구를 용서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를 용납하기로 한다
그녀의 불신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녀의 남편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누구도 훈련이나 연단을 좋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에게 굴욕감을 준다. 자신이 잘못되었거나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결국 지혜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 C.J 매허니가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계속 겸손해 지는 것이 자랑스럽다 어리석은 인간은 주님의 교정아래 겸손하게 지혜를 좇아야 한다’라고 했다
문득 신앙의 대 선배이신 나의 어머니에게서 교훈을 얻는다
우리의 인생 드라마는 아버지와 어머니로 시작 된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우리 인생의 의미에 윤곽을 잡아 준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더욱 발전 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나는 어머니의 용기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고 내가 어머니를 얼마나 존경하고 흠모해 마지않는지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면전에서 표현해 보지는 못했다
어머니에 이어 다시 나를 통해 고귀하고 거룩하게 광대한 드라마를 만들어 가시는 그분에게서 소망을 본다. 가장 의외의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가장 비상한 변화를 일으키시는 하나님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어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쓰도록 부름 받은 놀라울 만큼 귀한 존재들이다
‘ 어머니 당신은 한 번도 평범한 인생을 살아 본 적이 없잖아요 왜 그렇게 사셨어요?’ 라고 묻고 싶다
하루 밥 세끼 먹기 어려웠던 시절 어머니는 건장한 고아 청년을 입양했다
그리고 성장하여 좋은 처자와 결혼하는 것 까지 책임 지셨다. 어쩌면 내가 입양을 겁 없이 해댄 것도 그런 어머니의 영향인 듯싶다.
1960년 대 어머니는 송파구 소재 일본 소학교를 구입하여 측량하고 내 땅 찾기를 했을 때 학교 운동장을 오랜 시간 자기 땅 인줄 알고'' 마당으로 사용하다가 절반이나 빼앗긴(?)이웃집 한 여인으로 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주로 우리 낙엽이 울타리를 넘어 자기 마당으로 떨어진다며 날마다 떨어진 낙엽을 쓸며 가진 욕을 다 해 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한 시기 질투 였던거 같다. 나보다 두 살 더 먹은 언니가 수돗가에 가서 양치를 하면 툇마루에 앉아 밥을 먹던 그 여인은 뛰어 나와서 '더러워서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작은 오라버니와 결혼한 새색시가 장독대로 가서 된장이나 고추장 간장을 뜨러 가면 ‘ 너 시집 잘못 온거여’ 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새언니는 화들짝 놀라 어머니에게 얘기하면 어머니는 늘 우리에게 하듯이 '귀담아 듣지도 말고 대꾸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는 누구보다 두터운 정을 나누며 이웃사촌으로 잘 지냈다, 그 여인 말고는 다른 가족들은 우리를 좋아 했다. 나는 애기를 좋아 해서 늘 그 집에 가서 어린 애기들을 업어 재우곤 했다
아버지는 못마땅하신지 ‘ 그러다 잘못해서 아기를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며 말리셨다
그래도 아버지 몰래 가서 아기들과 놀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갑자기 잠실개발사업으로 부동산 투기꾼들이 마을을 휩쓸고 다녔다 그 여인의 가족들은 정육 사업을 한다며 보상금 받은 것 과 살던 집도 팔아 떠났다
얼마 되지 않아 그 여인의 남편이 우리 집 을 방문했다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죄를 구하며 용서를 구했다 정육점 사업은 사기꾼에게 당해 다 날리고 집도 절도 없이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으며 딸아이가 눈이 썩는 병에 걸렸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녹내장을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후 그 여인도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이산가족 만난 듯 반가워했다. 요즘도 가끔 친정에 가면 그 여인이 살았던 그 자리에 거대한 빌딩이 줄지어 서있는 것을 보며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 진다
어머니는 그 여인을 만날 때 마다 가슴 아파 했다 그래도 옛일은 다 잊고 미운 정 고운 정으로 함께 정을 나누면서 살았는데. 그 당시엔 난 너무 어려서 어머니의 그런 고통을 잘 알지 못했다 , 7순이 된 어머니 입을 통해 그 고백을 들으며 책을 엮으면서도 공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겪어 보니 어머니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 이제야 전율하며 어머니의 광야가 나에게도 똑같이 주어졌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어머니 저도 어머니처럼 잘 이겨 낼께요, 하늘나라에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어머니!’ 라며 토로했다
시기질투를 가장한 공격은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어둡고 고통스런 때가 있다 견딜 수 없는 어둠의 터널 속에 갇힐 때 가 있다 시편기자는 ‘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46;1)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시 116;10) 라고 했다
질투를 받을 만큼 잘나가는 사람도 아니어서. 딱히' 분명한 이유를. 모르니까 더 억울하다 주변에서는 ‘ 당신은 그녀를 고발한적 있습니까? 여기가 북한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고 강제할 수가 있는 거죠? 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절대적인 만족을 누리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쁨의 대상이지 시기의 대상일 수 없다는 말씀이다
거기에다가 일방적으로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아 차렸을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씩 치유되고 회복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요즘 정치권이 너무 혼란스러워 나라의 위기의식을 가지며 기도한다. 어느 분이 그 위기의 원인에 대해 올린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한국문화는 자신이 너무 똑똑하기 때문에 누가 높은 나무로 올라가면 밑에서 자꾸만 나무를 흔들어 댄다. 결국 견디다 못해 떨어지면 그다음에는 그 떨어진 사람을 짓 밞는다. 그러면서 아픈 배가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고 10년 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처럼 정상에 올라가면 너무 비바람이 세서 한국에서는 좋은 인물이 크게 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이순신도 모함을 받았다 잘못된 인성 이다‘ 라는 글을 읽고 그녀를 이해하려 애써본다
그것이. 탐심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리더자리에서. 나를 끌어내리고
본인이 그 자리에 앉아 공동체에서 나를 몰아내고 대부분의 경제를 몰수해갔다 주변사람들은 내가 그에게 원한을 살만큼 어떤 사연이 있을 거 라고 말했다
딱히 그럴 이유가 없었기에 그저 탐심에 의한 시기 질투가 아닐까? 넘긴다
에이브러험 링컨은 더러운 거짓말쟁이, 독재자, 도둑, 허풍쟁이,약탈자 괴물 무식쟁이 늙은 건달 폭군이라 비난 받았다 예수님도 신랄한 비판을 넘어 조롱과 희롱을 당했다 은혜다 하나님의 초대다 무서웠지만 기쁜일이구나 단지 좀 힘든거구나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했었구나 그동안 고생했다 너무 잘하지 않아도 돼 인정받으려고 애쓰지마 쉬어도 돼 나의 열심이 후회되는 시간을 맞았다 하나님을 충분히 느낄 여유도 없이 달려왔다 는 생각에 미쳤다
내 생각과 경험에 갇혀서 이렇게 하는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거라고 착각했다 쉬기로 한다 '열심히 하려고 하지마 존재 자체로 충분해 네 열심에는 관심없어 너를 바라보고 있는건만으로 충분해 하나님 외롭지 않게 하나님 의식하는것을 놓지지만 마' 하시는거 같았다
나를 공격하던 여인을 곁에서 동조하던 친구가 급작스럽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사건 2년 만에. 전해 들었으나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원수를 사랑하고 긍휼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긴다는 말씀이 살아나는순간이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다면 나를 해할 권한이 그녀에게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수는 원수가 망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흥하는 것이다 (신명기 9;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내가 누리는 모든 축복이 내가 챡해서도 아니고 공의로워서도 신앙 생활을 잘해서도 아니라는 사실 단지 상대의 악함이 이유
였을 뿐 나는 선하지도 착하지도 않은 죄인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모든 것을 그녀에게 다 빼앗긴 그 상황에서 수입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지출을 줄인 것도 아니었다.
대출금도 다 갚고 계획 했던 대로 살던 집. 1호 2호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주고 우리 가족은 3호4호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 최근에 5호집을 또 구입하여 수리중이다
어느 날 세째 아들이 묻는다
" 엄마, 성경에 염소는 나쁜 의미로 나오는데 그건 왜죠?"
'그렇긴 하지만 염소는 꼭 필요한 존재란다'
. 양들은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다닥다닥 붙어 뭉치는 경향이 있고 돼지나 소보다 약간 떨어지는 낮은 인지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 그래서 깔려 죽기도 하고 더위에 질식되기도 하는 걸 방지 하기 위해 한 두 마리의 염소는 반드시 필요 하다고 하더라, 염소는 양이 붙어 있는 꼴을 못보거든 반드시 떼어 놓고야 말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거지 '
'아, 알겠어요 그래서 교회 안에도 염소가 필요한 거군요, 양들을 살리기 위해서요 '
'그러나 누가 염소다 양이다 구별하고 판단할 수는 없어 세상 마지막날 예수님이 심판하러 오시면 양과 염소를 갈라 놓으시지 그때까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지 '
어렸을적. 염소를 키워본적이 있다. 아침에 풀밭에 내다 매고 저녁엔 끌고 들어온다 종종 목줄이 풀려 남의 곡식을 뜯어먹으면 손해배상을 하기도 했다
목줄을 짧게. 잡으면 들이 받아 무서웠다 . 길게 잡으면 길곁에 남의 밭 곡식을. 뜯어먹어 골치였다 염소의 특징은 시기.질투다 공격성도 난폭함도. 다분히 있다 양무리 속에 염소를 둠은 양의생존을. 돕기. 위함 이다'라고 들었다 교회 안에 염소가. 필요한 것은 성도의 생존과 성숙 과 성화를. 위해서라고 한다 염소의 공격을 받을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위로다 너무나 평온한 신앙생활은 나태해지기 쉽고. 자만에 빠지기 쉽다 염소의 공격을 받고. 실수와 실패 앞에 낙담 하고 수치와 모욕감에 낙심하며 다행히 성경속으로 걸어 들어가 나처럼 실패한 영혼들을 만난다
간음한 여인. 키작은 삭게오. 거라사 광인. 음탕한 고멜. 강도 만난 나그네를. 지나친 제사장과 레위인도. 만났다
고통스러울 때 양은 오히려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나와 남편은 70평생을 교회안에서만 생활한거 같다 그런데 최근에 남편은 노인회에 가입을 하고는 동네 어르신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이 바라보는 교회 , 와 성도들의 모습과 태도를 가까이에서 듣게 된다
아, 그들의 눈에 비쳐진 교회와 성도의 모습은 좋은 얘기는 별로 없고 비판과 비난 상상 그 이상의 것이었다
전도사 아들에게 물었다. '불신자들이 보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이 왜 그래야만 하느냐?'고
아들은 신학을 잘못 가르친 탓이라고 한마디로 결론 짓는다
문득 친정엄마의 회고록에 보면 전 재산을 다 뺏어간 인물이 있었다.
교회를 지어주기로 했던 건축업자가 돈만 받아 챙기고 건축은 중단되었다
그 돈은 어머니가 평생 농사 지어 모은 재산 이었다
큰 재산은 아니었지만 잠실이 개발되면서 소유하고 있던 땅으로 인해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거부가 되어있었다.
어머니의 책도 길고. 지리 하게 거듭되는 재판 중에 7순을 맞아 완성 되었다
그 때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학교에서 배운 타자 실력으로 모든 재판 고소장을 직접 타이핑 하며 법조계의 비리를 알아 버렸다. 옳고 그름을 떠나 돈을 많이 뿌린 사람이 이기는 이유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라는 속담이 그래서 만들어 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교회를 향해 사기를 친 사기꾼들이었으나 교묘하게 법을 이용하여 재산을 다 뺏기고 말았다 그 후 교회는 한사람의 재물이 아닌 온 성도들의 헌신으로 하나님의 기적과 함께 완성되었다
나도 고난의 끝을 기다리다가 칠순을 넘기고 말았다
고난의 끝을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그 고난이 끝나는 날 멋지게 간증하고 싶었는데 그걸 기다리다 책을 영영 못 쓸 수 도 있겠다 싶었다.
핸리포드는 ‘실패는 더욱 현명하게 재출발하는 사람에게 기회일 뿐이다’ 라고 했고 일본의 신학자 내촌감삼(內村感三)은 ‘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 이르는 단계다 꽃이 떨어져 열매를 맺듯이 씨가 썩어서 싹이 나고 실패를 통해 성공이 오는 것이다’ 라고 했다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이 없듯이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자 도 없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4년째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고난 중에 책을 쓰기로 마음먹는 시간이 있었다.
시아버님 추도예배를 드리던 날 난데없이 친정어머니 회고록 이야기가 화두가 되었다(친정식구들만 다 모임)
33년 전 일이고 책이 다 없어진 상황이라 다시 재판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하고 있었는데 큰아들이 재판을 권했다
아들은 회고록이 나왔을 때 여덟살 이었고 할머니 회고록에 대해 별관심이 없다가 성인이 되어서야 열어보게 되었는데
'나의. 뿌리를 안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때의 감동과 기쁨을 끄집어내며 내가 태어난 것이 우연이 아니고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 과 섭리였음을 깨닫는 순간 허트루 살면 안 되겠다고 다짐 했으며 ‘돈이냐? 신앙이냐?’ 갈림길에서. 방황 할 때 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삶을 기억해내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노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사촌들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너희들도 너희 뿌리를 제대로 알고 사는 것과 막연히 알고 사는 것 은
천지차이다‘라고 하면서 지나간 부모님들의 역사를 통해 그들의 자랑과 영광만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과 범죄의 사건을 보면서 교훈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롬 15;4)고 했다
회고록은 좀 그렇고 산문집 하나 내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으나. 뭘. 어떻게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문득, 하나님은 나를 통해 당신의 이야기가 드러나 멀리 퍼지기를 원하시지 않을까? 에 생각이 미치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창조하는 살아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여러 인물 중 한 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중차대한 인물은 바로 내 혈연의 어머니시다
어머니와 나의 공통점은 하나님 이야기 속에서 잠잠하고도 열정적으로 그리고 쾌할하게 이어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모녀가 평생 할 일은 오로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여전사이시다. 십전팔기의 강인한 생존자다. 인생은 긴장감이 있기에 인생인 것이다.
비극적인 사건과 긴장이 주는 전율과 불확실성과 열정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죽고 말 것이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비극이 우리의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언제나 비극보다 큰 존재다
이야기의 결말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하나님이 내 인생과 결말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 두셨는지 알게 된다.
앞서 발생했던 모든 것들이 절정으로 풍부하게 펼쳐지는 자리다
내가 몰랐던 사실은 하나님이 지구를 조성하신 그 때부터 이 순간을 이미 계획하셨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고난의 한가운데서 스스로에게 가장 진실한 혹은 가장 거짓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과거를 읽어 냄으로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낼지 좀 더 나은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친구 그리고 원수의 이야기 까지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자녀들도
믿음의 선배이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을 지표로 삼아 별을 따라가듯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