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허공에 닿지 않았다 외 4편
*제1회 《상상인》 신춘문예 당선작
박희연
1.
안 와?
오늘 아침
무심히 묻는다.
땅과 나뭇잎
한 시절
바라만 보다가
2.
링거 줄이 주렁주렁 매달린 병상의 당신은 새벽녘 3주치의 신경안정제를 한입에 털어 넣고 응급실에 실려 왔다. 당신의 옷을 갈아입혀 주다가 허벅지에 길게 난 손톱자국을 보았다. 정신을 잃어갈 때 제 손톱으로 긁었을 것이다. 눈을 뜬 당신과 잠시 데면데면하게 눈을 맞췄다. 그 눈 밑이 움푹 패어 검었다. 우리에게 심연이 있다면 바로 저 눈 밑일 것이다. ‘거리에 색이 바랜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당신의 연못은 너무 아련하였으므로, 우리는 같이 있어도 늘 혼잣말이다. 당신은 다시 잠들었다. 목덜미의 정맥이 푸른 잎맥 같았다.
3.
‘마지막 잎새’의 무명화가처럼
당신 등을 안고 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리에서 주운 나뭇잎의 도드라진 잎맥을
오래도록 손끝으로 문질러 보았다.
미처 해독되지 못한 전언이 진물처럼 손끝에 스며들었다.
우리는 모두 무명이었지만 당신은 내게 늘 치명적이다.
혼곤한 잠은 바람과 중력의 다툼 같아
내가 떨어져 내릴 좌표를 두고 서로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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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절 바라만 보던 그 거리엔 여전히 나뭇잎이 날리고 있다. 빛바랜 그 잎이 공중에 새겨놓은 배면의 무늬. 그 무늬가 사라지기 전에 난 어디로든 돌아가야 할 것이다.
배춧잎이 시들어간다
1.
먹다 남은 배추 겉잎이 시들었다.
속잎이었던 그 겉잎은 싱싱했다.
싱싱한 것을 시들게 만드는 내공은
내게 있을까 시간에 있을까.
돌아보면 내 삶은 혐의로 가득 차
어깨가 움츠러들고 손이 오그라든다.
불안은 종종 표면적을 작게 만든다.
배춧잎이 조글조글 말라붙었다.
2.
가까이서 보면 크고 멀리서 보면 작다.
표면적을 작게 만드는 방법 하나
당신과 거리를 두는 일이다.
코로나19 시대의 인류애는
서로가 서로에게 보균자라는 혐의를 두는 것
3.
오래된 습관처럼 해가 뜨고
어제저녁 먹다 남은 배춧국을 먹는다.
TV에 비친 한 정신병동에서
누군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죽거나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죽어나간다.
저 죽음의 이면에도 아랑곳없이
당신과 나는 숟가락을 놓지 않는다.
우린 너무 많이 배양되었고
너무 오래 변이를 거듭해왔다.
4.
남은 배춧잎이 또 시들었다.
속잎마저 이울어 더 이상 시들 일이 없을 때
난 헛헛한 마음에 기침을 한다.
불안이 고조된 열차 안에서
어느새 오래된 습관처럼 사람들이 물러선다.
배추는 배추의 불안과 혐의로
나는 나의 불안과 혐의로
당신은 당신의 불안과 혐의로
세계는 세계의 불안과 혐오로
아주 작아져버린 당신이 때때로 그리울 수도 있겠다.
구더기
굴착기를 글착기라고 오독하고 한참 웃었다.
글착기라니, 글을 캐내는 기계라니
추억을 도굴하는 장마가 시작되고
아버지는 지금이 왜 어제가 아니고 오늘이냐며 따져 묻는다.
아버지! 아버지의 회백질에 비가 내려서 그러네요.
범람하는 추억 속에서 아버지는 무엇을 건져내실까.
손가락을 꼽아보며 다시 왜 어제가 아니고 오늘이냐며 따져 묻는
아버지는 내일 따위는 꺼져버리라는 듯 홱 돌아눕는다.
낚시가게 현수막에 ‘구더기’ 세 글자만 쓰여 있다.
단어 하나가 삼켜버린 문장들
십자가를 등에 진 듯 어마무시한 명사 하나의 힘
물에 빠지면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허우적댄다.
허우적대는 몸부림만 남는다. 살려달라는 동사만 남는다.
비에 잠긴 아버지의 회백질에서도 명사는 가라앉고 동사만 뜨겠지.
동동동, 살려달라는 몸부림. 어둠 속 저 홀로 휴거하는 십자가들.
얘야, 나는 살고 싶구나. 아니아니 아버지는 가라앉으셔야 해요.
그 회백질에 구더기가 끼고. 통통 살이 오른 구더기로만 남고.
그러면 난 글착기로 그 구더기라는 세 글자만 캐내겠어요.
그 글자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덮어드리겠어요.
오, 그러나 아버지, 내가 어쩌다가 당신을 사랑했어요.
구더기 세 글자로만 남은 코로나19 시대
8.15 광화문 광장의 태극기 같은 내 성스러운 아버지
<사족>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거리를 걸을 수 없는 이 적나라한 은유의 세상
내가 지금 숨는 것은 당신의 시선 때문인가, 바이러스 때문인가.
추억을 뒤엎어버린 비가 내리고
뱀이 아닌 구더기로 자라난 메두사의 머리를 상상한다.
그것들은 잘렸어도 저 흙탕물에 둥둥 떠내려가
선량한 사람들의 회백질을 갉아먹을지도 모를 일이다.
얼핏 맨홀뚜껑에 쓰인 우수를 오수라고 오독하며 또 한참 웃었다.
쓰레기 속의 쓰레기 같은 나의 눈물이라니.
돌처럼 굳어져라, 굳어져버려라. 나의 성스러운 아버지
내가 어쩌다가 당신을 사랑했어요.
꽃의 이데아
“인상 깊은 철학 사조가 있다면?”
얼떨결에 ‘플라톤의 이데아’라고 대답했다.
교수는 얼핏 웃으며 책상 위 꽃병을 눈짓했다.
“가령 꽃에는 꽃의 이데아가 있고
삼각형에는 삼각형의 이데아가 있지요.
그럼 본인이 다닌 고등학교 이데아는 뭘까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난
몇 마디 떠듬거리다가 얼버무렸다.
건널목에 줄지어 점멸하는 신호등
어김없이 울리는 라디오 시보
차도로 갑자기 뛰어든 고라니
쿵!
난 곧잘 넘어졌다가 일어났지만
꽃의 이데아와 삼각형의 이데아는
여전히 내가 춤출 수 없는 언덕
무엇을 안다고 말하려는 혀에 자물쇠를 채우고
그 열쇠를 아득한 이데아에 던져버린다.
아- 난 매일 모른다고 자복하는,
버리고 찾고 버리고 찾다
끝내 버려지는 무녀
그 일생은 세 개의 꼭짓점을 잇고 이어
그 사이 꽃밭 하나 가꾸는 것
한 꼭짓점에서 다른 꼭짓점으로 가는 길은
산처럼 너무 높고 강처럼 너무 깊어
삶의 가장자리만 더듬고 엿보다가
정작 발밑에 떨어진 씨앗 하나 보지 못한다.
건널목에 줄지어 점멸하는 신호등
어김없이 울리는 라디오 시보
다시 봄에서 봄으로 가는 길에 아, 꽃이 없다.
밥물
불리지 않은 쌀로 밥을 지을 때는
손등이 잠길 만큼 밥물을 부어야 한다.
그것을 모르던 때에 난
쌀을 불리든 불리지 않든
늘 손등이 잠기지 않게 물을 부었다.
밥물은 종종 끓어 넘쳤고
밥은 설익거나 까맣게 탔다.
불린 쌀 위에 외딴섬처럼 손을 얹는다.
그 섬이 잠기지 않도록 물을 붓는다.
가끔 홀로 날아드는 갈매기처럼
넌 내게 와 한참을 누웠다 간다.
교복을 입고 찾아온 넌 하품하며 말한다.
카네이션 샀는데 줄 수 없었네.
가스불이 켜지고 밥물이 끓어오른다.
장난감을 사들고 너에게 건넬 날을 기다린 적 있었어.
거품을 문 밥물이 솥뚜껑을 들썩거린다.
입학식 전날 네 교복을 반듯하게 다려주고 싶었지.
지난날 밥물은 수없이 흘러넘쳤으므로
더는 넘치지 않게 불을 줄인다.
들끓는 슬픔이 가라앉으면 밥 짓는 냄새가 난다.
자작자작 뜸 들이는 소리에 맞춰 넌 얕은 코를 곤다.
이제는 나보다 키가 커버린
너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어본다.
너는 푸우- 큰 숨을 내쉰다.
불을 끄고 위아래 밥을 섞는다.
밥알을 풀어주듯 네 어깨를 살살 흔든다.
밥 먹자.
구겨진 옷자락을 펴주며 너에게 숟가락을 건넨다.
박희연
2021년 《상상인》 신춘문예로 등단. 2017년 제35회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 시 부문 장원. 2018년 《국제융합예술대상》 작가상 수상. 2020년 사북항쟁 40주년 기념 뮤지컬 〈사북, 화절령 너머〉 대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