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바꾸고 삶의 양식을 바꾼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도로를 줄이고 보행로를 확장하려고 해도 자동차 회사와 석유회사의 저항이
만만치 않고, 지역경제를 위해 지역화폐를 유통시키려 해도 기존 은행과 정부가 방해를 하고는 한다.
이런 구조화된 기득권층의 반발과 압력을 뚫고 지역 주민과 도시민들을 위한 실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리더들의 도전정신과 창조성, 결단력이
빛을 발하고는 한다.
‘자전거 슈퍼스타’ ‘뉴욕의 로빈 후드’ ‘거리를 길들이는 조련사’ ‘도로의 지배자’ ‘거리의 싸움꾼’ 등의 별명을 가진 전 뉴욕시
교통국장 자넷 사딕-칸은 브로드웨이 일대 도로를 들어낸 후 공공 공간으로 전환시켜 시민들의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는가 하면, 시티바이크라는
공용자전거 시스템을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 ‘섬머 스트리트’라는 ‘차 없는 기간’을 설정해 시민들에게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사딕-칸의 다양한
시도들은 실제로 교통사고의 감소와 차량 속도, 통행시간의 개선으로 결과가 나타났다.
보고타의 전 시장 엔리케 페냐로사는 막대한 토건 예산과 주민 부담이 예상되는 정부와 국내외 연구기관의 제안을 물리치고, 주민들과 시의회,
시민단체와 지역계획위원회를 구성한 뒤,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간선급행버스인 ‘트랜스밀레니오’를 개통했다.
이는 “도시는 하수도, 교육 등 다른 도시 문제들과는 달리 경제성장이 될수록 더욱 악화된다”는 세계 도시들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기초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밖에도 조르주 퐁피두 고속도로 폐쇄라는 원대한 계획을 제시한 전 파리 시장 베르트랑 들라노에, 브라질 빈민촌에 파우마스 은행을 만들어,
공동체 은행(Community Bank)을 주요한 연대경제 패러다임의 하나로 정착시킨 조아킴 데 멜로, 소규모 노동자촌에서 세계 협동조합의
모범을 일군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창립자 호세 마리아 아리즈멘데 등 과거에 그리고 지금 현재 새로운 도시와 마을 만들기 실험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자동차와 민주주의와 지구의 위기
자동차는 도시의 주인이 되어 절대군주처럼 권력을 휘둘러왔다. 자동차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불편을 감수해야 했고, 도시의
예산은 도로 확장과 신설에 집중 투입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세계의 여러 도시들에서 사람과 자동차 사이에 공간 확보를 위한 갈등과 투쟁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이미 도널드 애플야드의 연구를 통해 교통량이 많을수록 시민들의 접촉빈도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자동차 공간을 다시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은 인간 소외와 공동체 파괴를 막고 사람다운 삶을 찾아가는 것이다.
자동차 통행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활성화하기 위한 적극적 대책을 실시했던 전 보고타 시장 엔리케 페냐로사는 “모든 시민들이 법 이전에
평등하다면 100명이나 150명을 태우는 버스는 나 홀로 승용차보다 150배 이상의 도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면서 “도로 공간의
재분배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므로 우리의 의지 여하에 따라서 도시는 사회정의가 구현되는 장소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도시에서 자동차 통행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는 것은 한편으로 지구의 위기에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의 저자 리처드 하인버그는 지구를 위협하는 핵심요인으로 석유를 들었다. 그는 더 이상 값싼 석유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지어 말한다. 값싼 석유의 시대가 곧 끝나고 파국적인 종말이 닥쳐오기 전에 석유의존적인 사회시스템과 생활방식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이 책은 지적하며, 유럽과 남미 등에서 우리가 배울 만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대한민국 도시는 안녕하십니까?
2014년 6·4 지방선거 과정에서 ‘무상버스’ ‘버스 준공영제’ ‘버스 공공성’ 등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졌다. ‘버스 공공성 강화’의
문제는 주민 복지의 차원을 넘어 인간적 삶과 공동체를 복원하는 길인 동시에, 지구에 닥칠 위기에 대응하는 길이기도 하다.
저자는 버스 민영화와 공영화에 대한 설명과 함께, 현재 우리나라 일부 지역들에서 시행중인 준공영제의 한계와 개선방안도 제시한다. 특히 도입
당시부터 비교적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았던 서울시의 버스 준공영제는, 버스중앙차로에서도 교통체증이 벌어지고 일부 정류장에서 혼잡이 심각해지는 등
하루 빨리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간섭급행버스 시스템의 도입과 현행 수익금 공동관리제의 노선관리형으로의 전환, 신호체계 개선과 안내정보 체계 구축 등의
대책과 함께 장기적으로 공기업 설립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2013년 수원에서 열린 생태교통축제를 평가하고, 이 행사를 계기로 수원시가 내놓은 녹색도시를 위한 교통정책을 소개하고
평가했다. 또한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의 우리나라에서의 현실을 점검해보고 향후 과제를 모색해보았다.
다중위기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도시의 로빈후드》는 또한 금융/식량/피크오일/기후변화 위기 등 다중위기 시대를 준비하는 이들의 생생한 사례를 소개했다.
세계 최초로 시민들의 식량권을 체계적으로 지키고 있는 브라질의 벨루오리존치의 사례와, 포르탈레자에서 파우마스 은행이라 불리는 공동체 은행이
법정화폐와 지역화폐를 동시에 유통시키면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연대경제 운동의 하나로 성장한 사례를 상세히 소개했다.
이 은행은 유엔개발계획(UNDP)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공동으로 출간한 <2010년 유엔 창조경제 리포트>에
소개되어 있을 만큼 국제사회에서도 아주 성공한 사례로 인정하는 지역사회은행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국내외의 사회적기업과 내생적 발전의 모범사례인 일본의 가나자와, 이탈리아의 볼로냐,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경험을 두루
살펴보았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중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온 탈성장국가의 모델 쿠바에게서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도
개략적으로 고찰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