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다
이은하
"좋은 아침입니다, 어르신~."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우리 오늘은 하이파이브할까요? 짠!"
핸드폰에서 연일 폭염 경고 문자가 울리던 2024년 여름 한가운데에서 나는 오전 9시가 되면 매일 센터 정문으로 달려 나가 인사를 하고 워커(걸을 때 넘어지지 않게 보조해 주는 기구)를 챙겨 드리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작년 8월, 지인의 소개로 잠실에 있는 철학관을 찾았다. 당시에 뭔가 특별한 고민거리가 있어서 간 건 아니었고 그저 재미 반, 호기심 반의 마음으로 가볍게 찾아갔다. 사주풀이에 너무 집중한 까닭인지 선생님의 큰 체형과 부릅뜬 눈빛에 압도된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유난히 귀에 쏙쏙 박혔다.
''노인 관련 일을 해봐. 아주 잘할 거야! 일단,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공부 해서 자격증을 따고 내 말 허투루 듣지 말고, 알겠지? 명심해!" 일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마치 주문에 걸린 듯 집으로 와서 그런 일을 하려면 어떤 자격증이 필요한지 찾아보다가 사회복지사 자격 증을 딸 수 있는 교육기관에 바로 등록했다. 그렇게 나의 자격증을 향한 일정이 시작된 게다. 어차피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뜸 들이지 않고 바로 시작하는 일정을 선택했다. 총 17과목을 수강해서 51학점을 받아야 했다. 각 과목마다 14주간 강의를 들으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르고 과목별 과제와 토론, 퀴즈를 수행해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 패스가 된다. 처음에 너무 쉽게 시작한 마음이 무색해질 만큼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마지막 과목으로 실습이 있는데 현장에 직접 가서 160시간의 실습을 하고 평가를 받아야 했다. 가장 더운 여름의 한복판에 실습일정이 잡혔다. 더위에 매우 취약한 나에겐 그것이 가장 두려운 과제였다.
나의 실습 장소는 노인 주간보호센터였다. 학점을 채우는 것만 생각면 아동센터에 가서 실습하는 게 좀 더 편할 수 있었겠지만, 일단 마음을 먹었으니 힘들어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노인 케어'쪽을 선택했다. 노인 주간보호센터를 한마디로 소개하자면 '노치원' 같은 곳이다. 어르신들이 아침에 센터로 등원해서 오후 6시까지 곽 짜여진 스케줄에 맞춰 하루를 보낸 후 저녁까지 드시고 집으로 가신다. 나는 꽤 오랫동안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있어서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단지 대상이 어린이에서 어르신으로 바뀌었다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지만 고백하자면, 실습 첫날부터 나의 생각이 짧았다는 걸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실습을 하는 때에 코로나가 다시 유행해서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일해야 했다. 센터에는 어르신들이 60명 정도 계셨고 직원은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간호사, 공익요원 모두 합처서 20명 정도 됐다. 총 80여 명의 인원이 한 공간에 있는데 실내 온도는 28도를 오르내렸다. 어르신들 위주로 온도를 설정해 놓다 보니 더워도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했는데, 땀이 많은 나에겐 최악의 실습 환경이었던 셈이다. 3일째 되는 날엔 얼굴에 땀띠가 올라오고 숨이 턱턱 막혀서 틈틈이 대형 선풍기 앞으로 달려가 땀을 식히며 숨을 고르곤 했다. 실습은 주로 어르신 이동, 식사 보조, 대화와 말벗을 해드리는 어르신 케어와 기관 내 프로그램 진행 도우미 역할, 이론교육, 행정업무로 이루어졌다. 센터에 오는 어르신들은 노인 장기요양법에 1~5등급의 등급을 받은 분들인데, 65세 이상 노인성 질환 어르신과 65세 이하라도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어서 별도의 보호자가 필요한 분들이다.
"이쁜이 슨생~ 내가 미쓰 마산 출신이다. 마산여고 알제? 내 마산여고 나왔데이."
우리 센터 자타공인 '미쓰 마산' 어르신은 80대,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다. 내가 아는 마산 사투리는 억양이 센 느낌이었는데, 구 씨 어르신의 말투는 느리고 애교가 섞여 있어서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있었지만, 갸름한 작은 얼굴에 하얀 피부, 눈코입이 균형 있게 자리하고 있어서 젊었을 적에 얼마나 예뻤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우리끼리 하는 우스갯소리로 50대엔 지식의 평준화, 60대에는 외모의 평준화. 70대에는 성의 평준화, 80대에는 빈부의 평준화, 90대에는 건강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내심 위로가 됐었는데 여든이 넘어도 미인은 미인이다. 어르신은 파키슨병으로 걸음이 불안정하고 상체가 앞으로 기을어져 있어 넘어지기 쉬웠기 때문에 나는 그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면 워커를 들고 바로 달려가야 했다. '미쓰 마산'은 손톱에 매니큐어를 동네 단골 미용실에서 곱게 칠할 정도로 치장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센터 내 누구든 예쁜 웃을 입고 있으면 불러서 어디서 샀느냐고 물어보고 나도 사다 달라며 보채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속옷이 다 비치는 하얀 망사로 된 긴 원피스를 입고 와서 위커를 끌며 마치 미스 코리아가 무대 위를 걷듯이 걷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입을 모아 너무 예쁘다고 말하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 미소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대변 실수를 해서 옷을 바로 같아입어야만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웠는데 본인은 얼마나 민망하고 슬펐을까? 평생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와서 예쁘다는 말을 가장 좋아하는 '미쓰 마산' 어르신의 행복해하던 동그란 미소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충성! 충성!" 모두들 최 씨 어르신만 보면 팔을 들어 눈썹 끝 선에 손을 올리며 "충성!" 하고 인사를 했다. 그러면 아주 진지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충성!" 하며 인사를 받아주신다. 인사를 받을 때의 모습은 정말 현역 군인 같아 보였다. 알고 보니 그분은 젊은 시절에 월남전을 겪으신 치매 노인이었다. 단 2분 만에 기억이 지워져서 인사를 하고 또 해도 항상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바라보셨다. 그래도 월남전에 참전한 젊고 건강했던 시절은 잊지 않고 있는 것처럼 "충성!" 할 때의 목소리와 표정은 여전히 군인답게 씩씩했다. 평상시에 최 씨 어르신은 인사할 때와 식사할 때를 뺀 나머지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멍한 회색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충성' 하고 인사를 할 때만은 눈을 맞추며 응해주신다. 그래서인지 직원들은 자주 인사를 했다. 나와 최 씨 어르신이 나눈 대화는 오직 '충성'뿐이 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힘없고 말이 없는 노인이 아니라 반짝이는 눈빛의 혈기왕성했던 군인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매일 버버리 상표 옷을 입고 반짝이는 은발 머리에 멋쟁이 머리띠로 한 껏 꾸미고 오시는 신 씨 어르신은 젊은 시절 한국 무용을 했단다. 지금은 허리가 거의 고꾸라진 듯 굽어서 휠체어에 의존해서 다녀야 하는 신세다. 센터 내 오후 프로그램 중에는 노래 강사가 와서 노래방 음악 반주에 맞춰 신나게 노래 부르는 시간이 있는데, <아모르파티>나 <내 나이가 어때서>만 나오면 누워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굽은 허리를 있는 힘껏 펴서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평소에는 기력이 없어서 하루 종일 누워만 계시는 데, 춤을 출 때만큼은 어디서 힘이 나는지 휠휠 날아다니듯 춤을 췄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르신의 젊은 시절 아릅답고 멋졌을 춤사위를 상상하며 굽은 허리를 펴서 춤을 추게 하는 힘은 '기억'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나 청춘의 시절이 있었고 인생의 가장 뜨거웠던 시간을 지나 왔으리라. 그들의 지워지지 않는, 아니. 지우고 싶지 않은 '시절 기억'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아니라 몸속에 스며들어서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160시간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시간을 업고 올라가 아름답고 화려한 미모의 '미쓰 마산'과 월남에서 돌아온 씩씩하고 늠름한 군인, 한 마리 나비같이 곱고 우아한 무용가의 찬란했던 시절을 만날 수 있었던 나의 2024년 여름은 그래서 더욱 뜨거웠다.
이은하
동인지 r목성들의 글자리J 참여
maryly@naver.com
카페인 때문에 커피를 끊었는데, 가을이 되니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