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아름다움
<수필> - 文霞 鄭永仁 -
대개 비어있는 것들은 채워지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와 반대로 채워진 것들은 비어지기 위해서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만물은 채우고 비우는 일을 연속한다. 인간도 비우고 태어나서 종내는 비우고 떠나야 한다. 이렇듯 채움과 비움은 절대적인 진리다. 따라서 모든 현상의 끝마무리는 비움의 상태가 아닌가 한다.
인간의 뇌는 유전설, 백지설, 환경설을 주창한다. 그중 백지설은 모든 것을 비운 상태에 태어나 경험에 의해 채워지는 주장이다. 그래서 뇌는 그 좁은 면적에 수많은 경험을 채우기 위해서 주름이 잡혀 있다고 한다. 굽이굽이 굴곡진 곳에다 채운다는 것이다.
냉장고는 채워지기 위해서 존재하나 너무 꽉 채우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밥통이나 창자도 너무 채우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장수의 첫째 비결은 소식(小食)을 하는 일이라 한다. 이는 일정 공간을 비워 놓는 일이다. 단식(斷食)이 비우는 일인 것처럼……. 천 년을 산다는 장수의 대명사인 학(鶴)의 밥통은 항상 비어있다시피 한다고 한다.
서양그림은 동양그림과 다르다. 서양화는 주로 꽉 채우는 기법을 쓰지만 동양화는 어느 정도 여백(餘白)이 있어야 참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정원이나 공원도 서양은 꽉 채우거니 기하학적이지만, 한국의 정원은 자연과 거슬리지 않게 비움과 조화를 이루는 게 특징이다.
비우는 일은 새로운 것을 더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덜어내는 일이라고 무소유(無所有)에 대해서 법정 스님은 갈파했다.
수학의 연산법칙은 가감(加減)과 승제(乘除)는 반대 개념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으로 채우고 비우고 있다.
8+2=10이지만, 10-2=8이라는 연산규칙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그래서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여기에는 대체적으로 부증불감(不增不減)의 법칙이 작용한다. 하늘에서 비가 오고, 그 물이 증발 되어 다시 하늘의 구름이 되듯이 말이다. 바다 가운데 모래를 퍼내면 어느 곳의 모래가 그 구덩이를 채우게 마련이다. 해변의 모래가 유실되는 원인이 거기에 있다.
저기압의 성긴 자리를 고기압이 채워야 바람이 일어난다. 웅덩의 물이 넘치면 물이 넘쳐흐르게 마련이다. 썰물이 있어야 밀물이 있고, 초승달이 채워지면 보름달이 되고, 보름달은 다시 비워 그믐달이 되듯이, 이게 다 자연의 순환이고 에너지의 흐름이다. 태양의 햇볕에너지는 녹색으로 전환되고, 녹색은 광합성으로 탄수화물을 만들고, 인간은 그 탄수화물을 먹음으로써 에너지를 얻고, 다시 배설하고, 썩고 다시 환원되는 결국 에너지의 흐름도 채움과 비움의 연속이다.
사람의 삶도 탄생은 채움이지만 죽음은 완전히 마지막으로 비우는 행위이다. 만약에 생(生)과 사(死의) 채움만 있다면 아마 인류는 멸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성정(性情)은 비우기보다는 채우려고만 한다. 기체 분자나 액체의 분자보다 꽉 채우는 고체의 곳간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채우는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비워야 한다. 비우지 못하면 쌓이게 마련이다. 고인물이 썩듯이 인간의 몸에 채운 것이 제 때에 비우지 못하면 각종 병에 시달리게 된다. 비만, 고혈압, 당뇨 등. 사람의 몸도 방광에 오줌이 차면 비워야 하고, 변을 비우지 못하면 변비가 된다. 그걸 비우지 못해 오랫동안 썩히면 대장암에 걸리기 쉬운 것이다. 과도한 영양을 써서 비우지 못하면 비만이 생기면 몸에 사단(事端)이 생기고 만다.
달도 차면 기울고, 꽃이 피면 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채움의 아름다움보다는 비우는 아름다움이 더 아름다울 것이다. 그 넓은 바다가 늘 꽉 채운 바다라면 아마 답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채울 수 있는 비움이 진짜 아름다움이 아닌가 한다.
지구상의 뭍과 물의 비율은 30 : 70 정도라 한다. 우리 몸의 물의 비율도 70%쯤이다. 그러니 우리가 채울 수 있는 적당량의 최적 한계는 70%인 것 같다. 천년을 산다는 학은 항상 밥통이 비어있다시피 한다고 하는 것처럼…….
몸이 그럴진대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이 가득 차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게 만병의 근원이 된다.
사실 마음을 비우는 일은 게 엿장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육체의 병은 약이나 수술로 다스릴 수 있지만 마음의 병은 그리 쉽게 고칠 수가 없다. 그게 우울증, 조울증이고 어려운 마음의 상태가 된다.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쯤으로 치부하나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몸 감기가 만병의 근원이듯이 마음 감가가 심하면 다스리기 무척 어렵다. 마음이기 때문에…….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을 때도 물동이에 꽉 채우면 흘러내린다. 약 70%쯤 담으면 별로 흘러내리지 않는다. 마치 내 손에 무엇을 쥐고 있으면 다른 사람 손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서양의 악수는 내 손이 비어있다는 증명 행위이다. 봄과 여름의 숲은 채우는 시간이라면, 가을과 겨울은 비워서 겨울을 지난다.
이제 내가 가진 것의 30%쯤 비워 보자. 한 70%쯤 채워 보고, 마치 한국의 여백의 아름다움처럼……. 그래서 비움의 아름다움을 느껴 보자. 마치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처럼 말이다.
천여 년을 사는 느티나무는 속이 비어 있다. 3,000년을 산 올리브나무는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살아남는다고 한다. 인간은 그런 것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2000년을 사는 웰위치아나무는 사막에서 수분을 아끼기 위해서 평생 잎 두 장만 키운다고 한다.
마음의 치유(治癒)도 오사리잡것 같은 번뇌를 비워야 치유할 수 있듯이…….
우리는 태어날 때 아무 것도 채울 수 없게 배냇저고리는 주머니가 없다. 죽을 때 입고 가는 수의도 역시 주머니가 없다.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고,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여보게, 인생은 비워서 왔다가 비우고 가는 길이라네!”
(옮긴 글)